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햇수로 2년간 읽은 책 되겠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으로 알고 있었고,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이제야.

역자의 말대로 확실히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과 속도감은 없다.

헤일셤의 시간들이 추억될 때는, 흔히 사춘기의 시절에 겪을 법한 아이들간의 미묘한 갈등과 대립, 상처를 이야기 하는 듯 하다.

시간이 흘러 추억속의 등장인물이 사회에 발을 내딛고, 그들의 사회가 온전한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면서 긴장감과 뭔지 모를 슬픔이 느껴진다.

씁쓸한 결말을 향해 이야기가 전개 될 때도 아주 확실한 한 가지의 감정이라기 보다는 이것 저것 뒤섞여 불편한 감정들이 살아난다.

그래서 인간의 삶의 방식에 주목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도 온전히 이해된다.

섬세하고 한 문장 한 문장이 배려로 이루어진 듯 보이는 방식도 왠지 소중하게 다가온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다른 작품들도 모두 읽어 보고 싶어지는 그런 이야기.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이어 한 해를 여는 책으로 매우 만족 스럽다.





2016. Jan.

어쨌든 그런 가르침 중 일부는 우리의 내면 어디엔가 침투한 것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그런 경험에 직면했을 즈음 우리의 일부는 어느 정도 그런 일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대여섯 살 무렵의 어린 시절부터 어떤 목소리가 우리의 뒤통수에 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될 거야.`하고 속삭여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 저 바깥 세상에는 마담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들은 우리를 미워하지도 않고 해를 끼치려 하지도 않지만 우리 같은 존재를, 우리가 어떻게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치고 우리의 손이 자기들의 손에 스칠까 봐 겁에 질린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 자신을 그런 이들의 관점에서 처음으로 일별하는 순간의 느낌은 정말이지 등줄기에 찬물이 끼얹어지는 것 같았다. 매일 걸어 지나가며 비쳐 보던 거울에 갑자기 뭔가 다른 것, 혼돈스럽고 기괴한 뭔가가 비쳐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 p. 58

루시 선생님의 눈길은 이제 우리 다수를 향해 있었다. "나쁜 뜻에서 그런 말을 한게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이런 얘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이런 얘기가 줄곧 들려오고 그런 얘기를 계속하는 게 허용되고 있는데, 그건 옳지 않다." 홈통에서 더 많은 빗물이 쏟아져 선생님의 어깨에 떨어졌지만, 선생님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른 누군가가 너희한테 얘기해 주지 않는다면, 내가 말해 주마. 전에 말한 것처럼 문제는 너희가 들었으되 듣지 못했다는 거야. 너희는 사태가 어떻게 될 건지 듣긴 했지만, 아무도 진짜 분명하게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감히 말하건대 사태가 이런식으로 흘러가는 데 무척 만족하는 이들도 있지. 하지만 난 그렇지 않아. 너희가 앞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 내려면, 당연히 필요한 사항을 알고 있어야 해. 너희 중 아무도 미국에 갈 수 없고, 너희 중 아무도 영화배우가 될 수 없다. 또 일전에 누군가가 슈퍼마켓에서 일하겠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너희 중 아무도 그럴 수 없어. 너희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단다. 성인이 되면, 심지어는 중년이 되기 전에 장기 기증을 시작하게 된다. 그거야말로 너희 각자가 태어난 이유지. 너희는 비디오에 나오는 배우들과 같은 인간이 아니야. 나랑도 다른 존재들이다. 너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미래가 정해져 있지. 그러니까 더 이상 그런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얼마 안 있어 헤일셤을 떠나야 하고, 머지않아 첫 기능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해.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너희가 앞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 내려면, 너희 자신이 누구인지 각자 앞에 어떤 삶이 놓여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 다음 그녀는 입을 다물었지만,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생각 속에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줄곧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한동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그녀가 다시 운동장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우리 모두는 한시름 놓았다. - p.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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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 2015 올해의 책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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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 2015 년의 책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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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016 이년에 걸쳐 읽고 있다.

북플카운트로는 290여권 읽었다고 하고.

포스팅하지 않은 잡지등등을 포함하면 대략 320권 정도 읽었나봄.

연초에 기대보단 적지만 꾸준히 읽었다는데 의미를.

어서 내 최애작가들의 책도 쏟아져 나오길. :)

속터지는 일 많이 안생기는 한해가 되길.

건강한 한해가 되길.

냥들도 건강한 한해 되길.

이웃분들도 건강한 한해 되길. :):):)

무서운 얼굴로 무탈을 요구하는 루키와 에코 사진 첨부. (실상 매우 나른 평온 졸림의 상태예요)

2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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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6-01-01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꺄악~~~ 루키와 에코 너무 귀여워요..~~
제 눈에는 무서운 표정이 아닌 완전 귀여웡.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ellas님~~^^

hellas 2016-01-01 01:24   좋아요 0 | URL
새해 좋은 일 많으시길 바래요:):):) 루키와 에코도 건강한 노년이 되길 바래주세요:):):)
 
금오신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4
김시습 지음, 이지하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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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엔 낭만을 담고 현실엔 죽음을 담았네.

2015.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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