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론 -상 - 경제학고전선 애덤 스미스, 개역판 국부론 시리즈
아담 스미스 지음, 김수행 옮김 / 비봉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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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經濟學)과 경영학(經營學)은 서로 다르다. 경제학은 사실 앞에 단어가 생략된 말이다. 우선 소개한 도서로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있다. 하지만 루소의 서적은 그것만이 있는 게 아니라 <정치경제론>이란 서적이 있다. 루소를 떠오르면 프랑스대혁명의 아버지, 근대민주주의 이론을 만들고, 세계의 자유주의, 사회주의의 시작점이 되기도 하는 자이다. 그런 루소가 경제론에 대해 논했다는 것은 의아한 내용이다. 18세기는 이른바 17세기를 지나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시기다. 16세기부터 유럽에서 아시아와 신대륙에 대한 식민지 개척은 새로운 시장을 건설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각 국가에서는 식민지 개척에 따른 금과 은의 수확을 원했다.

 

이른바 중상주의(重商主義)로써 상대방 나라에게 금과 은을 주지 않고, 국가정부가 직접 수출입을 통제하여, 국가재고에 금과 은으로 넘치게 하는 것이다. 당시 입장에서 군주들과 많은 봉건영주들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군자금이 필요했고, 금과 은의 비축은 전쟁 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자금으로 될 수 있다. 하지만 중상주의를 본다면 한계점은 금과 은의 사용처는 금화와 은화 같이 화폐로 통용되지 못하면, 귀금속이나 혹은 식기류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이런 사치품들을 이용할 수 있는 범주는 한계가 있다.

 

은과 금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지, 정작 부국을 위한 방법은 금과 은으로 넘치는 왕실의 창고가 아니었다. 그 나라의 국민들이 잘 먹고 잘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바로 나라의 부를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는지, 그런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이때까지 화폐의 가치와 물가, 무역, 세금 등 다양한 경제적인 관점을 서술하는 서적이다. 전에 EBS 자본주의에 대한 5부작 다큐멘터리에서 맨 처음 나온 자본주의에 대한 개념에서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의 창시자로 등장한다.

 

경제학과 경영학의 차이는 사실 한자로 본다면 별로 우리에게 큰 차이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은 영어로 economics, 경영학은 business management이다. 영문 단어를 보더라도 둘은 분명하게 다르다. 그리고 18세기의 경제학은 단순히 economics이 아니라 political economy로 시작했다. 그런 단어의 의미는 루소의 <정치경제론>에 등장하고,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도 그러하다. 오늘날 현실에서 내가 바보인지 주변 사람들이 바보인지 나도 혼돈되는 경우가 많다. 논점은 틀리지 않으나, 어쩔 내 나의 명제가 틀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논점에서 경제학의 시초가 애덤 스미스고, 애덤 스미스가 18세기 영국 사람이나, 그의 경제학의 연구내용은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기본 연구도서고, 그가 제시한 내용은 현대 자본주의 시장에서 돌아가는 방식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사실 몇 세기 이전의 정치, 경제, 행정 등의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많이 차이난다고 생각하나, 막상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적어도 한국에서 행정구역에서 서울, 부산, 대구, 대전 등은 이미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행정구역이었고, 하다못해 경상남도와 충청북도 등과 같은 행정구역 역시 조선시대부터 존재한 지역명이다.

 

우리는 21세기에 살아가도 14세기부터 존재한 행정구역에 따라 움직이고 있고, 그 당시에 만들어진 도로를 기반으로 주요한 철도와 도로, 항만 등의 교통시설을 만들었다. 과거와의 시간은 단절된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그것은 누적되어 하나의 기반으로 되었을 뿐이다. 우리가 길거리를 지나가면 보통의 진흙이나 자갈, 바위 혹은 암석을 볼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도로 밑에 콘크리트나 나무목재 보도 아래, 모래 및 자갈 기층이 있고, 그 기층 아래 보조기층과 암반지역이 존재한다. 보이지 않았다고 그것이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도 많은 경제학보단 경영학을 추구하는 자들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등장하는 “보이지 않은 손”을 주장한다. 시장경제가 만능처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은 손”은 단 1번만 등장하고, 전후맥락을 보면 모든 것은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돈의 순환을 계속 돌고 돌아 많은 이들에게 필요한 상품과 재화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살던 시절은 프랑스혁명도 있었지만, 산업혁명 도래의 시대다. 기계의 발전은 다양한 진보와 문제를 일으켰다.

