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센스
오시이 마모루 감독 / 대원DVD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공각기동대 1기와 2기는 큰 차이는 없다. 왜냐하면 쿠사나기 모토코로 통해 모든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1기의 경우 쿠사니기 모토코가 주를 이루어 행동한다면 2기에서는 쿠사나기 모토코가 숨어서 그저 지켜 볼 뿐이라는 것이다.

2501 이 숫자는 공각기동대 1기에서 쿠사나기 모토코가 인형사와 정보교류로 통해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면서 네트로 떠나가기 전 바트에게 준 암호다. 그녀는 언제나 2501라는 숫자로 통해 바트와 공안9과 동료를을 바라보고 있다.

우선 이 작품의 스토리는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면 어느 여자아이 신체를 가진 사이보그가 작동오류로 사이보그 옆에 있던 인간을 살해하면서부터다. 그리고 그 살해사건과 여자아이 유괴사건이 동시에 나오면서 유괴사건을 맡은 검사가 살해당했다. 그리고 이 사건들이 여자아이 사이보그와 연계가 있음을 알고 첨단정보도시에 바트와 토그사가 가서 킴을 찾고 킴을 이용하여 그 원래 사이보그 제작사인 중국기업 선박에 침투하여 사건을 해결한다.

단지 바트가 선박에 뛰어들 때 쿠사나기가 여자아이 사이보그에 해킹하여 바트를 도와주고 있다는 점이다. 어째든 공각기동대 2기는 미래의 사회가 첨단정보로 인해 해킹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정보조작으로 통해 범죄를 숨기며, 그 범죄자들이 거대한 기업으로 되어 국가 및 어느 특정기관과 결탁한다는 점이다.

미래의 사회는 그런 정보조작으로 통해 얼마든지 공작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런 면은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에서 인형사로 통해 충분히 우리는 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1기에서는 그런 인형사라면 2기에서는 주요관점은 무엇인가란 것이다.

2기의 제일 중요한 관점은 수동의 존재가 수동으로 남기는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에 의해서인가? 바로 여자아이 사이보그의 정체를 알기 위해 바트와 토그사가 어느 여자박사의 연구실에 가면서 그것이 조금씩 밝혀진다. 아마 이 부분은 공각기동대 1기에서 쿠사나기 토모코가 왜 바트를 선택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선택한 이유와 일맥상통한다고 보여진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유명한 극단적인 페미니스트 학자인 다나 해러웨이 덕분일 것이다. 아직 이 다나 해러웨이라는 사람의 책이나 논문을 읽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각기동대 이노센스에 등장하는 이 여자박사는 분명히 "미쓰도 미스즈도 아니오. 그저 해러웨이요"라고 말한다. 그녀는 사이보그라는 존재가 수동이 아닌 능동적인 존재로 보고 있고, 그 사상은 오이디푸스 가부장제도에서 벗어나려는 다나 해러웨이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상 불가능이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우리가 가진 사이보그 제작기술이 인간을 닮은 것도 아니고 인간처럼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는 존재가 아닌 말 그래도 프로그래밍이 된 존재다. 하지만 이노센스의 세계라는 공상과학 및 사이버펑크세계에서는 그런 꿈의 세계를 현실의 이미지로 재현가능하다.

단지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 공각기동대 원작가가 시로 마시무네가 남자라는 사실과 이 작품을 만든 감독인 오시이 마모루 역시 남자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럴까 사실 2기에는 공각기동대 주인공인 쿠사나기 모토코는 나오지 않으나 적어도 1기에서의 쿠사나기 모토코는 상당히 아름답고 강하고 정의로운 인물로 나온다. 

단지 아쉬운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가진 의식이 바로 전뇌라는 것이다. 전뇌에 기록된 이때까지 자신의 모습은 자기가 공안9과를 그만 둔 이상 그 전뇌가 아닌 다른 전뇌로서 살아간다. 그럼 자신이란 존재가 이때까지 자신이 아니게 되어버리고, 그녀는 자신이 아닌 기억으로 자신으로 살아간다. 자신의 존재가 자아의 정체성이 아닌 일련의 타자들에 의해 조작되는 것이다. 

그런 조작되고 조종되고 속박되는 것은 거부한 것이 쿠사나기 모토코이고, 그런 쿠사나기 모토코가 공각기동대 이노센스에서는 자신의 자유로운 네트세계에서 떠돌고 있다. 마치 계속 진화하여 자신이 생명이 있는 프로그램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세상을 바라지 않는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곧 죽음이 있어서이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건 자신에게 고통과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이 느낄 수 있는 것이 모두 즐겁고 좋은 것만이 아니지만, 사실 인간은 다른 인간과의 관계서 살아가지 전기적인 신호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본다. 옛날 명언에 이런 말이 있지 아니한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말이다. 분명 기계의 반란처럼 수동적인 존재로 여긴 여성에 대한 억압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세상은 서로를 의지하고 존중하고 살아야 한다.

독립된 개체로 살아가기 보다는 독립된 존재로서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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