루소 - 시공 로고스 총서 31 시공 로고스 총서 31
로버트 워클러 지음, 이종인 옮김 / 시공사 / 2001년 6월
평점 :
절판


최근 자크 랑시에르의 <해방된 관객>을 읽었다. 랑시에르의 책에서 말하는 요지는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스펙타클이란 이미지가 대중을 수동화 시키는 점이다. 수동적인 인간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타인의 욕망에 서식한다. 한 마디로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프레임이 갇혀 거기서 나오지 못하고, 그 틀 안에서 열렬하게 돌고 도는 인생을 만끽하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가 없는 인간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는 도덕이란 가치가 있다. 그런데 도덕적 가치는 사회적 합의에서 나오는 것이고, 사회적 합의는 그 시대의 풍미와 조류에 의해 움직인다. 건전한 사회에서 흘러나오는 도덕은 매우 아름답고 사람들은 행복의 미소로 가득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한 사회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사람들은 서로 경계하고 미워하며, 조금이라도 작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 성난 이리처럼 으르렁거릴 것이다.

 

인간이 진정 행복한 시대란 도대체 언제라는 것일까? 사소한 일에 인간들은 수지가 틀리면 친구에서 적이 되고, 돈 앞에서 우애 좋았던 형제자매마저 법적 소송까지 벌인다. 심지어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관계가 비틀린 모습도 TV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인간의 행복은 무엇으로 망가지는가? 마르크스이라면 당연히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했으니 자본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마르크스 이전이라면 루소는 개인의 이기심이라 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루소를 다소 비판적 관점에서 대하고 있으나, 마르크스의 서적들을 읽은 후 루소의 서적을 읽으면 상당한 유사한 요소를 알 수 있다. 마르크스의 친구인 엥겔스 같은 경우 루소의 서적을 세심하게 읽었고, 노동자에 대한 현실의 비극은 루소가 보던 것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리오 담로시의 <인간불평등 발견자, 루소>에서 루소는 마르크스, 로베스피에로의 아버지라고 한다. 에릭 홉스봄의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서적은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 이전에 존재하던 마르크스주의의 토대를 찾아간다.

 

그 원류는 애덤 스미스의 제자인 데이비드 리카도 좌파와 또 하나는 프랑스대혁명 당시 활약하던 자코뱅 좌파였다. 마르크스의 경제학은 고전경제학의 발전과정이고, 마르크스의 정치학은 계몽주의 운동가의 발전과정이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의 고전경제학은 마르크스의 <자본>에게 이론적인 요소를 전달했지만, <자본>이 가진 정신적 가치까지는 아니다. 산업혁명 당시 메뉴펙처라는 분업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그의 제자의 아들인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 원리>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자본>에서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생산력은 발전시켰으나, 분업은 인간은 도구화시켰고, 임금의 질을 하락시켰다. 분업이 만약 노동자들이 하나의 합동체계로 만든 회사면 모르나, 분업은 자본가 하나에 의해 운영되는 곳이다. 노동자가 기계부품처럼 되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임금이 생계수단의 한계점으로 이어지고, 가혹한 노동환경은 직업병으로 이어진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부분에 대해 루소는 조금 다르게 보았다. 인간이 분업이 되면 인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거기에 메여진 것들만 가능하다.

 

인간의 직업이 시인, 벽돌공, 수리공, 교사, 의사 등으로 세분화되면 인간의 인생은 매우 한정적이고, 지나친 전문화는 인간에게 부조리한 권력한 명예 그리고 허영을 쫓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논조는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에밀>에서 언급된다. 위에서 언급한 자크 랑시에르의 <해방된 관객>이 루소의 주장에서 시작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삶이 아니라 타인의 눈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스펙타클화 된 인정투쟁은 인간 스스로의 감옥을 만들어낸다.

 

루소의 직업에 대한 고찰은 후에 가면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로 이어진다. 사회적 분업은 비단 노동자의 임금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활마저 분리시킨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태어날 때부터 의사의 손에, 교육은 교사의 손에, 결혼도 예식매니저, 죽음도 상조전문가에게 맡긴다. 인간 본인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전혀 없어지게 된 세상이다. 인간 스스로가 노동자, 교사, 시인, 비평가가 될 수 있는 세상은 없다.

