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와사랑.데미안 - 한권의명작 7
문화광장 / 1993년 6월
평점 :
품절


지와 사랑을 읽으면서 나는 이 작품의 주인공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관계를 주시하였다. 그러나 사실 이 작품은 이 두 사람의 관계를 나타나기 보다는 골드문트의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모든 것은 골드문트로 돌아가고 있었으며, 모든 갈등과 환희, 슬픔, 기쁨, 그리고 초월 역시 골드문트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나르치스는 그저 골드문트와 상반되는 개념의 인간이었다. 그는 매우 똑똑하고 냉정하였으며, 게다가 현명하였다. 그는 완벽한 이성주의자였고 그런 완벽함에 따라 수도원에서 아직 20살 정도의 나이였으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임무를 맡았다. 이때 그 완벽한 이상의 세계를 닮아가던 나르치스에게 골드문트가 수도원으로 온 것이다.

골드문트는 매우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하얀 얼굴에 금발의 머릿결 그리고 그런 인상을 가져서인지 골드문트의 감수성과 깊은 심연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 오히려 그와 친분을 나누려 하면 할수록 골드문트는 주변 학생들과 멀어지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주변 학생들에게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완벽한 이성과 이성의 세계를 원하는 수도원의 원장, 신부님, 그리고 위대한 학자 나르치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골드문트는 사실 완벽할 정도로 감성적인 인간이었다. 왜? 수도원의 높은 이상을 가진 그들은 골드문트를 아끼고 있었을까? 그리고 나르치스라는 고고한 인품을 소유한 수도자는 이 골드문트에게 사랑을 베풀었을까? 그것은 아마 진리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골드문트는 어느 여인과의 격렬한 육체적 사랑에 따라 수도원에 나가고 많고 많은 여행과 모험 속에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온다. 수도원에 귀향하면서 골드문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인생경험을 살려 위대한 예술을 탄생시킨다.

그 예술은 매우 이상적이고 이성적인 가치관을 지닌 나르치스를 감동시킨다. 아니 나르치스만이 아닌 다른 수도원 사람들에게 크나큰 마음의 파동을 전달한다. 그러나 분명 나르치스는 오로지 수도원이란 세계에 머물던 인간이었고,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와 달리 그 사회에서 모든 공간을 누빈 외로운 나그네와 같았다. 그런데도 왜 이들의 관계에서 진리의 길을 같이 볼 수 있었던 것일까?

사실 남성적인 이성세계가 중시되던 그 공간에서도 이성에 의해 배제되던 감성과 자연, 그리고 자연과 동일하게 보이는 그 어머니라는 이름에서도 진리라는 거대한 장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골드문트가 왜 그토록 이성의 세계에 들어서지 못했을까? 나르치스와 달리 골드문트는 매우 섬세한 성격을 가진 사나이였다. 그는 언제나 작은 것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미친 광기가 속한 세계를 보면서 분노하고 울기도 하고 심지어 거기에 빠져 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골드문트를 잡아두지 않았다. 골드문트는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을 받을망정 머물지 못하였다. 그의 매력은 너무 거대하여 많은 여성들의 육체적 사랑과 감성적 사랑을 만족시켜줄 뿐이지 그의 안정된 공간에 다가가지 않았다. 그런 외로움을 깊이 슬퍼하던 골드문트이었으나 이제는 오히려 외로움을 알고 그것을 털어버린다. 페스트로 인해 죽음이 가득한 마을에서 어느 아름다운 처녀를 구해 옆에 있던 겁쟁이 방랑자와 자연의 세계로 간다. 거기서 골드문트는 그 처녀에게 자신의 옆에 머물기보다는 페스트가 가라앉으면 다시 원래의 곳으로 가라고 했다.

