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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평점 :
<스노우맨>, 이 책을 본 후에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르게 해보기로 했다. 그 이유는 나는 그다지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고, 게다가 소설 중에서 추리물은 더 읽지 않는다. 추리물이란 탐정물 내지 성룡이란 유명한 배우가 연기한 <폴리스스토리>라는 영화도 있다시피 결국 범인이 잡히든지 안 잡히든지 혹은 경찰이나 탐정이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라는 이분법적인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추리물이나 심리적인 요소가 강한 경찰이야기란 패턴이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다. 수수께끼와 같은 것은 오히려 범인이 가려진 것보다 범인이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다.
범인이란 존재가 원래 있음으로 하여 범인 자체에 타켓을 맞추는 설정에서 우리는 정말 중요한 벽을 놓치게 된다. 이전에 우로부치 겐이란 아주 실력 좋은 소설가 겸 각본가의 명작인 <psycho-pass>를 보는 순간 말이다. 작품 내의 범인은 정신분석적인 스캐너에 의해 돌아가도 아무런 문제가 위험이 없다. 그래도 여전히 살인을 하고, 그 살인은 충동적이기보단 하나의 이성적인 자유에 의해서 실행된다. 자유라는 이성의 절대적인 의지는 결국 자유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진행되어 그것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동반한다.
그런 점에서 무의식적인 반응 내지 혹은 순간적인 행동은 결국 하나의 미학을 관찰할 수 없다. 미학적인 요소에서 이성이란 광기로 통해 하나의 승화감을 맛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죄 없는 여자의 목의 대동맥을 베고, 그것도 모자라 살인을 옆에서 시키려는 그의 범죄가 말이다. 스노우맨도 마찬가지다. 스노우맨의 범죄는 상당히 미묘하다. 한국과 같이 미국 정치철학자 존 롤즈가 말하는 <정치적 자유주의>보다는 포괄적 자유주의에서 더 나아가 한국식 자유주의가 존재한다.
이른바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데, 미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 아주 적합하더라도 솔직히 개인의 자유권에 대해 크게 간섭하지 않는다. 한국식 자유주의는 옆에서 오덕질을 하거나 코스프레를 하면 그들이 하는 것에 대한 비난을 할 수 있는 신기한 자유가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대다수 남들이 어느 특정인을 신나게 깔보고 놀릴 수 있는 자유를 말이다. 따라서 <스노우맨>에서의 한국식 자유주의는 참으로 어렵다. 근본적 이유를 생각하면 소설을 종점이 되어 다시 의미를 찾아가면 안다.
예전에 이슬람 문화권에서 어느 여자가 다른 남자와 풍문이 돌아 그 집안에서는 명예살인을 거행했다고 한다. 한국식으로 보면 남편 잃은 여편네에게 자살을 권고하여 열녀탄생을 했다고 자랑하는 것과 같다. <스노우맨>의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바로 당신의 아이에게 아버지가 있다면 그 아버지가 진짜 친부일 가능성은 15~20%일 것이다! 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친자소송에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에서 피가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은 저기 15~20%를 지나 0.15~0.2%도 힘들 것이다. 나하고 결혼하기 전에 어느 인간에게 그 다리를 벌렸다는 말인가!
