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내가 어떤 단어의 개념을 생각한 게 있다. 그것은 공간(空簡)의 지박(止泊)이다. 왜 공간에 대한 지박인가? 최근 서울 강남역에서 일어난 아주 슬프고 끔찍하고 아픈 이야기를 우리는 뉴스에서 접했다. 20대 여성이 30대 남성이 휘둘린 흉기에 의해 세상을 떠나야 했다. 아직 20대라면 연애나 취업 혹은 결혼 등등 여러 가지 일들을 선택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살해당한 분은 자신에게 부여된 기회를 박탈되어 억울하게 구천을 헤매게 되었다. 진짜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영혼이 있으면 매우 슬플 것이다. 우선 자신이 죄도 없이 희생당한 점이고, 다른 것은 그 분의 죽음을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분명 평범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가진 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에 대해 애도와 함께 이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바라봤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두고 후폭풍은 그렇게 만만치 않은 모양이었다. 남성에 대한 혐오와 더불어 이에 대한 반발영역으로 여성에 대한 혐오가 서로 엉겨 붙어 진정한 의미의 추모보단 분노를 넘어 광기의 집착과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그녀의 죽음 억울하고, 어느 사이트에서 내건 군인들의 죽음 슬픈 일이다. 하지만 2가지의 죽음은 서로 다른 개념이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추모하고 생각해야 할 점이다.

 

그녀의 죽음은 우리 사회라는 구조에서 볼 일이고, 군인들의 죽음은 우리나라의 국방군사 지휘 및 무기체계, 그리고 대외 정치외교 관점에서 생각해야 해야 하는 점이다. 단순히 어느 한 개인 여성의 죽음과 다수의 남성군인의 죽음에서 어디가 더 무겁냐고 물어보면 그건 참 애석한 일이다. 어느 누구든 다 소중한 목숨이고, 어느 누구나 그 당사자의 가족과 친구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이다. 그러나 만일 어느 것이 사회적으로 더 심각하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전자를 택할 것이다.

 

그 이유는 후자의 죽음은 많은 인명을 희생되었고, 국가적으로 큰 위기감을 불러일으킨 사건이다. 그럼에도 전자에게 선택하는 이유는 군인은 처음부터 국가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고, 그들이 나라를 지키는 이유는 국민들이 적으로부터 다가오는 위기로부터 안전하게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다. 공화주의국가, 대한민국 헌법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한다. 공화주의는 그 나라의 국민이 다른 국가에 의해 목숨과 재산의 피해를 입지 않아야 한다. 결국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일반 국민들이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사는 것은 곧 헌법으로써의 권리이다.

 

조금 애석한 사실은 군인들의 죽음은 희생에 비해 그들에게 돌아가는 대가는 적절하지 못하다. 매년 자살하는 군인, 사고로 죽는 군인들이 수십 명 내지 수백 명이다. 인권에 대한 개념에서 어느 특정 신분만을 봐서는 안 되고 전 방위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강남지하철역 참사에서 왜 이렇게 사회적 이슈가 되었는가? 극우적인 여성혐오 사이트와 극단적으로 남성혐오 사이트의 행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금 화제로 떠올랐고, 그들의 행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추모의 의미가 왜곡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이번 추모에서 서울강남을 시작하여 서울 전 지역으로 또 다시 전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추모에 대한 열기는 나쁘지 않으나, 무엇인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추모 그 자체에 대한 부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타인에 대한 죽음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슬픔으로 기억해주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사람다운 맛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지 내가 의문을 제시하는 것은 왜 강남지하철에서 죽은 한 개인의 죽음이 이렇게 큰 이슈로 되었는지 이다.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나는 솔직히 이 사회가 마음에 들지 않고, 정부를 신뢰하고 싶은 마음이 거의 바닥에 가깝다. 우리들은 흔히 산업재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 있다. 산업재해를 당한 사람의 가족과 친구들은 이 사회에 대한 부조리와 정부행정의 공정성에 심각한 회의감을 느낀다. 내 아버지는 안전사고로 인해 산업재해를 당해 부상을 입자, 회사에서 강제로 퇴사시킨 것도 모자라 산업재해로 인한 병원비를 제공하지 않았다. 어느 회사에서는 비정규직으로 들어가 4개월 전후로 내리게 하여 퇴직금을 지불하려 하지 않았고, 어느 회사에서는 퇴직금조차 주지 않았다.

