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 암살사건
조셉 로지 감독, 리처드 버튼 외 출연 / 키노필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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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많이 감상하지 않은 나로서 영화배우에 대해 잘은 모른다. 물론 국내 배우 이름 몇몇이나 진짜 유명한 해외배우 이름 몇몇 정도는 기억한다. 그런데 1972년 리처드 버튼과 알랑 드롱이라는 유명한 배우가 동시에 영화에 나온 줄은 몰랐다. 영화 제목은 트로츠키 암살사건이다. 제작감독은 조셉 로지로 내가 알고 있는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 대신 그가 영국과 프랑스에서 영화를 제작한 점과 이번에 제작한 트로츠키 암살사건 역시 영국에 있을 때 제작한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영화를 만든 만큼 이번에 출연한 알랑 드롱의 경우, 그가 1960년 전후로 등장하여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남배우라는 점과 지금도 왕성히 영화감독으로 활동한 점에서 그가 30대 중후반에 들어서게 되면서 그의 연기관록이 이미 쌓은 만큼의 시기이니, 제목 그대로 트로츠키 암살사건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이 영화의 묘미는 트로츠키의 죽음에서 알랑 드롱이 연기한 킬러의 역할은 매우 고뇌와 두려움 그리고 허탈한 담담히 잘 드러난다.

 

 

트로츠키, 그는 레프 내지 레온 트로츠키라고 부른다.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조지 오웰의 문학소설인 “동물농장”이다. 소설과 더불어 영화로도 봤지만, 트로츠키라는 인물에 흥미가 가는 것은 그가 나폴레옹이라는 흉악한 돼지에 의해 무참히 정치적 숙청을 당하면서 동물농장의 미래를 불행한 폭풍우를 맞이하게 된다. 그때 나폴레옹에게 무참히 쫓겨난 스노볼이란 작은 돼지가 바로 트로츠키이다.

 

 

1905년 피의 일요일을 겪은 러시아와 그것에 대한 1917년 2월 혁명과 10월 혁명은 러시아의 무능한 차르 왕권과 봉건사회를 허물었다. 그리고 볼셰비키 혁명과 동시에 트로츠키는 레닌과 동시에 러시아혁명의 영웅으로 추대되고, 트로츠키는 그 탁월한 능력과 윤리적인 가치, 그리고 지식인으로서의 자질로서 많은 기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정치적으로 큰 장벽이 있었다. 그의 태생은 유태인이었다.

 

 

아무리 다 같이 무능한 봉건사회에 핍박받는 군중이라도 러시아란 나라에서는 러시아인이 있었으나, 유태인이었던 트로츠키로서는 민족의 벽에서 자신이 레닌 이후 최고 대표를 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처음부터 권력에 욕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트로츠키의 지식인적인 요소에 많은 사람들이 트로츠키주의자가 되었고, 이에 레닌이 지목한 6명 중에서 조셉 스탈린은 매우 난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는 군권을 조금씩 잡아가면서 정치적인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트로츠키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모든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세력에서 트로츠키 주변 인물들을 배제하고, 트로츠키의 의견에 대해서는 매우 합당하지 못한 것이라고 선동을 했다. 그게 레닌 사후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되면서 어느덧 1929년 트로츠키는 러시아에서 다른 국가로 추방당한다.

 

 

그것도 모자라 트로츠키라는 인물은 러시아혁명의 주요핵심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에 의해 그는 그렇지 못한 자라고 하였으며, 러시아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자 중에서 트로츠키와 같이 활동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들은 스탈린에 의해 숙청당한다. 무능한 차르왕권과 귀족들의 악정에 지친 국가를 프롤레타리아의 국가로 가자고 한 볼셰비키 혁명이 어느덧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것은 마치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요, 우리 전 인류에게 큰 선물로 다가온 임마누엘 칸트가 1789년 자신이 살던 옆 나라인 프랑스에서 큰 혁명이 일어나자 다른 행동을 보였다.

