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 평전 - 조선을 흔든 개혁의 바람
이종수 지음 / 생각정원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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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2번 반복되는 일이란 참으로 슬픈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에 반면교사 해야 할 일들을 후예들이 보고 배우는 게 아니라 그대로 따라하다 못해 더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조광조 평전>을 읽는 내내 기분이 오묘했다. 역사라는 것을 그렇게 연결되고 계속 이어지는가? 왜냐하면 조광조를 보면서 전혀 다른 인물이 생각났다. 인조반정 이후 북벌론이 효종과 헌종 때 대두되면서 그것을 전력 전심으로 추진하려던 인물이 있었다. 백호 윤휴, 이 윤휴라는 선비는 단순히 북벌론만 주장한 것만은 아니었다. 부강한 조선이 되려면 먼저 백성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그들을 배부르게 먹여주는 것이어야 말로 진정한 국부의 시작이다.

 

생각해보면 영국 도덕철학자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생각하자면, 스미스는 자본주의의 도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효율적인 생산과 거래로 통해 많은 전 세계 국민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기 바라는 마음에 저술했다. 결국 국가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생을 돌보는 것인 점은 18세기 유럽이나 17세 조선이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그 제정이나 국가경영방법에서 누구의 관점에 따라 좋은 정책인가 그렇지 못한가로 이어진다. 헌종 사후 이후 숙종이 왕으로 올라오면서 경신환국이 일어나고, 그 덕분에 청남 계열 인사들은 숙청당한다. 그 중에 하나가 윤휴다. 윤휴는 평생 학문에 매진하고, 가난하고 고고한 선비였고, 백성들에게 많은 인망을 받은 자였다.

 

그가 국문에서 장형을 당한 후 비참한 모습으로 성문을 나올 때 많은 백성들이 나와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궁궐 너머에 군왕이 있으나 거기에 전해질 가슴 속의 비통은 너무나도 막막했다. 사대부의 업무, 선비의 도리란 바로 공자가 논어에서 강조하듯이 농민에게 농업의 기술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농업을 마음 편하게 짓도록 행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윤휴는 바로 그런 일을 하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조선의 선비는 권력이 앞에 가로막아도 목숨 걸고 주장하여 때로는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거나 또는 목이 잘려 효수당하거나 죽은 뒤에도 시체를 부관참시 하는 비극도 일어난다.

 

윤휴는 남인계열의 인물이고, 남인은 다시 동인에서 시작된 학파다. 퇴계 이황과 그 이전에 존재하던 조광조란 거대한 태양에 의해 이어진 학파다. 물론 율곡 이이의 서인들도 조광조에게 이어진다고 하나, 남인에게 조광조의 그림자가 큰 이유는 조광조가 바로 소학(小學)이란 경전을 지침을 살았던 소학군자였기 때문이다. 소학의 이어짐은 윤휴의 친구인 고산 윤선도로 이어지고, 고산 윤선도는 왕의 스승으로 학문을 가르칠 때 소학을 효종과 헌종에게 강조했다. 선비란 목숨이 위험해도 그 입을 속여서 안 된다는 점이다. 지금에서 생각하면 양반이란 계급사회가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한국의 전통문화라는 관점에서 소학을 중시하여 선비정신을 내세운 그들의 의기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왜 그들이 목숨 걸고 권력과 싸웠는가는, 위로는 군왕을 속이고 아래로는 백성의 피와 고름을 자아내는 간신배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소학의 시작이 조광조이고, 조광조의 제자인 삼휴자는 윤휴의 고조할아버지이고, 조광조 학파 관료이던 귤정 윤구는 윤선도의 증조할아버지다. 소학의 전승은 이렇게 조광조로 시작하여 남인에게 이어진다. 조광조의 스승인 김광필은 조선 사림의 거두나 바른 말을 했다는 이유로 연산군 시절 유배를 가고, 무오사화에서 결국 참형을 당해야 했다. 조광조 입장에서 2번의 사화를 지켜보고, 중종반정에 따라 다시 정계로 들어온 사림의 영수다.

 

반정이나 혁명은 국가에서 결코 놓칠 수 없는 사건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태종 이방원이 형제의 난을 일으키며, 세조가 다시 반정을 일으킨다. 반정과 개국공신이 항상 권력과 붙어있으면서 왕과 좋은 관계이기도 하나 매우 불편한 관계이기도 했다. 공신들은 대부분 무관들이 많았고, 거사 이후 요직을 차지했으며, 특히 병권과 인사권을 가진 병조와 이조 참모진으로 구성되어 자신의 수족을 마음대로 부렸다. 아마 중종 이후로 조선은 왕이란 강력한 중앙집권제가 아니라 신하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는 허수아비처럼 되어버렸다. 왕은 신하의 권력다툼에 의해 독살 되는 일도 있거나 주변 친족마저 사약을 내린다.

