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베스트셀러로 출판되었던 <책은 도끼다>의 박웅현 카피가 다시 인문학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도서를 출판했다. 카피라이터, 광고와 혹은 어떤 문구로 통해 고객 내지 수용자에게 어떤 마음이나 감동을 전하는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 만나본 카피라이터로는 정철이란 분이 있었고, 정철 카피와 박웅현 카피는 국내에서 일류로 활동하는 분이다. 그러나 각각의 책을 보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정철 카피 역시 인문학적 사고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 분의 책을 보면 조금 더 쉽고도 강한 메시지가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웅현 카피의 책이 인문학적 감성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니나 카피라이터 각자마다 가지고 있는 능력과 공감대가 다르겠지만, 그 방향성과 의미성은 분명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웅현 카피의 <여덟 단어>를 읽을 때, 조금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박웅현 카피의 사고방식은 상당히 마음에 들지만, 한편으로 다소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얼마 전에 알라딘 서재에서 어느 분과 페미니즘 담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류 페미니즘 사상과 나하고 맞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하다가 결론부에 어떤 인간이든지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조건에 따라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문구가 나올 때 인간은 결론적으로 자신의 위치와 상황 그리고 현실적 조건에 따라 사고가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여덟 단어>에서 의미하는 가치관은 매우 좋을 수도 있고, 박웅현 작가 역시 다변적인 현실인간에 대해 인지하고 있지만, 자신의 사례에서 삶을 설계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괴리감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정말 피곤하고 따분하고 지루한 사회를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유는 없이 한가로운 맛도 없이 게다가 팍팍한 일상에서 매일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 전투적인 인생에서 새로운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생각의 전환이다. 카피라이터의 사고는 곧 생각의 전환이고, 그것이 광고로 기획되어 자신의 생계벌이가 된다. 그런 점에서 <여덟 단어>는 사고의 전환이나 생각의 확장은 좋은 책이다. 그렇지만 그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현실적 기반에서 모두가 동일하지 않다.


물론 작가 역시 알고 있지만, 정작 본인의 사례에서 말해주는 부분은 일반인들에게 너무 머나먼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 책에 대한 감상보다 먼저 작가의 담론을 심하게 비판하는 이유는 <여덟 단어>가 나쁜 책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나쁜 책은 아니지만, 그렇게 좋은 책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작가 본인이 카피라이터 때문에 책 본문을 읽을 때마다 발상의 전개가 참 대단하나, 그 발상에 독자가 심취하면 책으로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허사가 된다는 점이다.


책의 주제 여덟의 주제는 “자존(自尊), 본질(本質), 고전(古典), 견(見), 현재(現在), 권위(權威), 소통(疏通), 인생(人生)”이다. 만일 이 책을 아직 책에 대해 잘 접하지 않았거나 혹은 이제 입문하는 분에게 추천할 수 있겠지만, 정작 깊은 내용을 찾는 분에게 추천 드리지 않을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철학이나 인문학 서적에서 플라톤, 칸트, 니체, 스피노자 등의 원전 번역서를 읽지 않더라도 이런 철학자를 소개하는 도서에서 충분히 저런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이미 철학은 모든 사유의 시작이고, 정치학과 사회학의 시초이다. 작가 역시 인생에서 철학은 돈이 되지 않는다고 하나, 모든 것에는 철학이 있다고 한다. 만일 이미 어느 정도 인문학에 깊은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박웅현 작가의 말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의 인문학적인 견해보다는 그런 견해를 상당히 잘 포장된 문구로 전달할 수 있는 플랫폼에 놀라워할 것이다. 작가는 본질적으로 매체는 다르게 변해가더라도 콘텐츠의 질과 소재는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변하지 않은 것은 없으나 변하지 않을 것도 있다.”라는 방식은 이미 오래된 문구이며, 하나의 진리이기도 하다.


변하지 않기 위해 변해야 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삶이란 한계점이 있고, 그 한계에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 놓여있다. 운명이란 자신이 헤쳐 나가는 것인가? 아니면 주어지는 것인가? 어느 것이든 둘 다 정답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주어진 조건과 환경 안에서 앞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모르나 제일 마음에 들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자신이 찾아가는 길이 자신의 의도하고 무관하게 흘러가 거기에서 뭔가를 얻을 수 있으나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든 자신의 조건 아래에서 모든 상황을 정리하여 길을 여는 것은 옳은 말이다.


그렇지만, 세상은 그 조건과 상황이 무척 다변적이다. 저자도 알고 있지만, 그 사례로 들어보는 것들이 너무 좋은 것만을 보여준 것이다. 나와 내 주변은 이렇게 그물에 걸려도 잘 풀고 다르게 가는데, 이런 게 좋지 않겠습니까? 남의 성공담을 질투하는 것도 아니고, 그의 열린 생각으로 가고자하는 것도 틀린 것이 아니다. 단지 그 답답한 세상의 기변에 깔린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제대로 보는 게 아니라 단순히 거기에 맞추어 개인이 알아서 잘 해야 한다는 논조가 다소 스며있다.


박웅현 카피의 마인드는 좋다. 특히 외국의 CEO가 회사를 오고가는데 쓸데없이 허례허식도 필요하고, 서로의 자존감을 건들지 않는 것도 좋다. 한국이 그게 용인될 사회가 아닌 것도 안다고 해서 그것을 독자에게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기존의 한국 기성세대가 가진 관료주의식 내지 군대문화는 우리 사회에 깊은 뿌리를 내려앉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런 식으로 살 필요가 없지 않으냐 말은 무리수가 있다. 이런 사회에서 살 수밖에 없다면 답답한 사회에서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겠고, 이를 위해 우리 모두 조금씩 여유를 찾아 변화해야 하는 길을 모색해야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위의 페미니즘 담론에서도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고 일하고 존재하는 공간적 기반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공간적 주박을 부정하기 보단 그 주박에 대한 문제점을 생각하고 조금씩 고치기 위해 생각의 전환이 더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는 아니나 인문학적으로 자기계발서 같은 도서다. 단지 일반적인 자기계발서와 다를 뿐이다. 일반적인 자기계발서에 대해 상당히 꺼리는 편인데, 그 이유는 자신의 롤 모델은 자신의 롤 모델이지 그 이상으로 타인에게 전달될 수 있는 거의 희박하다. 단순히 가능성으로 제시하면 모르나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방식만큼 더 멍청한 조언과 조언자는 없다.


<여덟 단어>의 “자존(自尊), 본질(本質), 고전(古典), 견(見), 현재(現在), 권위(權威), 소통(疏通), 인생(人生)”을 보고 우리는 당장 우리 삶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런다고 조금 삶의 저편에 작은 바람은 분다고 생각한다. <여덟 단어>는 저자와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예로 들었지, 저자의 삶을 롤 모델까지 하지 않았다. 단지 그 예가 너무 일반적인 사람들과 괴리감을 느끼게 했다는 점에서 내가 이 책을 비판한 점이다. 작가가 의미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히 들어볼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작가의 말을 듣고 그것에 대해 분명히 판단해야 할 필요성은 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현실적으로 무리수가 있다면 결코 그것은 좋은 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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