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노케 히메
미야자키 하야오 (Hayao Miyazaki) 감독, 다나카 유코 외 목소리 / 대원DVD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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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노노케히메는 기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보여주던 여성캐릭터와 상당히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미야자키 감독 작품에 등장하는 중요 키워드는 하늘, 자연, 그리고 여성이다. 단지 미야자키 감독이 만들어낸 여성은 대부분 상당히 이성적이거나 아름답거나 혹은 강한 사람이란 게 특징이다.




그래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붉은 돼지에 등장하는 소녀들은 대부분 강인하고 아름다움을 내세운다. 이런 점은 미야자키 감독이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미소녀 캐릭터에 대한 강한 집착이라는 한 가지의 비판대상이 되기도 한 요소로도 보였다.




그런 점에서 모노노케히메 즉 원령공주에서 등장하는 산의 모습은 상당히 도발적이고 기존 미야자키 감독 작품에 등장한 여성 캐릭터에 큰 변화를 준 건 사실이다. 그래도 미야자키 감독은 이성적인 여성을 배제하고 감성적인 존재인 산을 대신하여 반대되는 캐릭터를 만든 것은 분명하다.




산과 같이 여성이나 그 마을사회에서 하나의 지도자인 에보시를 보면 여전히 미야자키가 이성적이고 육체적으로나 혹은 정신적으로 강한 여성을 원하는 것은 사실이다. 단지 2명의 여성을 통해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자연의 세계인 산과 인간문명사회의 에보시로 통해 자연과 문명사회의 비극적인 소통불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기존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나우시카 공주로 통해 자연세계와 인간세계의 구심점으로 작용하여 오염된 그 세계에서 인간의 파괴행위를 저지하고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었다고 본다. 그러나 모노노케히메는 반대였다. 오히려 자연과 인간은 소통이 불가한 채 그대로 서로 배제해 버렸다.




작품 서사 내의 발단이 되던 아시타카는 그런 자연과 문명사회의 비소통에서 발생된 왜곡현상으로 팔에 큰 병을 얻었다. 그 병은 신적인 영력을 가진 멧돼지가 재앙신으로 변해 아이타카의 손에 죽으면서 그에게 저주를 걸은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재앙신은 재앙신이 아니었다. 그 재앙신으로 만든 것은 인간의 손으로 탄생된 문명의 철탄총알이었다.




결론은 아무런 죄도 없는 자연부락인 아시타카 마을이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사회에서 희생된 자연에 의해 재앙을 맞이한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반드시 이 작품세계만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일어난다. 가령 우리 한국의 경우 봄철 황사현상으로 고생하는데, 예전의 황사는 단지 황하강의 모래와 분진으로 이루어진 입자였다면 최근에는 중국의 공업화로 인해 황사모래 안에 다양한 환경오염물질이 함유된 점이다.




이것은 분명 우리 한국에서 일어나서 생긴 폐해라기 보단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문제로 인해 우리가 피해보는 것이다. 자연이란 것은 아주 작은 소규모로 오염되어 어느 정도 정화되어 그 환경오염에 대한 위해성을 비켜갈 수 있으나, 어느 일정 수준이 누적이 되기 시작하면 소규모이던 환경오염이 대규모적인 현상으로 바뀌어 그 지역만이 아닌 다른 지역까지 죽음의 손길을 뻗친다.




그런 점에서 모노노케히메는 에보시의 철광산업으로 통한 자연파괴가 당연히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다고 해서 그것을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 없었다.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여자, 병자, 어디로부터 쫓겨 온 사람 등등,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에보시의 중심으로 서로 협력하고 살았다. 작품 내에서 야마토 왕조에게 버려진 자들이 유일하게 발을 붙이고 살 수 있는 곳이 에보시의 마을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제력과 무력이라는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총을 만들어 마을을 지키고, 철을 생산하여 경제력을 키웠다. 그런 에보시와 마을주민의 협력으로 그 마을은 무사히 지켜진 것이다. 그렇지만 거기에 대한 희생과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자연에 대한 농락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자연의 신이었고, 존경의 대상이었다. 일본의 종교사상 역시 애니미즘(Animism)으로 다양한 신들이 존재하고 무형의 존재라도 생명이 깃들어 있다고 봤다. 자연의 위대함은 동양국가에서는 하나의 종교적인 신앙심으로 존재한 것이다. 그러나 에보시는 그런 전통적인 사상과 달리 자연을 파괴하고 짐승들을 멀리 보내고, 자신에게 반항하는 짐승들은 총탄으로 숨을 끊게 하였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연의 희생을 합리화한 것이다. 그것은 환경윤리적으로 분명 문제가 있겠지만,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문명의 행동이었다. 그런 내용을 이 모노노케히메에서 다룬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작품 마지막까지 자연과 문명사회는 조화로이 살 수 없었다. 오히려 인간이 지나친 자연정복욕구로 인해 문명 스스로 인간 스스로가 자연에 의해 먹힐뻔 했던 것이다.




지나친 인간의 욕구 거기에 대한 문명사회와 기술발전, 그것은 인간에게 풍요와 안락함을 제공하나 한편으로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생명을 버리게 하는 자살행위와 같다. 자연은 공생이 가능한 것인가? 아닌 것인가?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이다. 자연은 그저 대답만 해줄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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