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나는 대중문화에 대한 주변의 압력을 불편하게 여긴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나의 취향과 취미 그리고 판단력과 사유의 자유를 가지고 싶으나, 한국에서는 가지기가 어렵다. 가령 요새 무슨 영화를 하는데 본 적이 있느냐? 아니면 요새 어느 드라마가 잘 나가고, 배우가 나오고, 가수가 나오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나의 발언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진다. 조금 특이하거나 또는 괴짜, mania 세계에서만 숨을 쉴 수 있다.

 

한국에서 이른바 오타쿠라 불리는 자들에서도 속하는 나이지만, 그런다고 그 세계에서도 여전히 이방인이다. 나는 goods와 같은 상품을 중시하는 게 아니라 그 goods의 상품으로 나오기 전에 방영된 작품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담론을 펼치는 것을 좋아하기에 다소 현학적 요소가 많다. 사람들은 현학적인 요소에 대해 생각하기 싫으나, 그런다고 현학적인 요소가 없다고 하면 상당히 화를 낸다. 무식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면서도 무식함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 요새 사람들의 공통된 관점이다.

 

왜냐고? 1년에 책을 보는 것에서 과연 몇 권을 읽고, 그 책이라도 무슨 책을 보는가에서 대답하면 금방 답이 나온다. 차라리 요새 유행하는 베스트셀러 연애소설까지도 보는 것도 제법 독서가이시군요.”라고 말이 튀어 나온다. 1권을 한 달에 보는 것도 어려운 사람들, 게다가 철학이나 사회학 같은 도서는 아예 취급조차 않는다. 그러한 사람일수록 깊은 지식보단 얇고 흔하고 흔한 것을 찾는다. 그래서 대중문화에서는 아주 흔하고 흔해 cliche가 넘치고 넘친다.

 

인간들은 패턴주의를 참 좋아한다. 새로운 것이라고 해도 결국 그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아이돌 여자가수들이 얼굴과 이름만 바뀌지 타켓이 되는 몸매와 의식은 돌고 돈다. 모두 남자가 당장이라도 성적 욕망만을 자극하기 좋은 것에 말이다. 그것이 코드라면 코드이고 흐름이라면 흐름이다. 문제는 가수 박지윤 씨가 성인식의 음란한 가사와 댄스를 원하지 않았으나 기획사의 압력으로 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대중들은 열광하고, 그 당시 많은 여자들이 노래와 춤을 따라했다. 결국 대중문화란 기본적 명제와 상관없이 있으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존재다. 문제는 거기서 이질감이란 존재가 있어도 어느 것은 받아들인 반면 그러지 못한 게 많다.

 

모두가 같아야 하고, 같은 모습이 아니면 모두가 무서워하거나 짜증내하거나 회피하기 시작한다. 이런 대중문화의 파시즘의 요소들은 나라는 사람의 얼굴을 상대방의 얼굴을 그대로 이식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나라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너무 많아 자기들의 얼굴을 보고 맞는지 틀렸는지 구분하지 못할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다. 세상은 정의라는 단어가 존재하는데, 정의라는 기본적 상황이 있다면 정의의 부재란 단어도 필요하다. 그것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불가침의 영역이 존재하고, 그것에 대한 신성함은 그 누구도 범하지 못할 수준이다.

 

내가 왜 이런 대중문화와 파시즘, 그리고 인간의 욕망과 Cliche를 언급했냐고? 최근에 노회찬 의원에 대한 일에서 화가 났기 때문이다. 법정 심판에서 패소당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었는데, 그 승소자가 삼성이란 대기업이다. 우리나라의 신화는 바로 삼성을 보면 딱 알 수 있다. 원래 삼성을 사카린 밀수를 하여 성공했고, 지금은 불굴의 대기업이다. 참고적으로 내 폰은 갤럭시라는 삼성에서 만든 핸드폰이고, 자가용은 2005년 수동 SM5 모델이다. 삼성자동차를 몰고 삼성폰을 사용한다.

 

내가 아예 삼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삼성에 대한 국민적 욕망과 신화적 은폐, 어리석은 현실의 외면에서 비웃고 싶다. 내 자가용이 SM 시리즈인데, 그 단어처럼 한국은 정말 SM의 관계가 삼성과 국민, 그리고 국민 내부의 SM이 존재한다. 왜 그런 것인가? 삼성은 자기 스스로 sadist가 된 게 아니라 국민들이 sadist가 만들어주었다. 곧 국민 자체들이 masochist로 되길 바란 것이다. 자 예를 들어볼까? 나는 누가 공부 열심히 해서 공무원이든 대기업이든 연구소든 어딜 가도 자신의 노력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기업과 국가적 시스템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커다란 상부조직이 있는 만큼 하부조직 역시 필요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부경제가 돌아가기 위해 하부경제구조가 있어야 한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는 정확하게 말하면 문화인류학에서 나온 단어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최고의 모던걸은 지하경제라고 한다. 지하경제? 어디에 학술적 단어로 나온 단어인가? 그러나 다행히도 대중문화에 의해 철저한 하나가 된 파시스트적 민주주의에서는 가능한 발언이다.

