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슨의 미궁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크림슨의 미궁에서 크림슨이란 것은 주인공 후지키가 납치되어 마치 게임 안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던 그 장소에 살던 새였다. 마치 피가 넘치듯이 흘러내리는 불길한 영토에 그 불길한 요소를 더해주는 크림슨이란 새는 온 몸이 핏빛처럼 감싸고 있었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알 수 없는 그곳, 정확한 위치는 남반구 오스트레일리아 인근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일본이 대략 북위가 30도 전후인데, 남반구까지 온 것이라면 상당히 멀리 이동했을 것이다. 그것도 수면제를 먹인 후에 배로 싣고 왔으니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걸려 섬에 온 것인가?

 

섬에 온 것은 마치 누군가 자신을 농락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실직자인 어느 증권회사의 유능한 직원이 한 순간에 회사에서 나가고, 집에서 아내에게 배신당하며, 결국 부랑자처럼 길거리에서 먹고 자고 해야 하던 운명을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살이에 대해 논하면 마치 게임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게이머는 우리를 직접적으로 움직이게 하지는 않으나 그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도록 만든다. 게임의 법칙에서 아무런 위험도 문제도 없는 자들은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나 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단지 그 게임에서 어떤 상황이 연출되고, 자신들이 파놓은 함정에 누군가 걸려 거기서 허우적대어 결국 최후에 어떤 비극으로 가는지가 궁금하다. 그래서 일부러 그런 환경에 집어넣고 일부로 손을 놓은 것만큼 비겁하고 치사한 것은 없다. 따라서 후지키는 그런 상황에 놓인 점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농락하던 자의 미소를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리얼비디오라는 스너프 무비는 분명 달콤하고도 재밌는 게임일 것이다. 게임을 감상하는 자들은 멀리서 비디오를 직접 실시간으로 보고 있거나 혹은 편집되어 주요한 내용과 클라이맥스를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서 낯선 섬에 꾸며놓은 무대는 너무 완벽한 세트장이었다. 개미탑처럼 보이는 기둥은 알고 보니 송신기가 있던 것이고, 언덕 위에는 카메라가 항상 게임에 투입된 사람들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다고 모든 카메라와 송신기가 대상자를 24시간 포착할 수 있던 것은 아니다. 게임 속에는 가끔 리얼함을 부여하기 위해 게임진행자를 넣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토모 아이, 그녀는 키가 크고 허리가 가늘고, 손발이 긴 여자다. 게다가 그림까지 잘 그리고 오묘한 미모를 가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한쪽 눈이 이상하고, 귀에 보청기를 달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여 눈 하나와 한쪽 귀로도 충분히 상황을 보고 들을 수 있는데도, 그녀의 용모는 처음부터 수상했다. 그녀는 과거에 괴로운 일이 있었고, 그것은 바로 약물투여라고 했다. 내키지 않은 그녀의 과거이야기, 하지만 상황은 그런 것을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각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게임기, 하지만 그 게임기 속에 부여된 정보는 마치 이 시련이 넘으면 상금이나 행운을 주어주는 것보다 차라리 이 위험의 위기에서 순간적인 그 자체에 대해 풀어가는 것만 제공한다.

 

게임에서 모인 사람은 총 9명, 이들은 중앙센터에 모여 각각의 게임기를 통해 갈 곳은 정한다. 점잖은 신사 2명은 동쪽으로, 왠지 거칠어 보이는 남자는 2명, 그리고 다른 남자 2명과 신경이 날카로운 여자 1명은 남쪽으로 가기로 했다. 여기서 후지키와 아이는 북쪽으로 가기로 했는데, 여기서부터 인생의 갈림길, 아니 삶과 죽음의 기로의 격리가 이루어진 것이다. 서쪽은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무기가 있는 곳이고, 서쪽은 서바이벌 키트로서 약품이나 생존에 필요한 도구 등이 있었고, 남쪽은 식량이고, 북쪽은 정보였다. 여러 가지 정황을 보면 가장 필요한 것은 식량일 것이고, 가장 최후에 얻을 것이 정보인지 모르나, 아이는 후지키보고 북쪽으로 가자고 한다.

