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엘로이즈 1 루소전집 5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중현 옮김 / 책세상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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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연애소설에서 로맨스는 존재하지만, 낭만주의적 요소는 없다. 그 이유는 연애소설에는 자유로운 공상의 세계를 동경하며 정서, 감정, 개성 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단지 자신들만의 사랑만을 중요하게 나둔다. “우리 사랑 이대로 내버려 두세요!”를 말이다. 하지만 낭만주의 소설에서도 “우리 사랑 이대로 내버려 두세요!”에서 우리 사랑은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 사랑이란 이름 앞에 더 막대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들이 존재한다. 연애소설은 자신들의 연애에 대한 자유이지, 그 이상의 자유는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20세기 자본주의 정착 이후 21세기에도 그런 관점은 유효하다. 사랑이란 이름은 우리가 흔히 보는 TV 드라마나 영화, 혹은 그런 소설조차도 화려한 스펙타클로 가득하다. 사랑이란 이름은 인간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미덕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본력에 의해 좌우된다. 특히 드라마 연출이나 또는 가상결혼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이벤트성 고백이다. 그 고백의 성사는 단순히 개인의 마음이 아니라 개인이 마음이 하나의 물질적인 존재로 통해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로맨스라는 이름이 결국 이벤트의 크기, 즉 자본력의 동원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그런 모습들은 이미지가 매개로 되는 스펙타클의 사회처럼, 우리의 일상생활을 녹아 들어가며, 남녀 간의 사랑, 하다못해 사랑 아닌 개인적 의상과 취미 내지 취향조차 거기에 맞추어간다. 우리의 마음이란 과연 어디에 있고, 무엇을 향하여 가는가? 이런 21세기 대중문화에서 18세기 문학 <신 엘로이즈>는 당연히 색다른 모습일 것이다. <신 엘로이즈>를 읽기 전에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다. 괴테의 소설은 낭만주의 소설로서 베르테르가 아름다운 여인 로테를 사랑하지만, 끝내 이룰 수 없기에 권총자살로 막을 내린 비극적 소설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 그 사랑에 절망하는 베르테르, 친구에게 솔직한 마음을 고백하는 그의 슬픈 편지에서 단순히 나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낭만주의소설로서 사랑만을 논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런 것처럼 괴테의 영혼이 되어준 루소의 <신 엘로이즈> 역시 그러하다. <신 엘로이즈>는 루소가 자신을 소재로 적은 소설이고, 자신의 주변 요소를 통해 저술한 소설이다. 주인 생 프뢰는 우수하고 열정적인 청년이고, 생 프뢰가 사랑던 쥘리는 미덕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러나 문제는 스위스인이던 생 프뢰는 자신의 신분은 소시민이고, 쥘리의 신분은 귀족이었다. 쥘리의 아버지는 귀족의 신분으로 높은 직위에 게다가 장교 출신이란 이유로 생 프뢰에 대해 좋지 않게 여겼다. 여기서부터 이 작품은 비극적인 두 남녀의 운명이 시작되는 점이다. 괴테의 소설에선 일방적으로 베르테르가 계속 친구에게 편지를 보낸다면, 루소의 소설은 편지를 등장인물끼리 서로 주고받는 것이 특징이다. 소설에서 보통 등장인물이 같이 그 공간에 나와 서로 말로서 대화하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나, 여기선 자신이 그날 있었던 일이나 자기가 생각한 일에 대해 계속 편지로 주고받는다.


인간은 서로 대화를 나눌 때 입으로 통해 전달하기 보단 글로 전달하는 게 더 정확하고 이성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신 엘로이즈>를 보는 순간 오히려 글은 이성으로 가득하기보단 거대한 강물이 굽이굽이 하류로 흘러가듯이 율동과 열정이 숨어있었다. 그런다고 그 열정이 너무 지나치게 강렬하게 도를 벗어나지 않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괴테의 소설은 말 하나하나가 매우 강렬했으나, 여기서는 자신의 강렬한 마음을 마치 호수에 큰 파장이 일어난 것처럼 울리게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알 수 있는 것은 <신 엘로이즈>에 담긴 내용은 쥘리와 생 프뢰라는 젊은 남녀의 사랑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그 시대의 모순과 루소의 사상이 담겨있었다. 루소의 사상은 프랑스대혁명이 동기뿐만 아니라 프랑스 국민공회의 토대가 되었고, 삼권분립에서 입법, 행정, 사법으로 나우어진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입법권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만약 잘못된 법과 제도가 있다면 고칠 수 있는 것이 입법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루소가 보던 프랑스의 정치사회는 모순으로 가득했었다.