 

말이란 어떻게든 갖다 붙이면 완성된다.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langue가 사회적 약속이 담긴 언어라도 푸코처럼 언어는 하나의 권력이기에 권력에 의해 언어가 새롭게 생산되고 정립된다. 이 얼마나 언어적으로 생산력이 높은 나라인가!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황금을 캐기 위해 거위를 배를 갈라 황금 대신 살코기를 먹는 행위가 아닌가? 그런 나라에서 인간의 욕망은 스스로 masochist로 되기 바란다. 우리 집에 가족이 모르는 친구가 왔는데, 이 녀석이 공장이 많은 동네에 살았는데, 우리 엄마에게 그냥 공장서 일한다고 했다.

 

일은 다른 곳에서 일할 예정이고, 업종이 전혀 다르다. 공장이 많은 지역이라 어머니는 삼성에서 일하니? 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물론 아니라고 했으나, 속으로 어머니의 한심함에 짜증이 났다. 물론 부모님에 대해 공경하는 것은 맞으나 이런 속내를 가지는 한 우리에게 미래란 없다. 참고적으로 그 녀석은 삼성보단 현대가 가깝다. 대략 짐작하겠는가? 어째든 삼성하면 모두가 가야할 곳이거나 가고싶은 곳이다. 내 고교 동창 녀석이 르노삼성에서 일하는데, 다른 고교동창 결혼식에서 만나 명함을 받아서 그것에 대해 이래저래 말하는 어머니의 한심한 작태가 바로 우리 국민들을 masochist로 만든다.

 

정말 웃긴 이야기는 골목상권이 죽어간다고 푸념하는 부모들이 우리 아이들은 공부 열심히 해서 삼성에 가야 한다고 하면서, E-mart, 홈플러스에 대해 욕하는가? 당신네들 자식들이 일할 곳은 그런 계열사들이 있는 곳이다. 본사에 갈 수 있는 인원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나라 국민들 착각들은 우리 자식 모두 삼성에 갈 수 있을 것이란 점이다. 가면 %? 가도 정규는 %? 정상적으로 퇴직 %? 그들이 노력해서 간 것에 대해 충분히 인정하나, 가면 매일 야근과 주말 잔업에 업무성과에 시달린다. 지역이나 협력 혹은 말단직은 몰라도 정규직은 당연히 그렇지 않은가?

 

물론 비정규직 역시 만만치 않다. 삼성에서 감추는 백혈병 이야기, 사람이 죽는데, 그것이 감춘다고 해결될 부분이 아니다. 내가 회사 다른 부서의 부서장과 말다툼한 적이 있는데, 잔업할 게 있어서 내가 그만하자고 했다. 삼성이 한국을 먹여 살린다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삼성이 우리를 먹이는 게 아니라 우리가 먹이는 것이다. 한국 국민들의 제일 한심한 작태는 소비자 주권의식이 없는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내용을 정리하여 내가 다시 말하자면 근로자가 곧 소비자고, 소비자가 곧 근로자인 것이다.

 

우리가 만든 재화나 상품 등을 일부 계층이 아니라 모두 다른 직종의 일을 가진 사람들이 이용한다. 가령 자동차공장의 근로자는 밥을 만들어먹는가? 음식점에서 먹거나 가게에서 재료를 사서 요리한다. 식당 종업원이 차를 만들어 타는가? 아니다. 공장에서 만들어 놓은 레디메이드를 이용한다. 그런 삼성이 먹여주는가? 아니면 소비자가 먹여주는가? 삼성이 우리 국민에게 월급을 주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 상품을 팔아 월급을 나누어준다. 그래서 삼성에 대한 우리 국민의 권리행세는 당연하나, 삼성에 대한 비판에 대해 나오면 촉각을 밝히고, 삼성은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다.

 

누가 삼성제품 사용하지 말란 것도 아니고, 삼성에 들어가지 마란 것도 아니고, 삼성 망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에게 삼성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 라고 한 그 부서장의 말에서 자기 자식 삼성에 보내고 싶어 하나, 과연 갈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되고, 그런 생각은 남들은 하지 않는가? 라는 것에서 결국 제로섬 게임을 즐기는 masochist로 된 것이다. 확률 구분상으로 1% 정도 갈 수 있는가? 아니 그 이하일 것이다. 내 자식만 가면 되라는 생각에 삼성이 마치 절대적인 군주로 받드는 게 아닌가?

