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주인공 홀든, 그 녀석은 매우 어리고 어린 마음의 소유자이다. 그래서인지 홀든이란 친구는 항상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기를 바랄 수가 없다. 언제나 자기 기분이 가는대로 행동하는 홀든이다. 그러나 홀든이란 친구에 대해 나는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가 왜 그렇게 우울한 기분으로 살아가느냐 말이다.

 

이 소설은 홀든이 퇴학처분을 받아 자신이 다니고 있는 팬시 고등학교에서 나와 자기 집까지 가는 귀로라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적은 것이다. 홀든은 펜싱부 부장인 주제에 펜싱부 일에 집중하지 않고, 지하철을 타는 도중에 실수하여 펜싱도구까지 분실한다. 그런 와중에도 붉은 가죽모자를 1달러를 지불하고 사는 기막힌 행동도 보인다.

 

그는 도대체가 앞뒤와 좌우를 구분하고 판단하여 정상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런다고 그는 아예 지각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지각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어른도 되지 않았는데, 어른인 척하는 청소년의 방황하는 모습이다. 아마 그의 비행적인 요소나 반항적인 요소들은 분명 많은 억압들이 있었을 것이다.

 

못된 장난이나 담배와 술에 빠지고, 이기지 못할 녀석들에게 싸움을 걸어 맞는 홀든이 왜 그렇게도 허무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의 가정사를 보니 그의 마음이 공감이 간다. 자신이 매우 좋아하던 남동생 앨리, 앨리는 매우 머리가 붉은 남자아이였다. 자신보다 어린 동생이나 홀든은 자신의 남동생 앨리가 똑똑하고 친절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동생이었다.

 

그런데 그렇게도 착하고 좋은 동생이 3년 전에 백혈병으로 죽고 만다. 앨리의 죽음에 대해 홀든은 아직까지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동생의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동생이 죽었다는 그 분노와 우울이 폭발하여 미친 듯이 자신의 오른손으로 주차되어 있던 자동차들의 유리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쳐댔기 때문이다.

 

결국 어린 소년이 저 단단하면서도 날카로운 차량유리를 그대로 돌진했으니 어떻게 되었을까? 홀든은 지금도 오른손을 꽉 쥐어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다쳤다. 오른손이 피로 범벅이 되었다. 그런데도 아프다는 자각이나 제대로 했을까나? 아마 못했을 것이다. 홀든의 동생이 죽은 것 자체가 자신의 모든 오감을 잡아먹었으니 말이다.

 

그의 오감을 잡아먹어버린 동생의 죽음에서 홀든은 동생이 죽은 것은 알았으나, 죽었다고 가슴깊이 오는 것은 아니었다. 묘에 참배할 때 홀든은 다른 식구들은 모두 거기에 다가가도 자신은 다가가지 않았다. 사랑하는 동생이 저 차갑고 딱딱한 땅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이유에서 말이다. 그는 동신이 육체와 달리 영혼이 어디론가 있을 것이라 했다. 그는 종교를 제대로 믿지 않았다. 거의 무신론자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래도 동생의 유령이 다시 그를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집에 와서 거의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추운 거리를 해매고 있을 때 그는 환각에 반 쯤 빠진다. 그의 환각에서 죽은 동생과 대화하는 홀든을 볼 수 있다. 그리운 동생, 자신의 슬픔과 좌절에서 홀든은 오로지 동생만이 자신의 인생을 구원했다. 다행히도 홀든에게 동생은 사랑스럽고 똑똑한 앨리만 아니었다. 아주 귀엽고 똑똑하고 고집스러운 여동생 피비가 있었다.

 

홀든은 집에 오기까지 기숙사에서 기숙사 동료인 스트라드레이터와 싸우고, 택시기사와 대화하면서 이상한 녀석으로 취급당하고,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은 학교 녀석의 어머니를 만나 거짓말까지 했다. 그것도 모자라 아주 예쁜 아가씨인 샐리를 만나 그녀를 오히려 화를 내게 만들고, 호텔에서는 호텔 벨보이가 부른 창녀에게 성적행위 대신 이상한 말만 골라서 하다가 바보 취급당한다.

 

게다가 5달러만 그칠 줄 알았는데, 결국 15달러까지 주게 되었다. 복부에 강한 펀치까지 맞고서 말이다. 집에 오는 여로가 아주 괴롭고 재미없고 짜증나던 홀든에게 훨씬 더 비참한 기분을 들게 만든 것이다. 그런 주제에 나이가 어려 보일까봐 일부러 술을 시키고 담배도 피고 의자에 앉아 있다가 서있기도 하였다. 하다못해 주변 사람에게 자신의 머리를 들이댄다. 자기 머리색이 하얀 색이라 나는 좀 나이를 먹었소, 그러니 내 말을 똑똑히 들어주시오란 말이다.

 

홀든의 행동들은 아직 철이 덜 든 중고등학생과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인생에 큰 결핍이 있었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남동생 앨리의 죽음, 그 와중에 세상 모든 사람은 자기를 지배할 수 없어도 유일한 지배자인 피비가 말이다. 아마도 그의 우울은 동생의 죽음과 연계가 깊은 듯하다.

