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쇠퇴했습니다 8 - J Novel
다나카 로미오 지음, 김경훈 옮김, 토베 스나호 그림 / 서울문화사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다나카 로미오의 필력에 다시 한 번 놀란다. <인류는 쇠퇴했습니다> 8번째 시리즈, 사실 이 작품을 보면서 7권 이후의 녹나무 마을의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 상황에서 보는 현실적 관점이라고 한다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주인공의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 로봇이 마을을 초토화하는 바람에 녹나무마을은 점차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떠나는 이유는 마을이 황폐해졌기 때문에도 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버드란트 러셀이란 영국 철학자는 인간에게 가장 즐거울 때는 바로 흥분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보통 우리 일상생활에서 흥분이란 단어를 사용하면 성적인 욕망을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성적욕망을 위해 새롭게 시도하는 각종 행위들은 흥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흥분은 한계점이 있다. 성적인 에너지인 리비도는 인간이 항상 가지고 있는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도 욕망의 분출에서 욕구의 한계로 만족하면 그 다음 욕망을 느낄 때까지 인터벌이 존재하는 것이다.

 

식욕, 수면욕, 성욕과 같은 동물적 기능은 인간에게 한계성을 준다. 밥을 먹는 양도 어느 정도 한도가 있고, 잠을 계속 자면 어느 순간 불면증까지 이어진다. 성욕은 과도한 체력소모로 충분한 휴식과 영양분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흥분이 왜 동물적 요건으로 보는 것이 한계라는 점은 도출되었다. 인간에게 육체적인 흥분은 언제나 그 한계가 있기에 결국에 이와 다른 정신적 흥분이 중요한 것이다. 인간생활사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문제 되는 것은 바로 게임이다. 게임은 인간에게 여가생활과 동시에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지만, 한편으로 지나친 중독은 일상생활에 좀을 먹게 만든다.

 

게임중독에 빠지는 이유는 게임하는 동안 게임 플레이어는 계속 흥분을 하기 때문이다. 뇌에서 전해오는 화학물질이 눈에 보이는 게임영상에 의해 계속 생성된다. 뇌에 작용하는 화학물질로 인해 인간은 극단적인 흥분을 느낀다. 게임을 하거나 혹은 거리에서 운전할 때 주변 차량과 레이싱을 하려는 상황에서 흥분을 느낀다. 인간에게 흥분은 육체적인 조건보다 오히려 정신적인 영역에 가까운 곳이라 볼 수 있다. <인류는 쇠퇴했습니다> 8권에서는 이런 인간들의 정신적인 흥분을 잘 보여준다. 물론 작가의 시나리오에서는 마을의 재건을 고민하는 조정관 주인공의 모습에서 보이나, 그 주변은 분명 인간의 모습이 드러난다.

 

인간에게 가장 즐거운 것이라면 무엇인가에서 러셀의 말을 인용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이 즐거울 때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 자신의 자아실현에서 인정받는 것이 사회적 인정일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어떻게 되는 것인가이다. 그 답은 바로 할아버지의 선택이다. 만물박사이며, 유엔 업무담당관 중에서 가장 총명한 그는 사실 영락없는 모험탐락가다. 사냥을 좋아하고, 미지의 유적지를 가는 것도 좋아하며, 특히 골동품(특히 무기들)을 모우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총을 사무실에 걸어놓고 사격연습을 하는 박사의 모습에서 전형적인 도전정신이 빛이 난다. 과연 그것은 8권에서 어린 시절 아주 말썽꾸러기로 살아갈 때 입었던 알로하셔츠를 거치고 우주여행 모험에 참여한다. 솔직히 작품배경이 의상과 건축형태를 보자면 19세기 정도 보이나, 실제적으로 30세기에 근접한 쇠퇴하는 인류이다. 지금의 최첨단 기술인 우주비행선이 우리에겐 미래를 열어갈 도구지만, 작품에서는 우주비행선이란 과거에 존재했던 우수한 기술이었다. 마치 우리가 미스터리로 가득한 마야문명을 바라보는 시선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위험한 곳인 것을 알면서 우주비행선을 타고 달에 가려고 하는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다. 일상생활을 보면 특별한 것이 있을 것도 없고, 마을은 늘 분위기가 시골마을을 보는 것처럼 조용한다. 총기를 손질하며 하루를 보내고, 조정관의 업무를 맡은 손녀에게 일만 주고 딴청 피우는 할아버지에게 새로운 이벤트는 눈에 확 들어오는 찬스다. 게다가 주인공 옆의 조수마저 할아버지와 같이 달에 가고 싶어 한다. 다행히 초대권이 없기에 다행이지 만약 있었으면 상당한 골치로 되었을 것이다. 이게 바로 흥분의 시작이다. 소풍 전날 잠 못 드는 아이처럼 뭔가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점은 할아버지나 조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주 성향이 특이한 주인공의 학사동기 Y의 경우 남성끼리 연애하는 BL장르에 빠져있고, 자신의 취미를 살려 주변마을에 사는 소녀들까지 녹나무마을에 이끌어 온다. 마을이 침체된 상태에서 주인공은 그런 망상을 이용하여 마을을 번창 하려 했지만, 의외로 골치를 썩는다. 요정의 힘으로 만들어진 약물로 통해 현실에 존재하는 영상이 투과되는 증강현실을 마을에 도입한다. 우리 일상에서는 가장 좋은 예를 네비게이션이다. 네비게이션에는 아주 먼 곳에 있는 지역까지 화면 위에 지도로 나타낸다. 하지만 우리 눈에는 그 전경을 볼 수 없다.

