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와 돈 - 페미니즘과 정치경제학 그리고 미디어
아일린 미핸 외 엮음, 김선남 외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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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들어와서 여전히 자본의 위력은 대단하다. 하지만 자본의 힘이 하나의 권력으로서 등장한 것은 프랑스 시민혁명과 영국 산업혁명에 비롯되었다. 이 2가지의 혁명으로 통해 절대 왕권과 봉건귀족들이 누리던 화려한 봉건사회는 문을 닫고 근대 유럽의 시작은 자본력이 사회를 좌우하는 구조가 되었다.

사회가 자본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면서 대부분 상인이나 혹은 은행가, 재산가처럼 금전적인 여력이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적인 권력이 향하게 되었다. 자본을 가지고 있는 수준과 범위 그리고 그 자본을 돌릴 수 있는 한계에 따라 다시 자본은 자본가들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럽사회에서 노동자, 어린이, 노인, 여성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사회적인 약자로 대두되면서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이런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자본력을 가지고 있는 유럽 자본가들은 대부분 백인남성으로 이루어진 존재로 나타났으며, 여기에 자본력을 가지지 못한 여성, 흑인, 노동자들은 자본이 없다는 이유로 상당한 노동과 차별대우를 받아야만 했다. 게다가 자본가들은 자본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것을 노동에 알맞게 분배하기 보단 오히려 그 노동력을 착취하여 자신의 이익만 쌓게 되었다.

그렇게 자본을 수용하고 있는 자본가들은 자본을 소요할 수 없는 노동자, 여성, 흑인들에 비해 생활여건이 우월하므로 교육의 기회가 증대되었고, 교육의 기회가 늘면 늘수록 자신들이 차지할 수 있는 사회적인 지위권이 보장되었다. 자본을 가진 부르주아가 자신의 자본을 후손에게 넘겨주거나 자본가의 자식들을 고등교육을 실시함으로 정치가 내지 사회실세세력으로 독점하게 되었다.

다시 이런 세력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제도와 정책을 만들었고, 결국 근대사회는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초고처럼 남성들은 언제나 모진 노동으로 얼룩진 하루를 보내야 하고, 여성들은 남편이 노동하고 있을 시간에 유흥업소나 윤락업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산업혁명으로 인간의 노동력이 아닌 기계력에 의해 상품을 만들면 남녀 모두 고루게 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남성과 여성이 일을 할 수 있는 분야가 차별화 되었다.

남성이 일을 하는 분야는 근무조건이 매우 고되고 어려우며, 육체적인 소모가 매우 심한 것들로만 채워졌다. 이에 반해 여성들은 노동력이나 전문성이 그렇게 요구되지 않은 업무만을 하게 되었다. 일을 할 수 있는 범위와 수준이 남녀 불평등으로 이어지자 사회적 주도권은 남성들에 의해 가지게 되었으며, 여성들은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를 지니게 되었다. 이런 근대사회의 업무형태는 곧바로 20세기에도 연관되어 여성의 직업군이 전문화가 되었다고 하나 전문직종이나 혹은 사회적지위는 여전히 남성이 높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여성의 인권이 상승한 만큼 여성도 자신의 경제력을 소유하게 되면서 남녀 불평등에 대해 어느 정도 조금씩 개선되어 가는듯 하였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사항은 자본은 아직까지 남성에게 있는 것과 남성이 가지고 있는 이 자본력이 다양한 사회현상에서 하나의 이념으로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디어 즉 우리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에서 백인남성우월주의적인 면들이 고스란히 우리 정보에 녹아 들어가있다. 미디어라는 것은 정보력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체계이며, 이 정보력으로 통해 우리 인간은 정보를 수용한다. 만약 정보가 올바르고 정당한 주장만 나오는 것이 아닌 어느 특정세력을 위해 조장되거나, 혹은 어느 대상으로 하여금 거기에 속박되게금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가장 기억나는 것은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여성들의 결혼나이가 너무 어리게 된 점이 신기하게 보여졌다.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키워 당당한 사회인으로서 남성과 결혼하기 보다는 여성은 그저 남성의 아내로만 충실하면 그만이다는 관념이 그렇게 심각한지는 꿈에도 몰랐다.  TV에서는 하이틴과 갓 20대인 여성이 이쁘게 꾸미도록 하는 것이 정당한 것과 그렇게 꾸며서 돈이 많은 남성에게 시집가는 것을 최고의 미학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TV 드라마, 영화, 광고에서 온통 여성들에 대한 태도는 자율적이고 책임성이 있는 여성보단 타율적이고 책임을 전가시키는 인간이 되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서구의 잘못된 관점을 보면서 한편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대한민국 여성들이 가지는 올바르지 않은 인식에 대해서다. 겉으로 여권신장을 외치면서 왜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는가이다. 여서들이 인권이나 권리만 주장한 뒤에 책임을 회피하면 결과론적으로 여성은 남성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인간이 된다는 뜻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외면하여 남성들에게 그저 하길 바라면서 자신은 경제적 사회적 보장을 바라는 것은 결국 억지에 불과한 일이다. 그리고 겉으로는 권리를 운운하면서 결국은 경제적으로 보장된 남성을 찾아 자신의 편익을 도모하려고 한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맞다고 생각하는 페미니즘인가? 이건 오히려 자신을 스스로 깍아내리는 안티페미니즘이다. 이 챡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성의 몸에 대해서 말이다. 매릴린 옐름 교수의 "유방의 역사"를 보면 여성의 몸이 가면 갈수록 얇아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남성의 입장에서 뚱뚱한 여성보단 날씬한 여성이 좋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거기에 불만을 가지면 여성들보고 뚱뚱한 남성과 날씬한 남성 중에 누구를 선택할 것이냐고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결국 서로 같지 않은가? 그러나 문제는 너무 뚱뚱할 경우 성인병, 당뇨, 각종 질환으로 건강에 위협을 받을 수 있지만 너무 날씬해도 신체적인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지나친 골격성형, 유방확대수술, 각종 다이어트는 여성이 여성 스스로 건강을 위해서 몸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미적 감각에 맞도록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몸을 망치는 것 자체가 미디어로 통해 정당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그런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기 보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트렌드로 받아들여 자신이 그렇게 트렌드에 맞추는 것이 시대를 앞서 나가는 사람인양 착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뒤에 감추어진 이면에는 남성의 입맛에 길들어진 여성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 역시 남성이므로 여성의 매력이 한껏 내보이는 스타일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너무 당연해버리면 결론적으로 사회적인 남녀 불평등은 해결되지 않으며 오히려 왜곡된 형태로 유지될 뿐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이 sex and money에서는 다양한 페미니스트 인문사회학자들이 오랜 연구결과를 토대로 만든 논문을 묶은 서적이다. 이 도서에는 남녀 불평등부터 시작해 인종차별, 게인, 레즈비언과 같은 비주류적인 인간에 대해 다루고 있다. 페미니즘이라고 해서 모든 여성들에게 혜택이 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백인여성에게 권리를 주장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자유는 여성만의 자유가 아니라 노인, 어린이, 장애인, 유색인종과 같은 모든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이들을 위한 하나의 인간차별 철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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