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가 17세가 되었다 1 - Novel Engine
히로사키 류 글, 파세리 그림 / 데이즈엔터(주)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물론 문학이라고 해도 근본적으로 현실이 아닌 또 다른 현실이란 공간을 문자서사로서 만든 세계이다. 그런 세계가 나오는 것이 현실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아도 문학에서도 현실적 조건을 기반으로 만들게 된다. 단지 신화라는 것은 문학에서도 인간이 보이지 않은 욕망을 토대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런 적나라한 인간의 욕망을 현대적 신화로서 재미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라이트노벨이 아닐까 싶다. 라이트노벨에는 보통 현실적 리얼리티가 존재하기보단 환상이란 새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그래도 계속 내가 강조하는 것은 제 아무리 환상세계고 몽상으로 가득한 망상공간이라도 그것은 현실에 기반 하여 만들어진다.

 

현실에 존재하는 사실을 토대로 작가가 새롭게 보거나 또는 존재하지 않은 것은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욕구불만 내지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다. 인간이란 물리적으로 현실에 속해 있으며, 제 아무리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고 하여 그것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도저히 가늠하기 힘든 상태라도 그런 상상조차도 현실의 육체가 존재하기에 가능하다. 제 아무리 컴퓨터의 능력이 뛰어나 인간을 초월한 연산능력을 갖추어도 인간과 같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창조력은 없다. 단지 환상에 지나치게 열중한다는 것은 현실과 자신의 존재성이 격리된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인식할 수 자신의 존재성이 격리된 것이라 볼 수 다.

 

자신이 속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결국 자신만의 환상의 세계에 젖어 거기에 매진하는 것이고, 그런 세계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자신이 현실에서 만족할 수 없는 것이고,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을 위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여기서 남은 것은 선택은 제한적이다. 억지로 사회에 적응하든지 혹은 사회와 단절하든지 아니라면 어중간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아니라면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현실과 환상 모두 받아들이는 방법도 있다. 어중간한 선택과 비슷하기도 하나 그것은 아니다. 어중한 것은 자신에 대한 명확한 위치를 잡지 못한 채 이래저래 흘러나가는 것과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라이트노벨을 읽다보면 작가의 글은 결국 작가가 보고 듣고 느끼는 세상이고, 그런 글이야 말로 작가가 위와 같이 작가 자신이 세상과 대하는 모습이라 생각한다. 어느 쪽이든 딱 좋다 내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사고방식이 다양한 이야기와 기발한 소재가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단지 작가가 스토리텔링으로 라이트노벨을 보여준다면, 이와 대조적으로 작가의 라이트노벨 속에 담긴 스토리텔링을 즐기는 독자가 있어야 한다. 작가가 글을 쓰고, 독자가 글을 읽는다면 서로 직접 마주보며 대화하는 것은 아니나, 그것으로 통해 서로 대화가 가능한 것이다.

 

만약 독자가 어느 작가의 글을 보고 나서 그것에 대해 공감을 한다면 작가와 독자는 서로 교감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우리 엄마가 17세가 되었다>에서 미묘한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라이트노벨이란 것은 재미와 오락요소를 위해 만들어진 경소설이다. 경소설이라고 해도 문학적인 요소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나, 일반적으로 문학소설에서 읽을 수 있는 심도 있는 세계관을 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다고 하여 라이트노벨이 우리 독자에게 뭔가 작은 의미를 넘어 큰 감동을 주지 말란 법은 없다.

 

<우리 엄마가 17세가 되었다>를 읽는 순간 재미와 더불어 나는 순간적으로 마음이 조금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40대 주부가 혼자서 아들과 딸을 키우는데, 남편은 14년 전에 병으로 죽고 아들은 부족한 살림을 돕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남편 없는 주부란 참으로 가혹하다. 아무리 설정이 17교에 입교하면 17세의 외모와 신체적 조건을 가진다고 해도 그 대가란 자신의 수명이다. 자신의 생명을 줄여서라도 이루고 싶은 소원,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작가의 눈이 되는 주인공 타카시는 매우 상식적인 인물이다. 평범한 고등학생이나 어머니를 돕기 위해 집안일도 돕고 게다가 아르바이트로 돈을 받아 가계에 도움을 준다.

