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짱의 연애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평점 :
<수짱의 연애>는 마스다 미리 작품에서 수짱 시리즈 4번째 마지막편이다. 이번 편에서 수짱은 나이가 37살이 되었다. 이미 30대 후반을 향한 수짱에게 현실의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단지 전에 카페에서 일할 때 손님으로 남자들이 왔으나 보육원에 오고부터는 남자성인 대신 남자 꼬마들만 넘친다. 그나마 같이 일하는 분이신 원장님이 남자지만, 사모님이 조리사로 계시고, 그 조리사로 일하는 사모님의 나이가 일흔이라 한다. 일흔이면 노인에 해당되는 나이다보니 수짱에게 연애의 기회는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수짱에게 고민이 오더라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단지 매일 하루를 보육원의 아이들을 위해 요리도 하고, 농장도 일꾸며, 같이 놀아준다. 수짱다운 성격인지 매사 꼼꼼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일을 한다. 그런 일상에 묻힌 수짱은 자신의 처지를 계속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와코를 만나도 혹은 결혼하여 아이를 대동하는 마이코를 만나도 뭔가 고민이 풀리는 것보다 단지 그 순간 잊어질 뿐이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서점에 가서 쓰치다를 만나게 된다. 쓰치다는 수짱이 카페에서 근무할 때 가끔 점심식사를 하러 온 손님이었다. 수짱이 카페에서 일할 때 그가 가끔 올 수 있었던 것은 쓰치다의 근무하는 곳이 수짱의 카페 옆에 있었다. 쓰지다의 업무는 서점에서 근무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수짱의 나이가 37일 때 쓰치다의 나이는 33세이었다. 수짱의 나이가 4살이 더 많았던 것이다.
쓰치다를 거리에서 본 수짱에게 새로운 관심거리가 생긴 것이다. 아침에 보육원에 가서 아이들의 식단을 준비하려는 수짱이 갑작스레 쓰치다의 얼굴을 기억하고, 그의 연락처나 메일 정도 알아보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항상 뭔가 하고자 하는 일이나 또는 고민해야 할 거리가 있어도 다른 잡생각이 머리에 떠오른 법이다. 수짱은 언제나 단조로운 일상에 뭔가 새로운 활력소가 필요했다.
수짱이 우연히 도서를 구매하기 위해 예전에 자신이 근무한 카페 옆의 서점에 온 것이 아니라 사무실 근처 서점에 방문했다. 그런데 그곳에 쓰치다가 먼저 와서 책을 보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만남에 수짱은 당황하나 의외로 그를 만난 것에 큰 호감을 느낀다. 수짱이 원하는 책을 위해 서로 이야기하다가 연락처를 주고받고, 나중에 같이 식사도 한다. 식사를 하고 난 후 쓰치다는 갈등에 빠진다. 쓰치다는 수짱이 아닌 원래 만나던 여자 친구 야요이가 있었던 것이다.
야요이와의 관계는 얼마나 신뢰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야요이를 밤에 만나 지하철역까지 마중 나가는 쓰치다의 모습에서 뭔가 둘 사이의 벽이 시자된 것을 알 수 있다. 야요이는 쓰치다에게 집에 같이 가자고 말은 한다. 하지만 쓰치다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해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밤에 달이 뜬 상태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자신의 집에 같이 가자는 의미는 같이 침대로 올라가자는 의미다.
잠자리를 거부한 것이 단순히 업무적인 요소라고 핑계를 둘러대지만, 쓰치다의 마음 한편에 수짱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어서이다. 사람의 심리라는 것은 이성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쓰치다는 여자 친구 야요이도 있고, 수짱은 자신보다 나이가 4살이 많았다. 일본은 연애관계에서 나이의 요소를 어떻게 바라볼지 모르나, 한국에서는 아직 여자의 나이가 남자보다 어린 경우가 다분하다. 야요이는 쓰치다보다 2살 어린 31살, 한국에서 평균적인 나이일 것이다. 단지 차이점은 한국에서 남자는 군대를 강제로 복무를 해야 하는 법이 있기에 그런 상태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남녀가 같이 대학을 졸업하면 같은 조건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남녀의 나이에서 한국보다 덜 구속받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애 그 자체에서 상대방에게 이성의 연인이 있고 없고는 별개의 문제다. 쓰치다에게 야요이란 여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수짱에게 상당한 벽으로 다가왔다. 겨우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 밥도 먹고 맥주도 한 잔 했는데, 안타깝게 처음부터 자신의 마음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수짱의 처지가 가엾기도 했다.
왜 그때 카페에서 한 번 제대로 말을 걸어보지 않았을까? 왜 그저 바라보기만 했을까? 기회란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기회가 오더라도 상대방이 자신과 잘 지낼 수 있는지와 없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어느 정도 잘 어울리면 한 번 상대방에게 권유를 해볼 가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상대방이 배려의 차원인지 아니면 그저 그냥 그렇게 대해주는 것인지 알 수 없으니 사람은 항상 고민하게 된다. 쓰치다와 수짱은 서로에게 마음은 있지만, 상대방의 기분을 전혀 감지할 수 없었고, 안타깝게도 수짱이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여러모로 기회가 닿지 않았다.
인연의 반쪽은 어디에 분명히 존재한다고 하나, 그것도 상황과 여건의 차이가 드러난다. 이렇게 적으면 너무 비관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막상 그 중간에서 헤매야 하는 사람에게 그 자체가 현실이다. 현실의 속내를 거기에 고생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생각하기 어려울 부분이 많을 것이다. 수짱 시리즈에서 사와코가 독신생활을 하는 모습에서 40살 주변의 골드 미스 이야기가 등장한다. 왜 그녀들은 혹은 그녀들의 반려가 되어야 할 남자들은 왜 서로에게 도통 나타나지 않을까?
사회에서 나이가 많이 찬 미혼의 남녀에게 결혼문제 건으로 가끔 이런저런 쓴 소리를 한다. 그러나 정작 그런 말을 한다면 그에 대한 배려나 책임감은 없다. 나는 했는데 너는 왜 못하고 있니? 끝나는 무책임한 발언보다 혹시 주변에 상대가 없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 볼 것이니 생각 있으면 이야기해주겠니? 라고 말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시거나 너무 불성실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타입이 아니라면 대체로 결혼하여 생활하는 것에 문제는 없다. 정작 필요한 것은 그런 점을 알아주는 것인데 말이다. 알아줄 사람이 있다고 해도 상대방에게 골키퍼가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짱은 그렇게 자신의 희망이 다시 현실의 우울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