 

 

그가 늘 산책 가는 시간에 산책을 가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혁명에 대해 긍정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다. 체계가 전복되어도 다른 체계가 기존 체계를 따라 가는 것에서 혁명이 일어나도 근본의 변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어떻게 생각해보면 현대의 민주자유주의에서 그 시초는 프랑스혁명이 맞다.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목이 단두대 아래 나누어지면서 봉건사회의 종말을 고한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당시 프랑스혁명이 발발한 원인은 왕족과 귀족들의 사치로 인해 농민과 노동자들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고, 이게 하나의 분노로 표출되었다. 또 다른 계급인 부르주아는 아무리 능력과 재산이 있어도 태생적인 문제로 자기의 능력을 펼칠 수 없었다. 따라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는 서로 단합하여 왕족을 무너뜨렸다. 왕족이 무너져 세상이 변할 줄 알았으나 농민과 노동자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 왕족과 귀족 자리를 부르주아가 대신하여 차지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본다면 그 근본의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 체제가 변화되어도 원점이라는 점이다. 물론 칸트의 생각을 본다면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1830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을 토대로 꾸준히 봉건사회에서 공화제로 가고 있었다. 단지 그 과도기적인 기간 아래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이다. 역사란 항상 희생을 토대로 세우진 것일까?

 

 

어째든 그런 역사적인 변증법적인 현실을 보아도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을 조금씩 변화하는 듯하다. 그래도 인간의 권력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다. 그리고 그런 끝없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존재하는 만큼 그 권력에 대항하는 저항의식 역시 끝없이 등장한다. 그런 존재가 바로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사이었다. 트로츠키는 비록 자신이 러시아에서 추방되어도 저 멀리 남미 멕시코에 있어도 낙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1964년 마르크스가 만든 국제노동자협회(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의 정신을 유지하여 레닌이 세운 제3의 국제노동자협회, 국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Communist International)인 코민테른을 올바로 지속하기 위해 제4의 국제노동자협회를 창설한다. 그 이유는 트로츠키가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숙청한 스탈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스탈린이 소비에트 연방이란 공산주의국가가 나치즘과 파시즘으로 무장한 공산주의로 전략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한국과 분단선에서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으로 마찰을 빚는 북한이 바로 스탈린에 의해 노동자를 이름만 내걸고 노동자를 억압하는 독재국가로 된 것처럼 말이다.

 

 

트로츠키는 11년 동안 망명생활하면서 계속 스탈린과 투쟁한다. 영화에서 보면 뭔가 집필을 하고, 연설을 하여 녹음하여 방송하며, 스탈린에게 저항한다. 그러나 스탈린에겐 강력한 무기와 병력, 그리고 권력이 있었으나, 트로츠키에겐 큰 힘이 없었다. 그는 멕시코 어느 마을에서 정원이 달린 집에서 가축을 돌보고 식물도 재배하며, 밤에는 원고를 집필한다. 그의 무장력이 얼마나 없었으면, 트로츠키를 암살하려고 하는 라몬 메르카데르이 반트로츠키파를 이용하여 그를 살해하려고 할 때 트로츠키 일원들은 무력으로 대항할 수 없었다.

 

 

스탈린의 청부를 받은 그들에겐 위장경찰복과 손에는 기관소총이 들려 있었다. 운 좋게 트로츠키는 무사할 수 있었으나, 그의 충직한 부하 쉘던은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그에게 있는 것은 오로지 스탈린에 대한 저항심과 그 저항심과 더불어 지식인으로서 의무, 그런 그를 받쳐주는 아내 나타샤만이 존재했다. 트로츠키는 고립된 인물이었다. 영화에서 프랑스에서 지원금이 들어와야 하나, 1940년 8월 트로츠키가 살해되기 전 6월에 프랑스는 나치에 의해 점령당했다.

