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성의 가르간티아>의 사전적 의미와 환경과학적 고찰

<취성의 가르간티아>에서 가르간티아의 의미를 찾아보니 스페인어로 gargantilla로 나타내며, 사전적 해석은 목 주변에 두르는 여성의 장식품, 목걸이, 염주 등이다. 즉 여자가 목에 두를 수 있는 장식품을 의미한다. 그리고 취성(翠星)이란 푸른 별이라는 의미다. 취라는 한자어는 푸른색과 물총새(조류) 등을 의미한다. 결국 <취성의 가르간티아>이란 의미는 푸른 별의 여성의 목에 장식하는 목걸이를 의미한다. 그럴 이유를 생각하면 취성은 푸른 별인데, 지구가 멀리 우주에서 바라보면 푸른색의 공처럼 보인다.

 

물론 중간에 녹색과 황새 그리고 흰색이 보인다. 녹색은 숲이고, 황색은 모래의 사막, 흰색은 구름과 얼음이다. 대규모로 조성된 도시지역에서 불빛이 가득해 보이나, 기본적으로 지구는 푸른 별이라고 한다. 그것은 태양에서 빛을 지구로 보내면 다른 색들은 전부 흡수할지어도 파란색의 파장은 반사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태양의 프리즘에서 푸른색을 반사하는 지구는 푸른 별로 보이는 것이다. 푸른색은 결국 지구의 생명이 넘쳐나는 생태계적인 별이라는 점이다. 물과 생명이 어울려진 생명의 푸른 별 지구, 그것만으로 지구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자연주의자 내지 환경론자들의 입장에서 지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고, 인간의 존재는 자연 앞에서는 그저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물론 그런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는 식량과 물 부족, 에너지자원부족, 환경오염 등과 같은 자연적 재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고, 각종 질병에 시달리지 않았어도 될 것이다. 자연재해라는 것은 결국 자연의 운동에 의해 발생되는 태풍이나 해일이 존재하나, 그것은 하나의 자연적 법칙에 의한 운동으로 볼 수 있다면, 이제는 인간의 지나친 개발에 의해 자연의 법칙과 운동은 무너지게 되어 지구는 각종 환경재난으로 가득하다.

 

<취성의 가르간티아>에서 지구에는 인간이란 생명체가 존재한다. 하지만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이에 따른 환경오염이 가중되고, 언젠가는 자원의 고갈로 인한 전쟁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구에 심한 자연재해가 닥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환경과학적으로 지구환경시스템을 본다면, 우선 현재 우리는 지구대기 온난화로 인해 기온이 상승하고, 지구의 온도를 컨트롤하는 극지방의 얼음이 녹고 있으며, 지나친 산림파괴로 숲과 나무들이 사라진다.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밀림, 그런 밀림들이 조성된 곳에 대해 마구잡이로 벌목을 하고, 지나친 개간과 화전은 지구의 대기오염을 가중시킨다.

 

이런 연쇄적인 환경적 작용으로 인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담수의 상당히 많은 양을 차지하는 극지방의 빙하가 사라지면, 그 작용으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한다. 매해 해수위를 측정하면 계속 상승 중이며, 그로 인해 군도와 같은 섬으로 이루어진 지역은 해수로 인해 육지부가 사라지고, 해수위의 상승으로 인해 바다의 파도의 힘이 강력해지기 때문에 그 만큼 해일에 의한 피해도 가중된다. 실제 미국 플로리다주에 닥친 해일피해나 동남아시아권의 쓰나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2. 분쟁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인가?

<취성의 가르간티아>에서도 그런 분쟁적 동기가 바로 지구환경시스템의 문제로 인해 발생했다. 온난화가 지속되면 지구의 기온이 계속 상승하기도 하나, 간빙기라는 빙하기도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지구의 미세먼지가 계속 대기권을 가리거나 또는 지구의 공전과 자전운동, 내지 자전축의 기울기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 심지어 지구의 기온이나 기상학적 조건은 달의 인력이나 태양의 흑점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거대한 에너지가 지구 내만 아니라 지구 외부에도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취성의 가르간티아>에서는 바로 그런 지구환경시스템이 인간에게 좋은 환경이냐 아니냐의 문제에서 벌어지는 것이 사건의 시초다.