 

세자 음해설로 중종은 자신의 아내 경빈과 경빈의 아들에게 죽음을 명한다. 권력관계에서 왕과 권력승자에게 미움을 보이면 여지없이 피를 보고 마는 조선의 권력세계에서 양반이란 결코 좋은 자리인지 아닌지는 그 권력의 중심지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반정공신 수는 태조와 세조의 개국과 반정공신 수보다 많았고, 과거 연산군 아래서 아첨하던 자가 갑자기 공신으로 되기도 하며, 전혀 상관없는 자가 뇌물로 들어와서 요직을 차지한다. 권력을 목표로 하는 자가 권력을 잡는 순간 국고는 비게 되고, 백성의 마음은 허무로 차게 된다.

 

조광조의 입신은 바로 저런 훈구대신보다 더 못된 반정공신의 간신배 질을 저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광조에게 가진 것은 오직 바른 말만 하는 입과 바른 생각을 전하는 붓이다. 그가 가진 말과 붓으로 왕을 설득하고, 조정의 권력자와 대치했다. 대쪽 같이 바른 자이기에 오직 옳은 말만 했다. 왕을 고위대신 앞에 좌장하게 하여 학문을 논하는 경연장에서 조광조의 태도는 중종을 반정이란 이름으로 올렸던 자들에게 불편하게 만들었다. 왕과 같이 있는 모습과 왕에게 진언하는 언사에서 조선의 모순과 병폐를 나열했고, 그것에 이익을 보던 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조광조는 증오의 대상이다.

 

충분히 재물이 있지만, 백성을 상대로 고리대업을 하는 왕족, 백성의 구휼미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고관대신의 행태에 과연 조광조에게 보일 빛이란 무엇인가? 조광조는 바로 중종의 그림자 뒤로 숨은 자들을 맞서 싸우다가 결국 패배하고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그 이름을 영구불천으로 새기게 된다. 아직 순박하고 착한 왕이나, 판단력이 흐리고 의심이 많으며 겁에 가득한 중종, 중종은 자신의 그림자를 벗어버리기 위해 조광조란 태양을 받아들이나 조광조가 거대할수록 자신은 조광조의 그늘로 가려워짐을 느꼈을 것이다.

 

조광조의 상소와 죽기 직전의 발언은 한양 성균관의 유생과 진사, 그리고 전국 유생들에게 커다란 공론이 되었다. 중종의 조광조의 유배와 사약을 내리는 게 신속한 이유는 더 이상 조광조를 중심으로 자신이 불편하게 여긴 권력의 그늘을 내어주기 싫었던 것이다. 물론 조광조를 죽인다고 하여 그에게 불이익은 없지만, 조광조란 이름은 정식 태자가 아닌 반정의 성공에 얼떨결로 군주가 되어야 했던 자신의 콤플렉스를 건들었기 때문이다. 중종이 만약 조광조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저 이름이 유야무야한 임금이 되었을 것이고, 반정공신의 간신배에 그저 허송세월만 보냈을 것이다. 조광조란 이름이 알리게 된 것은 중종의 현명한 선택이고, 중종의 어리석은 선택이다.

 

후대 임금들은 자신의 선조가 아니더라도 학문의 스승으로 모셔지는 학자를 기리는 문묘대제에 조광조란 이름을 올린다. 그리고 조선에서 가장 높은 벼슬인 영의정으로 추증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기간은 길고도 서러웠다. 중종이 눈 감는 날까지 조광조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조광조 주변 사람들은 모두 명예가 회복되었고, 조정에 기용되기도 했다. 조광조, 그의 친구와 제자 등 주변사람들에게 기묘사화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되었다. 연산군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는 명백한 폭군의 증오에서 시작된 광기의 살육이었다. 하지만 기묘사화는 기묘(己卯)라는 이름처럼 참으로 기묘(奇妙)하게 일이 돌아갔다.