 

 

세계는 2차 세계대전의 광기와 그 광기 속에서 제국주의들의 욕망에 의해 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식민지 국가들은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그런 현상에서 트로츠키의 존재는 스탈린에게 큰 혹이었다. 그의 한마디가 세계의 지식인들과 학생들에게 큰 파장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런 트로츠키의 제거야 말로 스탈린의 최고 목적이었다. 당시 1929년에는 스탈린이 트로츠키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쉽게 죽이지 못했기에 실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스탈린의 자객에 의해 죽는다. 라몬 메르카데르의 손에 들린 피켈이 그의 뒷머리를 가격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트로츠키는 이미 죽음을 늘 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의 서랍에는 권총 하나가 있었으며, 스탈린이 항상 자기를 노리고 있음과 오랫동안의 망명과 저항으로 트로츠키는 병이 있었다. 밤에 일찍 잠을 들지 않고, 글을 읽고 쓰는 지식인으로서 살아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백발의 노년이라도 눈빛이 항상 살아있었다.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위해 투쟁했기 때문이다. 트로츠키의 인생을 본다면 끊임없는 투쟁과 혁명정신이다. 프랑스 위대한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 퐁티의 휴머니즘과 폭력에서 어떻게 보자면 진정한 인간주의적인 가치를 가진 사람이 트로츠키가 분명하나 그런 그도 폭력이라는 수단은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폭력을 부당한 폭력을 종언하기 위한 방법이었고, 스탈린과 스탈린 이전의 차르 왕권은 폭력을 지속하기 위한 폭력이었다.

 

 

그리고 그 폭력에 저항하던 그는 테러리즘이란 폭력 아래 숨을 거두고 만다. 그는 살아서도 혹은 죽어서도 스탈린에게 저항한 이유로 노동자의 적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심지어 반트로츠키파의 행동을 보면 그들 역시 노동자 내지 일반 서민인데도, 트로츠키를 노동자의 배신자로 보고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1990년 스탈린주의로 물든 소비에트 연방은 붕괴되고, 이제는 공화국으로 변모되어 폭력으로 유지되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없어졌다. 물론 본래부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폭력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런 이데올로기를 이용하여 권력유지에 힘쓰던 사람들이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체제라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와 더불어 트로츠키라는 인물이 다시 재조명되고, 마르크스-트로츠키주의도 다시 일어났다. 하지만 트로츠키주의자들은 100% 트로츠키를 옳다고 하지 않는다. 사실 마르크스가 1867년 자본이 나올 때 17년 정도 집필했다. 그런 이유가 마르크스가 살던 시절에 유럽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외교가 계속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그 사회가 바뀌고 거기에 따라 수정하는 것이 말이다. 트로츠키가 말한 것은 당시에 맞은 답이나 지금은 틀린 답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로츠키를 계속 알아보는 것은 그가 그냥 그대로 멈추는 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현실과 이상에 대해 대립하였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세계를 위해 현실을 본다는 것인가? 아니면 헤겔처럼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인가? 어지러운 세계전쟁 속에서 파시스트들은 다른 국가를 짓밟고, 노동자와 농민은 계속 착취당하고 살며, 스탈린은 파시스트에 대항하는 척, 노동자와 농민을 위하는 척하며 그들을 착취한 현실에서 누가 가장 현실적인가? 라몬 메르카데르는 자신과 같이 호흡하던 요원의 대화에서 현실적이지 못한 인물이 트로츠키라고 했다. 현실의 문제를 계속 제기하는 트로츠키가 비현실적이지 못했다는 말에 과연 당시 사람들은 이성적일까? 현실적일까? 라고 생각해보면 참 난감하다.

 

 

니체가 말했듯이 정치는 권력에 향한 의지라는 말처럼 인간의 권력이 있는 자에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틀린 말은 아니나 그 권력이 향하는 곳이 과연 옳고 그릇된 것을 판단해본다면 옳지 않은 것에 가고 있고, 게다가 그것이 하나의 도덕이라는 점에서 이것이 과연 제대로 된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가 당시 살아가던 사회의 도덕에 대해 깊이 유감을 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사회의 도덕에 대한 유감은 트로츠키가 살아가는 시대나 지금 내가 살아가던 시대 역시 유감적인 일들은 계속 일어나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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