 

때로는 상식을 떠나 그가 매우 어른다운 사고를 지닌 것도 알 수 있다. 자신의 할머니가 준 1만 엔의 가치를 그는 제대로 알고 있었다. 1만 엔은 13시간이란 노동으로 통해 얻어지는 대가라는 것을 말이다. 왠지 노동에 대한 가치를 고등학생의 입으로 나올 것이라 내가 생각이나 했을까? 그야말로 고등학생이면서 청춘을 누리지 못하고, 힘들게 저녁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에게 본 작품의 히로인인 어머니 카즈미의 자식사랑은 왠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 오래 전 27년 전에 인기 아이돌이던 카즈미, 그녀는 어느 계기로 인해 아이돌을 그만 두고 타카시의 아버지와 결혼했다.

 

타카시의 아버지는 평범한 청년이었고, 단지 어머니를 아낀 분이었으나 카즈미는 타카시에게 아버지에 대해 별로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아버지 없는 어머니, 그것은 외로움과 괴로움의 연속이다. 카즈미가 왜 17세로 되어 아이돌이 되었을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가정주부와 아이돌뿐이었다. 아들인 타카시가 집안일을 거들어주어도 타카시와 유카는 계속 성장하고 있고, 거기에 따라 가계지출은 늘어간다. 그런데 40대 중반에 이른 카즈미에게 더 이상 일자리는 나오지 않았다. 17세가 된 이유는 2달 전에 일자리에서 나간 것이 계기라고 볼 수 있다.

 

타카시의 어머니가 40대 주부에서 17세 소녀로, 그것도 몸매가 아주 좋은 아이돌로 갔다는 것은 환상적 세계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환상이란 공간을 단지 환상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환상이란 구조가 존재하는 이유는 환상이 아닌 현실적 벽에 의해서였다. 아이돌이 되면서 자식이 아닌 타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카즈미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팬이 아니다. 자신의 팬에게 3번째로 사랑한다고 선포하는 이유는 바로 타카시와 유카에 대한 사랑이었다. 타카시와 유카가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이기에, 그 가족이 있는 가정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도전이었다.

 

27년 전에는 자신이 힘들어서 아이돌에서 나왔다면, 이제는 자신이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가족이 있기에 아이돌로 있을 수 있었다. 처음 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은 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40대 주부에서 17세 미소녀로 변한다면 과연 남자주인공인 아들은 성적인 충동이나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까? 물론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타카시는 집에서 나오지 않고 혼자 방안에 박혀 있는 유카의 속옷과 맨살을 보면 얼굴을 붉혀지면 고개를 돌리는 부분이 나온다. 정말 여동생이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면 봐도 별 감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동생이 여성이란 점을 인식하기에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이다.

 

타카시를 보면서 카즈미는 만일 여동생에게 욕정을 품는다면 대신 자신에게 그 욕정을 풀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래서 17세가 된 어머니로 인해 타카시는 미묘한 상황에 놓인다. 근친상간에 대한 욕정은 없어도 그런 상황에 내몰린 그에게 학급 동급생인 메이코는 새로운 해방구이면서도 걸림목이다. 이 작품에서는 감추고 있는 인간의 욕망을 작가 스스로 감추고 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발설하는 것이 특징이다. 메이코는 유카가 느끼는 감정을 자신이 알고 있다고 한다. 메이코의 아버지는 유명한 대기업을 운영하는 부자나, 메이코의 어머니는 병으로 별세한다. 그런 와중에 아버지 옆에 17교의 입교로 새로운 여자가 자신의 새어머니로 들어와 메이코와 아버지의 부녀관계를 모두 망쳐놓았다.

 

그런 과거를 가진 메이코가 타카시와 유카 관계에 들어와 마치 메이코가 증오한 새어머니와 같은 위치를 자신이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스신화에 인용한 엘렉트라콤플렉스로 딸이 아버지를 무의식적으로 사랑(육체적인 관계도 포함)하고 싶은 심리로서 그 자리를 새어머니로 인해 자신의 존재가 아버지로부터 거세(멀어지게) 된 것이다. 유카에게 아버지는 14년 전에 별세했으니 유카는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여 자신의 오빠인 타카시가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 셈이다. 아빠와 오빠라는 단어에서 우리 인간은 어느 점을 바라보는 것인가?

