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저 노트, 여왕의 비밀 수사 일지 첩혈쌍녀
소피아 베넷 지음, 김원희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국인의 지극한 여왕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윈저 노트.

여왕과 젊은 여성 수행원의 콤비로 이런저런 사건을 남몰래 해결해왔다는 픽션인데, 꽤 그럴싸하고 여왕의 인간적인 면모를 공들여 묘사한 이야기다.

현명하고 노련한 여왕과 그의 수족으로 단서를 추적하는 로지와 대비해 수석수행비서나 다른 왕족이나 수사기관의 장인 남자들은 두 여성의 놀라운 활약을 눈치조차 채지 못한다는게 여왕의 수사의 포인트.
그래서 리얼리티는 살았지만 극적재미는 조금 줄어들기도.

제국주의에 삐딱한 아시아의 독자로서는 저자가 (왕가에선) 여왕‘만’을 사랑하는 듯 보이는 시선에 조금 너그러워지는 면이 있다.

그리고 찰스는 어지간히도 경멸하는 듯. ㅎㅎ.. 아니 경멸이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왕가 이미지에는 미달이라고 여기는 느낌.


- 여왕이 남편을 힐끗 쳐다보았다. “사람들은 곧잘 잊어버리지. 내가 세계 대전을 겪었고, 그 퍼거슨이란 여자애도, 또 당신이 해군에 복무하던 시절도 버텨 낸 사람이라는 걸.” - 28

- 말하자면 험프리스는 머리카락도, 정장도, 정신도, 무미건조한 회색빛이었다. 또한 89세나 된 여왕이야 도무지 현대 사회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고 확신하는 사람이었다. 이 남자는 현대 사회를 이룬 수십년의 세월을 여왕이 몸소 겪어 왔기에 어쩌면 자기보다도 더 미묘한 차이를 잘 이해할 지 모른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 - 61

- “폐하, 찾으셨습니까?”
“그랬네.” 여왕이 말했다. 그리고 골똘히 생각하며 잠시 펜을 만지작거렸다. “자네가 날 좀 도와줄 수 있을까 해서 말이야.”
“뭐든 말씀해 주십시오......” 로지의 대답은 의도했던 것보다 더 열렬한 목소리로 울려 퍼졌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보스가 무엇을 원하든 따를 터였다. 로지는 왕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왕의 지위 때문이 아니라 여왕이라는 사람 때문이었다. 여왕은 거의 불가능한 과업을 떠맡아 감내하면서도 결코 불평해 본 적 없으며, 대다수 국민이 태어나기 전부터도 그 과업을 훌륭하게 수행해 온 특별한 인간이었다. 사람들은 여왕을 흠모했다. - 70

- 드디어 혼자 남은 여왕은 거실 창밖을 내다보았다. 옅은 파란색 하늘 아래로 착륙장에 선 비행기 한 대가 보였다. 그녀는 몹시 화나고 낙담했다. 몇십 년 전이었다면 자신의 무력함을 탓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았다. 여왕은 경험으로 배웠다. 언제나 옳은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노력은 해 볼 수 있지. - 107

- 그 사람들은 폐하를 믿어야만 해요. 하지만 그러지 않죠. 그분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강한 여성 중 하나일 텐데도, 허구한 날 남들 말에 잠자코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고요. 저쪽에서는 그분 말씀을 듣지도 않는데. 그래서 미칠 지경이신 거예요. 뭐랄까, 그분은 그렇게 성장한 거죠. 남성 중심주의가 표준이던 시절, 30대밖에 안 된 젊은 여성이 왕위에 올랐으니까요. 참 나, 요즘 사람인 로지 씨도 분명 겪는 일일 테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게 잘못됐다는 걸 알잖아요. 폐하는 자신이 얼마나 유능한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혼자서 깨우쳐야만 했어요. 그리고 그분은 뭔가를 알아채는 데에 일가견이 있으세요. ‘어긋난’ 것을 발견하고 이유를 알아내고 문제를 해결하는일 말이에요. 사실 그 방면에서 천재라고 할 수 있을걸요. 하지만 도움의 손길이 좀 필요하시죠. - 117

- 에일린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 좋아요! 그 생각을 하니 정말 즐겁네요. 그게 그분 스타일이라서 그래요. 난 그 부분이 제일 마음에 들더라. 당신은 폐하의 명을 받아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자질구레한 정보를 주워 모으고, 필요하다면 거짓말도 천연덕스럽게 해야 할 거예요. 그러다 드디어 중대한 막판이 닥쳐오면...... 아무 일도 일어난 적이 없는 거죠.“
”그게 무슨 뜻이죠?“
”두고 보면 알아요. 그 순간을 만끽해야 돼요.“ - 119

- ”톰 말로는 험프리스가 전부 다 해결했다더군.“ 필립이 말했다. ”녀석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그래, 상당히 놀랐어.“
”놀라 자빠질 일이지. 거 참, 내가 보기엔 누가 그 녀석한테 정보를 떠먹여 준 거라니까.“
”그렇게 생각해?“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예리한 눈으로 남편을 흘겨보았다.
”그렇고말고. 틀림없이 부하 중 하나겠지. 엄청나게 똑똑한데 승진에서는 밀린 친구. 일은 전부 다 그 친구가 하고 찬사란 찬사는 험프리스 녀석이 한 몸에 받는 거지. 당신은 그런 생각 안 들어?“
”뭐 그런 느낌이긴 해.“
”그런데도 훈장을 받는 건 그놈이겠지?” 필립이 침울하게 덧붙였다.
“그럴 것 같네.”
“보나마나 지금보다도 더 꼴 보기 싫어지겠군.”
그녀는 이 말을 듣고 그저 미소 지었다. 아마 필립 말이 맞겠지만, 여왕이야말로 누가 아무리 꼴 보기 싫더라도 참고 견디도록 단련된 사람이었다. - 369

2022. dec.

#윈저노트여왕의비밀수사일지 #소피아베넷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