 

21세기 스마트폰, PC인터넷의 발전은 단순히 가상현실만이 전부가 아니라, 증강현실에도 큰 변화를 준다. 그래서 디바이스가 해킹되면 자신이 가야할 길이 아니라 엉뚱한 길을 찾아 갈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가 진짜가 아닌 가짜가 오히려 진짜같이 되는 경우가 되는 것이다. 주인공은 증강현실을 이용하여 마을을 부흥하려 하나, 그것은 도박에 가까웠다. 임신을 한 여성이 의사도 없어서 애태우는 모습은 정말 골치 아프다. 그런 증강현실은 하나의 게임플레이 어플리케이션처럼 작용하여 어느 특정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해진 루트를 밟아 진행하는 것이다.

 

오락실에서 비트 마니아처럼 박자에 맞추어 키보드를 누르면 good & bad가 뜬다. 게임이 아닌 분야에 마치 게임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라 한다. 녹나무마을을 융성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의욕을 줘야 한다. 의욕을 주기 위해서는 어떤 계기나 기회가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사람들에게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한 것이다. 21세기가 도래하면서 문화콘텐츠가 중요한 것은 문화적 감성은 결국 인간에게 새로운 감각을 전달해주고, 삶에 대한 만족과 새로운 목적을 준다는 점이다.

 

<인류는 쇠퇴했습니다>에서 인간은 수동적인 삶보단 능동적인 삶에서 재미를 찾는다. 하지만 수동적으로 변하는 이유는 바로 동기유발이 없다는 점이다. 마을이 피폐해져도 이미 확보한 군용텐트가 완벽히 주거환경을 제공했고, 주변지역에서 구호물품이 계속 쏟아진다. 마을재건을 막상 하려니 도저히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인간이 삶에 흥분을 일으킬 새로운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요정이 준 수면제는 이상한 약초로서 꿈을 꾸게 되면 마치 마약을 먹은 것처럼 환각 증세를 일으키는 것이다.

 

꿈이란 세계는 인간이 깊은 잠이 아니라 엷은 잠에 들었을 때 이미지가 보인다. 이미지의 세계인 꿈에서 인간은 자신의 현실에 가려진 욕망을 마음대로 분출할 수 있다. 이상한 모양의 물건을 만들고, 자신의 신체를 특이하게 강화시킨다. 게다가 요정의 수면제는 개인에게만 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꿈이라 그 마을 전체를 꿈의 세계로 이끈다. 꿈의 세계란 인간에게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낸다. 신화란 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공간이다. 많은 인간들이 꾸는 꿈나라는 마치 환상의 세계에 온 것 같다. 신화란 환상의 세계이나, 그것이 현실의 인간을 반증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현실에 대한 회의적인 자세는 마을을 떠나는 악순환도 발생하나, 자신이 처한 현실에 빠져 현실도피를 하는 경우도 다분하다. 어느 쪽이든 마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인공은 극단적 처방전으로 일시적인 구호물품을 받지 않는다. 물건이 오지 않으니 다들 불만이 쌓이고, 불만 역시 하나의 흥분에 가깝다. 기분 좋지 않은 흥분일지 모르나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 녹나무마을을 다시 재건에 이른다. 생각해보면 발전한 마을이나 도시로 사람들이 유입하는 것은 분명하나, 그것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이 오는 게 정답이다.

 

그런다고 처음부터 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계기나 동기가 필요하다. 환각 증세와 Y의 BL의 공세는 처음에 마을에 이웃에 사는 소녀들을 대거로 오게 만들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욕망의 목적에 치중하지 그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마을의 청년과 친하게 지내는 부류도 있었다. 대규모 군중이라도 모두가 같은 인간이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이번 8권에서는 요정의 역할이 적은 편이었다. 기억나는 부분은 루이16세를 따라하려던 요정이었다. 루이16세는 같은 세대에 살았던 장 자크 루소를 두고 조롱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의 저서 <에밀>의 영향으로 자물쇠 만들기가 취미였다.

 

자물쇠 만들 수 있는 것은 아주 고급된 숙련공만 할 수 있었다. 요정의 기술은 그런 세세한 손길로 만들어지는 기술이 아니라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기술인 요술과 같다. 단지 인공지능의 전원을 충전시키거나 이상한 수면제만 만들었지 직접적으로 작품의 무대 위로 나오지 않았다. 요정의 특징이 인간의 문명흔적이 집중적으로 모인 곳을 좋아한다. 전쟁의 결과 문명의 파괴이니, 예전 녹나무마을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사람들이 떠나니 요정들의 활동이 더딘 것도 역시 그렇다. 문명의 조건에서 인간의 활동이 기반되지 않으면 성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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