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을 보면 참 슬픔을 느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닐 터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내 앞에 젊은 커플이 이게 왜 칸영화제에서 상을 탄 거지? 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느꼈다. 이 영화를 정말 제대로 느끼려면 삶이란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란 말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 있고, 삶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을 통해 보이는 예술이다. 봉준호 감독은 확실히 후자에 속한다. 영화감독이란 점에서 영화란 대중문화이란 거대한 자본시장에서 출현되는 콘텐츠이다. 미디어란 공간적 설정에서 대규모 자본이 투자되고, 그 투자로 성사된 필름이 영화관에서 상영될 때 자본주의 시장의 완벽한 구조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우습게도 인류의 발전과 퇴보를 모두 가지고 오고, 자본주의로 통해 자본주의를 성장하게 하나, 그 자본주의 자체를 비판하기도 한다. 가령 쿠바혁명가인 체 게바라는 전형적인 코뮤니스트였다. 하지만 체 게바라의 옷을 입는 젊은 친구들도 많고, 체 게바라의 청춘을 그린 <모터사이클>이란 영화도 대중문화에서 살아간다. 체 게바라의 서적도 역시 화폐로 통해 구매된다. 자본주의 시장체계란 그런 곳이다. 자본주의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를 암울하게 만드는 사회적 기생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기생충들은 대부분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소유하는 반면, 사회적 기생충에게 생기를 빼앗기는 대중은 그저 하루가 힘든 소시민들이다.

 

영화 <기생충>이란 바로 그런 소시민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기택은 가난한 집안의 가장이다. 그는 백수로 살아가고, 반지하 건물에서 아스팔트 골목길이 보이는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아간다. 자녀들은 핸드폰 요금을 내지 못해 통화가 되지 못하고, 게다가 주인집에서 와이파이 공유비밀번호까지 바꾸다보니 인터넷도 할 수 없다. 겨우 화장실에 도달하자 인근 커피가게의 와이파이가 연결되자 거기서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아보는 서글픈 현실이다. 이런 가족에게 하나의 기회가 왔다. 기우의 친구가 유학가면서 자신을 대신하여 과외학생을 지도해달란 부탁을 받는다. 가난해서 진학도 포기하던 기우에게 대학의 문턱은 높다.

 

게다가 포토샵을 해주던 기정은 오빠 기우의 재학증명서를 연세대학교로 바꾼다. 사실 영화를 보면 기우나 기정은 제법 실력을 갖춘 사람이다. 단지 돈이 없어서 대학에 가지 못한 헬조선의 청춘일 뿐이다. 기우가 간 곳은 유명 CEO 박사장의 집이다. 박사장의 아내 연교는 부유한 집의 사모님으로 살아가지만, 아이들의 교육에 늘 불만이었다. 이때까지 잘 되지 않았던 애들의 모습이 기우가 오자 딸인 다혜의 학업능률은 오르고, 다혜는 절실함이 담긴 기우의 과외에 마음을 품는다. 기정은 정서불안인 다송의 태도를 완전히 바꾼다.

 

하지만 연교가 이들이 자식의 교육을 제대로 맡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학벌의 조건이었다. 국내 유명대학교, 해외 유명대학교 출신이란 말에 모든 것을 혹한다. 결국 학벌이란 존재가 하나의 상품과 이미지로 된다. 현실에서 오히려 그 일에 대한 적성도가 개인의 역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학벌의 문제로 밀리는 게 안타까운 일이다. 박사장 가족의 마음을 잡은 기우와 기정은 운전기사로 아버지 기택을 부르고, 주방아줌마로 어머니 충숙을 부른다. 그 과정에서 보여준 이들의 모략은 매우 비열하나, 그 모습은 비열하기보단 왠지 모르게 웃음을 자아낸다. 살아나기 위한 이들의 몸부림이다.

 

겉모습은 어떻게 속이고 살아갈 수 있었다. 기택의 운전실력은 발군이다. 박사장은 기택의 운전솜씨를 확인하기 위해 커피 잔을 들고 차 뒷자리에 앉는다. 기택의 운전에서 커피 잔의 커피는 넘치지 않고 조용히 컵 안에서 맴돌았다. 적당히 선을 넘지 않으면서 살갑게 대해주는 기택이 마음에 들자, 기택의 가족은 박사장 가족들과 이상한 공생관계를 유지한다. 박사장의 집에서 기생하던 이들이 오히려 박사장이 이들에게 의지(기생)한다. 그러나 뭐든지 간극은 존재했다. 과거 일하는 아줌마와 그 아저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겉은 속여도 본질을 속일 수 없다는 점이다. 기택의 가족에게 비슷한 냄새가 난다. 구역질나게 만드는 악취, 가끔 지하철을 타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 이 모든 게 가난과 부를 구분 짓게 하는 인간사회의 본능이었다. 악취(惡臭, 惡趣)와 취향, 전자의 악취는 냄새이나 뒤의 악취는 좋지 못한 비열한 뜻이다. 기생하는 이들은 비열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악취(惡趣)를 저지르고, 여기에 그들은 역겨운 냄새를 낸 악취(惡臭)를 풍긴다. 이들의 악취는 계획적이 아닌 삶에 대한 몸부림이다.