 

기계화의 단점은 가내수공업자들의 상품경제력을 저하시킨 점이고, 장점은 많은 물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다.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관계에서 상품이 필요한 사람들이 넘치나 물품이 부족할 경우, 항상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제때 공급하지 못하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는 점이다. 애덤 스미스가 강조한 무역의 자유화와 시장경제의 발전은 독점과 화폐의 고정화가 아니다. 화폐는 계속 이동되어 상품이 존재하지 않은 국가에게 필요한 재화를 공급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농부가 농기구를 제대로 구할 수 없거나, 도시의 사람들이 밀을 구하지 못하거나, 추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석탄을 제대로 공급받을 수 없다면 엄청난 생활고를 겪게 된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국부의 조건은 국가의 창고에 금과 은으로 가득한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가 프랑스 의사 케네를 만나, 그의 중농주의(重農主義)에서 국부론을 시작했다. 농사를 짓게 되면 당연히 농작물이 나오고, 그것은 농부의 잉여물들이 도시로 유입되어 식량문제를 해결된다. 거기서 나아가 충분히 잉여량이 생산되면 타국에 수출하여 이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영국이나 다른 국가에서 밀의 농사가 흉년일 경우, 식량을 들이야 하는데, 중금주의 요소로 정책을 펼치면 그 나라의 국민들은 식량문제에 허덕일 것이다.

 

단지 중농주의 한계점은 농사, 즉 1차 산업이 중심으로 보기에 18세기 자본주의 시장체계와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스미스의 관점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분업이다. 매뉴펙쳐, manufacture라고 불리는 시스템이다. 가령 공사현장과 기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물품에서 쇠못이 있다. 쇠못은 한 사람의 대장장이가 만들면 하루에 대략 100개를 만들 수 있지만, 각 과정을 담당하는 사람이 10~20명이 있으면, 그 생산량의 100배 이상을 생산할 수 있다. 대장장이의 손에서 나온 쇠못은 하루에 제작되는 개수가 한계가 있고, 대장장이의 인원에 한도가 있다면, 공급의 부족으로 제대로 현장을 움직일 수 없다.

 

가끔 국내에서 금속의 부족으로 건설현장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금속이 없다는 것보단 금속의 자재 가격이 너무 올라 자신들이 도급받은 내역과 일치하지 않아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이유는 공급의 문제다. 금속가격이 오른 것은 재화의 공급이 부족하나, 수요량은 일정하다. 그렇다면 상품은 오른다. 한 해 배추농사가 흉작이면, 배추가격이 1포기당 가끔 만원에 육박하는 경우가 있다. 작년 겨울 어머니와 같이 마트에 가면서 1망에 3포기의 배추 가격이 6,000원 정도 했다. 결국 지난 김장철에 내가 사는 동네의 배추는 1포기당 2,000원인 것이다.

 

배추 같은 자연적인 토지에서 생산되는 물품은 기상과 환경 등과 같은 자연적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쇠못의 경우는 자연적인 조건보다 생산라인의 공정에서 그 차이를 보여준다. 20명의 노동자가 1명의 대장장이에 비해 만들 수 있는 쇠못은 20배가 아니라 사실 200배 이상이다. 일의 효율이나 생산성을 본다면 쇠못이 필요한 사업체는 분명히 원활한 자재유입으로 집을 세우는데 유리하거나, 기계를 제작하는데도 막힘이 없다. 그러나 생각할 점은 스미스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에서 생산되는 양의 차이가 다르다는 점이다. 스미스의 시대는 항상 모든 사회는 진보하는 시대, 즉 각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품이 늘어나고, 그 물품은 외국에 교역되며, 국내에 부족한 물품은 수입이 원활하게 진행되려는 시기다.

 

그런 시대에 여전히 많은 국민들은 물품들이 부족하고, 때에 따라서 흉년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단지 적어도 경제공황은 당시에는 없었다. 물품이 부족한 것은 계속 생산되면 거의 다 팔린다는 의미다. 스미스의 경제학의 시간적 공백은 경제공황의 현실을 맞이하지 않은 것이다. 경제공황은 카를 마르크스와 케인즈의 시대로 오면서 연구된다. 즉 지나친 생산물이 시장에 나와도 소비되지 않는다는 것부터 문제다. 시장에 물품은 넘치는데, 구매자가 없다면, 기업은 자금압박을 받게 되어 결국 도산한다. 기업의 도산이 문제되는 것은 EBS 방송에서 보여준 사례를 보고 확연히 알았다.

