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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는 마스다 미리의 <수짱의 연애>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의 이야기다. 수짱이 카페 일을 그만두고, 보육원에 취업하여 우연히 쓰치다라고 하는 남자를 만난다. 쓰치다는 수짱이 카페 일을 할 때 그 건물 옆의 서점에서 일하고 있던 점원이었다. 성격을 보면 소탈한 면과 소심한 요소가 보이는 평범한 남성이었다. 과거의 일본과 달리 이제 일본 사회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조건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쓰치다의 한 달 월급 이야기나 나오는데, 그의 임금은 월 25만엔이라고 한다.
한국 돈으로 계산하면 250만원이다. 이 책이 2012년 일본에서 발간되었다는 점을 고려하여 쓰치다의 나이 32 전후로 그 정도 월급이면 무척 박봉인 점을 보여준다. 그의 성격과 더불어 그의 월급으로 나오는 숫자는 그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난다. 왠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픈 현실이지만, 그것이 바로 현실이란 점이다. 마스다 미리의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분명 심리적인 요소를 잘 보여주고, 상황에 대한 절묘한 묘사를 잘 나타내는 것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현실적 조건, 즉 리얼리즘이란 사실주의적인 요건이 들어간다.
보통 만화작가의 연애 장르에는 사실주의적 요소보단 오히려 낭만주의적 요소가 강하다. 낭만주의란 낭만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살고 있는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를 추구하는 점이다. 연애의 조건에서 현실의 일상적 모습보단 오히려 그 과정을 다루는 요소가 많다. 그래서 연애 장르에 큰 매력이 느끼는 것과 그렇지 못한 점은 현실적인 조건을 너무 무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인간은 현실에서 느끼고 있는 박탈감과 욕망은 작품으로 하여금 신화적인 요소를 부여한다.
여자에게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지위가 낮은 여성 혹은 경제적으로 불리한 여성이 부와 지위를 갖춘 남성을 원하는 이야기다. 현실에서 드라마와 영화의 주요 소재로 써먹는 경우가 많으나, 그것은 현실 안에서 가상의 이야기로 될 뿐이지, 일반인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극히 드물다. 물론 0.001%가 된다고 하여 안 되는 게 아니라 되는 것은 분명하나, 나머지 99.999%는 분명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존재한다. 경제적 조건이 연애의 조건이 되는가에서 마스다 미리의 작품에서 그것을 은연히 드러낸다.
수짱이 그동안 왜 남성과 사귀지 못했는가에서 그녀의 직장을 보면 남성이 없다는 점이 드러나고, 그렇다면 수짱이 카페와 보육원에 일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녀는 일본사회의 상류계층이 아니라 중하위계층에 가깝다는 점이다. 마스다 미리의 작품이 보통 일본작가의 작품과 다른 이유는 현실적 조건으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되는 점이다.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에서도 쓰치다는 평소 월급쟁이 생활을 하며, 소시민적인 일상을 보여준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 퇴근하면서 집이나 회사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쓰치다 같은 경우 자신의 현실을 어렴풋이 잘 알고 있다. 월급이 적은 것과 그에 따라 연애도 힘들다는 점이다. 사랑은 돈과 관련 있는지 혹은 없는가에서 사랑의 조건에서 돈은 필요하다. 단지 돈으로만 인간을 대할 수 없기에 적당한 균형관계가 필요하다. 쓰치다 월급을 한국의 32살 남자와 비교하여 거의 지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남자와 비슷한 여건이다. 거기다 임대받아 사는 집세와 생활비를 제외하면 그가 한 달에 여유로 가질 수 있는 돈은 매우 적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건이 어려울 경우 일상생활에서 활동이 제한받는다. 그가 평소 계속 집과 회사 가끔 들리는 부모님 댁(명절)과 큰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은 그의 생활을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평소 하는 것이랑 독서생활이다. 쓰치다가 서점에서 일하게 된 이유는 어릴 적 큰아버지 댁에 가서 장서에 꽂힌 책들을 보고 나서부터다. 일본 문학 소설 응모대회에서 상을 받은 작품을 다 읽을 정도이며, 그의 독서생활이 직장으로 이어진 것이다. 대신 철학과 사회학보단 소설 위주란 점에서 그의 성격이 매우 감성적인 것을 알 수 있다. 감성적인 남성들은 일반적인 여성과 조우하기 어렵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명확히 있기에 그것과 유사하거나, 혹은 자신의 감성적인 감각으로 왠지 느낌이 끌리는 대상에게 마음을 품는다.
쓰치다가 마음이 약한 남자라는 것은 작품 내에서 큰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할 때 큰어머니가 쓰치다보고 큰아버지의 병환으로 우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나중에 진짜 큰아버지가 병환으로 죽자, 가족들 중에서 쓰치다만 큰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않는다. 그리고 나중에 집으로 온 큰아버지의 유품을 보며 쓰치다는 혼자 서럽게 운다. 남들에게 자신이 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쓰치다는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은 소개팅에서 잘 보여준다. 서점 동료와 그 동료의 여자지인은 야요이, 야요인 친구까지 4명이서 자리를 마련한다.
야요이 친구와 독서취향이 비슷하나, 그녀는 애인이 있었고, 결혼도 준비하려던 사이다. 소개팅을 나오고 말고는 자유지만, 결혼을 앞두고 소개팅에 나온 것은 조금 치사한 게 아닌가 싶다. 애인 없는 사람이 있기에 만든 자리에서 그런 식으로 재미 반으로 나온 것이라면 책임감이 없는 것이다. 그 덕분에 쓰치다는 야요이와 사귀게 된다. 야요이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신과 사귀려고 했던 것조차도 쓰치다는 상상할 수 없었다. 가령 나도 군대전역 후 학원에 다니다 같은 수업을 받던 사람들과 친해지다가, 그중 한 여성과 친해져서 소개팅을 부탁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주선한 여성이 나를 마음에 들어 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성격차이와 기호적 차이(나는 기관지가 좋지 않아 담배연기를 싫어한다)로 인해 깨졌지만,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와 많이 놀랐다. 마스다 미리 작가가 여성이고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남성의 심리를 잘 보여주었다. 대신 조금 더 추가했으면 좋을 부분은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에서 사와코의 심리를 여성이 아닌 남성에 대해 적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와코는 나이가 40이 되지 결혼에 대한 문제도 그렇지만, 자신이 27살 이후로 남자와 사귀지 않아, 늙어가면서 자신에게 여자로서의 매력이 상실할까 겁이 났다.
여성의 매력에 대한 사와코의 자신감은 떨어지고 있었으나, 한편으로 성적으로 욕구불만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직 32살 전후인 쓰치다에게 그런 욕구불만을 조금 반영했더라도 좋았을 것이다. 부드럽고 성향의 남자를 초식계라고 하는데, 최근 남자들 사이에서 이런 유형은많이 등장하고 있다. 어찌 보면 쓰치다는 초식계 남성의 전형적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남성에게도 욕구불만 요소는 있다는 점이다. 작중에서 쓰치다가 얼떨결에 야요이에게 “자고 갈래?” 물어본 장면에서 조금 억지스럽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