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림도령 / 궤네깃또 한겨레 옛이야기 5
송언 글, 이웅기 그림 / 한겨레아이들 / 1999년 4월
평점 :
절판


 
최근 고스트메신저와 관련하여 한국신화 요소가 반영된 캐릭터가 많이 등장했다. 특히 그 신화대상이 되는 인물은 환웅, 주몽, 혁거세와 같은 문화영웅을 다룬 건국신화가 아니라 인간이 어떤 과업을 수행하여 신이 되는 무속신화이다. 무속신화는 영웅들의 건국신화와 달리 기록유지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민중에 의해 입으로 입으로 흘러가는 신화이다. 그래서 무속신화는 인간 과거, 현재, 미래까지 연결되는 다리라는 것이다.

 

그 많고 많은 여러 무속신화 중에서 궤네깃또라는 신화를 한번 읽어보았다. 나는 이 신화는 소천국과  백주또가 혼인하여 5명의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백주도가 6명째 아이를 낳자 소천국이 집안 경제상황으로 인해 농사를짓는다. 소천국은 농사짓다가 점심밥을 먹으려고 어떤 스님이 밥을 모두 먹어버려서 자기 소와 남의 소까지 먹어 아내인 백주또에게 집에서 내친다. 백주또는 6째인 궤네깃또를 임신하고, 궤네깃또는 5살이 되자 아버지인 소천국을 보고 싶어 산에 가서 소천국을 만나지만, 아버지의 수염을 뽑은 죄로 마을에서 쫓겨난다.

6년 동안 방랑하며 용왕에 의해 구출되어 용왕딸과 결혼하고 다시 육지로 나와 북쪽나라 오랑캐를 무찌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궤네깃또가 고향으로 오기 전에 부모님들은 궤네깃또가 온다는 말을 듣고 산으로 도망치던 도중 발 끝이 걸리는 바람에 모두 죽게 된다. 궤네깃또는 자신이 오기 전에 돌아가신 부모님들의 시체를 모아 무덤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준다. 이 뒤에 궤네깃또는 제주 백성을 위해 일을 하고, 죽고 난뒤에 마을 수호신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어느 영웅적인 기질을 가진 인간이 모험을 하고 난뒤에 고향에 와서 지도자로 되기보다는 신으로 추대되는 이야기다. 궤네깃또 신화에서 이 귀네깃또는 남쪽나라에 가서 북쪽나라 오랑캐를 무찌리고 왕국에서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남쪽나라에 있었다면 그는 분명히 영웅적인 기질로 인해 남쪽나라 왕을 몰아내어 왕이 될 수 있던 남자일 것이었다.

 

나는 이 신화를 보면서 제주도의 식생활과 많은 관련있음으로 판단했다. 우선 소천국과 백주또가 5명의 아이를 가지게 될 때에는 식량문제를 허덕이지 않았으나, 궤네깃또의 임신은 곧바로 식량문제로 이어지고, 제주마을에서 기존 식량문제는 채집이나 수렵으로 했었다면, 궤네깃또 출산 후에는 농사를 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농사를 짓다가 스님이 소백산의 밥을 모조리 먹었는데, 이것은 스님이 먹은 게 아니라 초자연적인 현상 즉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제주사람은 식량이 없어서 자신이 키우던 소를 먹게 되었다. 그런데 소는 농경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산이다. 소를 잡아 먹음으로써 농사를 하는 남자가 무용지물이 되자 남편이 아내에게 타박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백산이 집에서 쫓겨나 산에서 기거한 점을 볼때 다시 농경사회에서 산에서 수렵이나 채집으로 생계를 유지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문제는 궤네깃또가 5살 되던 해이다. 궤네깃또는 아버지가 보고싶어 산에 갔으나 아버지의 수염을 잡아 댕긴 점이다. 가부장제도에서 아버지의 수염은 가장

의 권위이기도 하였다. 궤네깃또는 자신이 아버지와 같은 권위를 가지고 싶었으나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제주도에 나온 것이다.

