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서 자라고 현재까지 살아가고 있는 곳이 영도이다. 영도에 살아보면 항상 느끼는 것이나, 여기는 아직까지 지역명과 같이 어둠에 가려져 있는 동네이다. 영도를 말하면 흔히 주변에서 영도구(影島區)라 하지 않고 영도시(影島市)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지방자치단체 관할기관에서 분명 영도구는 부산광역시 안에 포함된 지방자치단체이다. 그런데 영도를 두고 영도시라고 별명으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영도가 부산에서도 뭔가 조금 다른 지역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흔히 서울이나 또는 다른 지역에서 한강을 두고 강남지역하고 강북지역이 뭔가 다르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하천이나 해안 혹은 산간지대를 사이로 기후가 대기기상학적으로 다를 수 있다.

 

그런데 부산에서 그런 지역에 몇 군데가 있으니 그 중에 하나가 영도이다. 영도다리 하나를 차이로 뭔가 기상이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영도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싼 섬이다. 섬이지만 상당히 부지가 넓은 편이라 교량이 지금 4개를 두고 이래저래 왕래를 하고 있다. 영도(影島)라는 말에서 그림자 섬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장난으로 사람들은 Young Island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영도>를 영문으로 <Shadow Island>라고 정확히 적었다. 그림자의 섬, 왠지 태양을 빛이 보이지 않고, 태양빛 뒤로 가려진 그림자가 음영으로 가득한 곳이 영도라는 점이다.

 

영도지역에 대한 리얼리티적인 요소도 지니고 있지만, 너무 지나친 감이 적지 않게 있었다. 영도에 거주하면서 방파제에 대낮부터 고등학생들이 담배 피는 것은 불가능하고, 심지어 주택으로 둘러싼 공터에서 담배 피는 학생도 별로 없다. 옥상에 올라간 몰래 담배 피는 것이라면 몰라도 지나치게 미국 할렘의 모습이 생각났다. 뭔가 반은 맞은 것 같아도 반은 아닌 것 같았다. 영도가 과거에 조직폭력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영도와 남포동 중심으로 유명한 조직폭력단도 많았고, 동네 자체가 흉흉한 분위기도 많이 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다고 영화에서 스마트폰이 등장하는 점에서 과거만큼 동네의 치안이 위험하지 않은 점이다. 대낮부터 조직폭력배가 남항동이나 대평동 일대의 항구에서 사람들에게 찾아가 사기대출로 폭행을 휘두르는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단지 영도다리 아래에 위치한 봉래동 일원에 보도가 있다는 것은 알고, 종종 길을 가다 보면 스타렉스나 카니발 같은 차량이 이리저리 오가면서 여자들이 내리는 것은 지나가다 본 적은 있다. 확실히 영도라는 지역을 모르는 부산 밖의 사람들이 보면 영도는 마치 범죄로 넘치는 고담시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라는 설정이 실사영상이란 점에서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이 현실의 조건으로 따라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SF나 판타지장르가 아닌 이상 현실적 조건, 리얼리티의 요소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적인 조건에서 리얼리즘으로 다가왔다고 해도 현실과 역사적인 맥락에서 너무 동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어중간하게 리얼리티를 부여한 것이다. 사실 영도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은 영도할매귀신 눈에 걸리지 않게 이사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영도할매귀신이란 말은 어째 보면 미신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름의 문화인류학적으로 신화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가령 옛날 외국인들이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들어오면 항상 영도를 보게 된다. 밤에 유람선을 타고 온 외국인들이 영도를 보며, 부산이 엄청난 발전한 곳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아마 그때가 1960년대 이후일 것이다. 영도를 보면 높은 곳까지 불빛이 들어와 있는 장면에서 그들은 영도에 엄청나게 많은 고층빌딩이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사실 빌딩이 아니라 영도는 평탄한 섬이 아니라 산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그 높은 곳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사니 불빛이 고지대까지 보인다.