 

발단의 원인에서 처음에 인류은하동맹이란 인류가 만든 조직에 속한 레드 소위라는 청년은 오로지 동맹의 적인 히디어즈를 죽이기 위해 태어난 인간이다. 그는 오로지 히디어즈를 멸살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았다. 그가 히디어즈와 대규모 전투 도중에 조난당하여 우연히 지구라는 별에 불시착하게 된다. 그곳에 사는 인간들은 문명사회(레드소위)의 거주자인 레드 소위 입장에서는 미개한 수준의 문명이었다. 레드 소위는 첨단화된 정보통신체계의 체임버를 조종했고, 그가 도착한 가르간티아라는 배는 디지털로 통해 자동으로 운영하기보단 인간이 직접 몸과 정신으로 노동하는 문명이었다.

3. 레드 소위가 바라본 가르간티아

문명적 수준으로 본다면 항공기는 없었고, 선박으로 해양을 이동하면서 물고기나 해산물을 낚시하여 생존하고 있었으며, 체임버라는 첨단기기보단 윤보로라는 인간이 직접 운전하는 로봇이 있었다. 여기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모두 문명의 혜택보단 자연의 공간에서 문명의 소유물로 통해 살고 있었다. 자연이란 인간에 대해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맞추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레드 소위는 가르간티아와 조우하면서 그들이 오랜 전에 자신과 같은 인류였고, 그들은 지구에 계속 남아 오랫동안 거주한 것을 알았다.

 

결국 진화라는 관점에서 레드 소위는 문명이 진화한 세계에 있었고, 가르간티아의 사람들은 문명이 진화보단 퇴화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미개했던 것이다. 가르칸티아이란 것은 대규모 선박들이 하나로 연결하여 선단을 꾸민 공동체로서 가르칸티아가 여성의 목걸이라는 의미에서 기본적으로 배는 여자의 이름을 붙인다.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에서 안개라고 불리는 배들의 인격을 나타내기 위해 보여준 모습은 모두 미소녀 내지 미녀였다. 그들이 여성이 나온 이유는 인간은 선박을 여성이라고 보았다. 프로이트적인 요소로서 모자, 신발은 여성성을 의미하는데, 배도 역시 담을 수 있는 그릇이란 점에서 여성으로 본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승무원으로 여자를 태우지 않은 이유는 배 자체가 여성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태우지 말아야 하는 관념(터부)이 있었다. 하지만 물질적 조건으로 여성은 주기적으로 배란에 의해 생기는 월경이 원인이었는데, 그 이유는 옛날 선박은 모두 엔진이 아닌 인력이나 풍력, 조류에 의해 움직이므로 해상 위에서 이동할 수 있는 여건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만약 바다로 출항하면 상어나 위험한 바다동물이 월경으로 인해 배출된 혈액의 냄새를 맡고 찾아와 공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자면 문화인류학적(마빈 해리스의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으로 이슬람문화가 돼지고기를 혐오하는 것은 자신들의 문화적인 관념이나, 오랜 고문서에는 돼지고기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던 만큼 그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이유가 결국 물질적 조건에 의해 되었으며, 그것이 하나의 금단의 조치가 된 것이다. 생각하면 간단한 것이, 돼지는 건조하고 마른 곳보다는 축축하고 습기가 많은 곳에 살기를 좋아한다. 따라서 사막지역에는 습기가 부족하기에 돼지를 키우기가 어렵고, 실제 키운다고 하더라도 그에 따른 경제적 비용은 막대하고, 그것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관건이 조성되지 않는다.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에서 가르칸티아는 레드 소위가 보기에 매우 비효율적인 연합이다. 많은 배가 같이 있으면 행동하기 어렵고, 강한 무기도 없으며, 해적이 나와도 멸살하지 않고 최대한 희생을 줄이려고 한다. 게다가 자신들이 싸운 히디어즈와 비슷한 고래오징어가 나와도 아무도 싸우지 않는다. 오히려 레드 소위가 고래오징어를 죽이면 주변 사람들이 매우 불안한 표정으로 레드 소위를 바라본다.