 

그러니 E-mart 같은 사건이 터지는 것이다. 안전사고 문제나 기본적인 근로수칙마저 어기고, 그것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면 어김없이 감시와 처벌이 따르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삼성편이다. 삼성에 대한 문제점을 굳이 일일이 나열할 생각도 없으나, 노회찬 의원에 대한 일을 보면 토크빌이 말한데로 그 나라의 정치의 수준은 그 국민들의 수준에서 볼 수 있으니 결국 자기 스스로 삼성의 개가 되는 masochist를 선택한다. 그들이 masochist를 선택한 이유는 sadist가 되기 위해서다.

 

실제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이 삼성과 업무하면서 삼성에서 업무하는 태도가 속된 말로 양하치다. 그런 게 있지 아니한가? 금요일 오후 4시에 메일을 보내, 이 프로젝트 월요일 11시에 가지고 오세요. 그러면 상대 업체의 직원들은 퇴근하란 것인지 마란 것인지? 6시 퇴근하여 주5일제를 생각하면 그 프로젝트가 간단하면 모르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라면 편안한 주말은 포기해야 한다. 이런 양하치 짓거리를 많이 본다는 말에 우리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삼성에 일하면 사람들을 이렇게 구분한다. 삼성맨과 NO 삼성맨, 그들은 원래 masochist에서 sadist로 전환된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삼성에 대해 masochist에 매달린 이유는 sadist로 되기 위한 과정이다. samsungsadist는 같은 S가 아닌가? M에선 masochistmass라는 대중인 것이다. 대중문화를 왜 언급했냐고? 삼성은 대중매체에 큰 힘을 싣고 광고와 이미지 마케팅을 한다. 삼성이 원래 사카린 밀수로 했는데도, 그 진실이 은폐되어 최고의 대기업이 되었다. 결론은 미디어의 은폐와 프로파간다적인 현실이다. 그리고 거기서 얽매인 masochist같은 mass, 다행히도 sadist 같은 samsung man이라도 되면 다행이나 그들은 과연 몇 %나 될까 모른다.

 

결국 이들은 삼성에 대해 masochist이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겐 sadist로 되고자 한다. 아직 현실에 대해 파악하지 않고, 언젠가는 될 것이란 메시아주의에 물 들은 것이다. 나는 항상 삼성 제품 사용하고, 삼성이 제대로 외국에서 활동하기 바란다. 삼성의 기업이 국내에 영향을 미치니깐, 그러나 그 영향을 미치게 한 것은 소비자 주체자인 국민이란 사실을 놓칠 때에는 언제나 우리는 바보가 될 것이다. 노회찬 의원이 삼성에 패소한 것은 소비자주권 수준이 17897월 프랑스 대혁명 이전보다 못한 한국인의 수준이라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한국인들 중고등학교 나오면 사회시간에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프랑스혁명 정도 배울 것이나, 그것이 국내외 헌법의 기초라는 사실도 모르는 것 같다. 모르면 모를수록 그들이 많으면 사실 대신 이상한 논리가 사실로 된다. 그러는 이유는 언젠가는 그들도 타인의 머리 위에 올라갈 수 있다는 신화적 욕망이다. 바보 같으나 그렇게 될 확률은 너무 낮다는 점이다. 그렇게 영원히 SM 관계를 맺으면 된다. 대신 나는 SM5를 타고 출퇴근한다. 내 의지로 운전하고 싶기에 수동기어로 한다. 적어도 운전만큼은 내 마음대로 해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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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1-11 0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늘 주장하는 거지만, 삼성은 국민을 먹여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 아니죠.
삼성 나부랭이 하나 망한다고 국가가 망한다고 하면
그런 나라는 차라리 망하는 게 낫습니다. 국가가 기업 하나와 비스무리하다는 것은
국가로써 수치죠. 삼성 비판할 때마다 듣는 소리가
삼성 망해서 좋을 거 뭐 있냐 ? 고 묻는데
아니 비판하는 것이 왜 삼성 망하라는 저주처럼 들리는지 이해가안갑니다.
노조 인정하고, 몇 가지 개선해라, 라는 게 왜 망하라는 논조인지.....

만화애니비평 2014-01-11 10:31   좋아요 0 | URL
멍청한 것들의 생각은 자신들은 절대로 그렇게 도태되지 않을 것이란 희망적인 망상이죠. 결국 소모품이 되는 것은 자신이지 남이 된다는 것만 보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