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스틸 어쌔신 - Seed Novel
김월희 지음, AnZ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기존의 김월희 작가의 라이트노벨을 읽는다면 세계관 자체가 역시 디스토피아적인 요소가 강하다. <세계제일의 여동생님>과 <중2병 데이즈>도 그렇다. 세상은 과연 한 개인에게 친절한 곳인가? 그것은 아니다.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세상은 개인에게 가혹하고 잔인하고 심지어는 환상의 세계에 있는 곳과 같다. 라이트노벨이란 장르가 환상적인 요소에 재미와 오락요소를 집어넣은 하나의 콘텐츠다. 콘텐츠라는 미디어로서 하나의 자본력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하는 상품이다.

 

그런 상품적인 가치가 라이트노벨과 부합되므로 라이트노벨은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등으로 재편집 되어 상품으로 나오기도 한다. 한국의 기존 라이트노벨을 아직까지 많이 읽은 편은 아니나, 마치 이것을 영화 내지 애니메이션에 접목하면 어떤 것일까 생각하면, 영상연출 기법에서 몽타주(대립되는 것을 상반되어 보여주거나, 또는 같은 장면을 계속 보여주는 방법 등)와 같은 표현방법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 흔하지 않을 것 같다. 한국 라이트노벨은 액션적인 요소보다 일상적인 요소가 강하고, 설사 액션이 강한 요소라도 역동감이 넘치는 글은 많지 않다.

 

이번에 김월희 작가의 신작인 <블랙스틸 어쌔신>은 그런 점을 조금 뛰어넘을 느낌이 든다. 작가 후기에도 그러나, 여러 가지 영화나 게임의 장면을 하나의 모티프로 삼아 작품 내의 상황이나 묘사를 잘 적용했다. 내 개인적으로 작품을 보니 마치 홍콩영화 중에서 느와르 장르를 소설로 보는 기분이었다. 물론 스포츠카로 고속도로 위를 전력 질주하여 총을 발사하는 스타일은 미국 할리우드 스타일이나, 여자 주인공인 유나의 전투를 보면 오히려 홍콩영화에 더 가깝게 느낀다.

 

좁은 건물에 더러운 계단에서 보는 세상에서 미국식보단 차라리 홍콩식이 가깝게 느껴진 것이다. <블랙스틸 어쌔신>의 제목처럼 흑철의 살인자, 살인자를 의미하는 어쌔신은 미국 할리우드보단 오히려 홍콩이나 일본하고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어둠에서 살아가는 자객, 그 자객은 혼자이고, 세상과 싸우는 고독한 자다. 그들에게 조력자는 없고, 강력한 적들과 싸워 나가야 한다. 김월희 작가 작품에서 <중2병 데이즈>가 있는데, <중2병 데이즈>에서는 주인공 연오는 다른 학생들의 눈에는 중2병 학생으로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그 작품은 자신이 중2병 환자로 낙인이 찍힌 것을 주인공 자체가 인식하고 있으며, 그 인식 자체가 라이트노벨 자체가 중2병에 대한 내용인 만큼 세계관은 오히려 중2병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그 설정 자체는 작품 내의 화자인 주인공이 1인칭 시점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블랙스틸 어쌔신>은 중2병적인 요소를 매우 강하게 반영했다. 정의가 불의의 악이란 대결하여 결국 패배하여 모든 세상은 악으로 물들였다.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세상에 정의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에서 정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의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정의라는 것 자체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그 정의가 하나의 가치관으로 옳고 그릇된 것을 판단하여 그 정의 자체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윤리적 가치에 의해 정립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정의라는 이름에는 철학적 가치가 뒤따르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나, 사실 현실에서 보는 정의라는 이름은 단지 자신들의 입맛과 상황에 적당하게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허황된 명분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 즉 희망이 없고, 암울하고 절망적인 세계에서 말하는 정의는 무엇인가?

 

라이트노벨에서 그런 설정은 충분히 등장할 수 있다. 암울한 현실에 영웅이 나타나 역경과 시련을 겪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거기서 마주치는 불의와 현실의 타협에 상처받고 때로는 좌절도 하나, 끝까지 밀고 간다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신화부터 시작하여 최근에 개봉되는 영화 <헤라클레스>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만약 악에 대해 악으로 처단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블랙스틸 어쌔신>에서 주인공인 유나와 레이는 악에 대해 빛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악으로 싸우는 모습이 나온다.

 

작품에서 암살 5대왕에서 가장 높은 자가 레이가 가진 칼을 생각하면서 그 칼에 대한 은근한 암시가 나온다. 왜 악은 악을 공격하는 것일까? <블랙스틸 어쌔신>에서 나오지만, 암살자 집단들이 암살행위를 하고 세상에 공포를 안겨주는 일을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다. 그런데 그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영역이 어느 순간 가득하면 어떻게 될까? 더 이상 고착될 수밖에 없는 포화상태에 이른다. 유나는 처음에 악과 선의 이분법적인 대결에서 악이 이겼다고 한다. 하지만 악이 이겼다고 세상이 끝난 것이 아니다. 단지 악이 선이라는 가면을 쓰고 세상에 군림할 뿐이다.

 

그 군림하는 자들에게 밸런스라는 것이 존재한다. 왜 흑철이란 저주받은 검이 레이에게 잘못 배달되었지만, 처음부터 누가 유나에게 그 흑철을 배달해주었으며 그것은 어떤 이유로 하였는가? 유나는 세상에 자신을 도울 아군은 없고, 오직 혼자만 싸움을 하고 있었으며, 그런 와중에 저주받은 검이 도착했다. 그 검은 세상의 모든 악과 적의를 품은 것이다. 악이 악으로 섬멸하는 것은 결국 그 악 자체 내부에서도 보이지 않은 대립이 있다는 것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서 흑철의 존재는 악에서도 하나의 시스템을 유지해주는 것과 같은 자동장치라고 생각한다.

 

파과점이라고 하는 일정 수위를 지나면 벗어나야 하는 것처럼 암살자 집단이 계속 활동을 하다보면 서로 충돌하는 부분이 있어야 하고, 자신들의 공통된 적이 존재하지 않으면 서로 자기 살을 깎아 먹게 되는 행위를 하는 셈이다. 이런 유명한 속담이 존재한다.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는 공통된 적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레이와 유나는 단순히 거대한 암살집단과 싸우겠지만, 암살집단 내부에서 가장 강한 자들만 골라 보내 싸운다면 간단하게 처리될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정의라는 것은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누어져 있겠지만, 적어도 악이라고 불릴 자들도 그 나름에는 자신만의 정의와 가치가 있다. 악이란 존재가 추구하는 정의는 바로 자신들만의 이익이다. 그러나 막상 우리 현실에서 우리 인간이 항상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베푸는 이타적인 존재였는가? 나의 이익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 나의 이익이 박탈당할 수 있는 공간에서는 모두 냉정한 인간이다. 하지만 그런 인간들이 모인 집단세계에서는 그런 마음이 하나의 정의다.

 

<블랙스틸 어쌔신> 첫 장을 열다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세상의 마지막 빛이라는 교만(驕慢)에 사로잡혀 싸우다가 어느새 깨닫는 거야. 나 역시 어둠과 다를 바 없었다는 사실을..” 이런 세계관에서 악이 이긴 세상이지만, 세상은 잘 돌아가고, 누군가 죽지만 아무도 그 이유는 모른다. 그런 세계가 이상하겠지만,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다소 중2병 세계관이나 어떻게 보면 우리 현실도 이런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르고 스쳐가기에 중2병적인 세계관이 작품에서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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