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9
김승옥 지음 / 민음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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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일본 근대문학작가인 나츠메 소세키,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다자이 오사무가 생각난다. 왜냐하면 기존 사회관이 붕괴하여 새로운 체계가 도래해도 인간들은 거기에 적응하기보단 오히려 낯선 이방인처럼 표류하기 때문이다. 김승옥의 <무진기행> 역시 불안한 사회인들의 심리가 반영되어 있어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흔들리는 인간들을 볼 수 있다. 아마도 나쓰메 소세키처럼 메이지 시대로 넘어간다고 해도 아직까지 도쿠가와 막부의 잔재가 남아있었고,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처럼 변화한 세상이 와도 그 불안함을 견딜 수가 없었고, 다자이 오사무처럼 그 불안한 심리를 가지고 끊임없이 표류하는 인간상을 그린다.


 

<무진기행>은 김승옥 작품 중에 <무진기행> 외에도 단편 내지 중편소설이 같이 실려 있으며, 대표적인 작품이 <무진기행>으로 되어 있을 뿐이다. 작품을 읽어보면 불안한 인간, 성적인 망상과 환상, 비겁한 인간과 전쟁의 비극까지 담고 있다. 아마 작품은 작가 본인이 느끼는 시대상과 주변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읽은 내내 여성들이 보기가 지나친 내용이 있었다. 아마 1960년대의 한국은 이제 막 공업이 활성화되고, 자본주의 경제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안에서 인간들은 격리된 인간들, 기존 세계와의 단절이 중요한 세계관을 이룬다. 한국전쟁으로 함경도에서 내려온 피난민, 남쪽에 살지만 전쟁으로 대피하던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이 이제 자기가 찾아갈 장소를 찾아가려 하나, 막상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이 공허한 밤하늘만 보일 뿐이다. 전쟁으로 인해 인간이 가져야할 절대적 도덕관과 윤리의식은 이미 붕괴되기 시작했고, 단지 그 세류에 휘말려 외로운 인간의 고독과 어둠을 그려내고 있다. 타이틀인 <무진기행>처럼 무진으로 내려간 주인공은 서울이란 속물의 공간에서 벗어나려 했고, 거기서 만난 음악선생과 낭만적인 애정도피를 꿈을 꾸기도 하나, 결국 아내의 전보에 의해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게다가 그는 한국전쟁에서 주변 남자들은 전쟁에 참가하여 사망하는 것을 듣지만, 혼자 집안 다락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한다. 비참하게 살아남은 것에 대한 후회, 재혼한 아내와 그 아내의 아버지가 가진 권력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속물과 이상의 가운데 흔들린다. 속물적인 예전 친구를 보며 그런 모습에 염증을 느끼지만, 결국 그도 속물적 사회에 길들여져 버린 약자였다. 하지만 우리가 본다면 그를 욕할지도 모르나, 사실 그는 우리들의 모습이었던 사람이다. 기존 사회가 붕괴되면서 인간의 가치는 자본이란 틀로 가게 되었다.


 

인간 사이에 진실한 감정과 가치는 없었고, 옆에 술친구는 되어줄 망정 그들의 지속적인 친구는 될 수 없었다. 늘 손에는 담배 하나와 소주 한잔만이 아지랑이처럼 그들의 눈에서 흔들거린다. 도무지 만족할 수 없는 현실, 사랑조차 믿을 수가 없었다. 여자들의 성적 자유는 과거에 비해 숨을 쉴 수 있었으나, 오히려 그것은 자본주의에 의한 도구로 더 쉽게 전략해 버렸다. 거기에 진실한 사랑이란 없고, 단지 서로 즐기기 위해 아니라면 돈을 위해 출세를 위해로 변한다. 차라리 <야행>에서 낯선 남자 손에 의해 억지로 여관에 끌려간 여주인공이 자신의 욕구와 본능에 충실한 것 같다.


 

비틀러진 여성들의 성적 욕구, 그리고 남자들의 허무한 성욕, 어찌 보면 젊은 남녀들에게 삶에 대한 의지와 목적이 탈락한 것처럼 보였다. 왜 여자가 비뚤어진 성욕을 가졌는가? 그녀의 애인은 그녀와 2년 가까이 사귀지만, 정식으로 부부가 아니라 그 연애 관계조차 사내에서 숨긴다. 회사에서 연애하면 여자가 회사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그 시절에 여자의 욕구불만이 터진다. 단지 그 불만은 성적인 요소가 아니라 일탈로 통한 기존 사회가치에 대한 반항이다. 솔직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 그녀가 길가를 걷다보면 낯선 남자가 커피 한 잔 하자 하나, 그녀의 반응이 없으면 모두 떠나 버린다. 차라리 욕망에 충실한 그 남자, 그 남자는 그녀의 손을 잡고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여관에 가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수 없는 사회에 모두가 숨이 막혀간다.


