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도서모임서 만난 친한 사람들이랑 만나 저녁시간을 보냈다. 내가 마신것은 크루져 블루 보드카 아니 맥주인가? 알콜도수가 5도이고 330미리리터에 내가 한병반 넘게 마신다고 취할 리가 없는 양이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내 몸에 취기가 오른다. 날이 약간 습하고 찬바람이 부는 초여름, 오오츠크해의 냉한 여름기운은 세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은 내 뱃속에 알콜로 적신다.

이유 없이 오늘 Gary moore의 블루스기타가 귀를 뚫고 내 뇌를 강타한다. blues를 들으며 온갖 잡생각이 난다. 지난 시간 그 속에서 멍청하고 어리석고 비참한 나를 말이다. 물론 태초의 블루스 사운드에 내 기분따위는 하늘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게리 무어의 기타소리는 왜 그리도 내 속을 긁어대는지! Blues guitar는 단순히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안에는 인생이 녹이있다. 씁쓸햐고 싱거우며 때론 깊은 짠맛을 낸다.

아니 블루스음악엔 세상의 모든 물맛이 있다. 내가 맛보지 않은 에비앙, 독일과 스위스의 석회질이 가득한 물, 북극의 차가운 얼음, 인간이 살 수 없는 깊은 해저의 소금물까지! 블루스는 단지 그 자연에 존재하는 물 그 자체다. 한순간의 위선이나 거짓은 블루스의 맛을 우려내지 못한다.

곡우에 그 이른 새벽녁에 일어나 어리고 어린 차나무의 잎의 향긋하고 떫은 맛이 블루스에서 난다. 잎이 아닌 귀로 음미하나, 그 맛은 차의 맛처럼 달고 쓰고 짜며 때로는 쓰고 상큼하다. 미스터 기타 크레이지 게리 무어를 추모하며, 이 글을 게리 무에게 바친다.

 

위 글은 집에 오면서 내가 모바일폰으로 작성한 글이다. 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적고 싶은 글은 서울 교육감에 대한 내용이다. 고승덕 변호사! 내 친구 중에 승덕이란 친구가 있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동창에 중학교 동창에 고등학교에서 잠시 멈추다가 대학 졸업 이후 다시 재회한 내 친한 친구 중에 하나와 같은 이름이다.

 

고승덕 변호사 그의 이미지와 얼굴은 좋은 인상으로 남았지만, 지금 그 분의 따님에 대한 과거에 의해 아마 본인과 그 가족들에게 기나긴 상처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글을 남기는 것은 그분의 아내의 형제이신 분이 트위터에 올린 글에 대한 비판이다.

 

왜냐하면 교육감은 나만의 아이, 내 주변의 아이들을 사랑해서만 가능한 위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오덕들이 오타쿠라는 단어가 생기게 해준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에서 시작한 마크로스 시리즈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은 나와 내 주변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퍼져야 하기 때문이다. 고승덕 변호사는 분명히 자신의 현재 아이와 자신의 주변 가족과 친구들의 아이들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다.

 

지만 교육감은 자신의 아이들만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사랑해야 한다.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그저 기본에 불과하고, 그것을 만족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교육감이란 위치는 포인트 자체가 벗어난 것과 같다. 과연 나만의 주변이 아니라 그 이상의 아이들을 사랑했는가? 단지 그 질문은 고승덕 변호사보다 그분의 처제가 되는 분에게 묻고 싶은 것이다.

 

분명 처제분의 트위트 글을 보아서는 고승덕 변호사는 자신의 소유 아래서의 아이들과 주변 아이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인간의 가치는 범인류애적이어야 한다. 우리나라 선거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처럼 일반의지가 아니라 전체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반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일반의지로서 보여준 것이 투표가 과연 몇 %일까 궁금하나, 진정한 일반의지라면 생각해야 한다.

 

교육감이라면 우리나라 교육법을 존중해야하고, 우리나라 교육법에서는 홍익인간 정신을 키워 인류애적인 가치관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세계인류의 연합인 UN의 가치는 커녕 자국의 인류애조차 짓밟는 한국에서 과연 교육의 가치란 무엇일까? 존 롤즈의 <정의론>에서 교육의 가치는 중요하다. 교육에게 모두에게 열려야 보편적인 기회의 균등이 주어진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 역대 인물 중에서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변호사가 되거나 혹은 군인이 되어 그 길을 얻은 자도 있다.

 

하지만 지금에서 가난한 농부나 노동자의 아이들이 그런 길로 가는 항로는 과연 존재할까? 성공한 자만이 성공을 해줄 수 있는 주장은 나름 납득이 있으나, 그러면 거기에 해당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하나? 안타깝게도 이런 기회나 방법조차 이미 박탈된 자도 많다. 개인의 노력과 능력이란 중요하다. 그것에 의해 성공한 자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의 방법과 결과는 너무 단순하고 개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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