프랑스대혁명과 세계 혁명가의 복음서가 된 <사회계약론>보다 루소의 서적으로 사람에게 더 많이 읽혀진 것은 <신 엘로이즈>와 <에밀>이다. 게다가 <에밀>을 읽다보면 사람들은 루소가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여 여성으로 하여금 남성에게 복종하는 것만으로 알겠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만약 <신 엘로이즈>에 대해 조금 이해한다면 오히려 여성이야말로 남성의 존경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그 존경을 받기 위해 여성은 정숙함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21세기 자유연애를 추구하는 사회지만, 적어도 자유연애가 보장된 지금보다 그때의 <신 엘로이즈>의 쥘리와 생 프뢰의 사랑이 더욱 위대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신 엘로이즈> 1권을 보면서 느낀 점은 루소가 쥘리와 주변 인물하고 대화하면서 느낀 세상에 대한 관찰이다. 그는 시민의 도덕심을 강조했고, 부당한 권력과 세견에 대한 비판을 날린다. 18세기 중반 프랑스 파리의 거만한 로코코(탐미주의)문화의 특성을 부정했으며(한 여자가 다수의 애인을 거느리는 것), 그 원인이 바로 사랑의 결합이 남녀 간의 사랑으로 인한 동의가 아니라, 여자의 동의 없이 억지로 귀족이나 부호에게 가는 것이다. 사랑 없는 결합에 서로 다른 애인을 찾는 것을 부도덕하게 여기고, 특히 쥘리의 아버지가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쥘리의 어머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다른 여자를 만나다, 이제 나이가 들자 다시 집에 온 점을 본다면 과연 그 시대의 도덕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루소는 본래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싫어했고, 사고로 인해 몇 번 죽을 뻔했으며, 자연에 은둔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당시 파리 살롱문화를 비판했는지도 모른다. 그대로 <신 엘로이즈>를 읽으면 생 프뢰의 기행에서 발레지방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그곳의 주인들은 손님에게 아무런 것을 바라지도 요구하지 않으며, 집안의 하인들과 식사할 때 같은 탁자 앞에 의자를 앉게 해주는 것이다. 신분의 차이로 인간이 인간으로서 받아야할 그 마음가짐을 루소는 잊지 않은 것이다. 루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미덕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신 엘로이즈>가 단순히 쥘리와 생 프뢰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를 메인으로 다룬다고 해도, 그 이야기의 흐름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인간의 미덕은 늘 따라다닌다. 남녀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에 대한 <신 엘로이즈>는 인간의 자연성을 늘 추구하는 것이 보인다. 쥘리에 대한 생 프뢰의 존경은 쥘리가 갖고 있는 미덕이고, 그 미덕은 꾸미지 않은 쥘리의 마음이다. 쥘리의 초상화가 생 프뢰에게 올 때 그는 그 초상화가 마음에 들지 않은 이유는 화가가 쥘리의 있는 그 모습을 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얼굴 아랫부분을 정확히 달걀 모양으로 그렸습니다, 두 뺨과 턱을 분리시킴으로써 윤곽은 좀 흐트러뜨리지만, 더 귀엽게 보이게 하는 그 가벼운 굴곡을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 나는 아주 불만이 큽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아름다움이 아니라 오롯이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도 아니더라도 참 인상적인 말이 많았다. 21세기 화려한 사랑의 미디어가 18세기 소설에서 나온 사랑보단 못한 이유는 “언제나 겸손한 진실한 사랑을 사랑의 표시를 대담하게 내보이지 않아요. 수줍게 숨기지요. 숨기기, 침묵, 거 많은 수줍음은 사랑의 달콤한 열광을 강화하고 감춰요.”라는 내용이 있었다.


미디어로 전달되는 스펙타클은 언제나 대담하게 언제나 웅장하게 언제나 화려하게 꾸미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이 로맨틱하게 보려고 한다. 물론 지금의 시대에 18세기 소설을 토대로 판단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나, 사랑이 인스턴트로 변해버린 지금의 시대에 보면 과연 어느 쪽이 더 시대착오적인가 하고 생각할 점이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분명 남녀만이 아니라 인간의 사랑을 담고 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 혹은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 것처럼, 우리는 오늘날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고 있을까?


“인간을 만드는 것이 이성이라면, 인간을 인도하는 것은 감정이니까요.” 이 말에 너무 공감한다. 우리는 감정을 너무 쉽게 드러나지만, 감정 그 자체를 가지지 않고 있다. 이성은 오직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 봉사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이성과 혹은 이성으로 얻어진 지식과 권력을 올바르게 사용하기보단 자신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 물론 그런 일들이 용인되어버린 비극적인 세상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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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5-02-16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이 책...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보고 만지작 거리다가 그냥 놓고 왔는데...이 리뷰를 보니 후회가 밀려오네요...ㅜㅜ

만화애니비평 2015-02-16 18:08   좋아요 0 | URL
이 소설이 가치가 있는 이유는 바로 루소가 저술했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