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이란 책을 보았다. 지금 나는 한가하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하는 막중한 압력감에 오히려 지루함으로 가득하다. 지루함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는 인간의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 일과 시간조차, 그리고 잠자는 시간조차 그 하루일과를 위해 우리는 맞추어야 한다. 물론 인간은 동물적인 요소로서 낮에 활동하고, 밤에 수면을 취하는 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좋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잠을 자는 시간이든 아니든 집에 가면 언제나  TV 앞에 멍하니 보고 있을 경우가 많다.

 

TV를 보는 이유는 단지 그 TV에서 어느 방송프로그램이 방영되고, 그것을 우리는 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여가생활조차 하나의 정당화된 획일화된 양식, 취미나 취향 따위는 가장 진부한 이야기 거리 중에 하나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부류들의 고상한 척이 가장 싫다.

 

우리는 상대방의 직업과 연봉을 묻는 것은 속물적인 유형으로 분별된다. 그저 뭐하는지 것으로 직업적 현재만 아는 것으로 단순히 이 사람의 사회적 위치만 알 뿐이다. 그렇다면 남은 소재는 문화적인 자본, 즉 취향과 취미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데, 영화를 좋아하는데 거기서 마치 고상한 것처럼 무슨 수준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가장 싫어하는 인간들은 최신에 나온 영화와 대중가요를 찾아다니면서 부지런히 자기 생활을 투자하는 부류다. 요새는 뭐가 좋고 전에는 이래서 그렇고, 평론가적인 지식과 교양은 눈꼽만큼 없으면서 마치 있는 것처럼 말하는 부류, 이 글을 보는 당신은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뭐 그리 아냐고 하겠지만, 이 글을 보는 당신들이라고 피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취향과 취미로 수준높기보단 비판적인 독설로서 공격적인 글을 적는 나라고 하여 비판의 대상에서 피하기란 어려운 것은 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보고 듣는 것은 다르지만, 결국 그 안에서 돌고 도는 지루함이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예를 들어보자. 영화 좋아하는 것에 대해 나쁘지도 않고, 그것에 취미를 두는 것은 나름 자기 생활의 에너지다. 문제는 그것을 보고 대단하거나 놀라운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작품이 그래 대단하고 잘나서 보는 것에 대해 왈가불가할 게 못 된다. 단지 그것을 보고 자신이 마치 문화인양 착각하는 것이 짜증날 뿐이다. 최근 한국에서 <명량>이 흥행했을 때 나는 보지 않았다. 안 봐도 비디오, 국가위기와 국민통합이란 전형적인 이데올로그만 담론되어 있는 작품은 예술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그저 미디어로서 경제적, 정치적 이익만 뭉친 잡동사니다.

 

최근 <인터스텔라>가 흥행하면서 어느 신문기사에서 놀란 감독이 놀란 하는 글귀를 보았다. 이 작품에 대해 옆에 계신 분들에게 들어서 나름 흥미롭고 과학적인 요소를 많이 반영하여 SF영화로서 완성도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단지 걱정인 것은 영화의 흥행이 그 나라의 문화수준인 것처럼 혼자서들 자위하는 인간들이 넘칠 게 분명할 것이란 나의 부정적인 사고방식이다. 

 

수준 높은 영화를 즐겨 찾아라는 슬로건에 왜 수준이 높은지에 대해 제대로 밝힐 인간은 없다. 단지 보았고, 계속 다른 신작들만 찾아 떠나는 부류는 결코 수준이 높은 게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거기에 보낼 뿐이고, 남들이 보니깐 볼 것 같으니깐 거기서 떨어지기 싫어서 계속 핑계 아닌 핑계를 대고 있다.

 

다르게 생각하면 영화흥행은 그래 높으면서 왜 우리 영화는 외국에서 흥행이 되지 않은걸까? 국내에서 성공하지 않은 작품들이 프랑스나 유럽에서 상을 받고 다닌다. 이게 바로 대중문화 현실 속에서 보이는 문화의 수준인 것이다. 유향의 시대에 소비만을 추구하는 부류는 대다수고, 대다수의 가치는 하나의 도덕이 된다. 니체가 그런 인간들에 대해 일침을 가한 이유는 다수의 인간들의 가진 판단된 옳든 그릇되어 버리든 그들 자체에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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