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때 축구 이야기가 나왔는데, 외국 벨기에가 엄청난 축구강국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벨기에 선수들이 유럽의 명문강호에서 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들으면서 요새 생각해본 것이 경제성장이란 담론인데,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1차와 2차를 넘어 3차인 서비스직렬에서 공학 전공자인 나로서는 3차 서비스로서 엔지니어에 속한다. 그러나 최근 한국 내의 국토개발은 많이 이룬 것이고, 더 이상 국토개발로 통한 경제활동은 좋지 못한 것 같다. 

 

특히 환경을 파괴하여 만들어 놓은 지난 한국경제는 오히려 재난이나 물부족, 대기오염 및 수질오염, 소음진동 및 일조장해 등과 같은 환경오염이란 막강한 적이 들어왔다. 결국 2차에 의한 공장이나 혹은 개발사업에 의한 국내 경제활동은 한계가 있다. 결국 국토개발은 보전 및 복원이란 환경적 측면에 초점을 맞출 것이고, 예전처럼 친환경적 개발이란 이름만 붙은 개발사업이 아니라 복원적인 요소로 환경사업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하천정비나 숲가꾸기 사업은 콘크리트화 된 하천이나 또는 자연환경을 원상복원은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하천을 유로변경이나 준설, 숲에 있는 식물의 종을 멋대로 변경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따라서 이제는 자연을 파괴하면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을 접어야 한다. 대신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하는 점이다.

 

최근 국가경제의 말에서 이미 1차 산업인 농업은 거의 경고를 지나 생존위기인듯하고, 2차 산업에서 공정단계가 상당히 발전한 점에서 2차 산업 공업도 인력을 사용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보인다. 3차 산업인 서비스도 거의 한계점을 보인다. 주택가들이 밀집한 마을에 길가를 지나가면 주변에 피자, 통닭, 토스트, 커피가게다. 이제는 이런 사소한 물품들도 대기업 자본이 들어와서 기존의 영세업체도 밀리는 판국이다.

 

4차로 보면 정보디지털인데, 이미 한국은 인터넷 보급은 세계 최고이니 이 방면도 다 개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단지 아쉬운 것은 컴퓨터 핵심부품과 운영체계를 만들 수 없기에 한계성이 있다. 디지털강국이라도 결국 정보매체는 떠돌아다녀도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도구는 역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취약하기 작이 없다.

 

그런 5차라고 불리는 여가 및 취미는 어떨까? 내가 갑자기 잡담을 적는 이유는 바로 취미 및 여가의 활동으로 경제성장을 볼 수 있나다. 예전에 국민의 정부 시절, 대기업에서 1년 동안 파는 자동차보단 영화 쥐라기공원이 더 많은 경제활동결과를 낳았다. 문화산업이 결국 21세기의 갈 길이고, 젊은 취업준비생이나 혹은 실직자에게 좋은 일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가시간이다. 한국은 여전히 일하는 시간이 많다. 누군가는 한국인이 일하는 시간을 너무 적게 주어 나중에 무엇을 할지 몰라 고민한다고 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처음에는 낯설어 보이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최고의 인생은 자기의 여가시간을 내어 자기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이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에서 취미라는 것이 딱히 좋게 볼 수 없고, 장 자크 루소의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역시 취미가 예술적 요소를 기반한다고 하나, 지난 18세기에는 산업체계가 이미 농경사회라는 점과 농민의 집단적 노동이 놀이로서 형태를 드러난 바가 있다.

 

한국에서 농사짓는 농부들이 모여 서로 노래를 만들어 같이 작업하거나 혹은 농악으로 축제를 열고 했다. 문제는 지금은 집단협력으로 통한 직업을 하는 게 아니라 분리된 공정과 조건으로 일을 하는 점이다. 아마 사무실에서 같은 팀에 있는 것보다 취미 생활로 모인 사람들이 더 많은 집단구성을 이룰 수도 있다. 취미라는 것은 인간의 시간적 소비만이 아니라 능력개발, 자아발전, 사회유대관계도 확대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여가생활은 거의 최악이다. 개인적으로 TV 드라마 공화국이란 사실을 생각하면 끔찍한데, TV 앞에 모여 드라마를 보고 마치 현실처럼 보이는 파생실재에 현실로서 받아들이거나 혹은 현실에 적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보고 착각하는 중2병 내지 오타쿠보다 심각하다. 드라마와 같은 대중문화에 빠진다는 점은 점점 일원화적인 문화형태로 되어 결국 다양성을 만들지 못한다.

 

취미나 여가생활은 다양한 문화나 활동에 기반되어야 산업적인 요소가 된다. 이른바 스토리텔링화 한다는 문화산업에서 그것이 기반되는 콘텐츠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진중권 교수의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에서 아주 좋은 말이 나온다. "상상력은 미래의 윤리"라는 점이다. 상상력이야 말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문화산업의 기반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상력이든 문화적이든, 스포츠든 여가공간이든 취미생활이든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나 혹은 그것을 운영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 왜 그럴까? 말해두고 싶은 게 있지만, 지금은 21세기이고, 20세기의 정신으로 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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