 

모두가 서울이 희망과 기회의 도시라고 하나, 그 공간은 낯설 자들이 모여 서로 낯설게 만드는 공간이고, 일정하지 못한 공간이라도 일상한 곳에서 일정한 틀을 강요한다. 그래서 남자들이 자신의 남근을 끊임없이 여자에게 들이대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불안한 심리, 억압된 현 사회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독과 허무라는 깊은 슬픔일 것이다. 낯선 공간에서 그나마 사람냄새를 맡는 것은 포장마차에서 술을 홀로 마시다가 옆에 남자에게 형씨라고 부르거나 또는 Beer Bar에 가서 5명의 미자를 찾아 근처 여관에서 살을 섞는다. 대부분의 남자는 혼자 살거나 모든 이들과 단절되어 있다.


 

전쟁 이후 가족의 단절, 혹은 자본주의 가속화로 시골을 떠나 도시로 온 남자들은 일에는 적응하나, 일 이외에는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자신보다 강한 것은 <역사>처럼 높은 담을 뛰어넘어 무거운 돌을 가볍게 던지는 장사가 아니라 <염소는 힘이 세다>에서 나오는 주변 아저씨들일 것이다. 그 속에서 젊은 남자들은 진짜 아버지가 아니라 이 사회라는 아버지에 의해 억압을 당하고 그들만의 세계에 젊은 남자들은 따라야 하는 것이다. <염소는 힘이 세다>에서 주인공 꼬마는 자기 누나에게 무참히 자기 가게에 찾아오는 아저씨에게 강간당한 것을 보고도 아무 것도 하지 못했고, 더 나아가 누나는 그 남자의 제의(버스운행 보조직)에 수락하고 자장면까지 먹은 것을 보고, 이 사회의 권력은 성인남성보단 자본의 힘이란 점이다.


 

혹은 어느 절대적인 힘을 가진 대다수의 무리들이 시키는 것이 정당한 것으로 보고 자란다. <건(乾)>에서 주인공은 동네에 예쁜 여고생누나와 사이좋게 지내지만, 그 누나를 본 꼬마의 형과 친구들은 동생을 이용하여 그 여고생을 집단강간하려 한다. 어둡고 무지한 사람들이 결국 욕심 많고 이기적인 대다수 사람에 의해 무참하게 밟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젊은 자들은 자기보다 어른에 의해 억압당하고, 억압으로 망가진 가슴을 그렇게 여자들에게 이어간다. 물론 여자들도 자기 나름대로 삶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연예인이 몸을 팔아 자신의 몸값을 올리거나, 반 순진한 남자는 그런 여자와의 결혼 후 고급술집에서 아내를 만나, 이혼을 하면서 누가 더 나쁜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서울은 욕망과 폭력 그리고 슬픔과 고독으로 1960년대를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 후의 한국은 불안한 심리와 군사정권의 검열로 인해 삶은 단절 속에서 이루어졌다. 모두가 스스로 길들여가야 하나 그 이면에 쌓인 무의식적인 탈출욕구는 일그러진 모습으로 보여준다. 죽을 줄 뻔히 알면서 죽게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고, 여관방에 가짜 이름과 직장을 올리는 우리 근대의 모습은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의 이름과 형태만 빌린 괴물과 괴물의 먹이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모습은 그때로만 끝난 것들이 아니다. 지금도 우리사회는 늘 어지러운 일들로 가득하고, 곤란한 사회관이 정립되어 있다. 오직 타락하고 몰락하는 것만은 자유롭게 되어있지만 인간이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채 어두운 공간에 일탈을 꿈꾸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보는 나도 내 마음 어디에 숨겨진 깊은 어둠과 고독, 절망, 허무가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우리의 원래 출발하고 싶은 마음에 <무진기행>처럼 무진으로 갈지도 모르나, 거긴 아무 것도 없고, 설사 찾으려 해도 다시 현실의 무기력함에 되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무진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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