그녀는 싫다고 했지만, 골드문트는 설득시킨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 아름다운 처녀는 매우 수척한 모습으로 죽어간다. 어느 부랑자가 그녀를 능욕하다가 그 부랑자의 음산한 치아가 그녀의 젖가슴 주변에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골드문트는 부랑자의 목을 비틀어 버려 이 세상과 하직하게 하였으며, 그 시체 역시 그냥 자연으로 보냈다. 그렇게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버리게 한 것이다. 그런 노력에도 골드문트는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부랑자의 이빨자국에 페스트가 감염된 것이다. 골드문트는 부랑자의 능욕에서 구출해주었으나 결국 페스트로 죽어간 그녀를 위해 그녀가 숨결을 듣지 못할 그 마지막까지 지켜주었다,

최후의 숨소리마저 멈추자 골드문트는 매우 슬퍼하며 그녀가 누운 오두막에 붉은 불씨를 던져 붉은 장미와 같은 불꽃이 춤추도록 하였다. 골드문트는 정말 많은 여행을 했다. 여자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면서 죽음의 위기에 빠지고,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또한 불쌍한 유태인 여성을 만나 그녀에게 미움도 받았다. 사랑만을 원한 것은 아니다. 길가면서 페스트로 죽은 가족과 페스트로 인해 땅에 매장조차 허락되지 않은 그들을 위해 삽으로 그들의 얼굴에 한줌의 흙을 계속 뿌려 주었다.

골드문트는 생명이 살아가는 대지위에 누비고 또한 생명이 꺼져 사라지는 순간 그들을 대지로 보내주었다. 그런 골드문트이었기에 어느 산부의 해산에서 위대한 생명의 탄생을 보았고 한편으로 자신의 생명을 노리고 아름다운 처녀의 순정을 노린 두 명의 사나이를 죽임으로 생명의 허무함도 맛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골드문트 이 모든 감정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 새겨 그가 위대한 예술가로 변모하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계속된 여행에서 어느 수도원에 세워진 마리아상을 보며 예술가의 길에 접어든 골드문트는 그 예술의 경지에 올라가면서 자신의 감정을 채우고 있던 그 모든 기억, 숨결, 눈물, 기쁨, 우울을 폭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많은 경험과 인생의 모험 속에 골드문트는 자신이 그토록 동경의 대상이었던 나르치스를 만난다. 사실 예술가로 들어서면서 그가 만든 예술작품은 요한의 상인데, 요한은 사실 나르치스를 생각하면서 만든 것이다.

그의 완벽한 감성이 최고의 이성을 지닌 나르치스 신부를 만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만남을 아주 극적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마을의 무서운 권력가의 집에 들어가 그의 애첩과 사랑을 나눈 골드문트, 그는 권력가의 감시에 걸려 결국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져갈 운명이었다. 하지만 이때 나르치스가 때마침 머물러 있어 그의 목숨을 자유와 예술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둘은 예전의 스승과 제자보다는 친구로서 대등한 사이로 머문다. 그리고 오랫동안 골드문트는 나르치스가 있는 수도원에서 예술가의 혼을 불태운다. 그의 예술혼은 어머니의 그리움과 나르치스에 대한 동경심이 어우러져 위대한 예술작품이 나온다. 이런 예술가의 혼으로 이루어진 감성의 예술품이 아이러니하게도 완벽한 이성을 지닌 나르치스를 감동시킨다. 아니 이제는 나르치스가 골드문트가 없으면 못 견딜 외로움과 허무함에 빠진 것이다. 골드문트는 오랫동안 수도원에 머물었지만, 그가 혼을 담은 작품을 만들면 다시 수도원을 나와 여행을 하려했다. 그의 작품은 그의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부상을 당하고 병에 걸렸으며, 오래 연명할 수 없었다. 그 마지막 여행은 결국 그에겐 죽음이라는 어머니라는 자연의 품으로 갈 수 있게 한 여행이었다. 골드문트의 여행을 기다리던 나르치스에겐 아마 그때만큼 괴롭고 외로운 시간이 없을 것이다.

결국 나르치스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골드문트이나, 그의 가슴에 새겨진 것은 기쁨보다는 슬픔이었다. 골드문트의 귀향은 결국 골드문트의 유언을 들은 셈이었다. 평생 신을 위해 이성을 위해 학자적으로 살아온 나르치스가 어떻게 감성과 경험에 살아온 골드문트와 이토록 깊은 교감과 유대감을 나눌 수 있을까? 진리라는 세계에서 이성과 감성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어도 본질은 진리를 향하고 있다. 하지만 두 가지 세계가 만나는 접점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오랜 여정처럼 기나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듯 소설은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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