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어느 고위공직자 후보자가 과거에 행적에 대해 문제 삼으며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그 일이란 바로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이다. 박종철이란 이름은 한국의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상처어린 이름이다. 그는 19871월 젊은 나이에 남영동 고문실 안에서 잔인한 고문과 야만적인 시대의 권력 앞에 사라져 갔다. 그의 죽음이 결국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6월 항쟁에서 이한열 학생은 최루탄에 맞아 쓰러져 죽었다.

 

올해는 6월 항쟁이 발생한지 28주년이 되는 해이다. 시기적으로 본다면 거의 30년이 되었고, 30년이면 거의 한 세대가 교체한 시간과 같다. 그 시간이 지나면서 특별히 뭔가 바뀐 것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단지 고문으로 죽는 사람은 없지만, 여전히 고문을 받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은 아직도 그때의 상처로 인해 고통 받는 점이고, 그들을 고문하거나 고문하도록 사주하거나 또는 그렇게 만들어버린 사람들은 여전히 근엄한 얼굴로 살아가고 있다.

 

아마 후보자 역시 그동안 30년 가까이 그 시대의 흔적들을 남긴 역사의 산물일 것이다. 과거란 결코 자신이 버릴 수 없는 것들이다. 사실 부정해야할 사실이란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일이나 혹은 부조리한 일들을 외면하거나 또는 사주한 게 아니라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게 당연하다는 사고방식이다. 한국의 비극적인 역사가 다시 30년 지난 이 지금도 멈추지 않는다. 현재란 결국 과거 시간의 축척으로 인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규석 작가의 <100>란 작품은 지금 다시 봐도 매우 섬뜩한 작품이다. 20096월에 발표된 이 작품은 6년이 지난 2015년 현재에도 여전히 강한 인상을 준다. 어머니 말씀대로 공부만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가서 좋은 직장만을 가는 게 목표이던 시절, 부모들의 고생만 하고 내 자식만 잘 되면 된다는 식의 가치, 아마 지금의 부모들은 1980년대의 부모보다 내 자식에 대한 욕심은 더 강할 것이다.

 

주인공 역시 그런 부모 밑에 자라 서울로 오고 선배들하고 만나면서 기존에 알던 자신의 가치관과 전혀 다름을 느낀다. 주변 선배들은 선술집에서 소주를 기울이며 울분을 토하고, 거리에 나가 시위를 하며, 때로는 사람들을 피해 숨어 지낸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열이 올라 99에 멈추다 어느 순간 100로 된다. 그리고 그것은 6월 항쟁의 시작이었다. 물의 비열에 맞춘 <100>처럼 어떤 물질이 양적 에너지를 계속 주입하면 질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이런 현상을 사회적인 관점에서 변증법으로 작용하여 수학적 수치는 아니지만, 인간에게 가해지는 불만과 분노가 바로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도화선이 불이 붙기 전까지 너무 많은 희생이 따랐고, 수많은 청춘들이 밤하늘의 별이 되어야만 했다. 이 작품은 이론적인 영역보단 차라리 직접 보고 느끼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성적 사고로서 세상을 이해하는 게 바람직하나, 그 시작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다. <100>란 작품은 한국만화에서 덜도 아닌 더도 아닌 그 시대 그 자체를 그린 사실주의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사실주의는 일상생활 또는 실제 일어난 일에 대해 우리가 인지할 수 없기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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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2-10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규석 작가 전작품들이 다 훌륭하더군요. 더많이 주목받지 못하는 게 아쉽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02-10 10:05   좋아요 0 | URL
예전에 경남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2014년 행사에서 바로 제 옆 자리에 앉아 계시던데, 한국만화계에서 국내 대표만화작가라고 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대중들에게 알려져야 할 것이죠. 이 분은 만화의 에너지가 억압에 대한 반항과 저항이라 합니다. 본 작품은 바로 그런 느낌이 강하게 실린 작품이죠

AgalmA 2015-02-10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가장 대중에 밀접한 걸 말하는 작가가 대중 호응도가 떨어지는 게 매우 아이러니합니다. 좋은 소개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