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운명 (반양장)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문재인 변호사, 그는 아마 비명(悲鳴)에 죽어간 故 노무현 대통령의 영원한 남자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있으면 언제나 뒤에서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그 문재인 변호사였다. 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아 그의 영원한 동행자였던 문재인 변호사가 자신의 자서전을 내었다.


자서전을 보면 대략 자신의 태어나 이때까지 살아온 흔적들을 적어가는 책이다. 그런 자서전의 형국을 본다면 故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들은 많았던 것 같았다. 아니 그가 직접 자서전을 저술하기 보다는 이제는 타인의 손에서 만들어진 자서전이 많은 것 같다. 문재인 변호사의 자서전은 어떻게 본다면 문재인 변호사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지만, 그 이면에는 故 노무현 대통령과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바뀌어야 할 점과 고쳐가야 할 점, 그리고 같이 생각해야 할 점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문재의 자서전을 들어다 보면서 느꼈다. 고문으로 죽은 대학생,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그들, 그냥 약자라는 이유로 내몰린 그들 물론 이 중에서 분명히 어떤 문제가 되는 인자가 있어서 희생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 사회가 “냄비 안의 개구리”라고 말이다. 개구리를 잡아 냄비에 넣고 천천히 가열하면 아주 독특한 현상이 일어난다. 그것은 개구리는 양서류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인 포유류처럼 온혈동물이 아니다. 그래서 냄비에 물을 가득 붙고 천천히 열을 올리면 개구리는 그 따뜻하게 데워지는 물속에서 졸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은 수증기가 될 때까지 상승하게 되면 어느덧 개구리는 졸게 된 상태에서 열로 인해 죽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개구리도 단백질로 구성된 존재이니 단백질이 열에 의해 익히게 되어 그야말로 살아있는 채로 닭백숙처럼 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인 듯하다. “그래 내가 아니니깐, 그래 내가 아닌 남이니 내가 왜 관심을 가지나? 남이 당하면 그것으로 끝이지” 이런 냉소적인 반응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사회는 조금 삭막해지고 왜곡된 현상들이 여기저기 쑤셔 나온다. 사회라는 것은 일종의 수평거울과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균형이 깨지게 된다면 어느 한쪽에서 추가 기울이게 되고, 그로 인해 사회적인 문제가 돌출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운명”에서는 그런 현상들에 대해 어떻게 문재인 변호사가 헤쳐 나왔는지, 그런 과정에서 故 노무현 대통령과 어떻게 조우했는지 그리고 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에 어떻게 하고 있는지 나온다.


이 책을 보면서 다시금 느끼는 것인데, 정말 국가와 정치 그리고 그것을 이행하는 사람들의 도덕성과 자질이 중요하다 느꼈다. 혹은 권력과 관계된 이른바 돈의 문제는 그룹 NEXT의 어느 노래 가사 구절처럼 “사람위에 있고 종교보다 강하다”, “강한 자에겐 편하고, 약한 자는 밟는다”처럼 우리 사회는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대립이 너무 강하다.


물론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노력과 능력에 대한 분배차이는 인정하나 그것이 하나의 착취와 부당한 형태로 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란 점이다. 문재인 변호사가 처음 변호사로 활동할 때의 이야기와 그가 인권(人權)변호사로 유명하다는 점에서 뭔가 아이러니한 글귀를 읽었다. 왜냐하면 모든 법조인들은 인권을 위해 활동해야 하는데, 인권변호사가 따로 분리되어 호칭이 생겼다는 점에서 과연 법이라는 것이 인권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가이다.


국가는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국민을 위해서” 또는 대다수의 약자를 두고 “서민을 위해서”라고 사실 사회적으로 보자면 국민 대부분이 그렇게 가진 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가진 자들에게 부당하게 그들이 가진 것을 가져오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가지지 못한 자들에 대하여 최소한 그들도 인간이라는 것을 포용해주자는 것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면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길거리나 혹은 각종 경험에서 나보다 못하거나(그들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 삶의 무게가 만들었다) 약한 자들을 보면 은근히 우쭐되고 싶은 기분이 말이다. 물론 아무런 노력과 대가 그리고 생각도 없이 자기가 옳다거나 맞다고 하는 사람은 인정하지 않는다. 거기다가 남을 배려할 줄도 모르고 오만하고 거만하고 위선적인 인간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가 나보다 약자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할망정 그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거나 비웃는 것이 정말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이다. 당장 내가 어떻게 도와주거나 처우를 개선시킬 수 없다. 하지만 그들에 대해 인간적으로 대하야 한다는 인식만은 고수하는 사항이다. 그런 인식이 조금 조금씩 나만 아닌 다른 사람들도 쌓이면 사회적인 인식으로 확산될지도 모르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문재인 변호사는 상당한 활동가였다. 직접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그런 일들을 해온 것이다. 본인의 직업이 변호사인 만큼 충분히 변호사로서 경제적, 사회적인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무도 몰라주는 가난한 노동자 편에서 그들의 애환을 보았다. 사실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세상은 강자의 논리로 돌아가”라고 물론 그것을 부정하지 않겠다. 힘의 논리가 없다면 세상에 왜 분쟁이 멈추지 않고 터지겠는가? 하지만 그 힘의 논리에 자기 자신도 눌린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은 세상 모든 비극으로 볼 것이다. 하지만 타인에 대해서는 강 건너 불구경일 것이다.


문재인 변호사가 강연할 때에 뒤에 적힌 故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 그 옆에 새겨진 글귀가 매우 인상 깊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입니다” 과연 민주주의는 국민 내지 시민이 주인이다. 그들이 주인이 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민주주의 척도이다.


지금과는 다르나 과거 그리스 시민정치에서는 그리스 시민 자신들이 국가의 중심으로 되어 민주주의 시초가 되었다. 대신 여성, 어린이, 노예, 이방인들과 같은 약자를 배제했으나, 적어도 플라톤이 저술한 국가정체(正體)에서는 그 주체자의 도덕성, 강인함 의지, 골고루 배양된 육체 등으로 통해 진정한 정치세계를 구현하고자 했다. 단지 시대적인 차이가 있으나 진정한 국가와 정치는 결국 국민과 시민을 위한 것이고, 그 국가와 정치를 담당하는 사람 역시 국민과 시민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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