 

물론 다 그렇지는 않으나, 여자들 중에서 어린 시절 자신은 아버지에게 시집가고 싶다는 사람도 있고, 혹은 아버지(대신 그 아버지는 그 딸에게 매우 좋은 분이야 하나)와 닮은 사람에게 결혼가거나 또는 이끌리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남자라면 자신의 어머니와 닮은 여자에게 끌리는 경우가 있다. 특별한 정신적 외상이 없다면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17세의 어머니가 등장한 점에서 유카는 어머니가 외적 조건으로 어머니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 조건이 17세이기에 오빠랑 동갑이기에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환상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어머니, 그리고 그 환상에서 현실의 도덕에서 오빠가 그 선을 넘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말이다. 다행히 카즈미는 일에 바쁘고, 대신 메이코가 그 자리를 차고 왔으니 유카로서는 불만이 아닐 수가 없다. 유카는 작품 내에서 어머니에게 질투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카즈미가 타카시와 둘이서 찍은 셀카가 유카의 메일로 오자 유카는 잘 씻지 않은 자신의 몸을 정리하면서 타카시와 셀카를 찍는다. 그래서 만약 메이코가 들어오지 않고, 카즈미를 이어 타카시의 할머니인 우메노가 17교로 입교하지 않았다면 타카시의 일상은 수라장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예전에 라이트노벨 원작으로 만든 <MM>이란 애니메이션을 보더라도 남자주인공 사도 타로는 자신의 어머니와 누나가 자신을 일반적인 가족이 아니라 하나의 남자로 보고 계속 성적 구애를 하자, 여기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성적으로 큰 문제점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17세가 되었다>에서는 이에 대해 다른 식으로 전개한다. 어머니인 카즈미는 아이돌이 된다는 것은 곧 사회적 존재가 되기를 바란 것이다. 사회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인간이 가져야 할 도덕을 벗어나는 게 아니라 그 도덕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다.

 

<우리 엄마가 17세가 되었다>은 그런 점에서 환상이란 설정 뒤에 매우 현실적인 요소가 녹아있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17세로 된 것도 그러나 메이코가 17세의 여사장이란 설정도 환상적인 설정 중에 하나다. 그래도 제대로 잘 설정한 것은 몸이 비록 17세가 된다고 해도 그 사람의 인격조차도 17세가 된 것은 아니다. 카즈미는 17세의 아이돌로서 활동하나 모성애가 매우 강한 사람이고, 우메노는 17세의 소녀가 되어도 옛날 말투와 옛날 복장을 하고 다닌다. 자신이 살아온 시간적 요소를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배제할 수 없는 점이다. 그리고 할머니 우메노에 대해 생각하면 이 라이트노벨은 전형적으로 일본의 유미주의 요소가 잘 보인다고 생각했다.

 

유미주의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라질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늙어서 병든 노인이다. 며느리인 카즈미는 혼자서 두 자식을 키우고, 타카시는 고등학교 청춘 대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아마 타카시의 아버지가 죽자 자신의 남편이 살아생전 타카시와 유카를 많이 옆에서 보살펴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자신이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옆에서 짐이 된다는 생각에 우메노 자신이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했고, 카즈미에게 카즈미의 남편 대신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대사는 “몰골스레 죽기는 싫었단다.”였다.

 

노인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약한 사람들이다. 게다가 자신 스스로 의지할 수 없고 주변 사람의 도움을 계속 받아야 한다. 병으로 인해 노환이 겹치면 가족들에게 큰 짐이 될 것이고, 가족에게 힘이 되지 못한 것도 모자라 힘들게 한다면 어떨까? 몰골스레 죽는다는 것은 단순히 늙어서 병이 들어 죽는 것보다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가족에게 슬픔을 주는 것이 싫어서 아닐까 싶다. 게다가 우메노는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17교에 입교했으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입장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만큼 가족들과 건강한 모습으로 미소 짓고 싶은 것이 그녀의 소원이다.

 

작가가 결혼했는지 아니면 했더라도 가정을 꾸린 가장인지는 전혀 모른다. 적어도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다면 사람은 변한다는 것은 분명 사실인 것 같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이 존재하듯이 어떻게든 타키시와 유카를 지키기 위해 17세의 아이돌이 된 카즈미는 분명 환상적인 존재이나 그 존재성에 대한 현실적인 요소는 큰 공감이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현대에 들어와 가족이란 이른바 해체되어 가정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그 옛날 대가족을 이룬 시대와 달리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 간의 사랑은 중요하다. 일본의 대부분 만화,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을 보면 가족이 단절된 경우(혹은 다른 가족들이 등장하지 않거나)가 허다하나 <우리 엄마가 17세가 되었다>는 그런 상황에서 매우 독특한 설정을 지닌 작품이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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