 

중종의 시대가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후라고 하나, 그 역사적 순간은 한국의 역사교과서만이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 각종 문학과 정치이야기에서 등장한다. 명분이 없이 권력자의 개인적 콤플렉스와 주변의 이해관계가 맞물렸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연산군 시절 반정을 일으킨 이유는 단순히 명분보다는 그 뒤에 숨은 실리가 있었다. 연산군이 계속 폭정과 더불어 왕고를 낭비하여 국고가 모자라자 주변 대신들의 재산에 대려고 했고, 이에 반발하게 된 것이다. 진정 국가를 위하고 왕을 보필하면 도성 밖의 농촌의 황폐한 초가집을 보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조광조에 대해 읽으면서 이런 말이 생각났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한국에서 두사부일체(頭師父一體)라는 영화가 있었다. 조폭을 등장시키는 코미디 영화라 하나 한국의 문화적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조폭문화에서 두목을 아버지와 스승을 동급으로 보니 말이다. 한국의 이런 강압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가로막은 행위가 영화제목처럼 나온 것이다. 조광조를 보면 군왕, 스승, 아버지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무엇일까? 어째보면 아버지이겠지만, 그래도 그의 세계는 스승이었다.

 

조광조 일파 중에 거짓으로 올라간 공신의 자손도 있고, 권력자들의 후손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의 눈치보단 자신의 학문으로 개혁을 주장했다. 아버지가 고위관직이 있어도 개혁을 추구하던 아들로 보자면 스승의 위치가 아버지와 군왕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셈이다. 다행히 조선에서 자식들은 처음 학문을 배우는 자는 대부분 아버지였다. 아니면 할아버지, 삼촌, 큰형님도 있었다. 그러나 조광조는 스승의 존재는 매우 독특했다. 김광필이 죽기 전에 만나, 김광필의 문묘에 모시려 한 점은 그에게 스승이란 학문의 물줄기가 바로 모든 것의 시작이다.

 

유학자로서 아니 선비로서 왕을 보좌하기 위해서는 왕에게 신임을 받아야 하며, 그 신임을 받는 것은 오로지 백성을 향한 군자의 정신이다. 그래서일까? 조광조의 유배와 사형이 확정되자 조광조의 동생은 통곡을 외치며 급하게 길거리를 지나간다. 이때 어느 노파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조광조의 동생은 자신은 형의 죽음으로 눈물을 흘리는데, 노파는 왜 눈물을 흘리는지 묻는다. 그러자 노파는 조광조가 죽게 되었다는 말에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다른 조정대신을 몰라도 조광조만은 힘이 없는 백성을 알아주는 진정한 군자인 것을 알았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운명을 맞이하는 선비들은 조선의 역사상에서 끝없이 등장한다. 명종 때 등장한 또 하나의 사화, 선조 때 일어난 정여립모반사건이 기축옥사를 일으킨다. 조광조 학문적으로 이어받은 이발은 기축옥사에서 죽고, 그것도 모자라 이발의 어머니와 형제까지 국문에 끌려와 장살당해 죽는다. 이발의 친족들은 제주도 넘어가거나 산에 숨거나 또는 외로운 섬에 숨어 살았다. 다행히 그들의 무고를 아는 사람 때문에 잡혀죽지 않았으나, 죽은 자의 명예가 살아날 때까지 세상에 이름조차 드러내지 못했다. 조선에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고, 죄가 없는 자를 무고하여 참변을 일으킨 간신들은 죽은 이후 벼슬에서 삭탈되고, 묘지의 시체를 유린당하는 아이러니를 겪게 된다.

 

선비는 권력자의 눈에 잘못 들어오면 누명에 의해 유배가거나 죽음을 당하기도 하고, 설사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른 말을 하다가 떠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렇게 역사의 기록에서 의인으로 칭송되어도 후손들이 겪는 운명의 굴레는 참으로 비참하다. 조광조의 죽음은 선비에 의해 유학으로 통치되는 조선이 자신의 사상적 정체성에 큰 상처를 입혔다. 조광조 죽음처럼 군사부일체에서 군주가 가장 먼저 오더라도 스승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끔 집안의 문헌에서 뒤져보면서 생각한다. 조광조 문하 중에 삼휴자(三休子) 말고 삼휴당(三休堂)이란 분이 있다. 삼휴자는 집안의 상으로 변을 피하였으나, 삼휴당은 한양 태학에서 조광조의 문하로 있다가 기묘사화에 변을 당한 후 스승의 죽음을 보고 고향으로 낙향했다.

 

중종 말기, 그는 중종에 의해 어모장군이란 관직을 하사 받았으나, 그 자리를 매우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삼휴당(三休堂)이란 분은 나의 직계 할아버지였다. 학창시절 국사시험에 나오면 외우던 4대 사화를 다시 확인해보니, 나에게 피해갈 수 없었던 과거의 얼룩이었던 것이다. 역사라는 기록의 축척으로 통해 전해오는 것은 책만이 아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의 거취와 운명까지 틀어막거나 돌리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내가 그 역사라는 기록을 보고 생각하지만, 내가 죽고 난 뒤 먼 미래의 후손들은 나라는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운명의 수레바퀴를 탈 것이다. 조광조 평전을 읽으면서 E.H 카의 <역사는 무엇인가>처럼 역사는 과거와 현재가 계속 대화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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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5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06 0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6-06-18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 책 증말 읽고 싶은데...만화애니비평님과 제가 취향이 비슷한 듯 싶어요. 므흣 ㅋ