 

어차피 남쪽은 정원이 찼기에 방법이 없고, 후지키는 북쪽에 아이와 같이 간 후에 정보를 얻고 나서 충격을 받는다. 이 게임 안이 결코 무사하게 넘을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서 말이다. 과연 그렇듯이 처음에 모두 다시 모여 미묘한 분위기로 넘어가고 있었으나, 곧 상황은 변했다. 처음에 서쪽 팀은 갑자기 난폭해지고, 남쪽 팀은 여자 1명이 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위기가 되었다. 남쪽으로 내려간 남자 2명이 맥주와 비스킷을 먹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인간의 지방을 과격하게 태우는 약과 각종 환각을 일으키는 호르몬제가 함유된 것이다.

 

인간의 호르몬이 강렬하게 작용하게 오감이 발달하고, 공격성의 증폭에 따른 동물성 지방에 대한 욕망은 인간 스스로 인간이기를 버리게 만들었다. 결국 남쪽에 간 여자는 공포와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이 되어 목이 베어진 채로 땅 위에 놓여 있었고, 손과 발은 뼈가 보일 정도로 깔끔하게 발라져 있었다. 남쪽에 간 2명의 남자가 식인귀가 되어 사람을 먹은 것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지방의 분해에 따른 영양소 보충과 호르몬 각성제에 따른 본능적 행위였으나 차츰 그것은 지방산화제와 호르몬이 아니라 본인들 스스로 필요하게 되었다.

 

게임은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제로섬으로 보였으나 최후에는 제로섬이 아니라 먹고 먹히는 사냥게임으로 변한 것이다. 결국 게임을 만든 자들은 서로 죽이는 배틀로얄보다 더 리얼한 인간사냥게임을 원한 것이다. 그 목적을 위해 사람을 속이고 납치하여 섬에 가둔 것도 모자라 그들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심지어 그 섬의 원주민이 있는데도 그 게임에 방해되는 이유로 총으로 저격하여 죽인다. 결국 남은 것은 괴물이 된 2명과 후지키와 아이, 이들은 괴물로 변한 두 명의 식인귀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 식육을 하게 되거나 혹은 야생 환경에 적응하면 시야가 밝아지고, 아드레날린의 증가로 교감신경이 자극하여 동공확대로 멀리 있거나 밤에도 잘 보인다는 점이다. 신경이 민감하게 되어 냄새나 코, 그리고 귀도 발달하여 1㎞ 넘게 있는 사람을 향해 무기를 발사하는 것이다. 식육에 대한 욕망이 결국 미쳐버려 결국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죽여야 하는 것이 되었으나, 그것은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서다. 그들은 그 섬에 살고 있는 여러 동물들에게 관심이 없던 것이다.

 

물론 최후에는 설치한 부비트랩과 V자 모양의 바위틈에 운 좋게 독사를 자극하여 괴물이 되어버린 남자를 뱀독으로 죽이고 만다. 하지만 후지키 역시 뱀독에 의해 쓰러진다. 게임의 특징은 주인공이 죽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특히 1인칭 시점보단 3인칭 시점이나 모든 이야기 중심이 후지키로 시작되기에 만약 후지키가 죽게 되면 게임 플레이어가 없어지기 때문에 엔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작품은 주인공이 절대 죽지 않는다는 전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보이자는 의미는 곧 식인이다. 식인이란 인간이 최후에 선택하는 식사의 방법이다. 고대 사회에서 식인의식은 더러 있었다. 식인의 의미는 단순히 인간을 먹고 싶은 인간의 심리만이 아니라, 그 심리를 하나의 의식적인 요소가 있었다. 가령 어느 부족은 자신의 가족이 죽으면 그 시체를 먹는데, 그 이유는 그 가족의 영혼이 자기에게 깃들게 한다는 믿음이었다. 혹은 다른 의미라면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포로나 희생양을 죽여 단백질을 보충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에는 생존이나 삶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식인이라면 크림슨의 미궁에서 보이는 살인이란 그저 인간의 동물적인 본능에 의해서다.

 

인간이 아무 것도 모른 채 고기를 먹는다면 인육이 매우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간만큼 가장 다양하게 먹는 생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족을 먹는 것은 큰 죄에 해당되고, 그것이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면 인간은 인간으로서 외적 내적 모습 모두 상실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그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내적 외적 요소는 식인을 했던 두 남자보다 그 상황을 즐기는 자들이다. 물론 세상에 이런 일을 꾸밀 인간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제로섬을 넘어 서로 먹고 먹히는 생사는 생물학적 사냥을 하는 이 공간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사냥을 하는 현실이 있기에 우리가 낯설고 무서워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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