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
발터 벤야민 지음, 김남시 옮김 / 그린비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발터 벤야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발터 베야민의 문예이론(文藝理論)이란 서적을 통해 그의 문장력을 알게 되었다. 특히나 발터 베야민의 문예이론 중에서 각 소설가의 대한 문학비평은 매우 섬세하고 깊이가 보였으며, 그가 전개하는 영상문화가 꽃피우던 20세기 초반 유럽의 사진과 영화에 대해 글을 적을 때에 그의 관찰력에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까지 자세히 관찰하여 서술하였다는 사실이 실로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신 책의 페이지에 비하여 글자크기(도서출판사 민음사-이데아총서9)가 너무 작다는 것이 조금 못내 아쉬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적당한 페이지에 글자크기와 자간까지 알맞은 책을 찾았다. 그 서적은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이다. 내가 이 책을 빌리려 했던 이유는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에서 첫 번째 장을 맡은 자신의 자서전 부분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그의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의 일화를 하나의 수필처럼 풀어가는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깊은 감수성과 관찰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미 실감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그의 분석적이고 비평적인 글보다는 그의 개인적인 인간상에 관심이 많았다. 게다가 그의 비평적이고 분석적인 글을 읽는다는 사실은 그의 분석적이고 비평적인 대상이 되는 많은 서적까지 봐야하는 점에서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모스크바 일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의 필체를 이미 보았기 때문에 이 책에서의 발터 벤야민이란 인간적 냄새가 물씬 풍겨져 나왔다.

그는 매우 감수성이 예민하고 관찰력이 뛰어나고, 마음먹은 일을 위해 아주 끝까지 해내고 마는 타입이었다. 게다가 사람이 마음도 약하고 주변의 분위기에도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그의 일기 하나하나마다 적어 내려가는 모스크바에 있었던 일이란 매우 상세히 혹은 시적인 영감으로 채워져 있다.

이 책은 독일어판 서문처럼 발터 벤야민이 1926년 12월 6일부터 1927년 1월말까지 모스크바에 머물던 적어진 일기로서 이 일기를 본다면 단순한 일기라기 보기에는 너무 시적이고, 그런다고 에세이로 보기에는 너무 진솔하다. 여러 가지 상황과 사건 그리고 많은 인물들의 만남에서 발터 벤야민이 느낀 러시아의 모스크바는 자신이 살고 있던 독일 베를린에서 느낀 감흥이 상당히 다를 것이다.

그의 글에서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수도라고 하여도 뭔가 도시적인 색 다른 맛이 베여 있었다. 길가다 보면 많은 인파들이 거리로 나와 장사를 한다. 먹는 것, 장난감, 겉옷과 속옷, 각종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다양한 물건들 말이다. 여기는 영하가 25℃에 육박하는 추운 곳이다. 눈이 내려 거리를 수북하게 쌓일 정도로 추운 곳이다. 그러나 저 많은 거리의 상인들로 마치 여기가 추운 겨울보다는 살아 숨쉬는 봄과 같은 모습처럼 비추어졌다.

여기에 비해 러시아보다 덜 추운 독일 베를린은 거리에 사람이 없고 그저 빈 공간만 채울 뿐이다. 러시아에 오게 되면서 서유럽 세계가 다른 관점으로 보인다고 할까나?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에서 모스크바가 그에게 주는 인상이란 매우 신기한 장소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신기하다는 것은 낯설고 접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는 유태계 독일인이므로 독일어를 할 줄 알았을 것이고, 프랑스어도 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스크바에서는 안타깝게도 독일어와 프랑스어가 아닌 러시아어로 대화를 나눈다. 그가 러시아어를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 그의 일기에서 보이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매우 다양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저녁마다 러시아의 문화를 즐기기 위해 찾아간 연극과 영화관에 들리는 목소리는 모두 러시아어다. 그의 눈으로만 통해서는 배우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결국 벤야민의 옆에는 통역사가 붙어 있는 것을 종종 읽혀졌으나 그래도 큰 도움은 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는 금방 싫증이 나거나 지쳤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러시아의 공간에서 많은 것을 얻으려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벤야민의 행동에서 가장 인상 깊은 그가 인형을 매우 좋아하여 수집하려는 모습이다. 특히 러시아를 떠나기 전에 인형을 쌓아둔 창고에서 그 옆의 동료와 함께 인형을 들고 가는데 각각 2박스를 품에 안고 가는 문구에서 벤야민의 독특한 수집가적 입장이 인상깊었다. 게다가 그는 일기 내내 인형을 사거나 관찰하거나 찾고 싶은 모습이 종종 나온다.