 

내 친구는 원조파견과 하청관리 부실, 안전관리 미흡으로 인해 변을 당해 사망했다. 장례식장에 가서 화장터에서 화장 후 유골단지를 무덤에 묻는 그 순간까지 있었다. 내 친구의 사고는 인터넷 신문기사 올라왔고, 그는 그렇게 세상의 흐름 속에 사라져갔다. 이런 일을 겪은 입장에서 세상을 본다면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 게 옳은 것인가? 사회적 약자가 되거나 혹은 그 약자의 주변인으로 세상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러나 우리 사회는 내 친구의 죽음, 혹은 군인의 사고사, 그밖에 죽음에 대해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내 억측일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바로 공간적 지박이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공간이란 우리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이다. 땅이나 땅에 매겨진 부동산 가격, 사람, 지하에 매설된 상하수도관로 등등이 모두 공간적 존재다. 내가 서울이든 부산이든 그 어디에 살거나 혹은 이동하고 있다고 해도 인간의 공간이란 개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그 공간이 어디에 속해있는지에 대해서는 구분할 수 있다. 신분에 따라 공간적 지박이 작용한다.

 

군인의 죽음은 군부대 영내나, 혹은 육상의 훈련이나 전투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군인의 죽음에서 대부분 군인들은 남성이다. 군인의 죽음은 남성의 죽음과 연결되고, 공장 노동자나 공사장의 노동자 역시 남성들이 많이 차지한다. 요새 군인, 노동자 등과 같은 부류에서도 여성이 많이 등장하고 있으나, 대부분 남성이 많은 인력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일정한 장소, 일정한 직업, 일정한 패턴에서 죽음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번 강남역살인사건을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분명 강남지하철역 화장실이지만, 그 공간적 위치와 그 공간 안의 건축물 용도기능이 작용한 곳이 강남역이었을 뿐이다. 왜인가? 살인을 저지른 자가 여기가 강남지하철역 화장실이기에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이 살인을 저지른 곳이 강남지하철역 화장실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공간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니다. 그가 어느 공간과 상관없이 불특정 대다수의 여성을 공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군인의 사고사나 노동자의 산업재해는 어느 특정장소와 상황이 존재한다. 즉 불특정 대다수가 아니라 특정 다수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남지하철역 살인사건이 위험한 이유는 특정대상을 지칭한 범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에 일본에서 살인사건이 있었는데, 미야자키 쓰토무라는 일본인은 어린아이를 납치하여 살인을 저질렀다. 그의 방을 조사하니 그가 가진 롤리타콤플렉스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의 범죄는 즉 어린아이라는 대상, 특정대상을 상대로 한 범죄이다. 강남지하철역 사건과 비교하자면, 정신병적인 살인자가 무엇인가 살인대상자에 대한 목적성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아무 이유 없이 그저 길에 보이는 사람에게 흉기를 휘둘러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이런 일은 과거에 있었다. 의정부역에서 칼을 들고 지하철 이용승객을 살해했던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묻지 마 범죄이다. 그런데 묻지 마 범죄에서 의정부역은 단지 눈에 보이는 사람을 향한 것이다. 무차별적인 공격성향이 일으킨 범죄고, 강남지하철역 살인사건은 무차별적으로 행한 것보다 불특정 대다수 여성을 향한 증오에 의한 범죄다. 즉 살인자가 살해할 대상을 두고 목적성은 없지만, 살해하는 목적성은 가진다는 점이다.

 

살해할 대상의 목적성과 살해의 목적성에서 이번 강남지하철역 살인사건은 사회적 큰 불편한 점을 건들었던 것이다. 만일 범죄자가 눈앞에 보였던 사람이 단지 20대 여성이었을 뿐이라는 우연성이었다면, 사회적 갈등은 증폭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한국의 젊은 여성을 노리고 싶다는 적대의식에 사로잡혀있기에 문제가 커진 것이다. 그런 의식은 언제 어디서라도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것이다. 우발적인 범죄는 말 그대로 우발적으로 예상하지 못할 상황이나, 강남지하철역 살인사건을 우발적이지 못한 상황을 만든 비극이다.