조광조도 그렇고 윤휴(이덕일 아자씨가 쓴 거) 요거 읽고 싶었거든요. 전 조선 역사 속에서 인물이 없다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일본 전국시대 역사를 읽으면서 오다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을 보며 그리고 중국 `삼국지`를 보며 아! 시바 우리는 뭐 이렇게 인물도 없고 역사도 재미 없냐라고 20대에는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보면 조광조, 정도전 뭐 물론 이순신도 그렇고요. 인물이 없는 게 아니더라구요. 다만 그런 인물들이 묻혀지고 그리고 뭔가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하는 그런 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조선 역사 속의 인물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 중 단연코 좋아하는 사람이 조광조에요! 뭔가 이 분 ㅠ 볼 때마다 안타깝다고 할까요...처절하다고 할까요? 권력이 없음에도 정의를 외치다가 죽은 진짜 지조있는 그런 삶..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책 읽을만 한가요? ㅎ

만화애니비평 2016-06-19 11:34   좋아요 0 | URL
윤휴와 침묵의 제국(이덕일 아저씨 책) 읽어보았죠.
사실 조선에 대단히 많은 인물이 있었죠. 대신 일본은 승자의 입장에서 많은 인물을 다룬다면 우리는 패자였죠. 최후의 죽음을 보면 열받지요.

조광조와 기묘사화를 보고, 이전의 연산시대의 사화, 또 다시 사회와 옥사를 보면서 조광조가 중요성을 알게 됩니다. 여담이나 사실 조광조의 학문은 조선선비의 기반이 되었고,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과 유성룡은 남인(원래 동인)인데, 남인들이 조광조(그리고 퇴계 이황) 학문을 이어받습니다.

임진왜란에서 동인계열 의병장 및 장수들이 많았죠. 그 시작점은 조광조인 겁니다. 남명 조식의 문하생에서 곽재우장군도 그렇고요. 그런데 이덕일씨도 그렇지만 한명기 교수도 서인(노론)에 의해 실록이 많이 변했다고 하더군요....


루쉰P 2016-06-19 22:11   좋아요 0 | URL
오우 조광조가 그렇게나 대단한 사람인 줄은 몰랐어요. 그냥 올곧은 지식인으로 살다간 사람으로 알았거든요. 흐음 대단하네...

만화애니비평님의 말이 맞아요. 일본 전국시대 역사를 보면 재밌는 것이 승자로 끝나니 시원한데 우리는 패자니, 에이 뭐 이런 뭐야 이거 그러면서 책을 덮게 되고 괜히 짜증이 나더군요. 슬프기도 하구요. 근데 정말 지금 정치나 노론, 소론 하는 거나 한국적 DNA가 있는 것일까요? 당쟁이나 지금 새누리나 민주나 비슷비슷 하다는 생각을 져 버릴 수가 없어요.

이 책 정말 어머! 이건 정말 사야해!

만화애니비평 2016-06-19 22:32   좋아요 0 | URL
인연이란 재미있습니다. 조광조 문인 중에 서평처럼 삼휴자 윤관은 윤휴의 할아버지고, 귤정공 윤구는 윤선도의 조상입니다. 유성룡이 남인계열로서 율곡 이이와 함께 있었는데, 그때 이준경이란 영의정이 있었지요, 그 사람이 죽기 전에 율곡 이이가 하는 짓은 바로 붕당짓는 일이라면서 걱정했는데,
이준경이 바로 기묘명현 중에 한분인 이연경과 친척입니다. 이준경이 말한 것처럼 붕당정치가 생기고, 이후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지만,

남인과 소론들은 사도세자 사후 정조가 즉위할 때 시파로서 왕권강화와 부정부패를 추구했으나 결국 정조의 죽음으로 망했죠....

재미난 일담으로 지금 국회의장 정세균 의원이 정약용의 후손입니다.
새누리의 원씨 성을 가진 양반이 있는데, 그 사람의 직계는 원균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조선의 붕당정치의 후손들은 아직 전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루쉰P 2016-06-24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이달의 당선작이 될 줄 직감했어요 ㅋ 축하드려요. 즐건 금욜 화끈하게 보내세요 ㅎ

만화애니비평 2016-06-26 21:04   좋아요 0 | URL
으아...
자유인 루쉰을 읽었지만
하나 보고 뭐라 말하기가 참 거시기 하네요
시간 되면 아Q정전을 봐야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