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게니 오네긴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79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때론 우습고 때론 슬프고 때론 소박하고 때론 고답적인(헌시 중) 이야기.
오네긴이 화자로서 주인공의 포지션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푸슈킨의 정서를 담은 진짜 주인공은 타찌야나.

러시아적 감성으로 만들어진 타찌야나가 스스로 성장(물론 시대적 배경이라는 한계는 존재하지만) 하는 이야기고,
한치 앞도 못본 오만한 철딱서니 오네긴의 제 발등 찍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랑에 잠시 흔들리기는 하지만 그 사랑을 획득하는 것이 자신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라 믿는 오네긴이 예의 바른 거절만 했었어도 그토록 경멸스러운 타찌야나의 시선을 받을 일은 없었을 텐데.
이래서 사람이 겸손하고,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결국 겉만 번지르르한 미성숙한 인간의 쌤통 서사.

운문 소설인 만큼 금방 읽을 수 있다. 운문의 맛을 제대로 느꼈는지는 원문을 읽는게 아니라서 모르겠고.

- 그는 허영심에 사로잡혀 있는 데다가 자신의 선행도 악행도 모두 똑같은 무관심으로 고백할 정도의 독특한 오만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월함, 아마도 가상의 우월감이 낳은 결과였을 겁니다. - 어느 사적인 편지 중에서

- 소설 속에서 아무런 주된 위치도 차지하지 못한 채 퇴장하고 마는 오네긴. 악마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주인공이 되기에는 너묻 초라한 오네긴은 <모조품, 보잘것 없는 유령, 해럴드의 망토를 걸친 모스끄바인, 결국 하나의 패러디>에 불과한 것이다. - 308, 역자 해설

2019. jun.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소년이로 - 편혜영 소설집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울하고 냉랭한 회고, 한 세대 혹은 두 세대, 한시대가 짜부라드는 모습들이 압축되어 각각의 단편마다 담겨 있는 것 같다.
속절 없이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일까.

서늘하게 인생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불편한 지점을 불쾌한 것으로 마무리 짓지는 않는다.

어떤 행위를 하고 있건 간에 정적인 느낌을 주는 캐릭터들이 마음에 오래 머문다.

- 무엇이든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 11, 소년이로

- 특별한 일보다 우리가 더 많이 겪은 것은 의미없이 흘러간 지루한 시간들이다. 우리는 기억에 남지 않을 하루하루를 함께 보냈다. 별처럼 반짝거리는 순간만 인생인 것은 아니니까. 봄날의 지열처럼 미지근한 나날이 오히려 내가 생각하는 인생에 가깝다. - 187, 잔디


2019. jun.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철학편지
볼테르 지음, 이봉지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청 재밌을 거라고 추천받은 책.
빛나는 지성과 통찰 다 좋았으나,
결정적으로 나는 타인의, 타국의 (특히)종교에 무관심하다. 흥미가 생기지 않는 장르.
촌철살인 날리면 뭐해... 그 대상에 관심이 없는걸..

구체제에 던져진 최초의 폭탄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볼테르의 구체제와 신체제 모두 구체제가 된 지 오래고....

그래서 다수의 챕터가 시큰둥했고, 똑똑한 옛날 사람이구만 하는 감상과 일부 챕터만 재밌었다는 슬픈 후기 되겠다.

오히려 예술가의 후견인, 후원자인 샤틀레 부인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는 독서.

삐딱하게...ㅡ.ㅡ;;;

- 신권 사상은 주교복을 입은 폭군을 만들 뿐이지만 법은 시민을 만든다고 했다. - 33

- 인간의 이중성이란 형이상학적일 뿐만 아니라 부조리한 관념이다. 개는 물기도 하고 핥기도 하니까 이중적이고, 암탉은 새끼가 어릴 때면 극진히 돌보다가 크고나면 완전히 내팽개치니까 이중적이고, 거울은 한번에 여러가지 물건을 비추니까 이중적이고, 나무는 잎사귀로 덮였다가 앙상해지니까 이중적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물론 나는 인간이 불가해한 존재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자연의 모든 것이 다 그렇다. 유독 인간에게만 더 많은 모순이 있는 것은 아니다. - 165



2019. jun.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21-10-09 1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그쵸 관심이 있어야 재미가 따라오죠!

hellas 2021-10-10 03:51   좋아요 0 | URL
그런 면이 있죠 ;ㅂ; 종교.....가 그런 면이예요.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 괄호 안의 불의와 싸우는 법
위근우 지음 / 시대의창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맞는 말에 공감하며 읽는 재미.