 

게다가 강남지하철역은 단순히 공간적 목적성에서 공간의 지박에 의해 저지른 게 아니라 그 이상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강남지하철역에서 다음은 신도림역으로 혹은 신촌역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공포가 사람들을 자극하고, 추모와 맞지 않은 성적차별로 파생된 혐오가 증폭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분명 여성에 대한 혐오감이 살인자에게 있겠지만, 이 사건을 부당하다고 여기는 자에겐 여성에 대한 혐오감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그런데도 혐오감을 표출하는 이유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불만을 논리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신경질적으로 해소하고 싶은 욕망에 충실하다.

 

결국 사회적 문제에 대해 논리적인 접근으로 해결하기보단 어떤 특정대상을 공격하여 자신들의 비뚤어진 논조를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인간들의 집단군중적인 폭력적 의식은 자신에게 하나의 정의감이란 허울 좋은 쾌감을 주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게 누군가 맞장구 치주면 그것이 잘못된 가치관이라도 옳은 게 된다. 왜 독일이 나치에 의해 통치되고 잔인한 행위를 보였는가? 그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살인을 해도 자신들은 죄를 짓는 게 아니라 정의를 집행한다고 여긴다. 집단적 광기가 무서운 이유는 윤리적 가치를 떠나 도덕적 가치란 결국 자신들의 광기로 대체된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내러티브(Narrative)라고 나는 생각한다. 서사에서 평화롭거나 혹은 아무 이상 없는(허위와 가식으로 얼룩진 그 사회에는 내부적으로 분명 문제가 있다) 세계 질서를 파괴하는 것은 외부의 적이고, 그들은 자신들이 외부로부터 받은 피해가 정당하지 못함에 따라 폭력적으로 그들을 응징하는 것이 정당하고 곧 그것이 정의라고 믿는다. 할리우드 영화가 가끔 보면 3류 수준밖에 안 되는 이유는 이런 방식을 그대로 학습하기 때문이다. “너 나 건들었어(하지만 이미 현실에서 자신을 건든 쪽을 확실히 간섭하고 있다는 사실은 은폐)? 그럼 너 좀 다시는 못 까불게 조져야겠어.”

 

이런 내러티브 구조는 인간의 오랜 이야기인 신화에서 시작하여 역사에서도 자주 본다. 이런 방식은 영화, 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 혹은 현실의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상대방이 더 악을 쓰고 저항하면 할수록 자신들이 외치는 정의감이란 허황된 정신은 더 고무된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파장을 일으킨다. 이런 식으로 서로 핑퐁게임을 하다보면 사건은 해결이 아니라 이상한 조류를 타고 낯선 바다에 표류한다. 원래 추모의 의미도 없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생각하자면 이런 죽음을 두고 기억하는 것은 좋으나, 사회적 문제를 두고 공간의 지박에서 벗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강남역지하철역 지나치다 추모하는 사람이나 그 공간과 멀리 있는 자라도 슬픈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공감해주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산업재해로 죽거나 해고로 인한 노동조합투쟁과정에서 재판에 패소하여 거액의 벌금을 갚을 방법 없어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 군대에서 사고나 의문사 당한 이들에 대한 추모와 아픔은 약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번 사건을 두고 바로 공간의 지박에 갇힌 한국사회를 생각한 것이다. 무차별적 살해의도가 불특정 대다수 여성을 노리는 것은 분명히 불안하고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특정된 공간에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가는 이들의 희생 역시 슬프고 무서운 일이다. 조금 크게 보자면 세월호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이나, 518에서 학살당한 광주시민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의 희생을 단지 그 공간적 범주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그 이상으로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진정 혐오해야 하는 것은 그저 눈에만 보이는 가시적 요소보단 그렇게 되어버린 과정을 돌이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반성과 성찰 없는 증오는 아무런 대안과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단지 시간낭비에 타인에게 상처만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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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5-22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나는 솔직히 이 사회가 마음에 들지 않고, 정부를 신뢰하고 싶은 마음이 거의 바닥에 가깝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삼가 친구분의 명복을 빕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5-22 21:45   좋아요 0 | URL
올해 1월1일 장지로 떠나보내면서 참 뜻깊은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친구가 하늘에서 고통없이 잘 지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