 

4. 레드가 보는 가르칸티아의 삶

레드 소위는 단지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헤게모니, 즉 히디어즈를 모두 섬멸하는 것만이 전부고 그것을 위해 행동하는 전사이다. 그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었고, 오로지 전투를 수행하는 전투요원이었다. 하지만 레드가 가르간티아에 오자, 전투가 전부인 그에게 여기는 다른 가치관을 받아들이야 했다. 그것은 레드라는 인간이 오로지 전투를 위해 살았다면, 여기서는 전투가 아니라 삶이란 자체를 위해 살아갔다. 모두가 서로 돕고, 될 수 있는 한 모두가 자신만의 일을 하여 그 노동의 가치로서 생계를 이어갔다.

 

특히 <취성의 가르간티아>의 여자주인공인 에이미의 경우 그녀의 남동생인 베벨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 베벨은 심장이 매우 약한 소년으로 조금만 무리하면 생명에 큰 지장을 줄 수 있을 만큼 약하다. 그래도 바벨을 위해 에이미는 열심히 일을 하고 그를 돌본다. 레드 소위는 그런 에이미를 보면서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런 힘도 없고 그저 자리만 차지하는 베벨을 보면서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한다. 왜냐하면 레드 소위의 가족들은 연맹의 판단 아래 필요성이 없다고 여겨 모두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인류은하동맹은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행동한다.

 

즉 그곳은 인간이란 존재란 서로 간의 교류에 의해 존립되는 곳이 아니라 상하체계가 명확하고 오로지 명령과 복종만 강조되는 사회다. 문명발전 수준은 현재 과학기술과 비교조차 되지 않으나, 정치제도를 보면 전형적인 군국주의 내지 전체주의이다. 군국주의는 국가나 국가의 부속원인 국민이 모두 군대에 있는 것과 같은 사회체계이다. 그러므로 레드 소위는 계속 전쟁을 수행하며, 그의 가족들은 전쟁에 필요 없는 존재이기에 폐기처분 되었다. 인간의 존재적 가치가 인간 그 자체가 아니라 국가의 필요 여부에 따라 삶과 죽음이 나누게 된다.

베벨은 그런 레드 소위에게 보자면 새로운 존재였다. 베벨은 육체적 노동을 할 수 없으며, 군인으로 살아온 레드에게 군인은 적을 섬멸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육체적 노동력이 없는 베벨에겐 전투력이 없다.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인간이 속한 사회에서 필요한 인간이어야 하고, 카를 마르크스는 인간의 노동으로서 인간의 가치가 정해진다. 베벨은 사회적 가치 내지 노동력이 없으므로 어떻게 보면 에이미에게 짐과 같은 존재일 수 있다. 하지만 에이미는 오히려 자신이 여기까지 견딜 수 있는 것은 베벨이란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인간과 인간은 서로 마음을 의지하고, 도움을 나누며, 내가 아닌 타인과의 공존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레드 소위에게 인류은하동맹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거기서 죽으면 끝이고, 살아남으면 전투 중에 진급하고, 또는 그의 상관처럼 사라져갈 수 있다. 레드 소위가 본 가르칸티아에는 분명 신분적 차이는 있었다. 그래도 그 신분은 누군가를 억압하거나 통제하기보단 선단을 운영하기 위해 선단장과 각 선주들이 모여 있으며, 이들 각 선주에게는 자치적으로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대규모 선단에서 각 선박 내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고, 이들 역시 사로 의지하고 살아간다.

 

5. ​가르칸티아라는 코뮌(Commune)

이런 사회적 공동체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프랑스어로 ​코뮌(Commune)이라 한다. 코뮌(Commune)이란 단어가 유명해진 시기는 1871년 코뮌혁명이다. 프랑스혁명은 루이왕정을 붕괴한 1789년 7월 프랑스대혁명 이후로 1830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 그리고 1871년 파리코뮌이 발발했다. 역대혁명 중에서 가장 잔인하게 많이 희생당한 혁명이었으며, 당초 1789년 프랑스대혁명과 달리 부르주아 지식인보단 일반 시민들이 주축이 된 혁명이었다. 그런 코뮌이란 단어는 결국 공동체이고, 서로 경쟁하기보단 공존의 길을 선택한다.

