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 가장 오래된 질문들에 대한 가장 최근의 대답들
니컬러스 펀 지음, 최훈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철학 가장 오래된 질문들에 대한 가장 최근의 대답들 그건 역시 정말 철학적인 질문만 늘어놓은 아주 무거운 책이다. 겉으로 나는 이 책을 보았을 때 A5 사이즈에 300페이지 분량이라서 과거 그리스철학자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중세로 가면서 스피노자나 데카르트, 그리고 근대로 접어들면서 칸트, 헤겔, 니체, 마르크스 마지막으로 현대사회의 철학자들이 담론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철학에 대한 담론을 제기하나 그 담론범위가 내가 작게만 보고 상식수준보다 이상이라기보다는 거의 철학 그 근본자체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아니 진짜 철학을 한다면 혹은 철학에 대해 생각한다면 반드시 나오고 사유해볼 내용을 아주 어렵게 제시했다. 물론 도서를 만든 저자의 입장에서 어렵게 만들 생각보다는 철학이란 것이 그래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님을 관철시킴으로 오히려 철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다가간 것이었다.


이 책에서 그런 철학적인 근본을 알아보기 위해 3가지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나는 누구인가?”, 제2부 “나는 무엇을 아는가?”, 제3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말이다. 솔직히 이제 철학이란 학문에 접한 나로서는 마치 이것은 이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 도서를 과거 플라톤 시대부터 현대사회의 노암 촘스키까지 이어진 느낌이다.


인간이란 태어나면서 자기 존재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누구이며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점에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마지막 역자인 최훈 선생님의 후기를 보면 총 3가지 대분류에 따라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형이상학은 처음 내가 철학이라는 학문을 접할 당시 물리, 윤리, 논리이다. 처음에 고대 철학자들은 이런 부분에서 다방면적으로 연구했다. 가령 철학자들 즉 형이상학자들은 자연과학을 연구하고, 수학을 연구하고, 의학도 연구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매우 다방면적인 학문을 연구했다.


그래도 그것은 인간의 사유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인간이 철학하는 것은 매우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윤리적으로 인간을 대해야 하고, 또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일깨우기 위해 물리적인 자연현상을 알아야 했다. 단지 그 시대적인 특성과 인간이 가진 기술과학의 진보차이로 인해 그런 형이상학 범주가 다르게 여긴 것이다.


이제 현대로 오면서 논리분야는 수학이라는 학문으로 인해 그리고 물리는 자연과학이란 학문으로 발달되면서 직접적인 철학이기 보다는 철학의 그 자체보다는 철학의 담론에서 넓혀주고 새롭게 밝혀주는 하나의 길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분류되고 혹은 서로의 담론을 넓혀주는데도 철학은 여전히 문제가 풀리기 보다는 문제가 다르게 제기된다.


가령 공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기술을 배우기 전에 먼저 기초과학을 배운다. 과학을 배우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만든 부분보다는 오히려 근대와 현대에서 창시된 지식을 많이 배운다. 오히려 갈릴레이가 지구가 돌아가고 있다는 말처럼 지구가 돈다는 것을 거부한 중세유럽 사회에서 당시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가치관을 현재의 공학자들은 부정할 것이다.


이에 반해 철학은 아니다. 오히려 철학은 현대나 근대부터 시작해도 중세로 넘어 고대로 넘어간다. 아니 모든 철학은 고대 그리스의 물줄기에서 시작한다. “현실 속에서 이념”이라는 것을 주장한 마르크스 역시 이에 반박되는 것이 바로 플라톤의 “이념 속에서 현실”이다. 어느 반대되고 또는 변증법적으로 의견이 달라도 그것 역시 반대되어야 하는 의견이 존재해야 가능한 것이다.


철학에서 이런 서로 다른 의견 그리고 당시 사회와 문화가 지금도 다르지만, 그래도 지금에도 계속 다루고 이야기되어 철학은 뿌리를 뽑는다는 것보다는 뿌리 위의 가지를 계속 넓혀가는 것이다. 단지 맺히는 열매가 겉과 속의 맛이 다를 뿐이다. 본질은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오늘날의 철학은 누구의 입에서 떠도는 하나의 일상적인 언어로 사용된다. 그렇지만 막상 진지하게 철학의 의미도 철학 그 자체의 의문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살짝 돌린다. 내가 이 책을 보면서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일반적인 사람들이 바라보는 철학이라는 것이다. 진짜 원론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에 대한 정확한 답보다는 현재 살아있는 아주 덕망 높고, 지혜로우며 누구보다 인간을 생각하는 철학자의 입에서 철학을 듣는 것이다.


그런데 그 누구보다 인간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철학자라 해도 서로간의 가치관과 의견은 다르다. 서로 다른 의견을 통해 여러 가지 관점으로 인간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만큼 이 책은 정말 답을 충실하게 제공하는 친절한 서적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독자 스스로 친절하지 못한 철학의 공간에서 고민해야 한다.


사실 철학은 고민하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철학은 과학처럼 정확한 지식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정확하지 않은 모호한 이야기로 스스로 답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철학은 어느 문제에 대해 답을 내어주는 학문이 아니라 문제의 답을 찾아 가는 학문이다. 그러니깐 답을 내려주는 공학용 계산기가 아니라 그 문제의 답인 원인인 발달을 찾는 것이다.


그런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책은 1번 보고 2번 봐도 이해하기 어렵다. 아니 그 이상의 책읽기를 시도해도 쉽지 않다. 사실 나는 철학이나 사상에 깊이 들어가지 않았으나 적어도 문화상대주의적인 관점을 지닌다. 인간이 살아가고 다른 인간과 공유점이 되어 생활양식으로 나타나는 그 문화라는 공간은 매우 크고 작은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 때로는 전혀 상반되고 대립되는 형태까지 보인다.


그런 문화라는 공간에서 인간은 모두 다르게 태어나고 자라고 죽어간다. 그래서 어느 일정한 기준에 따라 인간을 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그러나 철학은 그 다양함 속에서도 진리라는 단어를 찾아내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그 진리로 100% 맞다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왜 그렇게 되었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또한 그렇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다.


그런 문제로 철학은 시작부터 시작하여 인류가 망하는 그 순간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굴레의 속박이다. 하지만 그 굴레의 숙박이 없다면 오히려 인간이 더욱 큰 고뇌에 부딪히거나 또는 무절제하고 아수라와 같은 세계에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 철학이란 굴레의 속박이 인간이 가진 오랜 고민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는 그 질문 자체에 대해 듣는 철학자 답이 모두 맞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단지 맞다 틀렸다고 하기에는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옳지 않은지? 혹은 그런 선택에서 그것 자체가 옳은지 아니면 옳지 않은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철학은 답이 없는 학문이다. 답이 있다면 이미 인간은 철학적 사유는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태어나고 자라서 죽어야 하며, 자기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간과 소통해야 한다. 또한 인간은 인간의 소통에서 인간 아닌 존재에서도 사유를 요구하게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런 사유적으로 살아가야 할 인간에게 답을 준다고 하지 않으나 어떤 사유가 필요한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책을 읽고 계속 고민하여 르네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처럼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되지 않을까 한다. 대신 조심할 점은 데카르트가 제시한 합리적인 이원화에 빠지면 안되는다는 것이다. 너무 이원화적인 사고에 빠지면 자기모순과 편견에 철학적인 인간이기 보다는 철학만 말하는 인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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