그러나 우스운 사실은 내가 다른 여자의 다리에 들어가도 오케인 게 수컷의 본능이고, 남이 오는 것은 싫은 것 역시 수컷의 욕심이다. 소설에서 물범인가? 바다에 사는 포유류 육식동물이 자신의 새끼를 출산한 암컷을 죽이는 이유가 바로 암컷이 또 다른 수컷이란 교미를 한다는 점이다. 내 옆에 생물학 석사를 졸업한 동료를 입을 빌리자면, 인간도 역시 동물적 기관을 지니기에 동물이나 짐승이나 남자들은 같다고 한다. 단지 그 같다는 점을 인정하느냐 마느냐 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불안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성에서 진정한 자유가 시작되나, 이성의 자유에서 이성 자체가 완벽한 이성이 아니라 하나의 감정 중에 속한 것이다. 인간의 질투가 정당한 진리와 정의로서 철퇴를 내린다. 정의의 칼을 외치는 영화나 만화에서는 가능하나, 현실에서 정의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저지르는 인간들은 최악의 쓰레기들이다. 그런 점에서 <스노우맨>은 최악의 쓰레기가 가장 도덕군자인척 하여 더러운 짓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리버럴 잡지 사장놈이나 혹은 자기 어머니가 아버지와 다른 남자하고 성행위로 자신이 태어난 이유로 살인마가 되는 합리적인 정신병자도 말이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납득을 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원래 분리된 존재이나, 아들과 어머니는 본래 함께인 존재에서 분리된 것이라고 말이다. 하나였던 존재에 대한 배신과 분노에 모자라 자신에게 쏟아진 신체적 낙인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이 책에서 정말 북유럽은 그런지 안 그런지 알 수 없으나, 참으로 남자나 여자나 가볍게 성행위를 하고, 파티에서 그냥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와서 대화를 나누고, 여자가 남자 허벅지를 만진 것으로 시작된다는 점에서 이미 이 소설은 한국의 정서에서 동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이를 죽일 생각도 없이 오히려 잘 키운다. 한국이라면 아마 낙태하거나 고아원에 보낼 가능성이 높다. 작가의 시점으로 따라가면 아마 Sex는 자유롭게 그러나 태어나는 애들은 사랑을 나누는 것 같다. 요나스의 아버지에서 요나스가 남의 씨앗으로 태어났으나, 그래도 요나스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며, 사랑으로 키울 것을 맹세한다. 한국에서 그게 가능한 일인가? 어떻게 보면 가치관이란 기준에서 한국은 가족을 혈연이라면 유럽은 친분인 것이 강할 것 같다.
이혼과 재혼문화가 어느 정도 정착되어 여자에게 사회적인 불리함도 없고, 남자도 아이가 있는 여자와 만나 그 여자의 아이들까지 같이 놀거나 친하게 지낸다. 작가 본래가 개방적인 인물인가? 왜냐하면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음악적 지식이 필요하다. 슬립 낫이란 이름이 나올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국 LA메탈밴드에서 Gun's & Roses 멤버인 기타리스트 건이 속한 밴드다(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거기에 슬레이어 같은 스래쉬메탈, 레드제플린과 같은 브리티쉬하드락을 듣지 못한다면 그 느낌을 모른다.
섹시한 몸매를 지닌 카트리네 경관이 짝 달라붙는 가죽의상에서 스모키한 화장을 한 것을 보면 작가가 좋아하는 여자스타일이 그 경관이 분명하다. 물론 나도 싫어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개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고, 나름 지성을 갖춘 사람이기에 지성과 개성을 다 재미있게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 스스로가 뮤지션이고, 게다가 글을 보면 미국의 부시나 레이건을 싫어하는 느낌이 강하다. 1980년이나 혹은 2004년 부시나 레이건 대통령 당선을 왜 그렇게 왜치는가?
어째든 <스노우맨>은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추리적 요소에서 과학적 근거를 많이 인용한다. 어느 탐정물도 그러하나 사람의 혈액과 정액 그리고 타액들은 DNA라는 생물학에서 펼칠 수 있는 과학수사를 가능하게 한다. 문제는 너무 의학적인 요소로 갔기 때문에 중간에 대략 범인이 감지할 수밖에 없었다. 범인이란 스스로가 나라고 떠벌리지 않은 이상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면 수사극이나 탐정극은 처음부터 끝이다. 아니라면 범죄의 추적으로 통해 국가나 사회의 병폐를 찾아 근본적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스노우맨>은 그런 내용들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자유로운 성행위를 인정하되, 그곳에서 자라나오는 생명에 대한 책임의식이다. 여자의 부도덕만 잡는 게 아니라 그 부도덕은 혼자만 나온 게 아니라 합작이다. 어떤 점에서 플라톤의 <국가정체>가 저술한데로 모든 아이들의 부모는 모든 성인남녀다란 명제가 좋을지도 모른다. 대신 철인군주가 되기 위해 어릴 때부터 공부와 운동, 때에 따라서는 동성애(소크라테스는 여자와 자면 아이가 태어나나 남자와 자면 지혜가 탄생한다고 하니)도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범인은 중요한 사실을 잊었다. 그 아이에게 더러운 창녀 같은 어머니는 필요 없다고 하나, 어머니 없는 아이는 매우 비참하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