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언제부터 나에게 슬픔이 되었을까? 겨울에 태어난 나로선 겨울은 나에게 생일이 다가오는 계절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겨울은 나에게 슬픔의 계절이 되었다. 2월 어느 목요일, 이날은 나에게 매우 슬픈 날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 금요일이 더 슬픈 날일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이제 3년째이다. 3년 상이란 옛날 말이 있다. 지금이야 근대문화에 따라 3일장만 하지만, 과거 조선시대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3년 동안 움막을 짓고 거기서 추모하던 것이 사대부의 도리였다. 분명 나는 사대부의 후손으로 사대부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이란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세상이나, 부모 아래 자식 있고, 자식 위에 부모가 있는 게 법이다. 그 법이란 사회법이 아니라 자연법이란 인간사회를 넘어 우리 전체 세상에서 보는 관점이다. 겨울은 나에게 슬픔만 주는 계절이라고 했다. 이번 겨울은 나에게 너무 참혹했다.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물론 나이가 100, 생신 기념을 하고. 작년 201910100돌 행사를 했다. 그리고 201911월 말에 세상을 떠났다. 2019121일 발인을 했다. 2019년의 겨울계절이 되던 121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외할아버지는 1919년에 태어나신 분이다. 그때는 31 운동이 일어난 해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가 창설된 해이기도 하다. 외할아버지는 키가 작고 왜소하나, 매우 몸이 튼튼했다. 나이가 80이 넘을 때 20대인 나와 팔씨름을 하면 내가 언제나 지고 만다. 그 정도로 몸이 튼튼했다. 할아버지가 20대 시절, 일제가 우리를 어둠으로 가둘 때, 태평양전쟁이 터졌다. 할아버지는 강제로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을 당했고, 어디서 고생했는지 모르지만, 무척이나 고생을 했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나 주변 친척과 이웃에게 그 이야기를 엄마가 들었다고 한다. 심한 노동과 구타 속에 여기 있다간 결국 죽겠다고 생각해서 할아버지는 탈출을 했고, 결국 살아남았다.

 

주민등록증으로 53년생이나, 실제 생일이 51년생인 엄마는 할아버지와 추억이 많은 분이다. 격담이나 인생이야기를 하면 외할아버지가 했던 이야기를 자주 한다. 외할아버지가 탈출하지 않았다면 엄마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터이다. 뉴스나 인터넷에서 징용당한 분이나, 특히 군함도 이야기가 나오면 외할아버지가 생각날 때가 많았다. 국가에서 매년 80만 원 정도 보상금을 받았던 것 같았다. 일본정부가 노동의 대가를 주지 않으니 배상금일 리가 없으니 말이다. 최근에 No-Japan 운동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던 사람이 외할아버지였다.

 

그렇게 일제에 의해 착취당하고 고통 받았으니 말이다. 이제 그분이 세상을 떠났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아픔이 잊어지기 전에 친구의 기일을 맞이했다. 바보 같은 녀석이었고, 남에게 나쁜 짓을 하는 것조차 생각을 못하던 친구였다.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되었다. 시간이 빠른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이 너무 무심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버지 납골당에 찾아가고, 친구가 묻힌 수목장에 올라갔다. 정권이 바뀌어도 아직 노동자의 슬픔은 계속 되었고, 정권이 바뀌면 더더욱 큰 일이 터질 것 같은 세상이었다. 싸늘한 한파가 찾아오던 그 추운 겨울날 대학동기와 외롭게 둘이서 친구의 유골이 든 무덤에서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1월이 되자, 또 다른 슬픔이 찾아왔다. 경기도 요양병원에서 치매로 입원하던 작은할머니가 타계했다. 친가 쪽으로 어른 중에 마지막 어른이고, 어릴 적 내 기억에 남은 분들이 이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작은할머니는 돌아가기 전 치매엘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기억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상을 떠났다. 많이 슬픈 것까지는 아니나, 외할아버지 49제로 폐가로 남은 외갓집에 들린 후, 시골 친구에 들렸다. 그때 작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잠든 묘소에 참배했다. 그곳을 가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내가 아주 어릴 적애 형이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뜨거운 물로 인해 팔에 지우지지 않은 화상을 당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 화상자국은 지워지지 않은 형의 상징이다. 형이 화상을 당한 후 시골에 왔는데, 작은할머니가 어머니를 무척이나 야단을 쳤다고 한다. 아기를 어떻게 관리했기에 그런 흉터를 남겼냐고 말이다. 나로서는 처음 듣는 애기, 그때 산소에 들려 성묘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3번째 제사를 맞이했다. 평생 고생하고 불우하게 사신 분이다. 노동착취, 인간소외, 가난이 무엇인지 나에게 지독하게 한을 남긴 사람이다.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 모습을 세상에 대한 증오만 가득했다.

