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 어떤 지역을 제목으로 내세운 작품은 그렇게 좋은 내용으로 마무리 되지 않는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영도는 흔히 부산에서는 영 아일랜드라고 불리지만, 실제 그 의미는 그림자 섬(影島)이다. 예전에 절영도(絶影島)라고 불리는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전쟁터였으며, 한자어가 불리게 된 동기는 여기는 원래 섬이기 때문에 말을 키우기 좋고, 여기서 달리는 말들은 매우 빨리 달리기 때문에 탄생한 단어가 절영도이다. 하지만 영도만 보면 그림자 섬이고, 영어로는 Shadow Island이다. 빛이 가려져 그림자가 남은 어둠, 사실 영화 <영도>는 주인공이 태어난 곳에서 평생을 벗어나지 못한 채 저주받은 운명 아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래서 영화에서 제목을 잘 관찰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이유다. 영화 곡성, 사실 곡성군은 전남에 위치한 작은 시골이다. 곡성은 사실 외부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다. 전남에서 유명한 동네면, 해남 배추, 강진의 다산초당, 보성녹차 순천과 여수 정도만 알려질 것이다. 말 그대로 전남 일대는 산과 논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곡성군의 곡성(谷城)이 왜 곡성(哭聲)이 되었는가? 내가 영화 <영도>를 거론한 이유는 영도라는 곳은 교량이 없으면 주변이 바다로 이루어진 지역이고, 부산 안에서도 가장 구석에 위치하여 더 이상 어디를 갈 수 없는 형태다. 물론 교량을 이으면 충분히 교두점이 될지 몰라도 교량 없는 영도는 고립된 곳이다.

 

영화 <곡성>에서 배경지역인 곡성은 한자어처럼 골자기로 이루어진 성이다. 즉 지형을 생각해본다면 산이 주변으로 에워 쌓여 밖으로 나가기도 혹은 들어오기도 어려운 것이다. 이런 지역에서는 이상한 살인사건이나 기묘한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현실은 모르나 영화, 소설, 애니메이션, 만화 등 다양한 장르를 보더라도 주변과 가로막힌 곳에서는 괴상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법칙이 있다. 영화 <곡성>에서 주변 지형을 보면 온통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미 영화는 처음부터 어두운 분위기를 나타내는 것이다.

 

영화의 시놉시스는 간단하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면 <곡성>이란 영화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대중영화의 형태를 따라가지 않았다. 흔히 미국이나 일본에서 상당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고, 매년 자주 나오는 장르 중에 하나이다. 이른바 B급 정서를 가진 영화다. B급 정서라면 좀비나 흡혈귀 같은 것들이 출몰하고, 잔인한 장면과 동시에 어이없는 모습도 자주 등장한다. 한국에서 B정서를 가진 영화는 그다지 많지 않다. 오히려 대중영화시장을 보면 대부분 거대자본력을 가진 업체들에 의해 좌우될 뿐이다.

 

예술영화나 인디영화에 B급영화가 잘 등장할리 없다. 영화 곡성의 최대 매력은 B급 정서를 가진 작품이 대중영화 매체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런 배경은 아마 한국의 웹툰 시장이 많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대중매체 콘텐츠는 TV와 영화에서 모든 것을 대중의 입맛에 맞춘 것이다. 스릴러 영화조차 그렇다. 하지만 <곡성>같은 영화가 등장한 배경을 보자면, 그만큼 한국 내 문화콘텐츠가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작품이 등장하려면 그 기반이 되어야 하는 작가나 시나리오 라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 <곡성>은 리얼리즘에 대한 상당히 많은 요소를 집어넣었다. 일단 한국 내 곡성군은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영화에서 등장하는 많은 건물과 지형들은 실존하고 현재도 충분히 그 기능을 수행한다. 영화는 애니메이션 영상과 다르게 실사영상 중심이 되므로 리얼리티 요소를 반영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리얼리티와 리얼리즘은 다르다는 적이다. 리얼리즘이라고 해도 어떤 식의 리얼리즘에 따라 작품성은 달라진다. <곡성>은 현실적 조건에서 리얼리티를 부여하고 있지만, 또 하나로는 마술적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것 같다. 마술적 리얼리티는 분명 미신이나 불명확하지만, 그 지역과 그 시대에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하나의 사실인 점이다.