 

기생충은 계획성으로 움직이는 생물이 아니라 살기 위해 움직이는 동물이다. 인간 기생충에게 냄새나는 것은 결국 대부분 삶을 위해 살아가는 가난한 자들의 몸부림이 부자들에게 냄새나는 것으로 여길 뿐이다. 박사장 가족이 모두 캠핑가고 없을 때 이들 기택 가족은 술과 안주를 벌여놓고 파티를 즐긴다. 그러나 갑자기 예전에 일하던 아줌마와 그 남편을 만나 소동을 겪는 와중에 박사장 가족이 다시 집에 돌아간다. 폭우가 내리자, 기택가족은 거실을 정리하고 박사장 가족의 눈을 피한다. 기택가족이 장대 테이블 밑에 숨어 있을 때 박사장과 연교는 이상한 냄새를 맡는다.

 

처음 나는 이들이 술판을 벌인 직후 알콜 냄새를 맡았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들은 숨어있는 기택의 몸에서 나는 악취를 맡은 것이다. 그리고 악취와 기택에 대한 험담이 이어진다. 그런 와중에 박사장은 연교에게 애무를 하고, 연교는 윤기사가 해고될 때 팬티이야기를 하며, 마약을 구해달라고 한다. 기정은 사실 윤기사가 박사장 차에서 카섹스를 하는 것처럼 보이려 했지만, 박사장과 연교는 그것을 넘어 차 안에서 마약섹스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윤기사가 저열한 인간으로 취급했지만, 사실 그들도 더티 섹스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느낀 것은 기택의 몸에서 나는 악취 덕분일까? 기택의 부부에게 악취가 나지만, 박사장 부부에게 악취미(惡趣味)가 보인다. 악취를 맡는 박사장 가족에게 악취 나는 사람이란 별 볼일이 없고,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해주지 않은 사람이다. 아무리 외견을 바꾸고, 말투와 행동을 속이더라도 몸에서 나는 원초적 요소(사회적 경제적 빈곤)는 숨길 수 없었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봉준호 감독이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란 책을 읽었을 것이라 여겼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부르디외는 본래 프랑스 최고 교육기관인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다. 그 학교는 대학생을 가르치기 위한 교수를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엘리트기관이다.

 

부르디외는 우수한 학생이지만, 그를 두고 주변 학생들은 무시하거나 외면했다. 그 이유는 그가 파리의 부유층이 아니라 시골의 가난한 집안출신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조건, 부모의 직업과 조건에 따라 계급이 나오고, 이들 조건에 따라 취향과 문화적 간극이 벌어진다. 다행히도 20세기 부르디외가 살 때는 인터넷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못했다. 21세기 한국의 인터넷은 세계 최고이다. 모든 정보가 인터넷에서 홍수처럼 쏟아진다. 그래서 기정이 미술치료사 못지않은 실력을 가지고 다송의 치료를 진행할 수 있었다.

 

아니라면 오히려 밑바닥에서 쌓은 삶의 축척이 그대로 현실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단지 학벌이 위조되었을 뿐이다. 사실 생각하면 기택의 가족은 가난한 집안이 아니었다. 내가 어린시절 보이스카웃이란 클럽에 가는 친구들은 어느 정도 집에 여유가 있었다. 가입비와 활동비, 각종 행사비용을 해결하려면 부모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했다. 기우는 보이스카웃 활동을 했고, 마지막의 모스신호를 읽을 수 있는 이유도 그렇다. 기택은 원래 사업을 했었다. 우리가 예전에 한참 호황을 누린 대만카스테라, 어느 순간 이 사업은 망했다.

 

많은 이들이 이 사업실패로 빈곤하게 되었고, 중산층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기택의 운전실력은 발레주차와 대리운전으로 만들어진 실력이었다. 문광의 남편 근세 역시 대만카스테라로 망했다. 정신이 이상해진 근세이나, 그가 나온 말을 들은 기택의 눈빛은 근세를 적으로 여기기보단 자신과 똑같은 기생충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소시민이란 사실을 알았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현실은 폭우의 현장에서 잘 나온다. 다송은 인디언놀이에 빠져 폭우가 내려도 텐트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텐트 안의 다송은 빗줄기 한 방울도 맞지 않는다. 기택은 집에 가자 동네가 물난리를 겪었고, 기택과 주변이웃은 체육관에 누워 밤을 보내야했다.

