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의 사상과 철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서사시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7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사순옥 옮김 / 홍신문화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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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빌헴름 니체하면 딱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그것은 "신은 죽었다"이다. 신이라는 절대불가침적인 존재를 죽었다니 다소 아이러니 하면서도 조금 묘한 기분의 말이다. 게다가 니체는 자신의 아버지가 교회목사였다. 독실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신이라는 존재를 죽었다니 상당한 반전을 불러 일으키는 어구이다.

 

하지만 그가 있었던 그 신이란 존재를 죽었다고 말하는 이유를 조금 다른 서적에서 본다면 이해가 간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가르치던 "마빈 해리스" 교수(2001년 작고하심)의 <문화의 수수께끼>를 읽어보면 왜 신을 죽었는가에 대해 알 수 있다.

 

단순히 니체가 '신은 죽었다'로 해서 '니체도 죽었다'라고 하는 것은 그 말하는 본인조차도 언제가는 죽어버리는 나약한 인간이므로 그 신이 왜 죽어야 했는지 이유를 알아야 한다. 니체가 신을 죽인 까닭을 문화인류학자의 서적을 참고해 보면 조금 감이 온다. 그것은 바로 마녀사냥이라는 무서운 광기의 향연이었다.

 

<문화의 수수께끼>에서는 이런 서양역사 중에서 십자군 원정이나 다른 문화에서 보는 신에 대한 관점을 적어내려 가고 있다. 특히 로마의 고문서로 통해 본 신의 존재는 조금 우리가 아는 신의 존재와 다르다. 문제는 그 신이 왜 죽어 버려야 했는지 우리로 하여금 절실히 알게 해주는 것이다.

 

중세 교회는 정말 광기의 시절이었다. 이 마녀사냥의 공포는 당시 군중심리를 이용한 부패한 왕권과 교권의 폭력이었다. 당시 마녀사냥으로 몰리면 갖은 고문과 심문으로 사랑을 희생시키는데, 그 내용을 보면 너무 끔찍하다. 튀어나온 눈알, 팔에서 떨어져 나간 손목, 다리에서 잘라진 발들, 바닥은 온통 피와 피로 고여 있어도 계속 죽음은 계속된 점이 말이다.

 

당시 수십만명의 죄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부도덕과 권력의 비양심으로 희생되었다. 그 덕분으로 어려운 중세유럽국가 권력층은 공포정치로 통해 대중들을 억압하여 통제하고, 종교는 하나의 인간구원이 아닌 인간통제 수단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군중들의 눈앞에서 화형되는 자기 이웃을 바라보며 사악한 미소를 짓었으나 언제가 그 사악한 미소를 받을지도 모르는 운명이었다.

 

니체는 왜 그렇게도 신을 죽이고 싶었을까? 그리고 그 신을 따르는 자들도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는 자들까지도 멀리하려고 했을까? 이런 내용을 다루고 있는 서적이 바로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그런 군중의식에 대한 비판과 그 대중들의 귀와 논을 속이는 저널리스트나 종교지도자들을 비판했다.

 

그들은 정말 대중들을 위해서일까? 니체 역시 독일인이기 때문에 다소 칸트가 지적한 교조적인 의식을 가진 무지한 사람에 대한 분노의 비판이 보였다. 그 분노는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고, 니체가 도달하고픈 초인 영원회귀사상에 반대되기 때문이다. 니체는 신은 어느 주체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 그 자체로 신성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신은 죽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사실 그 신이라는 존재가 신으로 모셔지지 않아도 신은 되었다. 그러나 그 신을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따른다고 해서 사람들은 신이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짜라투스트라는 자신의 말에 기울이되 자기를 멀리하고 따라오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그는 광신도의 맹목적인 존재가 되기를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니체가 짜라투스트라로 본 대중들은 한 마리의 당나귀와 같았다. 그들은 어리석었으나 그들의 어리석음을 몰랐으며, 이 어리석은 존재를 그냥 그대로 방치하여 그들의 삶에 거밋줄을 치어 기생하는 타란튤라인 성직자처럼 되기 싫었다.

 

이웃을 사랑함에도 그 자기만의 이웃만을 사랑하는 것을 거부하라고 했으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지 않으므로 그래서 인간은 평등해져야 하는게 아닐까? 모든 인간은 같지 못하므로 꼽추와 대화할 때는 꼽추처럼 대하는 것이 말하는 것이다. 그런 군중의 부도덕함과 당시 지자들의 욕심과 허영심에 뼈저리게 실망한 니체로서는 그런 모든 것을 뛰어넘어 하나의 인간성을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사실 니체의 서적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만 아나, 그가 도덕의 계보나 많은 서적으로 통해 계보학적인 면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후에 가면 군중심리와 대중들의 눈속임은 프랑스 (후기)구조주의 학자 미셀 푸코로 이어진다. 미셀 푸코 역시 미디어로 통해 대중들을 속이는 권력을 비판했다. 지금은 미디어가 군중심리를 자극하면 당시로는 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여 사리사욕을 챙기거나 허황된 유토피아 및 폭력적인 궤변가들이 선동했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솔직히 1번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다. 단지 니체가 주장한 초인은 모든 것을 뛰어넘어 자신의 새로운 세계에 가는 영원회귀사상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 심지어 이 글을 적는 나라는 인간도 그런 초인으로 가기에는 벅차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인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우리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함에서 조금 생각하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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