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경제를 다른 애니메이션으로 "C(COLLAPSE)"란 작품이 있다. The Money of Soul and Possibility Control, 돈 그것은 영혼과 가능성을 결정짓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중요한 점은 돈의 그 가치를 나타내는 화폐에 본 작품은 경영학이 아니라 경제학을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주인공인 요가 키미마로는 일본 대학교 경제학부에 다니는 학생이기 때문이다. 경제학과 경영학의 차이점은 경영학은 사업적인 관리, 즉 개인이나 기업의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는 학문이고, 경제학은 경영학과 달리 국가 전반적인 생산과 소비에 대해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C"의 주인공이 보는 경제적인 관점은 단순히 개인의 이익에서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의 영역으로 이어간다. 일단 기본적으로 주인공의 현재 조건을 보면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어릴 적부터 친척집에 자란 가난한 대학생이고, 학비는 장학금으로 견뎌내더라도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주인공 키미마로는 헤이세이대학(도쿄대학) 경제학과를 다닌 점에서 일본 내 최고의 경제학도이다.

 

그런대도 현실적으로 자신의 경제 상황을 정리할 수 없다. 경제학으로 경제를 아는 것과 자신의 경제적인 여건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경제라는 것은 과연 어떻게 보는 것이 옳은 것일까? "C"의 1화 첫 장면에서는 요가가 수업시간에 교수의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교수의 강의를 듣지 않더라도 교수의 강의는 충분히 영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경제사(經濟史), 즉 경제의 역사이다. 경제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보통 일반인들은 경제라는 단어에 민감해도 경제라는 그 거대한 정치, 사회, 문화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경제학의 명칭이나 개념은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했으며, 정치철학 영역에서 경제가 등장한 사례로 플라톤의 <국가>이다. 어느 장소에 5명이 살고 있는데, 각자가 구두를 만들고, 집을 만들고, 무기를 만들고, 혹은 어떤 특정 업무를 한다. 그런데 만약 자기가 맡은 특기분야 대신 다른 것을 한다면 제대로 생산품을 만들 수 없으므로, 각자가 맡은 분야의 일을 맡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의 경제적 가치관이 그 당시와 비교하여 다소 차이가 나겠지만, 우선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이익의 목적이 개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더 넓게 보자면 사회 시스템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다시 “C"로 돌아가면 경제사에 대해 교수강의를 들어보면 경제의 시작은 물물교환에서 시작한다. 어느 누군가가 자신이 가진 재화나 혹은 상품이 넘친다. 하지만 다른 누구는 그 재화나 상품이 부족하다. 넘치는 상품은 내구력이 견고한 것도 아니고, 많이 있어도 보관하기가 귀찮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합리적으로 대안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건네주고, 대신 다른 것을 받아오는 것이다. 만약 그 사회의 부족사회 내지 가족단위의 사회라면, 친목과 평화 그리고 서로 간의 사랑이 통하므로 증여로서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부족 안에서 생산되는 다량의 재화는 그 부족 어디라도 충분하므로 그 부족이 아닌 다른 부족 혹은 사회그룹과 물물교환이 이루어진다. 그곳부터 경제가 시작되고, 경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화를 넘겨주고 자신이 필요한 재화를 받아온다. 흔히 경제적인 관점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주로 금융, 화폐와 신용에 대해 생각한다. 신용은 화폐를 움직일 수 있는 가치나 척도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화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화폐는 상품의 이동에서 물물교환이 비효율적인 부분에 따라 새롭게 개편된 시스템에서 등장한 도구다. 화폐가 어느 순간 모든 가치를 액수로 정하는 가치가 척도가 되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경제구조에서는 화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하지만 경제라는 것은 모든 것을 화폐로 통해 보는 것만이 아니라 화폐라는 척도로써 바라보는 게 정당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경제의 시작점은 필요한 재화의 이동에서 시작한 것이다. 경제학과 경영학이 복잡다양하게 우리 사회에 등장하고 있지만, 사회전반적인 변화과정에서 경제라는 것은 생산과 소비에 대한 관계이다. 결국 돈을 투자하여 얼마나 이익을 얻고, 부의 창조를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이익을 위한 경영이란 business Management, 사업에 대한 관리이다. 경제적인 부분은 경영적인 부분과 추구하는 목표는 다르나, 경영인들의 경영관리와 경제활동이 엮인다.