 

부자의 텐트와 빈곤한 자의 집은 이미 처음부터 틀렸던 것이다. 이때 집에 가서 찾던 물건들이 인상적이다. 기우는 친구가 준 돌을 집었고, 기우는 천장 위의 담배, 기택은 아내가 예전에 받은 메달이었다. 기택은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고, 기택이 부족한 가장이라도 가족들은 그를 따랐다. 물난리를 났을 때 이들이 잡은 물건은 상징적이다. 기우는 돌을 잡은 이유는 부의 성공을 포기하지 않았고, 기정은 순간적 도피, 기택은 가족의 자존심이었다. 성공과 쾌락, 정체성이란 갈림길에서 영화는 그대로 반영된다.

 

근세는 다송의 생일파티에 나와 무차별적 칼부림을 일으킨다. 이때 칼에 찔려 죽어가던 기정 앞을 두고 기택은 고민한다. 다송의 트라우마로 쓰러지자 박사장은 기택에게 차를 몰고 병원에 가자고 한다. 기택은 고민한다. 딸을 살려야 하고, 아내를 위협하는 근세를 말리야 하고, 박사장과 다송을 태우고 병원에 가야 한다. 충숙은 근세를 제압하자, 송강호는 딸을 선택하기 위해 차 키를 박사장에게 던지나 중간에 근세 옆으로 떨어진다. 죽어가는 근세 옆으로 박사장이 차 키를 줍자 순간 악취가 역겨워 하며 코를 감싼다.

 

이때 기택은 칼을 잡고 박사장의 심장에 그대로 꽂아버린다. 기택은 그 칼을 꽂은 이유는 기택의 존재가 방해되는 이유가 있지만, 박사장이 맡은 냄새에서 자신과 근세 모두 같았고, 그 냄새를 지닌 사람을 인간 이하로 무시했기 때문이다. 기택이 병원에 다송을 데리고 갔다면 운전기사라는 직위로 부를 보장받았고, 기우를 지키고 있었으면 딸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기택이 선택한 것은 박사장의 죽음이다. 그 죽음은 자신의 정체성을 택한 것이다. 근세는 적대적인 기생충이지만, 그래도 자신과 같은 기생충이었다.

 

기생충이란 존재가 비난받을망정, 그 존재성 자체를 부정 받아야 하는 것에서 기택은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기택의 선택은 후회의 연속이다. 평생 나오지도 못할 그 곳에서 눈치 보면 생존해야 하는 기생충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기우는 머리를 크게 다쳐 재판장에서도 죽은 누나가 있는 유골단지 앞에서 웃음만 나왔다. 그리고 다시 찾아간 그 집을 바라보면서 기우는 영원히 이룰 수 없는 소망을 빈다. 언젠가 그 집을 사서 아버지가 밝은 태양 아래로 나와 같이 포옹하는 모습을 말이다.

 

기택의 죄는 분명 크다. 사람을 속이고 사람을 죽인 죄는 분명 죗값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택의 죗값을 치루는 모습보다 그가 영원히 죗값조차 치루지 못한 채 어둠에서 기생해야 한다는 선택에서 큰 슬픔을 느낀다. 거기 내가 있어도 저쪽에 가족이 있어도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운명 아래서 영화 기생충의 블랙코미디는 비극적인 드라마로 다가온다. 코미디는 희극이나 드라마는 비극이다. 비극은 누구나 일어날 수 있는 개연 내지 필연이다. 어떻게든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우리는 악취냄새로 빈곤의 딱지가 새겨져 있다.

 

사람의 정보 중에 촉각, 시각, 미각, 청각, 후각이 있다. 이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당연히 촉각과 미각일 것이다. 하지만 음식이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시각과 청각이다. 말은 어떻게든 속일 수 있다. 처음 기우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겉모습은 속일 수 있다. 기택이 적당히 양복을 입고 가면 되듯이 말이다. 하지만 냄새는 다르다. 냄새는 그가 살아온 삶의 시간이 담긴 축척세계이다. 누군가에게 어떤 냄새가 나면, 그가 사는 집이나 방에서도 그 냄새가 난다. 냄새는 가장 강렬한 기억과 정보를 준다. 그렇기에 그 냄새를 지울 수 없는 기택에겐 영화 <기생충>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은 개미지옥처럼 우리에게 다가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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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9-06-03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전 지식 없이 보고싶어서 개봉하고 바로 기생충을 보고왔어요

저도 너무나 현실같은 상황과 결말을 보면서 슬픔을 누르기 어려웠어요

만화애니비평 2019-06-05 20:01   좋아요 0 | URL
마지막은 기택의 모습에서 한없이 애처로움을 느꼈습니다...
참 감정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