 

아버지가 떠나도 그때의 슬픔과 증오는 지울 수가 없었다. 내 생일이 분명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인데, 왠지 모르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슬픔으로 가득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아직도 마음을 정리할 수 없었는지 전혀 모르겠다. 내 생일을 축하한다고 처갓집에 갔을 때 모두가 좋아해주었지만, 옆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떠나간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언제나 후회를 하는 동물이다. 지금 나는 언제나 후회하고 있다. 그때 만일 그랬다면 아버지가 더 살 수 있을 것인데, 그때 조금 더 알았다면 외할아버지가 말하지 않았던 한을 세상 밖으로 풀어갈 수 있었을 것인데, 인간은 후회하는 동물인 것 같다. 지금도 아버지 일만 생각하면 내 마음은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고, 일본 아베정권이 하는 행동을 보면 외할아버지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온다. 왜 역사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끊임없이 계속 현재와 대화하는 것일까? 그것은 E.H. Carr가 강조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인간은 매우 개인적 영역에서 사는 존재이다. 자기가 활동하고 접할 수 있는 공간에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설사 미디어가 자신이 접하고. 혹은 선택하여 포커스에 맞추는 게 인간이다. 인간이 객관적 존재일 수 있는 것은 수치로 명확하게 제시할 수밖에 없을 때라고 여긴다. 역사는 년도로 매기고, 호응 및 거부감도 %로 매기지 않은가? 주관적으로 살 수밖에 없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에 가는 데로 행동한다. 자기가 느낀 그 가치관이 자신의 삶에서 지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타인의 삶을 함부로 말할 수 있는가?

 

자신이 그런 비극적 삶을 당하지 않았다면, 드라마란 그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TV속의 드라마의 이야기보다 더 기구한 게 어느 한 개인의 삶이 아니던가? 아니면 그 개인의 삶조차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 배제되는 것인가? 내 삶의 드라마는 누구나 겪을만한 일이지만,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물론 아닌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겪은 슬픔을 타인이 객관적 볼 때, 슬픈 일이라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나는 그 감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슬픈 일이라고 여긴 것과 슬픈 일이라고 생각만 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이야기다.

 

영화에서 슬픈 장면은 생각만 하고 그대로 끝날 일이지만, 여기는 것은 그 자체가 관객에게 하나의 가치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의 슬픔은 그저 생각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생각의 동물로 살아가기에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고,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 어느 순간 망각의 선율로 젖어든다. 하지만 슬픔을 여기는 것은 다를 것 같다. 내 친구가 억울하게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나도 나는 매년 그 친구의 무덤에 국화와 맥주를 바친다. 4년이 지나도 그렇다. 인간은 생각 중에서 논리로만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논리란 생각보다 그 이상의 가치관이 숨을 쉬기 때문이다. 인간 본연적 존재,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과 무의식이 있기에 그렇다고 본다.

 

문득 글을 적기 전에 나는 국회의원 선거를 생각했다. 415, 그러나 나는 다시 생각했다. 세월호 어린 친구들이 세상을 떠난 날을 말이다. 416일을 말이다. 415일은 왠지 모르게 논리적으로 달력 속에 휴일 또는 투표 날이나, 416일은 조금 다른 느낌이 난다. 기분이 더럽고 화가 나고, 정말 뭔가 몰라도 내 속에 그 무엇을 토해내고 싶은 마음이다. 내 외할아버지는 일제에 의해 고통을 당했고, 내 친구는 자본주의 시장의 어두운 논리에 의해 죽음에 대한 보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고, 한 평생 노예처럼 일한 아버지는 암 때문에 너무 힘들게 불쌍하게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작은할머니의 죽음이라고 억울하지 않을 것 같을까? 작은할아버지도 징용에 끌려가고, 그 후유증으로 불편하게 사셨다. 큰할아버지도 징용에 다녀온 후 해방 다음해 골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세상은 이렇게 불우하게 사신 분들을 조롱하고 외면하고 억지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즐겁게 살고 싶다. 웃으면서 재미있게 살고 있다. 삶에서 모든 일상이 그렇지 않으나, 적어도 올해 1번 이상은 정말 폭소를 터뜨리고 싶다. 415일 그날이 온다면 그렇게 하면 안 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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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 06: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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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 2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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