 

지금이야 식료품이 다양하게 넘치나, 과거에 기술이 발전하지 못할 시기는 식량을 수익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파나 홍수 또는 전쟁과 전염병 등과 같은 재난재해는 농지를 황폐화시키거나 노동인력을 크게 손실시켜 식량 생산력을 급격히 감소시킨다. 식량이 제때 공급되지 않을 경우 그 나라의 국민들은 생존하기가 어려우며, 그 나라는 최후에 자멸하거나 타국의 침공에 의해 멸망한다. 식량에서 밀의 생산력은 곧 국민들의 배를 채울 수 있게 하고, 이에 따른 필요한 재화를 추가로 발생시켜 국민들에게 주어지게 하여 나라의 생산력을 증가시킬 수 있다. 바로 국가의 경쟁력이란 국민이 얼마나 건강한 육체로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는 척도가 정치경제의 첫 걸음이고, 정치철학의 근본이다. 정치학에서 공공경제의 목적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국가의 모든 시작은 인간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을 수입하고 파는 것은 상인들이고, 그들은 자기 자본에 의해 움직이고, 타국의 상인과 농민조차 그런 자본에 의해 움직인다. 화폐가 지금처럼 달러나 위안화 등과 같이 세계의 무역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금과 은 같은 귀금속이었다. 상인들이 상품을 팔아 수익을 얻으면, 수익 일부를 국가세금으로 낸다. 상인들은 흉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배고픔을 위한 것도 아니고(어떻게 보면 통상적 가격보다 훨씬 높은 이윤으로 판다), 그들의 국가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순전히 자신의 이익, 경영관리로써 이윤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런 무역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흉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결국 생명을 잃게 될 것이다.

 

과거 상인을 현대사회에서 대상인물과 대조해보면 자신(들)의 이윤을 목표로 활동하는 기업이 된다. 기업이 제때 물건을 시장에 내놓지 않으면 국민생활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기업에 일하는 사람들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이기에 기업의 존속은 그 사회의 안정까지 이어진다. 경제학과 경영학의 시작에서 목표, 가치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어떻게든 서로가 연결되는 구조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맹점이 발견된다. “C"에서 요가는 가난하나, 국가인 일본은 매우 부유하다. 국가는 부유한데, 왜 국민은 가난해지고 있는가이다?

 

우선 공공경제와 개인경제는 다르다는 점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국가경제에서 기업의 경영과 관련이 있다는 점, 기업의 이윤이 올라가도 그것은 세금으로 충당되어 국가 재정에 도움이 되지만, 기업이 버는 돈 그 자체가 국가가 버는 돈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업에서 얻는 이윤은 기업을 위한 이윤이고, 기업에서 고용한 노동자에게 지불되는 임금이 생계수단으로 소비세로 지출되는 편이 더 많은 세금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기업이 돈을 잘 버는 것이 국가의 공공경제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차라리 어느 기업에 속하거나 혹은 그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가족들의 생계과정에서 일어나는 소비가 더 높은 경제활동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경제라는 것은 기업이 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필요한 재화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경제이든 경영이든 모든 것을 화폐로서 이루어지고 이른바 금융에 의해 일어난다. 은행에서 화폐를 생산하여 시중 은행에 넘기어 시중은행은 필요한 사람에게 대여하고, 그 사람은 화폐를 이용하여 투자와 구매를 한다. "C"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화폐에 대한 부분이다. Midas 은행, 신화에서 어느 누구라도 그의 손에 닿는 순간 황금이 된다는 마이다스의 손, 작품에서 일본에서 발행된 화폐와 Midas bank에서 나온 화폐는 서로 다르다.

