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록 고려대학교 청소년문학 시리즈 6
하인리히 하이네 지음, 김재혁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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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感性)적이고 따뜻한 영혼(靈魂)을 가진 하인리히 하이네를 생각하면 조금 나는 의아한 기분이 든다. 나는 하인리히 하이네라는 시인(詩人)을 다른 경로로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맑스·엥겔스 평전에서 맨 뒤에 나오는 아주 불같이 일으키는 분노와 매우 슬픈 우울(憂鬱)함과 비참(悲慘)한, 그리고 절망(絶望)의 시로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직조공의 노래, 정말 이 시는 정말 그 분노가 하늘을 뚫고 슬픔을 바다보다 깊고 깊었다. 그들의 비극(悲劇)과 절망은 우주(宇宙)의 암흑(暗黑)과 같이 넓게 팽창하였으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런 우울함과 비참함을 해결할 수 없었다. 단지 저주스러운 베를 짜는 기계에 음율(音律)에 맞추어 이 세상을 저주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 “회상”이란 서적을 들었을 때 바로 그런 19C 독일과 유럽의 이야기를 적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 내용을 열어 보았을 때는 그의 인간적인 면과 그리고 그가 살아온 인생에서 옆에 있던 사람들에 대해 적은 글이다. 그렇다, 이것은 하인리히 하이네가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로 통해 비추어지는 회고록인 것이다.

그렇지만 단순한 회고록은 아닌 듯하다. 약간 감성적이고, 유머로운 느낌이 드는 문체 속에는 그가 어떻게 오늘날 살아왔는지, 혹은 독일이란 역사에서 어떻게 변모되는지, 또한 그가 마르크스를 만나기 전후로 독일에서 힘없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또한 차별받던 인간백정의 손녀 이야기를 다루었다.

내가 인상 깊은 것은 하인리히 하이네의 부모였다. 어머니는 전형적으로 교육을 받은 여성이었으나, 현대사회에 보이는 어머니와 비슷한 점이 보였다. 아들의 출세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어머니라는 점이서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와 달리 그에게 매우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것 같다.

외모는 아주 부드러우나 말이 없고 남들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하이네가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닐 때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할머니에게 친절했다. 특히 주변에 사는 말썽꾸러기의 할머니에게는 의자를 직접 건넬 만큼의 친절함이 보였다. 그리고 때로는 호탕함도 있었다. 동네 경비대장을 맡으면 자신의 몸을 감싸는 제복에 흡족함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하이네의 어머니에게 강력한 얼굴로서 거수경례를 날리는 아버지, 또한 장사에 큰 수단능력은 없으나 자신의 장사로 통해 자신의 가치를 찾는 아버지, 아버지는 분명 좋은 마음을 가진 분이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 20년이 지난 후인데도 하이네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기시키면 눈물이 흐른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얼마나 컸을까?

이 책에서 인상 깊은 것은 하이네의 모험담이다. 그는 자신의 첫키스를 자신의 첫사랑보다는 자신이 느낀 세상의 부당함에 날렸다. 자기 집에 자주 찾아오는 어느 노파가 있었다. 그 노파는 사형집행인 즉 도부수의 아내였다. 그녀에겐 조카딸 제프헨이었다. 키가 크고 날씬하며, 마치 석상에 그대로 옷을 입은 듯한 소녀, 그 소녀는 아름다운 외모와 마음을 가져도 단지 사형집행인의 혈통이란 이유로 당시 배척받은 듯했다.

난 그 소녀의 무용담을 아주 흥미롭게 보았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어느 노인들과 같이 있었다. 그런데 그 노인들이 어디 숲에서 몰래 모여 서럽게 울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떤 천에 감추어진 물건을 땅에 묻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도부수들이 사형에 집행할 때 사용한 큰 칼이었다. 사람 머리 100명을 자르면 그 칼에 악령이 깃들기 때문이란다. 사람 머리 100개를 자른 칼을 묻어서 슬퍼하기 보다는 나는 100명이나 죽이야 하며 살아야 한 그들의 눈물이 인상 깊었다.

정말 그들이 슬퍼하던 것은 칼 그 자체를 묻어서였을까? 아니면 그들의 설움을 칼이란 매체에 통한 것이었을까? 제프헨은 이 칼을 자기집에 보관되어 있음을 하이네에게 말하고, 하이네는 그녀에게 그칼을 보여달라 하였고, 제프헨이 그 칼을 하늘높이 치세울 때 하이네는 제프헨의 입술을 맞춘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갇힌 현실적인 모순에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도전한 것이다.

그렇지만 하이네와 아름다운 붉은 머리 제프헨이 서로 읊어주는 시는 아름답고도 슬프다.

<사랑하는 오틸리에, 나의 오틸리에예,
내가 마지막 여인을 아니겠지-
말해줘, 넌 높은 나무에 매달릴 거니?
아니면 푸른 호수에서 헤엄칠 거니?
아니면 사랑하는 신이 내려주는
반짝이는 칼에 입 맞출 거니?>

이에 대해 오틸리에가 대답한다.

<난 높은 나무에 매달리고 싶지 않아,
푸른 호수에서 헤엄치고 싶지도 않아,
나는 사랑하는 신이 내려주신
반짝이는 칼에 입맞추고 싶어!>

아마 이 시는 사형집행인이 사형당하는 어느 여자를 두고 하는 시인듯 하다. 높은 나무에 목을 거는 교수형, 물에 빠져 죽이는 익사형, 그리고 입에 칼을 입맞춤 하게 하는 참수형. 아마 이 시는 사형집행인이 사랑하던 여인을 자기 손으로 베야 하는 어느 청년을 슬픈 연가(戀歌)이리라. 그것은 독일 전통 민요 중에 하나라고 했다. 어찌나 슬픈 제프헨과 하이네의 포옹을 눈물로서 1시간 이상 거대한 비가를 불렀다.

그리고 하이네는 붉은 머리 제프헨에게 입맞추고 나서 다시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아버지의 사업에 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입술을 탐닉한 이야기에서 왠지 모를 여운이 느꼈다. 독일의 격변기에서 직조공의 노래로 당시 국민들의 분노를 토한 하인리히 하이네의 모습에서 조금 슬프기도 조금 재밌기도 조금 섭섭하게 들리는 이 회고록에서 정말 그가 시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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