 

그는 교장선생이나 주변 어른들의 행동에 못마땅했다. 아니 교장이나 주변 어른들의 행동과 비슷해지는 학생들도 싫어했다. 그는 가난하고 구색이 좋지 못한 학부모에게 변기에 물을 흘러 보내듯이 지나가는 교장이 혐오스러웠고, 그런 교장에게 아부를 맞추는 선생 역시 구역질 날 정도로 보기 싫어했다.

 

홀든의 눈에는 세상 모든 것이 머리가 빈 놈들의 세상이고, 그런 빈 놈들 사이에 멍청한 여자들과 같이 어울리는 지겨운 세상이었다. 게다가 멍청한 인간들은 모두 허풍과 가식으로 물들여져 있어서 홀든은 매일 구역질이 나서 당장이라도 숨이 막힐 것 같다는 생각을 쉬지 않고 한 것이다. 수요일에 집에 가는 것을 왜 퇴학처분 받는 당일부터 했겠냐는 말이다.

 

그가 유일하게 제대로 된 인간에 대해 말할 때도 당황스러웠다.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사람 중에는 대하기 편하고 좋은 선생인 앤톨리니(홀든은 그가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 즉 변태로 여겼다)와 그 앤톨리니 선생이 자비를 베풀어주었던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제임스 캐슬, 평소에 말도 하지 않고 조용하고, 게다가 학교에서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녀석이다.

 

그런데 그 제임스가 학교에서 홀든도 마음에 들지 않은 녀석에 대해 험담하다가 그 녀석과 그 녀석의 친구에게 집단 구타당하는 도중 창밖으로 뛰어내려 낙사하였다. 아마 홀든이 이 작품 초반에 스트라드레이터와 싸울 때, 그는 분명 그 거구의 덩치에게 이길 수 없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홀든은 덤벼들었고, 얼굴에는 피범벅이 되었다. 자기 역시 왜소하고 못났지만 자신에 대해 끝까지 지키려한 제임스에게 큰 인상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런다고 하여 홀든은 죽은 제임스가 아니다. 단지 학교가 싫었고, 학교와 주변에 있는 인간들이 싫었다. 특히 어른들이 매우 싫어했다. 어린 시절 친구 제인의 양아버지에 대한 기억에서 그가 어른사회에 대한 극단적인 반항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순수함을 좋아했다. 자신의 행동들은 순수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무엇인가 자신의 마음을 붙들어 줄 수 있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인지 홀든은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동생 피비와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노래를 한다.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나다면”라는 로버트 번스가 쓴 시에서 “호밀밭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는다면”이란 노래를 피비에게 말하면서 자신을 그렇게 되고 싶다고 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말이다. 그는 호밀밭에서 그저 지키고 있으면서 주변에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처럼 그는 아이들을 지키는 그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것은 결국 죽은 동생인 앨리, 덩치 매우 좋고 여자를 제대로 밝히는 스트라드레이터부터 제인을 보호하고 싶다는 것이다. 제인이 예전에 양아버지에게 그렇게 학대당하는데, 이제 그 돼지 같은 녀석에게 농락당하는 것을 홀든은 억제할 수 없었고, 결국 낙사한 제임스처럼 무차별 공격하고 무차별로 얻어맞은 것이다. 그런 우울함이 더했는지, 홀든은 자신이 동부에서 살기를 거부했다.

 

아주 따뜻하고 아는 자들도 없는 서부에서 그저 벙어리처럼 살며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동생에게 이별의 편지를 적고, 멀리 떠나려 했다. 그런데 동생이 큰 짐을 들고 나왔다. 만약 홀든이 떠나면 사랑스런 여동생 피비도 같이 갈 것이라고 말이다. 홀든은 순간 앞이 깜깜했다. 자신은 자신만이 절벽으로 떨어지려고 했는데, 자신은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어린 영혼을 보호하려 했는데, 그 어린 영혼이 자신과 같이 절벽에 동행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홀든은 어린 동생이 그렇게 강하게 나오자 동생의 마음을 달래고, 동생을 위해 회전목마를 타는 것까지 지켜본다. 홀든이 바라보는 회전목마 위의 피비는 세상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천사와 같음이라. 그리고 홀든은 회전목마 타기 전에 피비와 약속한 것처럼 집을 떠나지 않고, 단지 자기 재활에 들어간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독백한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이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 것뿐, 이를테면, 스트라드레이터나 애클리 같은 녀석들까지도, 모리스 자식도 그립다. 정말 웃긴 일이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그는 자기가 정말 싫어하는 녀석들의 이름을 거론했다. 그들이 싫은데도 그들의 이름을 들으면 그리워지다니, 홀든은 자기의 질풍노도와 같은 시간들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토록 혐오스럽게 한 그들을 생각하고 있으니깐? 아마 홀든은 그런 혐오스럽지만 세상이란 큰 세계에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그는 호밀밭의 파수꾼으로서 역할은 단단히 소화했다. 피비를 바라보는 한 다정한 오빠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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