 

은행에 만일 1억을 예금하면, 은행은 그 1억을 다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보관하고 나머지는 대출한다는 점이다. 만일 한국은행에서 일반 시중은행에 5,000억원을 제공하여 그 돈의 3.5%만 보관하고 나머지는 계속 대여해주고, 대여자는 그 돈을 다시 다른 은행에 입금하여 사용하고, 그 은행에 다른 대여자를 찾아가서 최종에 이르러, 시중에 들어간 5,000억원은 6조를 넘는다는 점이다. 물론 60조에 도달하지 않으나, 적어도 조 단위로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빌린 돈을 갚아야 한다. 그러나 갚을 능력이 없다면 그 돈을 빌려준 은행도 갚지 못해 부채의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아 큰 문제를 일으킨다.

 

유럽에서 은행에서 현금보유량을 전체 입금비율의 10%라고 하는데, 한국은 3.5%라고 한다. 만일 은행에서 큰 문제를 일으켜서 고객이 현금을 인출하러 가는데, 막상 자신이 예금한 돈을 다 찾지 못하는 경우가 바로 이런 연유다. 스미스의 생각대로 본다면 필요한 곳에 자본이 돌아야 하나, 우리는 불필요한 곳에 자본이 돌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친구와 한국경제상황에서 물가가 왜 오르는지 이야기했다. 나는 두 말하지 않고 부동산이라 했다. 지대가 상승하면 점포 임대료가 상승하고, 임대료의 상승이 된다는 것은 부동산세를 납부하는 사람에게 추가적인 세금부담을 안겨준다(물론 임대료의 상승이 부동산세에 비해 더 높은 수익을 주지만).

 

만원에 팔던 통닭에 닭의 원자재 가격, 인건비, 그리고 각종 세금과 경비, 마지막으로 임대료가 포함되어 있는데, 임대료가 가령 100%가 오르면 그 임대료 상승만큼 상품가격으로 투하된다는 것을 말했다. 사실 마르크스의 <자본>도 그렇지만, <국부론>에서도 지적한다. 그리고 이것은 위에서 계속 입금과 대출관계에서 볼 수 있다. 우리의 돈은 우리의 현금보관소에 보관하는 게 아니라 은행의 계좌에 보관된다. 물론 5만원권이 발행한지 얼마 되지 않은데도 벌써 많은 화폐가 은행으로 입금되지 않고, 어딘가에 가만히 있다고 들었다. 17세기 왕실의 중금주의가 21세기 개인의 욕심에 의해 새로운 중금주의로 된 모양이다.

 

돈의 발행이 된 후 만일 회수가 되지 않으면, 계속 화폐를 시중으로 들어갈 수 없고, 시중에 화폐가 유입되면 입금과 대출, 그리고 기타 상거래로 인해 화폐 총량이 확장되어, 인플레이션이 닥친다. 돈은 시중에 없는데, 물가는 오르는 이상한 현상이 발현된다. 그런데 여기에 이익의 3대 요소인 임금, 이윤, 지대에서 부동산의 상승은 지대를 올린다. 아파트 가격이 10년 전만 해도 3억만 하면 좋은 집이나, 지금은 3억이라면 서울에서도 조금 낮은 수준의 집이 되었다. 아파트 구매, 전세대란으로 화폐의 시중에 유입이 확장되면서 부동산가격이 증가하고, 지대의 상승은 물가에도 반영된 것이다.

 

내 친구는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라 하나, 지금 임금의 상승폭이 10년 전과 비교하여 얼마나 올랐는지? 원자재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 세금이나 경비가 얼마나 올랐는지? 하다못해 달러와 외국환의 환율이 얼마나 변동되었는지 생각하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크게 변동된 것은 없다. 오히려 2015년 말에는 계속 올라가던 석유가격이 내려가고, 지금은 오히려 10년 전보다 휘발유 가격이 저렴하게 되었다. 휘발유 가격은 국가정책의 혜택이 아니라 오히려 생산지의 배럴당 석유가격이 내려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물가는 오르는가?

 

사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경제학과 경영학의 차이점을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경제학을 원래의 학문적으로 본다면 거시적인 영역이 아니라 사회전반적인 요소로 보고, 경영학은 개인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시야로 보는 것이 옳다. 경영의 영문처럼 management란 관리라는 것이다. 관리라는 것은 사업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고, 경제라는 political economy로 보는 게 정당하다. 그러나 공공성이란 결국 사적인 이익이 공공의 이익에 침해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개인의 이익이 사회의 이익을 넘어 다른 개인의 이익까지 침해하는 경우가 현실사회에서 다분히 일어난다.