 

영화 <영도>에서 주인공 영도가 사는 곳은 영선동 산복도로가 있는 곳이다. 여기는 영화로 촬영하기 아주 좋은 장소다. 말 그대로 서민아파트가 있는 곳이다. 집안에 화장실이 없고, 아파트 내에 공동화장실이 있고, 집마다 평수는 대략 12평 내외로 아주 작은 규모다. 이런 집은 영도 영선동 이외에 부산역에 있는 초량동 위로 올라가면 수정동이 있다. 거기 역시 부산의 산복도로 중에 유명한 곳이다. 과거 부산에 빈곤계층이 사는 곳이 상당히 많았는데, 점점 그런 주택형식은 줄어들고 있지만, 부산 영도 안으로 들어가 태종대가 있는 동삼2동에 가면 수세식이 아닌 푸세식 변기를 사용하는 곳도 있다.

 

영도할매귀신의 이야기는 결국 부산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 중에 하나가 영도이기 때문이다. 불편한 교통, 높은 지역, 삶의 주거가 안락하지 못한 것이라면 가난한 사람이 많고, 그들이 계속 거기 사는 이유는 경제적으로 제대로 좋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과 산업근대화 시기에 많은 피난민과 구직자들이 몰려왔을 때 마땅히 갈 곳이 없으니 지대가 저렴한 영도로 몰렸던 것이다. 영화 <영도>에서 영화제목도 주인공의 이름이 영도라는 점, 형사들이 찾아와 영도에게 영도 이외에 벗어날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한다.

 

영도라는 이름, 영도라는 지역, 영도라는 주박은 결국 인간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론적인 비극을 보여준다. 영도는 태어나 어린 시절에 그저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연쇄살인마였고, 도끼로 시체를 토막 내는 것도 모자라 인육을 먹었다. 살인마의 아들, 그것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굴레로 다가왔다. 자신이 저지른 것이 아니지만, 자신에겐 괴물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억압을 당한다. 아버지는 아버지고, 영도는 영도이다. 그러나 사회는 그에게 소외와 고독 그리고 차별을 선사했다.

 

그의 친구들은 2명만 나온다. 단짝 친구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사촌형 아래서 자란다. 그러다보니 가정환경에 충실하지 못하여 비행을 저지르고, 학교생활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영도가 왜 불량해졌는가? 여기서 이 영화는 우리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드러낸다. 조직폭력단에 들어간 영도는 거기 두목에게 불려간다. 그런데 알고 보니 두목은 영도의 아버지를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가지고 영도를 가지고 조롱한다. 영도친구 꽁이 영도를 데리고 사촌형에게 가서 그 일을 이야기하자, 사촌형은 장어구이 식당에 가서 사회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한다.

 

어둠에 사는 인간들이 사회의 문제와 인권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하나, 거기서 엄청난 불평등을 볼 수 있다.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2가지의 불평등을 제기하는데, 하나는 신체적 자연적 불평등이고, 다른 하나는 도덕적 사회적 불평등이다. 영도와 꽁에게 얻은 불평은 후자이다. 대부분 한국사회이든 혹은 루소가 18세기 프랑스를 살았든지 바로 2번째 불평등이 우리 인간사를 고통으로 내몬다. 영도는 처음부터 나쁜 인간이 아니라 나쁜 인간으로 되어야만 했다. 결국 나쁜 인간이 된 영도는 아버지에 의한 피해의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아버지로 인해 망가진 인생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는지 그것이 고민이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작중에서 영도는 성적 욕구도 거의 없었다. 물론 형 일도의 아내, 아니라면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 부모를 잃은 미란에게 은근히 성적인 환상을 품지만, 이내 그 환상의 세계인 꿈은 악몽으로 변한다. 영도를 누운 채로 위에서 성행위를 하던 미란이 영도의 심장을 꺼내어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도가 성적인 욕구를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것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자신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범죄로 동네에서 제대로 살 수 없었다. 얼굴을 봐도 누구에게 얻어맞았고, 그때 영도의 형을 데리고 가출한다.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아버지의 죄를 계속 이어받아간 영도에게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그가 우연히 만나고 사건이 일어나는 인물들은 모두 하나같이 영도라는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다. 하다못해 어머니가 사는 곳을 찾아 서구로 가는데, 바다 넘어 영도 봉래산이 보인다. 영도를 나나도 영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바로 운명론적인 비극이다.