 

그 후 6년동안 방랑하여 용왕나라로 가서 셋째 딸과 결혼했는데, 이때 궤네깃또는 바다음식인 생선이나 해물보단 육고기인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원했다. 이뜻은 식량부족으로 인해 다른 곳에 간 사람들이 단백질공급을 생선에 한계점이 있다는 뜻이었다. 궤네깃또의 육고기에 대한 열정때문에 용왕이 자신의 딸과 함께 지상으로 보내고 궤네깃또가 남쪽나라로 가는데, 이때 북쪽나라 오랑캐가 침범해온다. 궤넷깃또가 전쟁에 가서 적을 무찌를 때 이상한 점은 적장의 머리가 1가 아니라 2개, 3개, 4개라는 점이다.

 

이말은 궤네깃또가 상대한 적군의 수가 아주 많았다는 점이고, 궤네깃또는 모두 섬멸했다는 점이다. 궤네깃또는 기본적으로 음식을 많이 먹어 힘이 세고 무술에 대한 조예가 있었으며, 심지어 글공부까지 능한 양반이었다(양반은 문반, 무반을 합한 말이다). 그는 남쪽나라에서 지위높은 장군으로 있을 수 있었으나 그것을 거부하고 제주마을로 돌아간다.

 

그가 돌아갈 때 부모님은 그의 귀환 소식을 듣고 놀래 산으로 도망치다 발 끝이 걸리는 바람에 넘어져 죽었다는 말에서 아마 궤네깃또가 부모님을 살해했는지 혹은 제주마을에 식량이 없어서 아사했는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으나 부모님의 죽음으로 궤네깃또는 제주섬에서 한 사람의 어른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궤네깃또는 무술만 아니라 머리가 좋은 점에 나는 깊은 관심이 있는데, 그 이유는 가뭄이 들면 풍년, 먼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 할때 풍랑을 잠재웠다는 것이다. 그것은 궤네깃또가 기상학과 지구과학 지식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아버지 소천국이 농사하는 것이 실패했으나 궤네깃또는 농사를 성공적으로 만들게 한 점으로 치수사업을 제대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바다에서 풍랑을 맞이할 때는 기상변화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마을 주민에게 존경받고 죽어서는 마을신으로 추대되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그의 제사에는 반드시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 점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단백질 공급으로 생선이 많이 있으나 그래도 육고기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육고기인 소와 돼지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분명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그러나 이 소와 돼지를 양육하려면 이들에게 먹여야 할 곡식이 필요하다. 아버지 소천국이 소를 잡아 먹은 이유도 인간이 먹어야 할 곡식이 소와 경쟁상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궤네깃또의 가장 큰 업적은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곡식문제를 해결하여 소와 돼지를 키우기 좋은 마을로 바꾼 점이다. 이게 그의 가장 큰 업적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궤네깃또가 소와 돼지의 고기를 좋아하듯이 당시 제주사람들의 식성에서 소와 돼지의 고기를 좋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속신화에서 주인공 인물은 실존인물이 아니다. 단지 그 시대나 혹은 계속 인간이 살아가면서 무형의 존재를 하나의 존재로 만들어 그렇게 보이도록 만든 상상의 인물이다.

 

하지만 그 상상의 인물은 오늘날까지 살아가는 인간들마저 생각나게 하는 인물이다. 신화는 끊임없이 새로 생기고 변화하며 살아간다. 아마 우리 인간이 이 지구상에서 없어지는 그날까지 말이다. 이 글을 적은 시점은 미국 컬럼비아대학 문화인류학자인 마빈해리스 교수님 도서(작은인간, 식인과 제왕, 문화의 수수께기, 음식문화의 수수께기)를 읽은 후에 생긴 관점으로 작성했다. 





2001년 작고하신 마빈해리스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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