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해석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8
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이환 옮김 / 돋을새김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문을 전에 읽어보았다. 그런 다음에 그의 유명한 저서 중에 하나인 꿈의 해석을 오늘까지 읽어 보았다. 프로이트라고 한다면 현대사회에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매우 친숙하고 유명한 인물이다. 심리학이라든지 혹은 정신분석학이라든지 말이다. 그런 프로이트에 대해 사람들은 많이 알고 있어도 막상 그가 무슨 생각으로 책을 저술하고 거기에 담론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보려고 하지는 않은듯 하다.

 

물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내지 심리학 영역은 솔직히 말하여 어려운 분야이다. 인간이 자기 스스로도 알기 어려운데, 거기에 타인에 대해 알려고 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한 무의식적인 행동은 감지할 수 없을지 몰라도, 타인에 대한 무의식적 행동들은 얼마든지 관찰하고 엿보고 생각하여 재현해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인간을 아는 것에 있어서 언제나 의식이 있는 이성적인 존재도 중요하다면 이성의 영역에서 벗어난 무의식 세계 역시 중요하다. 프로이트 꿈의 해석은 바로 이런 인간의 이성 체계에서 벗어난 무의식 세계에서 인간을 알려고 했다. 정신분석은 결국 인간의 이성을 분석하기보다는 인간의 이성보다 깊은 심연에 존재한 근원에 다가가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세계에 혹은 타인들과 세계에 접촉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면서 인간은 자신이 바라는 일이나 혹은 바라지 않은 일들까지 당한다. 사회구조가 좀 더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규약과 제약 그리고 사회적으로 넓은 구조가 아닌 일상적으로 사소한 가족 내지 친척, 친구 단위의 커뮤니티에서도 인간은 불안함 심리를 감출 수가 없다.

 

그것이 결국 인간에게 하나의 큰 장애물 내지 유령처럼 다가와 나이가 이미 차서 어른이 되어도 아이들처럼 행동하는 꿈을 꾸게 된다. 꿈은 여러 가지를 인간에게 안겨준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대신 반영하여 쾌락과 만족을 대체하거나, 혹은 오늘 내지 어제 즐기지 못한 욕망을 다른 방식으로 표출하여 대체하는 것도 있으며, 어린 시절 내지 멀지 않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까지 재현한다.

 

단지 꿈은 있는 그대로를 반영하지 않는다. 내가 30대의 나이에 10대의 꿈을 꾼다고 하자. 그때의 꿈은 10대의 눈에 보인 내가 보는 꿈을 30대에 보는 것이다. 30대의 어른이 10대의 어린아이 사고로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꿈은 아마 어떤 특수한 계기나 사건이 있을 시기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책에서는 이런 주제를 다루었다. 어린 시절의 꿈을 꾼 어느 사람이 자신의 형제에 대해 설명한 꿈이다. 그 꿈에서 자신은 넓은 공간에 있었는데, 꿈의 소유자가 바라본 꿈에서 그의 형제(형 내지 누나)들이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이란 것이다.

 

그 의미는 자신의 형제들이 모두 천사가 되면 좋겠다는 의미인데, 그것은 곧 인간은 죽으면 하늘나라로 간다는 종교적인 관념에 의해서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천사의 날개를 달고 올라가는 의미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아마 당시 그 꿈을 가진 소유자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다른 형제들이 없어지길 바란 것이다. 조금 죽음의 의미를 돌이켜본다면 우리가 일방적으로 생각하는 죽음의 관념과 달리 어린 아이들이 생각하는 죽음은 조금 다른 의미라는 점이다.

 

그런 꿈들을 아주 어릴 적에도 꾸었지만, 다시 어른이 되고도 꿀 때도 있다. 단지 꿈의 의미가 알 수 없거나, 그때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하지만 꿈을 그렇게 꾸어도 나쁜 것이 아니라고 프로이트는 이야기한다. 오히려 인간의 숨은 무의식적인 세계와 인간의 욕망이 그대로 반영되어 인간에게 보이지는 꿈 자체가 자연스러운 것이다.

 

프로이트는 그런 인간에게 이성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인간은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 욕망이란 이름 뒤에는 무의식이란 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인간 역사상 3가지 패배 중에서 1가지가 프로이트라고 한다. 인간을 동물의 영역으로 이끈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가지는 억지스러운 이성은 오히려 인간을 병들게 한다.

 

자신이 병들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그것을 부정하고, 그것을 밝히는 것 자체를 부정하여 배타적으로 대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 스스로 병들게 한 것이다. 자신의 오류나 추악한 부분을 인정하는 것이 인간 스스로에게 마음이 편하나 그것을 인정하지 않은 논리답지 못한 논리라는 커다란 오류 속에 갇혀 마음에 더욱 더 큰 억압을 누르게 된 것이다.

 

프로이트는 바로 이런 점들을 뛰어 넘으려고 한 것이다. 그의 진정한 인간에 대한 이해는 추후 인간에 대한 다양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내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프로이트 도서 중에 토템과 터부가 있다. 이 서적은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인류학에 매우 중요한 도서가 되었다. 프로이트 사망 이후 프랑스에서 구조주의 인류학으로 세계적으로 큰 학문을 이룩한 끌로드 레비 스트로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사실 구조주의에서 중요한 기초자들은 페르디낭 드 소쉬르,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니체,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트이니깐 말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을 이성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인간이 과연 이성적일 수 있을까? 인간은 자기의 비판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더구나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말이다. 그것이 결국 인간 본연의 무의식까지 부정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은 인간 스스로에게 자신이 인간임을 부정하는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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