 

이렇듯 영화 <영도>는 인간이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에 벗어날 수 없는 비극을 계속 강조한다. 유일하게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영도가 죽어야 가능했다. 안타까운 것은 영도는 방황과 고독 그리고 허무 속에 살아가다 마지막으로 삶의 목표를 찾아가려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미워했으나, 집 앞에 두고 간 커다란 곰 인형은 수배자로 도망치던 아버지가 나두고 간 것이다. 아버지의 죄에 고통스러운 인생이 되어도 아버지라는 존재 그 자체에 대한 하나의 그리움이 담겨있다.

 

그래서 어머니의 애인이던 술주정뱅이 노인을 폭행하던 이유도, 그 노인이 어린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것에 대한 화풀이를 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죄보다 더 분노로 다가온 것은 자신을 버린 어머니의 무책임한 태도였다. 자식을 무책임하게 버리는 어른들에 대한 분노가 결국 영도를 극단적 행동으로 이어간다. 마지막에 자신의 인생을 조금 바꾸게 된 동기는 미란의 아이 미미 덕분이었다. 일도의 아내 미란은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영도의 심장이 필요했다. 하지만 일도는 죽고, 미미는 남았다. 미란은 미미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지켰다.

 

다른 사람에게 모두 거칠었던 영도이나, 미미를 건물 밖에 놀게 하고, 노래방에서 일당으로 일하던 미란을 억지로 붙잡아 영도는 자신의 집에서 잠재운다. 미란이 미미를 걱정하고 아끼던 모습에서 다른 어른들과 다른 모습을 발견했다(자신을 버린 여자 영도의 어머니 미미를 끝까지 지키던 미란). 후반부에 영도가 죽기 전에 핸드폰으로 전화가 울려온다. 그 발신자는 미란, 영도는 형 일도가 죽은 후에 미란과 연락하고, 미미하고 사이좋게 지내려고 했던 것이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큰 곰 인형을 산 이유는 자신이 가지려고 한 것이 아니라 미미에게 선물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소원과 목적은 무참하게 파괴된다. 자신의 저지른 죄의 대가가 끝까지 따라 붙은 것이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쳐봐도 결국 그는 살 수 없었다. 이때까지 그런 비극적 인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면, 앞으로는 거기서 벗어나 새 삶을 찾으려 해도 세상이 역시 그를 절망의 그늘로 데리고 간다. 영화 <영도>라는 제목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Shadow Island이다. <영도>라는 제목으로 영도에서 촬영하고 영도라는 주인공이지만, 영도는 꼭 반드시 부산에 있는 영도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쇠사슬은 언제나 우리를 짓누른다. 영도라는 말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은 인간 누구라도 가질 수 있고, 괴물은 처음부터 탄생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져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하지만 과정의 연속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의한 선택되어지는 게 비극이다. 영도는 가난과 고독 그리고 절망이란 운명에서 살아간다. 영도에서 살아가는 나도 영화 <영도>만큼은 절대로 될 수 없겠지만, 나만이 가지고 있는 영도라는 운명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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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9-25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둠에 가려져 있는 동네 영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 문장 웃깁니다.
만애비 님 생각할 때마다 항상 뾰족구두 가지고 비오는 날 뛰어다니던 풍경이 떠오르는군요... ㅎㅎㅎ 요즘 왜 네버 블로그는 잘 안 하슈 ?

만화애니비평 2015-09-26 11:10   좋아요 0 | URL
그게 그래 웃기는 겁니까??ㄴㅋㅋㅋㅋ

진격의 오덕이 생각나는군요.요새 공부하다고 정신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