 

왜 그런 것인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소설인 <백년의 고독>을 읽어보면 도저히 우리 인식능력을 그 작품에서 말하는 조건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남미의 세계, 그 원주민이 살아가는 세계는 그렇다. 가령 아주 오랜 문화를 지키고 있는 원주민들은 자신들에게 조상의 영령이 다가와서 예언과 힘을 준다는 믿는다. 우리는 그것을 두고 미개하거나 미신이라고 말할 수 있어도 그들 스스로에겐 그 믿음이란 사실이다. 영화 곡성이 그런 마술적 사실주의가 반영되었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바로 샤머니즘이 영화 소재로 나오기 때문이다. 박수무당이 등장하여 잡귀신을 몰아내는 굿판에서 이미 무당의 역할은 무속신화로 통한 본풀이가 아니라 제령의식이다.

 

귀신의 실존성에서 실제 영화 <곡성>에서는 귀신이 있다는 설정을 두었다(문제는 귀신이 너무 예쁘다는 게 특징이다). 영화를 보면 곡성의 마을이 점점 어느 누군가의 위협으로 사람들이 점차 죽어나가는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은 이상하게 난폭하고 공격적이며, 심지어는 사람을 공격한다. 곽병규(곽도원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마을의 경찰로 등장한다. 어느 집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사람을 죽인 사람은 이상하게 눈을 보고 있으며, 사람이 있으면 여기저기 물기 위해 달려든다. 그리고 그 이상한 병에 걸린 사람은 계속 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난폭하게 굴다가 어느 순간 경직이 멈추면 죽는다.

 

살인사건 현장에서 곽병규는 이상한 여자를 만난다. 옛날 남자군복 상의를 입은 하얀 원피스 아가씨는 이상하게 그에게 돌을 던진다. 돌을 던지는 이유는 뭔가 전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론 뒤에 나오지만, 그녀는 그 지역에 오랫동안 살아가고 있는 귀신이다. 처녀귀신인 것은 분명하나 특이한 점은 하얀 한옥이 아닌 점이다. 귀신을 대하여 생각하면 무속신화와 같이 시대와 같이 변천한다. 한국의 귀신들을 보면 대부분 조선시대의 의복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귀신이 존재했다면 고려도 삼국시대도 있었을 것이고, 일연의 <삼국유사>를 보더라도 귀신의 이야기가 나온다.

 

천우희 씨가 맡은 역할에서 귀신 역시 사회적인 변천을 통해 인간의 의식공간에서 재탄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귀신의 역할을 무엇인가? 작품에서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레 행동하는 장면이 큰 힌트가 된다. 내가 발견은 2가지다. 맨 처음 내가 의문을 가진 게 곽병규가 살인사건이 일어난 집에 가는데, 말린 나뭇가지 것들이 마루에 걸려 있었다. 그것은 귀신이 동네주민에게 해가 나지 않기 위해 걸어놓은 주술이었다. 처음 곽병규가 괴물에게 습격당할 때 무사하게 집에 갈 수 있었던 이유도 그렇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있다. 왜 곽병규는 실제 당한 일을 꿈에서 꾼 악몽처럼 떠오른다. 인간이 지나친 충격이나 공포를 느끼면 자신이 당한 일들이 현실이 아니라 환상이라고 여기고 싶어 한다. 이때까지 곽병규를 괴롭히던 꿈들은 모두 실제 일어난 일이고, 꿈을 악몽이라며 믿지 않으려 하는 것은 인간의 습성이다. 다른 1가지는 황정민님이 맡으신 박수무당이다. 내가 중간에 약간 의심 가는 장면이 있었다. 박수무당집으로 찾아 간 곽병규는 그가 옷을 갈아입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한국남자가 입는 하의 속옷은 일반적으로 삼각 내지 사각 팬티다. 혹은 전통한복에서 남성은 속고의와 속저고리만 입는다. 결국 한국 전통한복에는 일본의 훈도시 같은 의상을 남자들이 입지 않는다. 박수무당이 입은 훈도시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해야 했다. 인간을 습격하던 붉은 눈의 괴물이 나체에 훈도시만 입었던 것이다. 훈도시를 입은 점에서 박수무당은 이미 마을주민을 살해하는 음모세력하고 공범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작품에서 조금 의아한 장면이 있다. 괴물에게 감염되어 좀비처럼 된 사람의 옷을 보면 모두 귀신이 상의를 입고 있다는 점이다. 병규는 박수무당의 말을 듣고 귀신이 범인이라 여겼을 지도 모르나, 시기적으로 보면 군복상의를 입은 사람은 산에서 조난당한 사람이다. 귀신이 힌트를 준 것인지 모른다. 누가 지금 괴물에게 감염되어 죽어가고 있는지 말이다.

