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온!! 2기 상권 LE : 1~15화 - 한정판 (5disc) - 필름컷 모양의 북마크 5종 + 클래스 메이트 카드포함
야마다 나오코 감독 / 미라지엔터테인먼트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케이온 1기와 2기를 보면 조금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외형적인 스토리에서는 일상적인 소녀들의 이야기로 통해 웃고 즐기는 것은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애니메이션 중에서 특히나 상업 애니메이션이란 시청자로 하여금 즐거움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즐거움에 너무나도 많은 집착을 가지게 된다면 작품의 원론적인 미학적인 가치를 놓칠 수 있다.

따라서 당초부터 선악 내지 라이벌로 구성된 이원화된 작품세계에서는 그런 가치를 주인공 시점에서 가지고 있다. 보통 카메라의 시점은 1인칭과 3인칭으로 구성되어 있다. 1인칭은 개인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라 할 수 있고, 3인칭은 다른 사람이 개인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영웅을 중심으로 하는 1인칭 내지 3인칭 서사전개는 이미 그 영웅에 따라 모든 이야기가 결정되는 것이다.

분명 어느 세계에 내던져짐으로 많은 고통과 위기 속에 헤쳐 나가는 것을 보고 또한 그것에 대한 대리만족으로 기쁨을 느꼈다면 단지 그런 스토리텔링에 대한 즐거움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하지만 그 스토리텔링 이면 감추어진 서사 즉 이야기구조들은 어떻게 우리는 봐야할 것인가?

케이온은 그런 이원화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취약하다. 왜냐하면 케이온의 작품세계에서는 작품의 내의 세력의 대립구도로 충돌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케이온은 작품 내의 대립을 유발하기 보다는 작품 외의 현실을 대립하게 한다. 하지만 그런 대립적인 부분을 이해하기란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영화, 소설, 각종 서사매체들은 가상의 세계를 설정하여 그것을 우리가 훔쳐보는 식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단순히 작가와 영상제작자들이 설정해 놓은 세계로만 보는 것이다. 그것을 외적인 부분으로 인용하고 나타낸다면 다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가령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같은 경우는 작품 내에서는 nerv라는 비밀결사조직으로 통해 미확인 존재 사도를 격퇴하는 이원화적인 대립구도로 보였으나 실제 그 대립구도의 내면에서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문명,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 타인과 본인, 외부의 자아와 내면의 자아가 끊임없이 대립된다.

그것으로 통해 이미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단순히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본다는 것이 아니라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통하여 세상을 봐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품 내의 텍스트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그것을 맞추어본다는 것은 일방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사고방식으로 볼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과 사회적인 현상으로 본다는 것이다.

예전에 만화애니메이션영상기호론이란 서적을 보면서 외부의 기표와 그 기표의 의미에 해당되는 기의가 도출되어 다시 그 기의를 기표로 하여 기의를 의미하는 2차적인 분석이 있었다. 그것은 프랑스 구조주의학자인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적인 해석이다. 그냥 단순해 보이는 표상의 이미지가 내면에 다른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본다면 기표는 기의에 미끄러진다는 이야기처럼 케이온이란 작품은 그렇게 해석함이 바른 작품이다.

케이온에서 보이는 카메라 구도나 혹은 소품, 배치, 조명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영상이미지에 대해 그냥 스쳐가는 잔상으로 기억하나 케이온은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아직 영상기호학에 대해 초보적인 단계에 있으나 미쟝센이란 기법으로 케이온을 본다면 아주 재미있는 부분이 보인다.

가령 케이온 작품 내의 주인공인 히라사와 유이가 아침에 등교하기 위해 급하게 옷을 입고 나오는데, 처음에 학교에 갈 적에는 기타가방이 없었고, 2번째는 기타가방이 있었다. 문제는 기타가방이 없을 적에는 마루바닥에 자신의 레깅스와 접촉으로 통해 마찰력을 유지할 수 없어서 그냥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게 된다. 그러나 기타가방을 들고 다시 현관으로 급하게 달려갈 때 넘어지지 않는다. 기타가방이 유이의 신체적인 구조에서 균형을 담당하였기 때문이다.

즉 이 장면의 의미는 유이가 경음부에서 친구들과 만나 기타를 치면서 자신이 그동안 허둥지둥 달리면서 넘어지게 되었는데, 이제는 넘어지지 않고 곧장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나는 케이온이란 작품은 밴드를 하는 음악장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밴드로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가령 이런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인문학자인 매릴린 옐롬 교수의 유방의 역사라는 여성학 관련 도서를 본다면 조금 참고가 될 것이다. 그것은 기존 사회적 구조가 남근중심이란 점과 특히 그런 남근중심의 사회구조가 강력한 일본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여성들의 지위적인 문제를 환상적인 면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환상에 대한 열정과 희망에 대해 매우 잔뜩 이야기했으나 그 이야기의 종말은 졸업이란 테마로 환상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사실 기정화했다. 단지 그 환상을 꿈꾸고 싶은 생각은 기존 남근중심적인 일본사회에서 그대로 애니메이션에 반영된 점을 케이온에서 조금 바꾸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원화된 구조인 선과 악, 남자와 여자, 문명과 자연, 인간과 기계, 능동과 수동 등에서 전자는 우월한 것으로 보고 후자는 열등한 것으로 보아 지배 내지 배제해야할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점들을 다시 새롭게 보려는 방법으로 보는 것이 비평적인 관점에서 맞다는 것이다.

물론 본인이 적은 리뷰에서는 어문들이 미사어구로 비추어질 수 있을지 모르나, 단순히 쾌·불쾌로 보는 작품 감상이 과연 애니메이션에 대한 정확한 이해로 귀결될 수 있을까라는 것이 나의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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