 

루소의 경계는 바로 현대사회에서 드러난다. 영국 정치사상학자 로버트 워클러의 <루소>는 근대민주주의 꽃을 피우던 프랑스대혁명 전야에 존재했던 루소에 대하여 연구한 도서이다. 그의 말대로 18세기를 가장 과격하여 비판한 사상가이고, 가장 심하게 박해를 받았던 사상가 중에 하나이다. 루소의 철학을 보면 관념적으로 칸트로 넘어가고, 유물론적인 요소는 마르크스로 넘어간다. 그러나 루소가 보던 시기는 언제나 스파르타의 절제된 간소함이고, 로마의 민주정이었다. 과거를 바라보던 루소는 플라톤의 정치사상을 담고 있으나, 오히려 전도시켜버린 광기의 천재였다.

 

루소의 사상이 오히려 현대사회에 더 두드러지는 것은 무엇인가?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사상은 철학의 시작이나 인문학의 시작일 수 있겠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공감대로 이어지는 것에서 다소 벽이 느껴진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를 이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로 오면서 루소가 주장한 내용이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의 입으로 나온다. 루소 이전의 사회는 종교가 정치와 결부된 사회다. 종교는 인간에게 절대적인 삶의 가치를 강요했고, 인간의 운명은 이미 신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 한다.

 

하지만 루소는 인간의 삶은 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인간의 운명은 인간 스스로 움직이고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이라도 루소는 인간의 힘으로 세상을 좋게 만들어갈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일반적 계몽주의자처럼 지식인 엘리트들이 무지한 대중을 계몽하여 이끌어간다는 것과 다르게 루소는 오히려 민중의 선한 감정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물론 현대사회처럼 기계화로 이루어진 도시에서 불가능하겠지만, 자연이 있는 농촌인간들의 순박하고 정직함이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의 도서는 당대 엘리트에게 많은 공격을 당하고, 지금도 그의 사상을 두고 말이 많다. 죽어서도 논쟁이 끊이지 않은 사상가는 그렇게 많지 않다. 루소가 보는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 자아성찰과 자아반성만의 영역이 아니다. 루소의 <에밀>처럼 어린아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면 타락한다고 보았다. 아이의 비위를 너무 맞추면 그 아이는 버릇이 없어진다. 루소는 직접적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한 적은 없으나, 루소가 말하는 자연이란 인간의 본연의 세계이다.

 

우리는 어른이 되기 전부터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을 빼앗겨버렸다. 주입식 교육으로 수동적인 인간이 되었고, 주변 사물에 대한 판단은 누군가의 경험으로만 대체되었다. 선험적인 영역에서 볼 수 있는 이성의 영역은 모조리 빼앗긴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서평 머리부에 자크 랑시에르의 <해방된 관객>이 나온 이유는 우리 사회가 이미 어릴 때부터 우리의 눈을 빼앗았고, 어른이 되어 다시 이어진 것이다. 루소는 그 이유는 부패한 사회와 문명이라고 했다. 그 문명의 교육이 다시 아이에게 이어지고, 다시 재생산되어 인간 본연의 세계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루소를 읽는 것은 18세기가 아니라 21세기의 우리가 보는 세계를 알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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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빠 2016-08-07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 애니 비평님 글은 만화 애니가 아닌 사회 문화 비평글일때 더 재미있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8-07 22:15   좋아요 0 | URL
아니고, 오타쿠가 실천해야할 본연의 임무가 이렇게 되다니요..ㅎㅎ

루쉰P 2016-08-07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도대체 이런 글을 어떻게 쓰시는지 원...감탄을 하고 갑니다 ㅋ 루소 정말 정말 매력적이네요 ㅋㅋㅋ 읽고 싶은데 왜이리 저는 읽을 게 많은지 ㅋㅋㅋ

역시나 재미난 글 잘 보고 갑니다 ㅋ

만화애니비평 2016-08-07 22:16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지금도 루소가 적은 도서를 다시 읽는 중입니당..ㅎㅎ

루쉰P 2016-08-08 10:16   좋아요 0 | URL
항상 독서를 하면서 느끼지만요 ㅋ 한 명의 사상가를 온건히 이해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더라구요 ㅋ 전 톨스토이, 간디, 마틴 루터 킹, 루쉰 이렇게만 파고 들고 있거든요 ㅋ 어찌나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정말 루소의 전문가이신게 대단하신 것이라 느껴집니다. ㅋ

2016-08-07 21: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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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7 22: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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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8 1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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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8 22: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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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8 22: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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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8 23: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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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8 23: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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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9 08: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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