 

모르는 사람에게 같은 화폐로 보이나, 막상 금융가의 길에서 결투를 하는 사람에게 검은 돈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Midas Bank에서 나온 화폐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 Midas Bank는 일본만 아니라 세계 금융가가 있다면 어디든 존재한다. 그들의 돈은 어디서 나오고, 어디로 사라지는지 알 수 없다. 단지 그 돈이 들어온 나라에는 무한정적으로 유통되는 화폐단위가 증가한다는 점이고, 어느 순간 화폐의 액수가 0이 되는 순간 "C(COLLAPSE)"가 일어나고, 그 나라는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심각한 경우 작품에서 세계지도에서 사라지는 비극이 탄생된다.

 

경제구조가 파탄나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되는 점이다. 그런데 왜 망하는 것인가? “C"는 인간의 자본에 대한 욕망,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딜레마라고 보여준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모든 것을 화폐로써 가치를 정한다. 그런데 그 화폐가 의도적으로 흘려보낸 뒤 마지막에 빼앗는 것이라면? ”C"는 바로 그런 자본주의에 대한 현실을 고발한다. 요가가 마지막으로 일본의 국가를 "C(COLLAPSE)"에서 구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금력과 투자할 수 있는 금전적인 규모가 작품에서 캐릭터로 등장한다. 요가의 캐릭터 에셋은 마슈이다. 마슈는 예전에 자신의 아버지가 거느린 에셋과 비슷했다고 한다.

 

에셋의 주인 앙트러가 다른 앙트러와 대결해서 패배하면 에셋은 사라지고, 그의 신변에 큰 악몽이 탄생한다. 그의 미래가 사라지는 것이다. 만약 자본력을 많이 가지거나 혹은 공공 경제에서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일수록 그 피해정도는 심각해진다. 만일 대기업이 파산할 경우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량으로 해고되고, 금융권은 크게 요동친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현상이 일어날 때 대처하는 방법이다. 무너진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무너지는 것을 받치기 위해 다른 자본을 동원하는 점이다.

 

빚을 갚기 위해 다른 누군가 빚을 갚는다고 하는 것은, 결국 그 돈이 순전히 구매자의 자금력이 아니라 그 사람조차 빚으로 갚았던 돈이다. 미쿠니의 행동은 결국 자신이 보유한 순수금액이 아니라 Midas Bank의 대출금이다. 대출을 받으면 나중에 되갚는 문제가 있다. 대갚는 것을 개인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국가예산이 빈약해지고, 혹은 빚을 억지로 내어 대출을 갚으려면 또 다른 빚이 늘어난다. 일본에서 만든 화폐는 1000엔인데 다수의 은행을 통해 억지로 돈을 불리고 불려 10000엔으로 된다면, 빚은 9000엔이다. 문제는 갚아야 할 돈은 9000엔이 아니라 9000엔의 이자까지 포함이다.

 

사회적으로 본래의 화폐가 아닌 빚으로 만들어진 화폐가 유입되면 실제 존재하는 돈은 소규모라도 유통되고 있는 화폐액수는 계속 증가한다. “C" 마지막에 보면 미쿠니와 싸우는 요가는 개인 또는 국가의 미래를 담보로 돈을 움직이는 Midas Bank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일본의 화폐가치를 모두 종이로 만들어버린다. 즉 슈퍼 인플레이션을 일으켜서 화폐가 시중 금융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퍼뜨린 것이다. 미쿠니의 부하가 가로채려는 돈 액수만으로 충분히 인플레이션의 효과를 일으켰고, 결국 일본 화폐경제는 붕괴한다.

 

빚을 빚으로 갚는 것에서 이미 국가경제는 망하는 징조라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을 잘 보여주는 점이 미쿠니는 Midas Bank에서 엄청난 대출을 받아 첫 번째 "C(COLLAPSE)"에서 일본의 피해를 피한다. 하지만 그 대가는 처참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인구 출산이 한 해 3명이란 최악의 상황이 닥친다. 그 와중에 계속 Midas Bank의 화폐가 유입되면서 거리의 사람들에게 활기가 사라지고, 의욕이 사라져 희망조차 잃게 되는 상태에 이른다.

