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철학자들의 서 -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우며 숭고한 철학적 죽음의 연대기
사이먼 크리칠리 지음, 김대연 옮김 / 이마고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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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그들은 인간의 역사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들의 육신은 이미 다 분해되어 자연계에 돌아갈 망정 그들의 영혼 즉 그들이 생각하고자 하는 정신적 세계는 죽지 않고 계속 읽히고 읽혀 세속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그렇게 위대한 사상을 지닌 철학자이거만, 막상 그들도 연약한 신체를 가진 인간이었다. 그들이라고 천년 만년 살 수 있는 불사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짧은 인간의 삶이기에 그들의 행적은 매우 빛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철학을 하고자 함은 인간은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데 죽었다니? 조금 아이러니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그 순간순간 우리에게는 죽음이라는 영원한 늪이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이라는 깊은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죽음은 아주 무섭기도 하나 한편으로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이다. 죽음은 과연 축복인가? 혹은 최고의 저주인가? 물론 그건 보는 시선에 관점 그리고 어느 개인이 살아온 형태에 따라 다르다.

가령 철학자의 죽음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로 소크라테스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하다고 여겨 자신의 무지를 일깨우쳐 줄 수 있는 당대 석학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무지를 일깨우쳐 주기는 커녕 그들의 무지로 인해 소크라테스는 역으로 그들의 무지를 논파한다.

사실 사람이란 존재는 어느 권력을 가지거나 혹은 특정한 신분을 얻게 되면 자신의 프라이드에 집착하게 되는 마련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런 자신의 철학을 관철하려고 아름다운 길을 걸어갔거만 역으로 소피스트들로 하여금 화를 이어 독배를 들고 자신의 인생을 마감한다.

죽음이란 고통 앞에서 모든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에게 이 도시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길 원했으나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당당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철학적 의지를 관철시켰다. 그래서 진정한 철학자들은 죽음을 무서워하기 보다는 그 죽음으로 인해 사람들이 진정한 진리를 찾지 못함이 무서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보는 나라는 인간 역시 죽음은 무서운 모양이다. 책을 볼때마다 왠지 허무하게 혹은 웅대하게 조금 아쉽게 죽어간 이들을 보며 이들의 업적은 위대한 이들의 삶은 왠지 아쉽기만한 공허감이 온다.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동기는 1990년대 어느 프랑스 작은 농장 마을 오두막에서 어떤 남자의 죽음이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에 권총자살을 한 후에 파란만장한 인생의 막을 내렸다. 그는 아방가르드 영화감독 및 상황주의자인 기 드보르이었다. 기 드보르는 이른바 Society of the spectacle이란 서적을 적은 사람으로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다.

그의 업적이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소 너무 급진적이고 반발적이나 그가 적은 스펙타클의 사회에서는 근현대사회에서 보이는 인간 소외와 대중들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닌 방관자로 그저 구경만 하는 제3자가 되는 것을 고발하였다.우습게도 그는 자신이 자본주의 사회에 순응하길 거부했으나, 그가 죽은 후에 스펙타클의 사회는 여러나라에서 이래저래 팔리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내가 인상깊다고 하기는 그렇고 조금 뭐랄까 숙연해지는 죽음이 있었다. 그것은 임마누엘 칸트다. 인간의 제일 오류라고 생각하는 건 이야기 하는 본인 자신의 실질적인 양심과 도덕, 책임, 이성적인 자기성찰 없이 남만 보는 인간들이 많다. 겉으로는 위대한 말을 누구나 뱉을 수 있는 게 인간이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그렇게 실질적으로 언행일치하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이 임마누엘 칸트라는 사람의 죽음은 정말 검소하고 작은 소리이나 위엄있어 보였다. 그가 죽기 전에 자신의 하인이 그에게 음식을 숟가락으로 떠주는데, 칸트가 "이만하면 충분하다"란 말과 함께 영원한 잠을 잔 것이다. 칸트라는 사람이 비록 과묵하고 사색적이나 너무 과묵한 마지막 단어다. 그런 칸트인만큼 자신의 하루일상과 상대방과의 약속마저 철저하게 이행하였다.

어째보면 샌님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자기 자신부터 수행하여 글을 적는 언행일치되는 철학자인듯 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실리지 않은 우리나라의 철학자도 생각해 보았다. 난 개인적 한국에서는 18~19세기 남인으로 중심된 성호학파 철학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성호 이익 선생은 오래 장수했으나 너무 가난하여 말년에 병으로 허덕이며 돌아가셨고, 성호의 후손이 되는 이가환 선생과 이승훈은 신유사옥으로 죽고, 성호학파 최고의 학자인 정약용의 형제들도 편히 죽지 못했다.

특히 정약용의 형님 2분 중에 정약전은 흑산도에 귀양가서 병으로 죽고,  정약종은 천주교 박해로 인해 순교하였다. 그리고 정약용 누나의 제사에 온 광암 이벽은 천주교 귀의 후에 아버지 이부만 자살로 자신도 충격으로 인해 운명한다. 게다가 1791년 진산사건의 윤지충은 정약용의 이종사촌이다.

나는 천주교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다산 정약용에 대해 아주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막상 다산 정약용의 주변을 돌아보면 얌전하게 운명한 분이 없다. 그들은 조선의 유학자이면서 천주교를 연구한 신학자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의 조선시대 철학자들은 대부분 신분이 사대부라 벼슬에 나가거나 학문을 후세에게 알린 사람이 많다.

문제는 사대부라는 것은 언제든지 정치에 올라가서 정사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당쟁싸움에 휘말려 죽게 되거나 혹은 귀양가거나 혹은 벼슬조차 하지 못하게 아예 길을 막아 버린다. 그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위에 설명한 성호 이익선생이다. 성호 이익은 아버지가 귀양갈 때 나오신 분이고, 성호 이익의 큰형님은 당파싸움에 의해 매질로 죽었다. 그래도 조선시대 최고 석학인 성호선생은 나왔다. 그런 만큼 조선시대의 철학자들은 그래 순탄하지 않음에도 명저가 나온 것을 보면 대단한 정신력을 가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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