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퀘스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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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의 첫 산문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버선발로 달려가 <빅 퀘스천>을 위시리스트에 담았다.

2011년에 <빅 픽처>를 처음 읽고 와! 미쳤다! 어떻게 이렇게 재밌는 소설을 쓸 수가 있지? 너무나 반한 나머지 그 뒤로도 줄줄이 <위험한 관계> <더 잡> <파이브 데이즈> 등등등의 다음 작품들을 읽으면서 어느덧 더글라스 케네디는 나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믿을 수 있는 작가가 되었는데, 이번엔 소설이 아니고 산문집이라니!! 그것도, 자전적 이야기이라니 완전 궁금한거다!

 

소설가에게 가장 중요한 재료는 ‘다른 사람의 삶’ 이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나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내가 인생에서 직면했던 어려운 문제들을 되짚어보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이 책에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곳곳에 들어 있다. 그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명을 사용하고, 신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바꾸었다. 그렇지만 이 책에 기록한 모든 이야기는 내가 사는 동안 실제로 겪은 일이라는 걸 밝혀둔다.

♣ 빅 퀘스천 - 더글라스 케네디 :p 5 

 

작가 서문 마지막 문장처럼 더글라스 케네디씨가 사는 동안 실제로 겪은 일들을 적었다고 하는데, 정말로 <빅 퀘스천>엔 더글라스 케네디가 파리에서 프랑스 여자와 눈이 맞아 바람피우다가 아내에게 들켰다는 얘기까지 다 나오고;, 케네디의 부모님은 눈만 뜨면 서로 싸우는 관계였다고 고백을 하기도 한다.


 

내 부모의 싸움은 끝이 없었다. 어머니의 불행도 끝이 없었다. 어머니는 끊임없는 활동을 통해 불행한 삶을 가리려 했다. 어머니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NBC방송국에서 AD로 일했다. 그 당시는 텔레비전 황금기였고, 어머니는 지금은 유명인사가 된 사람들과 함께 일했다. 방송국을 나와 잠깐 동안 여성지에서 일한 어머니는 곧 결혼했고, 1955년 새해에 첫 아이(바로 나)가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면서 어머니의 사회생활 경력은 끝났다.
  1970년대 초,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통해 당시 대통령이던 리처드 닉슨과 인터뷰하는 바바라 월터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저 자리에 있었어야 하는데, 네가 태어나는 바람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어.”
  나중에 그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들려주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어머니의 말을 부정했다.
  “거짓말이야! 네 엄마는 능력도 없는 주제에 성질만 부리다가 NBC 방송국에서 해고당했으니까. 여성지에서도 마찬가지였지. 그 당시, 네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널 임신하는 것뿐이었어.”
  아버지 역시 인생의 피해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탓에 가끔 내 앞에서 피해의식을 드러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 빅 퀘스천 - 더글라스 케네디 :p 40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제일 깜짝 놀랐던 건. 자폐아 판정을 받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아들 맥스 이야기였는데... 간질 발작을 일으켜 의식이 없는 아들에게 밤마다 동화책을 읽어주는 장면은 정말이지 너무 가슴이 찡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밤마다 맥스에게 책을 읽어 주었다. 맥스가 유난히 좋아하는 책이 모리스 센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였다. 공교롭게도 그 책의 주인공 이름도 맥스였다. 어린아이가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뛰어나게 표현한 모리스 센닥의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는 맥스가 특히 좋아하는 대목이 있었다.

  괴물들이 말했어요.
  “제발 떠나지 마. 떠나면 우리가 너를 잡아먹을 거야. 너를 너무 사랑하니까.”
  그러자 맥스가 말했어요.
  “싫어!”

  내 아들 맥스가 괴물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맥스는 간질이라는 괴물에게 말하는 능력과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방법을 모두 빼앗겼다. 나는 ‘그러자 맥스가 말했어요.’까지 읽어주고 나서 한참을 기다렸다. 그 뒤의 말이 맥스의 입에서 나오기를 간절히 기대했지만 허사였다.
♣ 빅 퀘스천 - 더글라스 케네디 :p 287

 


제법 두툼한. 총 304쪽짜리 산문집 <빅 퀘스천>은 이렇게 더글러스 케네디 본인이 겪은 시련과 불행한 결혼생활뿐만 아니라, 주변 지인들이 겪은, 또 평범한 우리도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겪게 될? 인생의 우울? 슬픔? 허무? 같은 감정들을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하나씩  짚어가는데... 글도 잘 쓰고, 책도 많이 팔리고, 외모도 썩 괜찮고, 무엇 하나 남부러울게 없을 것 같아 보이던 잘 나가는(?) 작가도 이런 남모를 고민과 참을 수 없는 인생의 우울을 떠안고 살아가고 있었구나! 더글라스 케네디의 살아온 이야기를 함께 짚어 나가다 보니 역시 삶은 세상 누구에게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이상하게 위로가 되면서 힘이 났다.

 


그동안 내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들을 특히 재미있게 읽었던 이유는? '책 속에 책'을 마치 산타클로스 선물처럼 소설 곳곳에 적절하게 잘 버무려 놔서이기도 했는데. 책 취향이 나랑 잘 맞아떨어지는? 아직 다 못 따라 읽어서 검증된 바 없지만; 나도 충분히 알만한 제목의 책을 소설 속 주인공이 읽고 있다던가 할 때는 엄청나게 반갑고, 또 내가 첨 보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등장인물을 만났을 때는 앗! 저 책은 뭐지? 당장 검색을 하고 나도 따라 위시리스트에 넣곤 했는데. 이번엔 소설이 아니고 산문집이니! 그런 뽀너스 '책 속에 책'이 오죽 많으랴!! ㅋㅋ

 


조르주 심농 매그레 시리즈부터, 도스토옙스키가 도박빚에 허덕이며 썼다는 <죄와 벌>, 간통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이야기하며 꺼냈던 <마담 보바리>, 더글라스 케네디가 캔자스시티의 헌책방에서 샀다던 예이츠의 <레볼루셔너리 로드> 등등등 끝도 없고, 그러자 맥스가 말했어요. “싫어!”그다음 얘기가 너무 궁금해서 <괴물들이 사는 나라>도 장바구니에 담아놨다.

 


아무튼 <빅 퀘스천>을 읽고 있으니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들이 왜? 재밌을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겠더라. 소설도 물론 좋지만 앞으로는 이런 수필집도 계속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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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08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에 겐자부로의 아들도 자폐아 비슷한 정신 장애를 겪고 있어요. 겐자부로도 아들을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했어요. 이 때 체험을 토대로 소설을 쓰기도 했어요.

오후즈음 2015-05-08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찡한 얘기네. 아들때문에 아빠는 더 단단해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