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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봤어? - 내일을 바꾸기 위해 오늘 꼭 알아야 할 우리 시대의 지식
노회찬.유시민.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3월
평점 :
<생각해봤어>라는 책을 보면서 내가 처음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품은 시절을 생각했다. 최근 대법원관 선정과 관련하여 청문회 증인에 선택한 사람 중에 국회의원 정형근이 있었다. 그 사람은 내가 사는 시의 다른 구의 국회의원이었다. 내가 그를 기억하는 것은 학부에서 통계조사하러 가면서 일반 사무실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아무 것도 모른채, 정형근 지역구 사무실에 들어갔고 당시 보좌관은 우리 학부생에게 쌍욕을 퍼붓으면서 우리를 밖으로 내쫓았다. 아마 이때부터 정형근 위원이 몸담은 당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정치에 관심없는 사람이라도 아주 어이 없거나 황당한 일에 말려 피해보거나 욕을 보이면 정치에 혐오감을 가지고, 그 혐오감을 주는 자에 대한 끊임없는 배타심으로 이어진다.
그런 문제의 한계는 반대의 반대로 이어질 뿐이고, 결국은 해결되지 않은 딜레마에 빠진다. 내가 만약 대한민국헌법을 모르거나 헌법의 기원, 그리고 프랑스대혁명을 모른다면 민주주의 국가체계를 알 수 있을까? 어느 보수논객은 프랑스대혁명을 범죄로 보는데, 한국이 자유민주주의국가라면 그 헌법의 기원이 프랑스대혁명이란 점을 보면 그 사람은 아예 처음부터 자유민주주의 체계조차 부정한 셈이다. 정치에 대한 논지에서 기본적으로 철학적 기반 없이 논하는 것은 “나는 바보 혹은 거짓말쟁이”라고 스스로 드러내는 셈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관계에서 소유권이 재산과 자신의 몸에 대한 신체란 점에서 오묘하게 돌아가는데, 문제는 자유의 논지는 몸과 마음이 포함되어야 하는데, 한국은 자본의 크기로서 비례된다.
이상하게 불리한 것은 평등, 유리한 것은 자유라는 슬로건은 이상한 시스템을 만들게 되었다. <생각해봤어>는 14가지의 테마를 가지고 전문가를 초빙하여 서로 대화를 나누는 일반정치교양도서다.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기본적으로 플라톤부터 존 롤즈까지 다양한 프레임과 관점을 보는 게 정당하겠지만, 그런 책들을 일일이 잡고 보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무리다. 그래서 <생각해봤어>는 일반인들도 진짜 이해하기 쉽게 만든 도서고, 어려운 단어나 내용을 최대한 배제했다. 거의 일반적인 상식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과연 그렇구나? 하는 정도로 만든 도서다.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입구가 너무 화려하거나 전위적이면 보통 사람에겐 그 문을 열어볼 자신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는 우리 일반적으로 뉴스나 미디어에서 나오는 문제, 그리고 당장 우리가 부딪히는 시급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정치라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겐 너무 낯설어 보이지만, 그 낯선 대상은 우리 일상생활을 철저하게 배회하고 있다. 단지 그 스위치가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부당함, 그리고 그 이상으로 분노하는 우리 가족에 대한 피해는 그동안 무감각하던 정치적 세포를 살리는 기폭제가 된다.
정치에 관심 없다며 정치혐오 내지 자신이 중립이라 선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나는 책임이 없다! 라는 방식은 오히려 현재의 상황을 더욱 가속시키는 일이다.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은 무관심한 사람들이 늘기를 바라며, 계속 프로파간다라는 선전으로 책임을 회피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상위10% 이내를 제외하면 결국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상위 1%면 처음부터 걱정이 없으나, 나머지 9%는 99% 중에서 투쟁으로 얻어지는 자리다.
자신이 그런 좌석에 앉아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여전히 위기감을 느끼고, 삶을 만인에 대한 개인의 투쟁까지 이어진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은 단지 그 개인들의 이권을 찾아가기 위해 만들어놓은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 지금 한국에서 국민 내부투쟁에서 한편으론 미래에 대한 걱정, 물가에 대한 걱정, 삶에 대한 걱정은 여전하다. 그렇게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 남의 걱정은 쓸데없는 일이라 여긴다. 그러나 그 남도 당신에게 또 다른 남이란 점에서 공존 없이 경쟁으로 가는 것은 공멸할 뿐이다.
물론 선의의 경쟁은 필요하고, 자신의 노력이 되어 보상받는 것은 정당하다. 단지 그 기회나 그 결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어 문제다. <생각해봤어>는 우리 사회의 전반에 널린 문제를 다룬 도서다. 일일이 그 문제와 상황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다들 우리 사회가 문제라고 여기면서 그 문제에 대한 근본은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그것은 <생각해봤어>처럼 우리 사회의 문제를 내 이익에 대한 관점보단 더 넓은 영역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바르다는 점이다.
내가 정치에 대한 혐오와 분노에서 정치적인 관점의 형성이 되는 과정은 바로 그런 영역이다. 내 친구는 나보고 너무 편파적이라 하지만, 중립의 기준은 판단력에 대한 기준이지, 윤리적 기준은 아니다. 미디어의 영향과 일방적인 정보, 게다가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심리내부의 믿음은 세상에 대한 눈을 가려버린다. 옛날 말에 민심은 바람에 눕는 풀보다 먼저 자리에 눕는다는 말이 있다. 문제는 다른 바람이 불어도 풀은 올라오는데, 민심은 전혀 요지부동인 경우가 많다.
아마 그것은 정체성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인간은 이성과 감정에 의해 살아가고, 특히 이성적 판단에 의해 선택한다고 하나, 사실 인간은 이성의 판단조차 자신의 정체성에 이해 결정된다. 정체성이란 자신이 현재 살아있는 그 자체, 내가 살아가는 목적, 혹은 자신의 생명보다 더 고귀한 존재일 것이다. 한국의 정체성은 아직 20세기 끝도 아닌 그 앞에 머물러 있다. 21세기가 도래하고, 다시 한국전통문화를 찾아가려해도 그 단절의 공간이 여전히 우리사회의 갈등을 일으킨다. 문제의 본질을 어떻게 여기든 결국에 그 방향은 어떻게든 우리 생활을 변화하게 만든다. 변화하는 것을 막지 못하면서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거꾸로 가는 현실을 반영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봤어>를 읽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과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면 과연 어떤 답이 나올까? 진짜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