 

<곡성>에서 이런 전개과정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은 박수무당과 일본인이 펼치는 굿판이다. 굿판에서는 무당은 악령을 제거하기 위해 악령은 박수무당을 막기 위해라도 하나, 사실 그것은 틀린 것이다. 박수무당이 곽병규 집으로 왔을 때 귀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신을 본 박수무당은 코와 입에서 피를 나오고,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계속 피를 토한다. 그날 굿을 한 것은 박수무당과 일본인의 대결인 것처럼 보였지 사실은 원래 살던 귀신을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귀신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귀신이 견제할 수 있는 것은 괴물이었지만, 인간 그 자체는 견제할 수 없었다. 마지막 장면은 3번 닭이 울면 위기가 벗어날 것이라 했지만, 결국 병규는 귀신의 터부를 어기고 집으로 돌아갔고, 딸은 이미 괴물의 전염에 완료되어 결국 어머니와 할머니를 살해한다. 작품을 보면 병규의 딸 효진이의 모습에서 그런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유진이가 TV를 보고 있을 때 항상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을 보여준다. 그 장면은 강력한 맹수가 자신보다 힘이 없는 동물을 잡아먹기 위해 움직이는 모습이다. 맹수처럼 되어버린 효진이는 가족을 살해하고, 마지막에는 괴물의 지배를 받는다.

 

작품의 시나리오를 보고 리뷰하자면 여기까지는 단지 1차적인 글에 불과할 것이다. 영화라면 왜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Context적인 맥락 관계를 볼 필요가 있다. 작품에서는 마을이 죽어가는 것이고, 그 원인이 외부에서 찾아온 일본인이라는 점이다. 마을을 붕괴하는 것은 외부의 인물 일본인이고, 그것에 의해 마을주민들은 죽어가는 것이다. 마을에 단순히 여행이 목적이라 하는 그는 마을을 파괴하는 원흉이다. 그런데 마을을 파괴하는 것은 단지 외부인인가?

 

그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과정에 대해 주변을 속일 수 있는 속임수가 있었다. 일본인의 방에는 온갖 주술적인 도구와 희생자의 사진이 있었다. 그가 펼치는 것은 한국의 무속의식과 같았으며, 그의 공범자인 박수무당 역시 무속의식을 보여준다. 무속의식은 서로 다르게 진행되나, 서로의 목적지는 같았다. 희생자들을 노리고 계속 음모를 꾸미는 것이다. 마을의 몰락은 외부의 침략이 아니라 외부의 침략을 동조할 수 있는 내부의 내응이 있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진정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서로 혼란을 겪으며 파멸을 맞이한다.