 

그런 코뮌이란 체계와 유사한 선단이니 공존의 대상은 단순히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에게도 마찬가지다. 히디어즈의 동족이던 고래오징어에게 위협 내지 공격하지 않으면 고래오징어가 공격할 이유가 없으며, 심지어 해적이 습격해도 방어하여 도망치거나 물리칠 뿐이지 그 이상의 희생을 내지 않은 이유도 그렇다. 결국 공존을 잃게 되면 어느 한쪽이 무너질 경우, 단순히 그것이 무너진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피해가 막대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전쟁과 같은 무력충돌이 일어나면 수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고, 생존조건상 육상이 아닌 해상이기에, 해상 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살아갈 터전조차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결국 살아남는 방법은 경쟁이란 대립이 아니라 공존이란 방법이 우선인 것이다. 공존의식이 레드 소위에게 없는 것은 사회라는 조직이 그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인지, 아니라면 그 조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인지에서 차이점이 분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장 평화적으로 그리고 가장 민주적으로 생존할 수 있던 시기는 열악한 환경에 일정 무리만 존재하던 원시시대이다. 서로 돕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지금이야 냉장고와 같이 음식을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도구도 있고, 의약품이 보급되어 심한 질병이 아닌 이상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다.

 

그러나 원시시대에는 파상풍이나 이질 등과 같은 질병에 죽거나, 또는 어떤 충격에 의해 부상당하면 생존이 불가피하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였으며, 인간수명이 길지 않았기에 연장자들의 경험이나 지식이 없으면 많이 곤란할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부족이나 씨족단위로 서로 뭉쳐 같이 무리를 지어 식량도 나누어 먹고, 다치면 서로 돌봐주기도 했었다. 단 조건은 다른 씨족과 부족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정도로 활동범위가 넓고 자유로워야 했다.

설사 서로 조우해도 서로 공격해보았자 희생만 늘어날 뿐이므로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많았다. 가르칸티아의 선단은 그런 점을 보면 다른 선단과 조우할 기회도 적고, 설사 조우한다고 해도 서로 가진 물건을 물물교환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도태될 뿐이고, 정보력이 부족하면 바다 위에서 생존이 힘들어진다. 선단에서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찾기 위해 누군가의 정보가 필요하고, 태풍이나 해일 등과 같은 자연재해의 정보도 알려면 누군가의 정보가 필요하다. 특히 마실 물이 귀중하기에 기상정보는 매우 중요할 것이다.

 

6. 야생의 사고의 <취성의 가르간티아>

왜냐하면 <취성의 가르간티아>에서 육지부가 나오는 장면을 제대로 못 보았기 때문이다. 레드 소위와 피니언이 고래오징어의 서식처가 있는 해저로 갈 때 거기는 어느 연구시설과 같이 보였으며, 주변에는 온갖 잔해물이 보였다. 환경과학적으로 보면 대기기상의 이변으로 처음에는 간빙기가 닥쳐 인류가 서로 갈등이 생겼다면, 그 후 지구는 온난화로 인해 해수위가 상당히 높아졌을 것이다. <취성의 가르간티아>의 의상을 보면 대부분 여름에 입는 옷이고, 베벨이나 에이미의 의상은 남미 전통복장이 생각나는 의상을 입고 있다.

 

남미권의 기후가 열대성을 띄고 있고, 인간의 몸에 열이 쉽게 빠져 나가기 위한 점과 더불어 작품 내 여성캐릭터의 모에요소를 강조하기 위해 다소 노출도 높은 편이다. 대기기상을 생각하면 비가 잘 내리지 않는 건조하고 기온이 높은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상조건, 고래오징어의 정체성, 지난 인류의 역사 등을 현재의 가르칸티아의 선단에 있는 사람들은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레드 소위가 보기엔 그들의 행동이 너무 무의미하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체임버를 사용하면 효율적인 전투, 효율적인 어류공급, 잃어버린 보물인 과거의 문명까지 쉽게 습득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레드 소위의 방법이 더 이상하고 바르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가르칸티아 선단사람들에게 문명이 없는 것은 아니나, 레드 소위에는 야만 내지 미개한 종족으로 보았을 것이다. 특히 에이미가 레드 소위에게 처음 건네준 생선을 보고, 레드 소위는 어류의 시체로 여겼다. 어류의 시체를 먹는 것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먹고 난 뒤에 그것이 제법 먹을 수 있는 식량인 것을 알았다. 결국 그들은 레드 소위에게 있어서 야생의 세계에 사는 사람이었다.