 

스미스는 남에게 해를 주지 않을 정도이고, 그 남이란 대다수의 국민이고, Nations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처럼 영국(그의 지역은 스코틀랜드지만)만이 아니라 세계에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가야 한다고 국부론에 제기한다. 그러나 막상 그런 경제적인 관점은 보이지 않고, 시장경제의 낙수효과를 주장한다. 사실 경제학자 소개도서에서 자유 시장경제를 철저히 주장한 하이에크나 밀턴도 지나친 사적인 이익추구 및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의 임금에 문제가 생기면, 상품의 소비자가 자신의 업체가 아닌 다른 업체의 노동자인 것처럼, 결국 경제적 순환이 멈추게 되어 문제가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국부론>을 읽은 후 스미스와 하이에크에 대한 차이점은 위에서 언급하나, 스미스의 시대는 많은 물품들이 부족한 사람들이 넘치던 시대고, 지금은 넘치는 시대다. 당시는 사고 싶어도 물품이 없어서 못사는 시대라면, 지금은 물품이 넘쳐도 구매할 화폐가 없어서 못사는 시대다. 사회적 재생산, 그리고 사회 전체적인 생산에서 기계의 발달과 기술의 발전은 상품의 공급에 큰 혁신을 주었으나, 문제는 상품이 팔리지 않는 것이 문제다. 뉴스에서 서민지갑이 꽁꽁 얼어 경기가 좋지 못하여 정책을 새롭게 펼치나, 근본은 해결되지 않는다.

 

18세기의 애덤 스미스는 국가의 중상주의를 비판했다면, 지금은 기업의 독점적인 중상주의가 문제가 되었다. 사실 국가의 창고에 보물이 넘쳐도 그것은 왕실의 물건이지 국민의 물건이 아니고, 기업의 이윤을 창출하면 기업의 이익이지, 그 나라의 국민의 이윤이 아니다. 사람들의 착각은 바로 이윤의 창출에서 기업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그대로 국내로 재순환되는가 마는가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이다. 그 기업에 고용된 자가 있더라도, 그들이 사용하는 금액은 우리나라 전체 경제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율에서 과연 %일까?

 

국가의 경제학과 기업의 경영학은 서로 다른 관점으로 시작하나, 솔직히 어느 부분에서 서로 유사한 부분이 있다.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결국 사회활동의 일환이고, 사회활동에서 기업의 생산품은 수요자에게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고, 소비자로부터 이윤을 창출한다. 스미스가 제기한 것처럼 식빵가게 주인이 빵을 파는 것은 결코 자애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이기심이고, 식빵을 구매하는 사람은 식빵가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다. 그런 서로의 이해심이 일치하고, 식빵의 소비는 식빵가게의 주인과 노동자, 밀을 생산하는 농부와 운반하는 상인에게 큰 이익을 준다.

 

적어도 스미스의 경제이론은 다다익선이고, 서로의 이기심이 서로에게 이익이 되어야 하는 사회적 도덕관념을 강조한다. 사실 스미스의 <국부론> 이전에 <도덕감정론>을 읽어야 한다는 이유가 바로 스미스가 경제학의 창시자이나, 본래 윤리도덕학을 가르치던 학자이기 때문이다. 철학적 자세를 통해 경제성을 발견하여 필요한 재화들을 계속 융통될 수 있기를 추구했다. 오늘날 “보이지 않은 손”을 주장한 사람에게 도덕과 감정에게 무슨 의미로 전달될 수 있을까?

 

사실 그런 주장보단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물론 그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청약통장에 300만원을 넣고, 아파트분양을 원한다. 물론 분양권을 받아 돈을 벌면 좋겠지만, 그들은 항상 불평을 한다. 마트에 가면 물가가 너무 비싸서 살 게 별로 없다고 말이다. 그게 바로 스미스가 주장한 “보이지 않은 손”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만들어놓은 “보이지 않은 손”이란 사실을 잊은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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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6-01-13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학과 경제학이 분리되는 순간 경제학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고 하던데요. 저도 깊이 동감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1-13 09:24   좋아요 0 | URL
분리되어 현재 이 꼴이죠. 경영학 마인드로 경제학을 다룬다는 게 참..

2016-01-13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1-13 11:00   좋아요 1 | URL
어허허허... 오덕오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