사소하고 작은 것에 치밀한 관찰을 보이는 만큼 그런 행동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런 벤야민의 행동과 함께 모스크바 일기에서 중요한 내용은 어느 2인물에 대한 만남이다. 1명은 벤야민이 매우 사랑하였던 여성 아샤 라시스와 그리고 라이히의 관계였다. 아샤는 예전에 벤야민이 1924년 이탈리아 어느 마을에서 만났고, 그때 아샤의 파트너인 라이히를 같이 만났다. 벤야민은 아샤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녀와 대화를 위해 2주간이나 기다렸다는 일화에 벤야민의 집착이 과연 범상하지 않음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벤야민이 모스크바로 갔을 때 그가 흠모한 여인 아샤는 벤야민과의 관계에서 좋은 친구로만 있을 수는 없었다. 벤야민에게 다정하기도 화를 내기도 무심하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벤야민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은 것처럼 일기에 묘사했다. 심지어 그의 마음에서는 아샤와의 관계로 모스크바 생활 자체가 덫에 걸리는 듯하였다. 그런 와중에 아샤의 파트너로 만난 라이히와의 관계 역시 순탄치 않았다.

라이히는 심장이 좋지 않았는지 심장마비 증세를 일으켰으며, 라이히의 발작 이전에 아샤 역시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원에 계속 머물고 있었다. 벤야민이 러시아에 건너간 시기는 매우 혹독하고 추운 겨울이다니 건강이 좋지 못한 벤야민의 친구 2사람과의 만남은 그렇게 순탄할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벤야민은 시간만 되면 2사람과 같이 모스크바를 돌아다녔다.

알 수 없는 러시아로 가득한 연극무대와 영화관, 술집, 찻집, 빵집 등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이 2사람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같이 박물관과 성당, 교회, 세관에도 같이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많고 많은 사람들을 벤야민이 만나게 되었으며, 그들은 모두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과 관련 있던 인물이었다. 특히 그중에서 트로츠키의 여동생을 만났다는 기록에서 나는 조금 놀랐다. 트로츠키는 추후 소비에트 연방이 어긋난 국가로 만들게 해버린 스탈린에 의해 숙청된 인물이다.

그는 레닌 사망 후에 러시아에서 유망한 사상가이었다. 때마침 오늘 동물농장이란 영화를 보아서인지 그런지 동물농장에 등장한 이상적인 사상가 돼지 스노즈 볼이 생각난다. 어째든 벤야민은 여러 인물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볼셰비키 혁명에 가담한 사람이란 점과 또한 이제는 그들이 당시 혁명시기의 그들처럼 젊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시간의 흐름에서 그들이 무너뜨린 공간에서 그들은 다시 나라를 세워 일으켜야 했다.

그런 혁명이 10년 후의 러시아는 많은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던 공간이었다. 거리가 어쩌나 북적이는지 달리는 전차 안에 사람들이 얼마나 북적이는지 많은 사람들이 살아 숨 쉬는 것을 벤야민의 글로서 충분히 느꼈다. 그런 공간에서 러시아의 문학과 예술은 계속 활발하게 보여주었다. 예전에 문학비평 방법 중에서 러시아형식주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문학도가 아닌지라 그것에 대한 자세한 깊이와 의미는 잘 모른다. 하지만 러시아란 단어 뒤에 형식주의가 붙은 이상 러시아라는 공간이 얼마나 문학과 예술로 충만했는가는 벤야민의 일기에서도 충실하게 보여준다.

위에 적은 내용처럼 벤야민이 저녁마다 연극과 영화를 보고 박물관을 방문하듯이 그곳에는 많은 문학가들과 예술가들이 활동했다. 게다가 당원은 1달 월급이 250루블만 고정되어 있었고 나머지 수입원은 문학 활동으로 통해 추가하는 점에서 신기했다. 게다가 정부관료 대부분 사람들이 지식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도 무시하지 못할 점이다. 연극관인지 영화관인지 박물관인지 조금 기억이 묘연하나 벤야민이 그곳에 방문할 때 그곳의 관장이 예전에 군인이었다. 하지만 그 군인은 군인이 되기 전에 문학가란 점이 조금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벤야민이 찾아간 모스크바는 자신의 친구와 길가의 풍경, 자기가 찾으려 했던 즐거움만이 아니라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 그리고 당시 유럽사회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지만 벤야민은 굳이 이런 내용을 사상적으로 풀어나가면서 적지 않았다. 단지 개인적인 관점에서 풀어갈 뿐이다. 하지만 벤야민의 정치적인 관념이 여기서도 보인다. 그는 분명 고대 유대교적인 신비주의와 더불어 마르크스주의를 넘나든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는 본래 부유한 집안에 태어난 인물이라 모든 것을 프롤레타리아 쪽으로 보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부르주아적인 부분도 인정했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보이는 특히 벤야민이 좋아하던 아샤에게 보이는 부분은 프롤레타리아적인 요소였다. 벤야민에겐 어느 쪽이든 그것이 자신에게 어떻게 보이고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중요한 것 같았다. 그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를 본다면 모스크바라는 곳이 사람이 활발하게 살아가나, 한편으로 외부 세계와 차단된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벤야민에게 이 모스크바의 아름다움이란 잊을 수 없듯이 지금 나의 눈으로 그가 보고 느낀 모스크바를 속삭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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