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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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이미 다 읽은 단편들.

다 읽은게 맞나? 한개 쯤은 안 읽은 것 같기도.

그럼에도 다 읽었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김중혁의 스타일이라는 것 때문일 것이다.

김중혁 첫 연애소설집이라고 뻔뻔?하게 인쇄된 띠지를 빼면 만족스럽다.

연애소설집이라고 이름 붙이고는 첫 단편 상황과 비율의 첫 문장이

포르노시장은 매년 가파른 성장률을 기록했다. 인 것은 개그일까? ㅋ

지친 사람들의 오랜 소원같은 시시하고 밋밋한 그런 연애들. 그걸 연애라고 부를 수 있다면.

2015. Jul.

저기 지그소 퍼즐 있잖아.
규호는 벽에 걸린 반 고흐의 그림을 가리켰다.
아, 저제 지그소 퍼즐이야?
정윤은 고개를 빼서 그림을 보았다.
내가 저거 자주 해봤는데 모네의 그림이었는지 마네의 그림이었는지, 2천 조각짜리 퍼즐 맞추는 데 꼬박 한 달 걸렸어.
인간 승리네.
인간 승리지. 그런데 막상 끝내고 나면 승리한 거 같지 않고, 오히려 진 거 같은 기분이 들어. 왜 그런지 알아?
나야 모르지.
그림을 다 맞추고 나면 새로운 걸 완성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고, 그냥 원래 있어야 할 것들을 제자리에 놓아둔 기분이야. 아버지는 밥상 뒤집어 엎고 나가고, 나 혼자 남아서 반찬이며 밥이며 국물이며 사방에 엎질러진 걸 다 정리해놓고 소주 마실 때의 기분이랄까. 내가 지금 여기서 대체 뭐하고 있지? 그런 기분이 갑자기 들어. 다 맞춰진 퍼즐을 보고 있으면.
무슨 소린지 대충은 알겠다.
잘 모를거야. 해봐야 알아. 그건.
- p.92,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중.

릴케의 책 [말테의 수기] 첫 문장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정확하게 떠올릴 수는 없다. 찾아볼 곳도 물어볼 사람도 없다. 내 기억으로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곳으로 오지만 실은 여기에서 죽어갈 것이다`라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책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오직 시작 부분만 떠올랐다. 나도 마찬가지다. 시카고를 떠나 살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여기에서 죽어갈 것이다. 죽어갈 것이다, 라고 소리내어 발음하면 오히려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기도 한다. 죽어갈 것이다. 곧 죽어갈 것이다. 인간이란, 스스로 죽을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 동물인가. -p. 204, 보트가 가는 곳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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