 

가르칸티아라는 선단은 문명이나, 그들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인 바다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문명이 아니라 인간이 부유하고 있는 자연이란 거대한 존재다. 레드 소위 기준의 이성적인 사고에서는 도저히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의 무의미한 행동들이 알고 보면 오히려 그것에 대한 의미가 있었다. 무의미에 대한 의미에서 선단의 생활양식은 인간의 의식으로서 행동하기보단 무의식적인 생활양식에 의해 행동한다. 그러나 가르칸티아 선단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생활양식은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과학적인 요소가 담긴 것이다.

 

7. 쿠겔 중령의 망령

그런 공동체적인 코뮌 대신 다른 생활조건을 갖춘 조직이 있었다. 그들은 가르칸티아에 사는 사람들처럼 모두 평범한 인간이었으나, 행동양식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들은 스트라이커라는 인류은하동맹을 지지했던 사람들의 후예들이다. 처음 인류가 간빙기의 도래로 인류의 멸망을 두려워하여 일류과학자들은 인간의 지능과 생존력이 높은 동물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킨다. 히디어즈와 고래오징어의 시작은 인간의 유전자조작으로 탄생이었다. 그것을 만든 자들과 반대하는 자의 대립이 시작되고, 결국 반대하는 자들은 우주로 나가 인류은하동맹을 만들었다.

 

그리고 쿠겔 중령과 레드 소위는 인류은하동맹 지휘아래 전쟁을 수행하였고, 2사람 모두 지구로 불시착했다. 지구로 온 레드는 운 좋게 살았지만, 쿠겔 중령은 목숨을 잃고, 그의 머신 캘리버가 쿠겔의 유령이 되어 스트라이커를 지휘한다. 스트라이커는 이른바 계몽이란 이름 아래 그들을 전체주의적인 광신도로 만들었으며, 계몽은 스스로 깨달아서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억압이란 이름으로 스트라이커를 지배했다. 그 결과 스트라이커들은 이상한 의례로 사람들을 강제로 물에 빠지게 하여 수장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누군가의 희생, 그리고 그 희생으로 인해 살아남은 자들의 위안과 조직의 결성은 전형적인 전체주의국가 형태였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그 조직을 결속하고 지배하며 이끄는 행위에서 가르칸티아의 생활과는 전혀 달랐다. 가르칸티아는 인간 위에 인간 없고, 인간 아래 인간이 없었다. 하지만 스트라이커의 쿠겔 중령의 유령은 인간 위에 인간이 있기 보단 인간 위에 신이라는 존재로 있으려 했다. 인간의 집단에서 발생되는 군중심리는 논리적 이성이 사라지고, 군중심리로 작용되는 폭력적 성향조차도 하나의 정의와 도덕으로 변질된다. 유럽의 광기이던 나치의 잔인한 행위와 대동아공영이란 이름을 내건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하는 잔인한 행위와 폭력은 부당한 것이나, 그들에게 부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스럽고 당연하고 자신들의 우월성을 내보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런 망령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상징성이 필요했다. 그 상징으로 쿠겔 중령이었고, 쿠겔 중령의 망령은 그의 머신 캘리버가 조종석을 여는 순간 확인할 수 있었다. 쿠겔 중령은 병으로 사망하였고, 시체마저 부패되지 못했다. 이미 인류은하동맹의 정치구조가 군국주의 내지 전체주의이기 때문에 쿠겔 중령의 유령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스트라이커를 지배했고, 그들은 다시 다른 선단의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했다.