웹툰의 개연성, 현실의 재구성에 대한 글에서는 얼마전에 읽은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에서 언급된 부분이 연상되었다. 현실을 그대로 옮겨 오는 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것, 현실과의 긴장이 있어야 한다는 점. 그런것들이 왜 간과될까 생각.

그리고 플스4... 가 남았다. 왜 플스 이런거라고 아무도 나한테 말 안했을까? ㅋㅋ

- 우리는 페미니스트여야 하는가? 이 질문은 오히려 많은 것을 원점으로 되돌린다. 페미니스트여야 하는가 아닌가, 페미니스트가 아니어도 되는가 아닌가, 이것은 페미니즘을 개인이 어떤 옷을 입을지 결정하는 문제처럼 다룬다. 이건 가짜 논의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에, 성별 피부색 성적 지향 등 생득적인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페미니스트여야 한다. 여성이라 돈을 덜 받고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고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포기해야 할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에 반대한다면 우리는 페미니스트여야 한다. 하면 좋고 안 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확장된 규칙이 아니라, 인간은 존재하는 그대로 존엄하며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가장 근원적인 한 줌의 도덕이다. - 18

- 웹툰 특유의 핍진성은 묘사된 현실에 대한 반성적 전유를 거치지 않을 때 자칫 세상의 통념들을 재생산 하는데 그치게 된다. 현실에 일진이 있으니 일진이 나오고, 현실에 폭력이 있으니 폭력이 나오며, 현실에 여성혐오가 있으니 여성혐오가 나온다. 많은 경우 핍진성과 재현의 윤리 사이에 반목이 생기는 건 그래서다. - 94

- 시기상조라는 말은 언제나 실천적 반동이 될 위험을 안고 있다. 급작스럽지 않게 모두가 적응할 수 있도록 천천히 변화를 추구하자는 조심스러움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문제는 시기상조라는 말은 그 느린 변화의 첫 걸음조차 가로막기 위해 쓰이는 경우가 태반이란 점이다. - 161

- 법철학 저서인 <사실성과 타당성>에서 위르겐 하버마스는 페미니즘 법이론을 다루며 “아무리 맥락에 민감한 법적 규제라 할지라도, 그것이 동시에 정치적 공론장에서 여성의 지위를 강화하고 그럼으로써 정치적 의사소통 형식에의 참여를 확대시키지 않는다면, 자율적인 사적 생활을 위한 평등한 권리는 적절히 구체화될 수 없다. 정치적 의사소통은 평등한 지위를 결정하는 유관 적합한 측면을 명료히 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166

- 이 모든 이야기는 품위에 대한 것이 아니다. 최소한 폭력의 공모인은 되지 말라는 것이다. 과거 우리가 어떤 차별적 뉘앙스를 문제의식 없이 웃고 소비했을지라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게 아니다. 사실 그 때도 틀렸다. - 258

2019. jun.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19-06-15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핍진성 이야기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어요.

hellas 2019-06-15 19:36   좋아요 1 | URL
맞아요 개연성만 따지고 사유가 없으면 그게 왜 문화고 예술일까요
 
팬텀 이미지 ㅣ 테이크아웃 13
정지돈 지음, 최지수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지돈의 소설은 좋아하려고 노력하다 아쉽게 어느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끝나는 기분이다 늘.
아직도 잘 모르겠다.

- 불안은 현상이 아니라 심리야, 그러니 더 이상 아무것도 불안해 할 필요 없고 아무것도 불안하지 않을거야. -26

2019. jun.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