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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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를 한자 사자성어로 말하자면 인생이란 바로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허삼관이 살아온 인생이란 연속적인 희망과 좌절, 아픔과 기쁨, 산으로 올라가다 바다 아래까지 들어가는 다양한 굴곡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허삼관 매혈기>를 단순히 허삼관이란 가상의 인물에 대해 적은 글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말한 것처럼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다”란 말처럼, 이 소설은 시(소설)처럼 당시 평범한 한 남자의 이야기요, 그것은 더 나아가 우리 같은 보통 남자의 이야기다.


물론 허삼관만 주인공이라 하여 허삼관만 중요인물만 아니다. 그의 아내 허옥란, 세 명의 아들, 허소용, 임분방, 혈두, 같이 피를 팔아 돈을 받은 사람들 모두 우리의 모습이고 이웃이다. 허삼관은 그렇게 위대한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지만, 누구보다 위대한 아버지와 남편이었다. 그의 행동을 보자면 소심하고, 때로는 잘 삐치고, 어찌 보면 너무 바보 같은 남자였다. 때로는 과감하기도 하고,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기도 하고, 상상 이상으로 현명하기도 했다. 모든 인간이 언제나 같은 모습과 같은 얼굴을 하는 게 아니다.


그 상황에 따라 인격과 감정이 실시간으로 변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모든 것이 변해도 그가 인간적인 사실만은 변하지 않았다. 너무 인간적이라 감정에 말려 들어가는 그는 때로는 충동적이기도 했다. <허삼관 매혈기(許三觀 賣血記)>는 제목을 보면 성이 許씨로 허락하거나 들어주는 것이고, 삼관은 3가지를 보는 것이다. 그의 이름처럼 그가 3가지를 보는 것은 바로 3아들이 아닐까 싶다. 그의 이름은 남편과 아버지로 살아가고, 일락이와 이락이 그리고 삼락이라는 즐거움을 주는 3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살아온 인생은 결국 피를 팔아 가족을 만들고(결혼), 가족을 지키며(대기근), 가족을 살렸다(일락이의 간염).


한 남자가 자신의 피를 팔아 가족 안에서 보인 행동은 인생굴곡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피를 팔아보면서 단 1번도 자신을 위해 돈을 쓰지 않았다. 단지 허옥란과의 결혼은 자신을 위한 것이겠지만, 가족의 탄생은 어느 한 개인의 영역이 아니라 가족과 가족이 새로운 가족을 탄생시키는 것과 같다. 허삼관의 아버지는 잘생긴 남자고, 어머니는 상당한 미녀이나, 아버지 죽은 이후에 어느 대령과 눈이 맞아 야반도주한다. 가족이 없던 허삼관에게 가족을 만드는 것이란 자신이 유일하게 머물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다.


어린 시절 혼자 외로이 걷다가 작은 아버지의 구조 아래 겨우 청년이 된 허삼관은 작은 아버지 넓은 등에 업혀온 기억을 절대 잊지 않는다. 일락이가 비록 자신의 친자식이 아니지만, 일락이의 모습과 행동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공허감과 일락이에 대한 사랑은 어린 시절 자신의 작은 아버지가 한 것처럼 일락이에게도 보여준다. 낳아주신 아버지 이상으로 길러주는 아버지로 살아가는 것이다. 허삼관은 그래서 그 어디서나 보일 수 있는 아버지, 보통 사람이 가족이란 공동체로 어떤 삶을 사는지 보여준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배고픔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피를 팔고, 자신의 생일에 아이들에게 고기를 아내에게 붕어찜을 해주는 그의 모습은 참 애처롭다. 자신의 아내가 창녀라고 모함당해 인민재판을 당할 때, 그 장소가 집으로 옮겨지자, 아들들은 어머니 허옥란 대신 인간 허옥란에 대한 비판을 한다. 그때 어머니의 과거 부정을 모두 지적하자, 허삼관은 자신이 예전에 임분방이란 여자와 정을 통한 것을 아들들에게 고백하여 아내의 허물을 자신의 허물로 덮어준다. 물론 사리로 따지자면 아내의 부정은 아내가 원한 게 아니라 허소용에게 억지로 강간당한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게 일락이었다.


일락의 정체성을 알게 되면서 화가 난 허삼관은 젊은 시절 허옥란과 임분방 사이에 고민한 것을 기억하고, 임분방과 홧김에 정을 통한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직접 아이들에게 하고, 아내를 자식들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준 모습에서 그의 가족사랑은 처음에 거부와 배타로 시작하나 마지막엔 포용으로 이어진다. 너무 감정적으로 화를 내는 그였지만, 때로는 인간의 감정 아래 연민의 손길을 가족에게 건네준다.


그런다고 하여 <허삼관 매혈기>는 단순히 허삼관란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그 가족과 주변만 적는 게 아니다. 문화대혁명 시기와 모택동의 정치적 행위가 시골에 미치는 모습에서 당시 시대적 모순도 보여준다. 집안에 있는 모든 살림기구와 식량을 정부에서 강제로 징발하여 어느 일정한 장소에서 배급하는 점이나, 대기근시절 정부에서 아무런 조치 없이 주민들에게 알아서 해결하라는 점, 일락과 이락이 정부운영에 따라 일손으로 차출될 때 정부 관료의 부패한 모습은 허삼관의 피를 팔게 만들었다.


허삼관이 피를 판 것은 분명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지만, 때로는 피를 국민들에게 훔쳐내는 부조리한 세계도 한 몫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허삼관의 피는 가족의 존속, 국가의 약탈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생명이었다. 그러나 치아가 빠지고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허삼관의 피는 더 이상 팔아넘기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피를 팔지 못한 것에 대해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눈물을 흘린다. 허삼관의 모습을 본 동네사람들은 그의 아내와 아들들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자, 허삼관에게 찾아간 가족들은 그를 달랜 후 허옥란은 허삼관을 데리고 남편이 피를 판 후에 자주 가던 승리반점에 같이 간다. 그리고 허옥란은 남편이 좋아하는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시켜주자, 허삼관은 이때까지 이렇게 맛있는 돼지간볶음은 처음이라 한다.


이때까지 여기서 먹은 것은 자신이 아닌 가족을 위해 먹었던 돼지간볶음이 이제는 자신을 위해 먹는 돼지간볶음이다. 힘들고 고된 시간을 보내고, 가족을 지키고, 아들들은 모두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잘 살아간다. 그런 허삼관에게 자신의 삶은 행복했는지 아닌지는 직접 말하지 않으나, 적어도 마지막 그가 한 말을 다르게 생각하면 그것이 인생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해주고 있다. 우리 인생도 허삼관처럼 굴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남에게 말해주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우리 역시 근엄한 얼굴로 언젠가 그게 인생이 아니겠냐고 떳떳하게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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