 

미쿠니는 지금의 위기를 탈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요가는 미래의 존속을 걸고 싸운다. 미쿠니는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하여도 되는 것이고, 요가는 그 희생으로 인해 더 이상 미래에 대한 희망할 수 없다는 것에서 대립된다. “C"에서 미쿠니와 요가의 모습은 사실 현실의 우리 사회하고 많은 연계성이 보인다. Midas Bank의 화폐가 계속 시중에 유입되고, 그 화폐는 실재하지 않은 화폐, 즉 빚에 의해 만들어진 화폐이다. 우리는 빚으로 만들어진 경제구조 위에서 놀아나는 점이다.

 

마지막에 엔화가 유지하지 못하고, 결국 달러를 이용하여 경제구조가 다시 시작된다. 일본의 화폐가 없어졌는데도 왜 경제활동은 가능한가? 여기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경제라는 것은 어느 재화가 필요한 사람이 있고, 재화를 팔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경제시장이 존재할 수 있다. 일본에서 없어진 것은 엔화라는 화폐이지, 화폐를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진 게 아니다. 분명히 말하자면 경제라는 것은 인간의 생활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인데, 오히려 사람이 경제에 얽매인 노예가 되었다는 점이다.

 

경제에 대해 다룬 작품으로 <늑대와 향신료>와 <용사마왕 마오유우>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확실히 말하자면 나는 경제학과 경영학 전공자가 아니고, 경제적인 관점이라 해도 문화인류학적 관점에 많이 의존했다. 경제가 현재는 화폐를 중심으로 생각하나, 화폐의 입수보단 인간생활에 필요한 재화와 생필품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늑대와 향신료>를 보면 그것은 경제적인 관점이 아니라 경영자의 마인드고, <용사마왕 마오유우>가 더 경제적인 요소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용사마왕 마오유우>에서 감자를 악마의 열매라고 하나, 막상 감자는 식량으로 가치가 매우 높고, 배고픈 사람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한다.

 

그것을 전해준 사람은 악마의 종복이라 하고, 마왕은 세상을 어지럽히기 위한 악의 절대자로 묘사한 시대가 있다. 작품에서 항해술이나 망원경 등 각종 기술과 지식들은 그 나라의 부를 성장시키는 것도 있지만, 권력자들의 이익 즉 국가의 무력과 지배력을 확장시키며, 필요한 물품들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이어진다. 경제라는 것은 사용자의 입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진행하여 결국 어떤 식으로 좋은 방향으로 이어지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의 경제학은 어떤 방향을 추구하는지 모르나. 경제학의 시작인 <국부론>에서는 경제라는 것은 수요자의 보다 나은 생활을 만들기 위해 연구해야할 과제이다.

 

<늑대와 향신료>에서 생산품의 가격이 저렴한 곳에 가서 대량으로 물품을 구매하여 그것을 비싸게 팔리는 곳에 가서 금화와 은화를 받으려 하는 것은 경제시장구조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상인의 경영관리 방법이다. <늑대와 향신료>의 주인공 로렌스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등장하는 빵을 굽는 제빵사와 같은 사람이다. <국부론>에서 빵을 파는 사람은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동정심에 의해 물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 물건을 파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활동이 재화가 필요한 사람에게 물건을 주고,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늑대와 향신료>를 보다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상회나 상인들은 어느 상품에 대하여 독점이나 과다하게 이윤을 추구하는 모습이 나온다. 만약 독점이 일어나면 재화를 구하려는 사람들은 비싼 가격으로 구매해야 하고, 만일 그 재화를 구매할 수 없는 경우 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분명 말하지만 경제의 목적은 필요한 사람에게 적재적소의 물품을 합리적으로 입수하게 하여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 조건, 기업과 정부의 정책과 시장논리는 이상하게 만들어낸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은 손”은 분명 그런 말이 아닌데, 혼용하는 경우가 다분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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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3-07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컬랩스를 꼭 보겠어요! 불끈~~!

최근 알드노아 제로..보고 눈 베려서 안구 정화할 작품이 필요했는데, 정말 괜찮은 작품을 추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당~!

만화애니비평 2016-03-07 19:11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님도 은근 덕후라니 좋습니다. 우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