8. <취성의 가르간티아>의 작품적 의의

<취성의 가르간티아>은 작품성으로 보면 13화로 끝내기에는 조금 짧았다고 판단된다. 거기에는 다양한 담론이 숨어있다. 처음으로 인류의 위기에서 그 위기를 대처하는 방식에서 인간의 유전자조작이란 윤리적 문제가 처음이다. 과학의 윤리성이 현재 큰 문제로 부상하는 것이 유전자조작에 의해 탄생되는 생명체다. 복제되는 동물들이 탄생하고, 시험관아기도 이제 이슈에서 낯선 존재가 아니다. 생명의 윤리성에서 동물을 넘어 인간의 탄생까지 넘보게 되었다. 인간이란 신이 만든 존재인가? 아니면 인간이 스스로 창조할 수 있는 존재인가? 인간의 영혼이란 진짜 보이지 않으나 그것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정신세계가 있는지 혹은 인간의 기억이란 단지 데이터이고, 그 데이터조차 위조 및 조작할 수 있는 것에서 인간의 존재성이 이 작품에서 큰 의의로 다가온다.

 

또한, 인류은하동맹과 히디어즈의 관계이다. 히디어즈의 유년 모습은 마치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다. 고래오징어의 어린생명이 처음 레드 소위를 볼 때, 그들은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손인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레드 소위는 두려움으로 그들을 죽인다. 붉은 피가 흐르는 순간, 레드 소위는 자신이 멸살시킬 괴물 히디어즈를 물리쳐서 임무를 수행 중인지, 아니라면 인류의 후손으로서 또 다른 인류를 파괴하고 있는가에서 심한 동요를 느낀다. 또 다르게 말하면 자신의 반대되는 것이라도 결국 그들이 가진 존재성과 의지를 무조건 부정할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가르칸티아의 선단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점이라고 볼 수 있다. 코뮌이란 말은 공동체로서 서로가 서로를 돌봐주고 이끌어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유럽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민주주의 정치제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 가르칸티아의 선단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거기에서도 갈등과 문제점이 없을 리가 없다. 세상에서 완벽한 정치제도를 가진 국가나 사회는 없다. 단지 그런 이상적 가치를 삼아 끊임없이 노력하고 이끌어갈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문제의 시발점은 인류가 닥친 자연적 재앙이다. 히디어즈가 탄생한 원인도 가르칸티아의 선단들이 바다를 떠돌며 살아가는 것도 자연적 조건에 의해서다. <취성의 가르간티아>의 대립관계를 살펴보면 ① 유전자조작으로 통한 인류의 진화론자 ↔ 그것을 반대하는 도덕론자, ② 히디어즈 ↔ 인류은하동맹, ③ 명령과 임무에 의해 사는 레드 소위 ↔ 공존을 위해 자연적 조건과 평화적으로 살아가는 가르칸티아, ④ 가르칸티아를 지켜려는 레드 소위 ↔ 전체주의적 독재정치를 만들려는 쿠겔 중령의 망령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간의 가르칸티아의 선단과 해적의 전투, 피니언이 유물을 찾으러 갈 때 싸우던 고래오징어의 다툼도 있었지만, 중요한 대립은 위의 4가지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자연적 조건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누가 강제로 해야 하는지 다소 난감한 선택에 봉착한다. 인간이 자신 자유와 권리를 가질 수 있 결국 인간 모두 태어날 때 자연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 물론 태어나면서 인간에겐 쇠사슬이란 억압을 받게 되나, 그 대안으로 인간들은 사회계약론을 맺게 된다.

   

사회계약론으로서 인간은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 자유와 평등, 더 나아가 박애정신으로 통해 서로 간의 공존과 평화를 도모한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인간을 구속하고 착취하는 이유는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해 이제 인간을 착취하여 자신의 이기심을 만족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욕구는 일시적으로 해소가 가능하나, 욕망은 끊임없이 그 이상의 요구하게 된다. <취성의 가르간티아>는 결국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넘어 인간이 자연까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대혁명에서 자코뱅당 출신으로 국민공회의 위원을 맡았던 로베스피에르가 했던 연설이 생각난다.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가 아닌 타인의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만일 타인이 자유가 없게 되면, 그 타인은 다른 자의 자유를 박탈하려고 하는 점이다. 만일 누군가의 희생을 강조하는 사회라면 이 작품의 각본을 맡은 사람이 만든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처럼 계속 희생을 더 큰 희생으로서 씻어져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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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3-25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진짜 대단합니다.
일단 밥 먹고 읽겠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4-03-25 12:26   좋아요 0 | URL
이게 바로 오덕력이란 심오한 세계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