 

그 파멸은 우리가 이때까지 믿고 있던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아닌 것인지 구별하지 못한 점이다. 사실 박수무당이라면 그 마을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 처녀귀신의 편이야 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마지막 병규는 자신의 가족을 모두 죽은 효진이의 모습을 보고도 현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자신의 가족과 자신마저 죽이던 효진이를 마지막까지 지켜주겠다고 말한다. 영화를 보면 우리가 계속 믿어왔던 그 근본이 틀린 것이라 말한다. 병규는 주변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증세와 공격성을 기억해도 자신의 딸이 그런 행동을 보여도 자신의 딸에게 큰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박수무당에게 찾아간 병규는 묻는다. 왜 나의 딸에게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지 말이다. 박수무당의 말은 참으로 간단명료하다. 낚시를 하는데 낚시꾼이 자신에게 걸린 물고기가 어떤 것인지 신경이 쓰이는지 물어본다. 절대 낚시꾼은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단지 자기가 낚은 물고기가 좋은 것이면 그만이다. 자신에게 어떤 불행한 일이 닥쳐도 세상을 원망하더라도 불행은 내가 피해가고 싶어 피해가는 게 아니라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점이다. 운이 좋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그 운이 다했다면 어떤 비극의 씨앗이 올라올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 비극이 닥치면 인간은 받아 들이야 하겠지만, 현실의 인간들은 그 비극이 일어나는 순간조차 외면한다는 것이 진정한 비극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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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6-19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글은 너무 좋은데 괜히 읽었어 ㅋㅋ 저 이 영화 아직 안 봤단 말이에요 ㅋ 아 괜히 읽었어 ㅋㅋㅋㅋㅋ

그래도 정말 뛰어난 리뷰입니다. (엄지 척) 흠 대체 만화애니비평님은 뭐하시는 분인 걸까..덕후인가 오타쿠인가 히키코모리인가...아니면 이중적 생활을 즐기는 변태인가..의문이 가시지 않습니다. 흠 정말 오랜만에 좋은 덕후를 만났다는 이 전율! 아 리뷰 재미지다 ㅋ

저도 지지 않기 위해 덕후력 기르고 있어요. 기대해 주세요!

곡성보다 더 미스테리한 건 만화애니비평님의 정체...

만화애니비평 2016-06-19 22:35   좋아요 0 | URL
이 정도면 그렇게까지 스포 많이 하지 않았어요. 거의 제가 집어낸 이야기는 영화보던사람들이 집어내지 않은 장면입니다. ㅎㅎㅎㅎ

덕후이고 오타쿠이나 히키코모리는 되지 못한 일인입니다. 직장인이다 보니 내일 출근이 두렵군요..ㅎㅎㅎ

그런데 변태는 맞습니다. 군대 갔을 때 내무실 고참과의 대화내용 잊을 수 없네요.
˝너 담배피나?˝
˝안 핍니다˝
˝너 술 좋아하나?˝
˝술 평소에 안 마십니다˝
˝너 여자는 있나?˝
˝여자 없습니다˝
˝당구는 칠 줄 아나?˝
˝칠 줄 모릅니다.˝
˝아니 이 새끼 완전히 변태네, 도대체 무슨 재미로 세상 사는데.˝

그렇습니다....ㅎㅎㅎ



루쉰P 2016-07-16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곡성>을 보고 다시 한번 리뷰를 읽었습니다. 더 확확 읽히네요. 곡성을 다 보고 어렴풋이 무명과 박수무당, 일본인의 관계에 대해서 알았는데, 리뷰를 읽으니 더욱 명료해 지네요.
마치 <곡성>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처럼 다양한 해석을 내리게 해 주는 것 같아요. 이 영화에 대해 많은 해석이 있더라구요. ㅋ
근데 전 만화애니비평님의 마지막 문장이 참으로 맞다고 생각해요.

`현실의 인간들은 그 비극이 일어나는 순간조차 외면한다는 것이 진정한 비극일 것이다.`

이 문장보고 소름이 쫙!!!!!!!!!! 만화애니비평님의 존재야 말로 저에게는 곡성의 무명과 같네요. 후후후 어찌 이런 리뷰를...통찰력이 대단하십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7-17 19:40   좋아요 0 | URL
아 영화보셨습니까? 무라카미 하루키 책은 아직이라 뭐라 할 수 없지만,
영화는 아무 것도 도움이 되는 게 없다! 라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소름이라니..그런데 무명의 천우희씨 이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