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에 대한 이야기가 최근 들어와서 다시 큰 화두로 되었다. 1980년 5월에 일어난 비극은 이제 2019년이 되어 39주년이 되어간다. 그리고 내년 2020년은 40주년이 되어 간다. 그 당시 태어난 이들도 이제는 한 사람의 어른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이제 어른이 되어 그들에게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흔적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518에 대해 어째 생각하는가? 누군가는 민주화 운동이라 하고 있고, 누군가는 사태 즉 소요사태로 보는 이들도 있다. 나는 민주화나 사태보단 개인적으로 학살에 가깝다고 본다. M16으로 무장한 군인, 거기에 장갑차와 헬기까지 출동하는데, 고작 저항했다고 M4카빈 10개이든 100개이든 그게 상대가 되겠는가?
처음부터 고속도로에 최초모델 티코와 최근 제네시스를 가지고 경부고속도로 누가 먼저 돌파하는가? 하는 퀴즈를 내는 것과 같다. 게다가 티코의 연료는 E를 가리키는데 제네시스는 F를 가리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국 개입설을 주장하는 일파가 있다. 군대를 갔다 오는 이라면 당연히 생각한다. 국군의 체계에서 단순히 한국군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군과 같이 엮이는 경우가 많다. 매년 더운 8월 UFC(을지 포커스 레인지)라는 훈련을 뛰면 한국만 아니라 미군 역시 같이 동참한다. 한국에서 전쟁은 한국군이 아니라 미군도 같이 공조한다.
내가 군생활하던 시기 우리 부대 안에 미군기지가 있었고, 미군도 존재했다. 훈련이 아닌 실제 상황에서 미군은 우리 기지를 전초기지로 삼아 보급과 전투지휘를 위한 체계를 잡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럴 만큼 미군 아니 더 나아가 미 국무부, 국방부, 상세하게 CIA가 518 그때 일을 모를 일이 있겠는가? 미국의 기밀문서 보존기한이 해제되면서 518 당시 미국의 정보들이 공개된다. 그 당시의 정보를 보면 다들 북한과의 무관함을 증빙한다. 하지만 아직도 518의 문제를 북한으로 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민중가요가 국내에서 금지되고 북한에서 허용된 적이 있어 그런 것인가?
그런다고 북한에서 민중 그 스스로 북한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혁명이나 민주화운동을 실천했는가? 노동운동과 관련된 시위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종종 울린다. 독재와 노동운동이 밀접한 관계에서 시작한 한국이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보이는 것은 아쉬운 일이나, 적어도 독재정권에서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운동은 유사한 출발점을 가지고 있었다. 피로 물들어진 5월의 슬픔은 아직 우리에게 떠나지 않았다. 최근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 이야기를 들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꽃보다 더 고운 맵시를 가진 그 소녀가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빼앗겼다.
꽃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진보 몇몇 단체도 있지만, 꽃이란 이름은 진달래꽃처럼 아기자기 하고 다정하고 늘 우리 곁에서 미소지어주던 그런 분들이다. 그런 봄날의 진달래꽃이 무참히 뿌리까지 뽑히고, 그들은 평생의 한을 지니다가 눈물이 마른 채 세상을 떠났다. 그때가 1940년 전후인데, 그 40년 뒤인 광주의 한은 오죽할까? 예전에 광주 518망월묘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머리에 하얀 백발이 들어선 할머니 몇 분이 묘역에 앉아 묘지주변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그 누구의 아내일까? 어머니일까?
TV나 신문에서 하얀 소복을 입은 할머니들이 눈물을 흘리며, 묘비를 어루만지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들이 40년 전의 일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그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그들을 학살하던 이들을 옹호하고, 오히려 학살자들의 가족을 두고 진짜 유공자인지 아닌지를 가리자라고 말하는 부류가 있다. 죽음 앞에서 당사자는 말은 없으나, 죽은 자들의 주변사람은 평생 한으로 살아간다. 그들의 가슴은 이미 가족의 죽음에서 죽었고, 그들의 죽음을 진상하려는 시도조차 밟아 또 죽었고, 또 다시 그 죽음을 모욕한다.
사람이 살아생전 누군가 크게 다투고 원수로 남게 될 일이 있다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살아있을 때 자신 스스로 용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면 된다. 상대방도 살아있다면 용서를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면 용서를 구할 수도 없다 베풀 수도 없다. 5월의 죽음을 모욕하는 행위는 바로 죽음 자에 대한 용서를 바랄 수도 없는데, 그 이상으로 망자를 모욕하기 때문이다. 망자의 모욕과 치욕은 살아남은 가족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고인을 모욕한다면 고인은 죽었기에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해온다.
518 유공자와 당시 가담하던 살인자들의 분류가 비공개라서 옭아매는 행위는 참으로 우습다. 이태까지 부정하다 최근에 헬리콥터로 사격을 실시한 사진과 증거가 공개되었다. 칼빈 소총이 헬리콥터에게 어찌 이길 수 있는가? 하다못해 공군기지 전투기까지 동원하려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이런 증거가 넘쳐 남는데도 아직도 망언과 망언에 대한 책임회피는 여전하다. 518의 비극은 죽음과 은폐만이 아니라 국가가 그동안 저지른 내분도 책임이 있다. 518 당시 희생자 가족을 매수하려고 했다. 일부 그런 자가 있어 그것을 이용한 것도 역시 국가이다. 세월호 비극을 가지고 유가족들이 어린아이들의 목숨을 가지고 배상금 흥정하려 했다는 말을 만든 것도 국가였다.
국가란 결국 그 자체를 운영하는 정부의 도덕성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부의 운영을 책임지고 결정할 수 있는 국민의 정치적 참여 역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촛불정권이라 하나 사실 100% 마음에 들 수는 없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진보적 성향을 가진 이들이 현재 정부에 대한 배신감이나 또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전의 정권이 유지된다면 어찌 되어야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 역시 두렵다. 지금 어느 당이 일으킨 문제를 두고 전의 정권이라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넘어갔을 것이다.
한편으로 그런 막말을 하는 인간이나 그것을 두고 옹호하는 인간이나, 그 문제를 가지고 다양한 관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버젓이 존재하는 것도 경악할 일들이다. 독일이라면 나치옹호론자를 가만 두지 않을 터이나, 아직 우리에게 그런 강력한 제재 방안을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518 내지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그 당시 권력자는 그들이 잡으려고 한 인물만 괴롭힌 게 아니라, 그 가족을 잡아 고문했다. 늘 감시하고 문초하고 행패를 부린 그들이 이제는 대한민국 정통성을 말하고 보수의 가치관을 말한다. 대한민국 정통성을 말할 것 같으면 조선시대로 돌아가면 그만인데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조선의 정통성을 밟은 것은 그들의 시작점에 있던 그들이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