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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평점 :

날이 따뜻해지니 피가 잘 돌고, 돌연 낙관적인 사람으로 변한다. 무엇보다도 서재 바깥 데크에 의자를 내놓고 한가롭게 햇볕을 쬐며 책을 읽게 된 것이 행복하다. 무릎을 담요로 덮고 그 위에 책을 올려놓고 햇볕을 쬐며 독서삼매경에 빠지는 초봄 오후다.
왜 책인가? “책은 생명 보험이며, 불사(不死)를 위한 약간의 선금이다” (움베르토 에코,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라는 문장에 그 답이 있다. 바람이 살랑이며 손에 들고 있던 책장을 넘기고 볼을 장난스럽게 간질이고 달아난다. 이런 봄날은 사유의 근육에도 힘이 붙어 “다시 데운 수프”와 같은 그 속이 뻔하게 보이는 책이 아니라 더 굳고 단단한 책들을 읽어볼 좋은 기회다.
♣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 :p 15

『일방통행로』는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벤야민의 책 중에서 가장 얇은 책에 속한다. 60개의 표제가 있고, 그것들에 대한 자유로운 단상을 펼쳐내는 이 책은 ‘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현대의 교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대개의 단상들은 표제와 사유 사이의 먼 간격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바로 그 ‘사유’를 위해 남겨둔 여백이라고 느껴진다. 아주 짧은 것을 예로 들어보자.
좋은 산문을 쓰는 작업에는 세 단계가 있다.
구성을 생각하는 음악적 단계, 조립하는 건축적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짜맞추는 직물적 단계.
♣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 :p 16

「13번지」라는 표제에서는 책과 매춘부의 공통점을 다룬다. 이를테면 둘 다 “침대로 끌어들일 수 있는”것에 속하고. “양자에게는 저마다 이들을 갈취하고 괴롭히는 남자들이 달라붙어 있다. 책에는 비평가들이”있다. 책과 매춘부는 제 몸을 판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매춘부를 산 남자들은 그 몸을 더듬고 읽는다. 남성 독자들, 혹은 남성 비평가들은 책이라는 매춘부에게 달라붙어 그 자양분을 탈취해 간다. “책과 매춘부 - 전자의 각주 (脚注)가 후자에게는 양말 속의 돈”같은 문장은 벤야민의 차가운 유머가 번득이는 대목이다.
♣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 :p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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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장석주님 책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는 볼 때마다 표지가 예술~~이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어떤 책은 펼치자 마자 휘리릭~ 술술~ 잘 읽혀서~ 몇 시간만 투자하면 앗싸! 벌써 책 한 권 다 뗐다!! 완독의 즐거움을 맛 볼 수 있는데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는 어느 한 페이지도 허투루 읽을 수 없을 만큼 밀도가 높은 책이라 꼭꼭 씹어 한 페이지씩 읽으려니 속도는 더디지만 건지는 게 많아서 생각 주머니는 그만큼 든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