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과다운 미친 사랑이야기.

안정된 삶에 도대체가 적응할 수 없는 사람.

나와 풀은 결국 그런 사람들이었을까.

서로를 미치게 하고 망가뜨리고 포기하게 만드는 관계가 진절머리가 나다가도, 문득 그 삶이 애달프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떤 장면에서는 만듬새가 거친 프랑스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이 장점인지는 모르겠다.

너는 니가 오고 싶어서 왔지? 그리고 다시 가고 싶어지면 갈거잖아?
그가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서 그 말을 반복했다. - 263

모든 것이 끝난 뒤에도 삶은 이어졌다.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걸, 우리는 마침내 깨달아버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더이상 어떤 기쁨도 놀라움도 설렘도 없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끝내 우리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로 늙어갈 것이다. 그는 끝내 아무것도 그리지 못할 것이다. 나는 끝내 아무것도 쓰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채로 우리는 두 마리의 거분이나 염소처럼 시시하게 늙어갈 것이다. 삶은 끝났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남은 것은 그 삶을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뻔뻔함뿐이었다. 우리는 이제 서로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손을 잡아줄 사람은 서로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건 끔찍한 깨달음이었다. 우린 단지 너무 외로워서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잡아줄 손이, 그 손을 올려놓을 어깨가 필요했다. 아니 그저 살아 있는 것이 필요했다. 그게 거북이건 염소건 상관없었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더이상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 276

2017.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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